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07)
# 34장 이이제이(以夷制夷) (3) #
젓가락에 마라탕의 국물을 묻혀서 혀끝에 살짝 갖다 댄 천여운은 나노에게 곧장 성분 분석을 명했었다.
[음식물에서 체내의 에너지를 흩어지게 만드는 성분과 유해 독성분이 검출되었습니다.]숙수의 미심쩍은 행동에서 비롯된 의심.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확인했던 것이 들어맞았다.
에너지를 흩어지게 만든다는 말은 분명 내공을 흩어지게 만드는 산공독이 틀림없었다.
음식을 그냥 먹지 않을까 생각했던 그였지만 마음을 바꿨다.
‘내가 눈치 챘다고 생각하면 이걸 노렸던 놈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겠지. 나노 혹시 유해 성분들이 몸에 퍼져나가지 않게 따로 모을 수 있어?’
[네. 가능합니다.]나노머신의 기능으로 체내에 있는 독성분을 따로 모아놓은 천여운은 일부러 모른 척하며 마라탕을 전부 먹었다.
그리고 그 독은 이렇게 배출해냈다.
-치이이익!
“끄아아아아악!”
허벅지가 타는 소리와 함께 음마종의 항유직이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독마종의 백철구를 포함한 세 명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말도 안 돼! 독을 체내에 가지고 있다가 배출시켰다고?’
체내로 흡수한 독을 배출시켜내는 것은 독공의 고수들이면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공력이 흩어지는 산공독까지 복용한 상태에서 독기를 모아서 배출해내는 것은 독마종 출신인 그라고 해도 불가능했다.
“네, 네놈이 대체 무슨 수로?”
“설명할 시간 따위 없다.”
그 말과 함께 천여운의 신형이 순식간에 도마종의 부양강의 뒤로 나타났다.
경공이 어찌나 빨랐는지 육안으로 판별하기 힘들 정도였다.
대호법 마라겸의 독문경신법인 풍신공을 익힌 후로부터 경공이나 보법이 월등하게 빨라진 천여운이었다.
“부양강! 뒤를 조심해!”
“빌어먹을!”
-휘이이익!
검마종 경표의 외침에 부양강이 놀라서 몸을 돌리며 환마도법의 방어 초식을 펼치려했다.
그러나 이미 뒤를 잡힌 상황에서 그럴 틈이 없었다.
천여운의 손에서 화려한 장법 초식이 펼쳐지며 그의 등을 속사포로 가격했다.
-파파파파팍!
“크헉!”
등에 연달아 여덟 번의 장법에 가격 당한 부양강이 피를 토하며 앞으로 튕겨나갔다.
공력에서 너무 격차가 심했기 때문에 호신기운으로도 버틸 수가 없었다.
-쿠당탕탕!
바닥에 쓰러진 부양강이 몸을 꿈틀거리더니 이내 기절하고 말았다.
“부, 부양강을 고작 한 초식 만에?”
검마종의 경표가 경악한 나머지 어쩔 줄 몰라서 뒷걸음을 쳤다.
한 차례 당했었기 때문에 강하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이건 너무 일방적이었다.
‘젠장! 백철구 놈의 말을 듣는 게 아니었어.’
이래서야 전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독에 중독되지 않은 천여운은 괴물 그 자체였다.
‘의무실에서 퇴원한지 얼마 되었다고…’
다시 의무실로 돌아가야 할 판국이었다.
도망을 치려고 해도 경공이 너무 빨라서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곧장 자신이나 백철구를 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절해 있는 부양강에게로 다가갔다.
짙은 살기가 뿜어져 나오는 모습이 이상했다.
천여운이 차가운 눈빛으로 부양강의 머리 위로 발을 들어올렸다.
“자, 잠깐! 천여운 네놈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내가 언제까지 팔 한 짝 정도로 적당히 봐줄 거라고 착각한 건 아니겠지?”
“안 돼!”
