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09)
# 34장 이이제이(以夷制夷) (5) #
여섯 종파 중에서도 수좌를 차지하고 있는 현마종.
현마종의 수장인 일 장로 무진원은 두 절기를 양손으로 동시에 펼치고, 좌우를 바꾸는 비기로 교내에서 무공 서열 이 위를 차지한 절대적인 고수였다.
우검좌장(右劍左掌). 좌검우장(左劍右掌).
사라진 전진파(全眞派)의 비기인 쌍수호박에서 착안하여 만든 것으로 양손으로 다른 무공을 펼쳐야 할 만큼 익히기가 힘든 무공이었다.
현마종 내에서도 수장인 무진원 이외에 오직 천무연만 익혔다고 알려진 이 무공은 천무연이 삼 단계 시험에서 노란 명찰을 획득하기 위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선보인 적이 있었다.
‘우검좌장?’
좌호법 이화명이 처음 독마종의 혈손인 백철구의 시신을 보았을 때 내린 결론이었다.
그 정도 되는 고수라면 상처의 흔적만으로도 어떤 무공에 의해서 생긴 상처인지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변명할 거리라도 있나? 천 단주.”
마도관에서 우검좌장을 펼칠 수 있는 자는 오직 단 한 명뿐이었다.
현마종의 소교주 후보자인 천무연.
‘대체 무슨 수를 쓴 거냐? 천여운.’
천무연의 귀에는 좌호법 이화명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기존의 상식을 파괴한 이 말도 안 되는 함정에 혼란스러웠다.
‘고작 한 번 밖에 보이지 않은 무공을 펼쳤다고?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범인이 천여운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런데 어떤 누가 삼 년도 전에 찰나의 순간에 펼쳤던 초식을 기억해서 다시 구현할 수 있단 말인가.
이건 자신의 외조부인 일 장로 무진원이라고 해도 불가능했다.
‘…..외통수로구나.’
이 모든 게 천여운이 만든 함정이고 그가 단 한 번 본 초식을 펼쳐서 독마종의 백철구를 죽였다고 주장해봐야 입장만 우스워질 뿐이었다.
너무 완벽한 함정이었기에 이것을 타파할 방법이 없었다.
“과, 관주님!”
시신들에 남아있는 모든 정황이 천무연을 범인으로 가리키자 현마종의 혈손인 무진윤은 평정심을 잃고 말았다.
“이건 누군가의 함정입니다. 천 단주는 지금까지 연공실에서 수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수로 이들을 죽인단 말입니까?”
물론 한 점의 거짓이 없는 진실이었다.
그러나 해명을 하더라도 시신에 남아있는 상흔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이화명이 싸늘한 눈빛을 풀지 않고 무진윤에게 말했다.
“함정? 뭐가 함정이라는 건가?”
“그, 그건…..”
완전한 해명을 하려면 이곳에서 벌어졌던 일을 전부 설명해야 했다.
그렇게 되면 자신들이 연루되어있다는 사실마저 밝혀진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피해를 보게 되어 있다.
‘안 된다. 이 사건으로 형님께서 마도관에서 퇴출 당하게 된다면, 소교주 쟁탈전은 꼼짝없이 천여운 그놈의 승리가 되지 않나.’
-으득!
분했는지 무진윤이 이를 갈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퇴출만큼은 막아야만 했다.
마음이 급해진 무진윤은 차라리 피해가 적은 쪽을 택하기로 하였다.
“관주님! 이건 전부 저희와 상관없는 일입니다.”
“해명을 해도 증좌가 없다면 결국 변명일 뿐이다. 교두들은 들어라.”
“충!”
이화명이 그들을 압송하라고 명령을 하려고 하자 다급해진 무진윤이 외쳤다.
“저, 전부! 천여운 그 자가 꾸민 짓입니다.”
무진윤의 외침에 천무연이 두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자중하라고 했건만 결국 터뜨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를 탓할 수만도 없었다.
같은 생도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쓴 채로 마도관에서 방출되게 된다면 소교주의 자리는 천여운이 차지하고 만다.
-착!
이화명의 눈에 이채가 띠더니, 손을 들어서 다가오는 무공 교두들을 멈추게 했다.
그가 관심을 보이자 무진윤은 내심 되었다고 생각했다.
‘최대한 우리가 연관이 없도록 설명해야 한다.’
이화명이 말없이 바라보자,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인 무진윤이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물론 약간의 각색