-콰직!
천여운의 발에 힘이 들어가자, 부양강의 머리에서 으깨지는 소리와 함께 피가 터져 나왔다.
“이, 이럴 수가…..”
“죽이다니?”
검마종의 경표와 독마종의 백철구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버렸다.
설마 진짜로 머리를 으깨버릴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초절정의 무공이고 뭐고 소용이 없었다.
두려운 나머지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경표는 후들거리는 것을 겨우 참고 서있는 것이 한계였다.
“이제 네놈들 차례다.”
부양강을 죽이고 난 천여운이 그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무서울 정도로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그들을 위압적으로 억누르고 있었다.
‘저, 정말로 우릴 죽일 작정인가?’
지금까지 천여운이 보여준 행보와는 확연히 달랐다.
스스로를 제한하듯이 소교주 후보자들의 목숨만큼은 앗아가지 않았던 그였는데, 그 제한을 풀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손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덜덜덜! 털썩!
경표가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스스로 기운을 숨기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화경의 극에 오른 천여운에게서 느껴지는 거대한 역량은 태산과도 같았다.
‘안 돼. 저,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어.’
괴물 같은 천여운을 상대로는 초절정의 무위라고 해도 방법이 없었다.
공포심에 떨고 있는 경표와 달리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서든 타개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독마종의 백철구가 다급하게 외쳤다.
“네, 네놈이 정말 미쳤구나. 천여운! 여섯 종파의 분노가 두렵지도 않단 말이냐!”
“여섯 종파가 두려워?”
-휙!
천여운이 손을 뻗자 바닥에 떨어져 있던 무언가가 들썩 거리더니, 그의 심후한 공력에 허공으로 떠올라서 그대로 검마종의 경표에게로 쇄도했다.
-푹!
“크헉!”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무방비 상태로 떨고 있는 경표의 가슴에 그 무언가가 박혔다.
그것은 음마종의 항유직의 부러진 비파형태의 검날이었다.
“네놈! 정녕?”
가슴에 박힌 검날로 고통스러워하며 쓰러지는 경표의 모습에 분노하는 독마종의 백철구에게 천여운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려워했으면 처음부터 시작도 하지 않았다.”
그 눈빛에는 일말의 두려움이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백철구가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독기가 서린 목소리로 저주하듯이 말했다.
“네놈은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실수를 한 거다. 여섯 종파에서 네놈을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다!”
“…..글쎄, 과연 그럴까?”
-탓!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끝으로 천여운의 신형이 백철구에게로 쇄도했다.
* * *
반각 후,
독으로 함정을 파고 자신을 노렸던 네 종파의 혈손들을 해결한 천여운이 급하게 경공을 펼치며 기감을 넓혀 수하들을 찾았다.
독마종의 백철구의 말대로 라고 한다면 수하들이 위험에 빠졌다.
그가 없는 상황에서 현마종의 소교주 후보자인 천무연이 작정하고 노린다면 아무리 무공이 상승한 그들이라고 해도 전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조급했다.
서둘러서 경공을 펼치며 연공실 방향 쪽으로 향하는데, 그의 기감을 자극하는 기운들이 느껴졌다.
‘아!’
꽤 많은 인원이 자신이 향하는 방향에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어두운 마도관의 저 편에서 경공을 펼치며 다가오는 그들과 곧 마주할 수 있었다.
그들은 바로,
“주군!”
“천 공자님!”
고왕흘과 허봉을 비롯한 천여운의 수하들이었다.
그들의 몸에서 내공을 끌어올린 열기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보니, 천여운 못지않게 다급하게 찾아다닌 듯 했다.
그의 예상대로 천여운의 수하들은 마도관의 두 연공실 주변부터 시작해 수색을 하듯이 돌아다니며 찾아 헤매다 숙소 방향 쪽으로 향하게 된 것이었다.
“아아아! 다행이에요. 우려했던 일은 없었네요.”
천여운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문규가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른 수하들 역시도 같은 심경이었는지 안심해했다.
“주군! 괜찮으십니까?”
고왕흘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오히려 천여운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건 내가 할 소리다. 천무연의 수하들에게 습격을 당하지 않았나?”
독마종의 백철구가 하는 말을 들었을 때는 분명 허언이 아니었다.
단순히 혼란을 주기 위한 위협이라고 하기에는 천여운이 정말로 독에 중독 당했다면 그의 수하들까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천여운의 물음에 고왕흘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주군께서 그걸 어찌?”
그런데 습격을 당한 것치고 다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하나 습격은 아니었습니다. 천무연 공자의 수하들이 찾아와서 저희에게 영입 제안을 했습니다.”
“영입 제안?”
불과 삼 각 전의 일이었다. 저녁 식사를 하기위해 식당으로 향하던 그들을 가로막은 극신과 천무연의 수하들은 예상과 달리 공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에게 제안을 했다.
여섯 종파가 아닌 천여운은 어떤 식으로든 절대로 소교주가 될 수 없으니, 자신들의 주군인 현마종의 후보자인 천무연을 따르라는 제안이었다.
‘고왕흘. 네 충성심이 높다고 들었다. 하지만 대세의 흐름이라는 것이 있다. 지금 천여운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마도관의 보호 아래에서다. 여기서 벗어나게 된다면 그 혼자서 여섯 종파와 상위 종파들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나?’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거둘 만큼 천무연 공자님의 포용력은 넓다. 천여운 그 자를 믿고 어리석은 선택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연현종의 극신과 현마종의 무진윤은 여섯 종파의 압도적인 세력 앞에서는 천여운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천여운을 따르기로 한 수하들 중에 여섯 종파의 위세를 두려워하는 자들이 있을 리가 없었다.
주군을 모욕하는 말에 화가 잔뜩 오른 허봉이 그들을 다그쳤다.
‘하! 헛소리 지껄이지 마시죠.’
‘뭣?’
‘우리가 그런다고 현마종에 고개라도 넙죽 숙일 줄 알았습니까? 그리고 아까부터 계속 천여운, 천여운 하면서 주군의 존성대명을 함부로 뱉으시는데, 장로님이라고 붙이시죠. 극 단주님!’
허봉의 날이 선 일침에 두 사람은 일순간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뭐라고 반박하기에는 맞는 말이었다.
‘…..기가 살았군. 고작 중소 종파의 약해빠진 놈 주제에.’
‘그 약해 빠진 놈이랑 한판 해보시렵니까?’
‘이놈이 뭐가 어쩌고 저째!’
‘극신! 우린 싸우러 온 게 아니다.’
도발하는 허봉의 말에 연현종의 극신이 발끈했지만 그를 현마종의 무진윤이 만류했다.
그런 그들을 향해 고왕흘도 불쾌하다는 듯이 일침을 가했다.
‘주군이 혼자라고 착각하지 않길 바라네. 우리는 언제라도 그분을 위해서 목숨을 던질 각오가 되어 있으니까.’
‘천여운…..장로에게 인덕이 있나보군. 이런 모습을 보고나니 더더욱 제안을 포기하고 싶어지지 않는군. 잘 생각해봐라.’
전력 면에서 우위임에도 불구하고 싸울 의사가 없다고 확실히 그은 현마종의 무진윤은 한 번 더 제안을 생각해보라는 말만을 남기고 가버렸다.
“그냥 갔다고?”
“수작을 부렸지만 저희가 적대적이서 그런지 일단은 돌아갔습니다.”
자신은 습격을 당했는데, 수하들은 그대로 내버려뒀다는 말에 천여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단순히 생각했을 때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네 종파의 녀석들이 나를 죽일 작정으로 함정까지 파서 습격했다. 그런데 현마종 녀석들은 그런 제안만 하고 갔다라….’
의문에 빠졌던 천여운은 몇 번 씩이나 상황을 되새긴 끝에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것은 절대로 이 상황을 이용해서 이속을 차리기 위해 수하들을 거두려고 한 제안 따위가 아니었다.
“…..이이제이(以夷制夷)로군.”
* * *
한편 현마종의 혈손인 무진윤은 수하들을 돌려보내고 격세석 연공실에서 누군가와 접촉하고 있었다.
그는 바로 현마종의 소교주 후보자인 천무연이었다.
하루 내내 수련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는지 천무연의 옷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무진윤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실실거리는 낯으로 그에게 말했다.
“형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했습니다. 이번 일로 천여운 놈이 살아남든지 죽든지 저희에게는 전혀 잃을 게 없군요. 하하하핫.”
“모르는 일이다. 놈은 독인의 독을 견뎠다.”
놀랍게도 무진윤에게 모든 것을 일임했다고 알려진 천무연은 지금까지 돌아가는 정황을 전부 파악하고 있었다.
어제의 회동에서 천무연의 수하들이 의아해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천무연은 절대로 혈육이라고 해서 모든 전권을 무진윤에게 일임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소교주 쟁탈전과 관련된 일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어쨌거나 놈이 죽게 된다면 형님이 소교주 쟁탈전의 최종 승자가 되는 것이고, 살아남게 된다면 놈이 네 종파의 분노를 사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천여운의 성격 상 자신의 목숨을 노린 놈들을 멀쩡히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한 종파도 아니고 네 종파의 혈손을 동시에 건드리게 될 테니, 그 여파는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하하하하하핫! 최고의 수입니다.”
무엇이 되든지 이득이었다.
더군다나 천여운이 살아남는다고 해도 자신들에게는 명분이 있었다.
독마종에서 제의를 했지만 비겁한 방식을 피하기 위해 거절했다는 식으로 둘러댈 수 있는 것이었다.
천무연은 자존심을 버리고 현재의 전력을 냉정하게 평가했다.
지금 그 자신의 무력이나 수하들의 전력을 전부 더한다고 해도 천여운과 그 일파를 마도관 내에서 이길 수 없었다.
직접 손을 댈 수 없다면 가장 좋은 수는 다른 힘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진정한 이이제이의 수로군요! 형님께 한 수 배웠습니다.”
이 모든 것을 제안한 독마종의 백철구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모든 것은 경쟁이었다.
그들로서는 천여운의 수하들이 합류하지 못하게 적당히 시간을 끌어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역할을 다했다.
보고를 전부 들었으니 더 이상 관심이 없어졌는지 천무연이 손을 휙 저으며 말했다.
“이제 돌아가라. 나는 계속 수련을 하겠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도록…”
-쿵쿵!
그때 격세석 연공실의 두꺼운 석문을 누군가가 두드렸다.
한 번이 아니었다.
-쿵쿵!
“응?”
분명 사용 중이라고 걸어놨을 텐데 누가 계속 문을 두드리는 것일까?
천무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열어도 좋다고 했다.
무진윤이 의아해하며 격세석 연공실의 문을 여는 순간, 밝은 등불의 빛과 함께 선임 무공 교두 호진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교두님?”
그런데 호진창 혼자가 아니었다.
그 뒤로 수많은 무공 교두들이 도검을 뽑아들고 무장까지 해서 대기하고 있었다.
기세만 보아서 언제든지 무력을 동원할 것만 같았다.
“아…….대체 무슨 일로?”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지만, 뭔가 사태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인지한 무진윤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뒤를 돌아 천무연을 쳐다보았다.
“호오. 마침 잘됐군. 두 분이 한 곳에 있으니 말이네.”
“네? 교두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두 분을 관주실로 압송하라는 명이 떨어졌네. 강제로 데려가고 싶지 않으니, 쓸데없는 반항은 하지 않기를 바라네.”
-챙!
검을 뽑는 호진창의 눈빛은 절대로 허언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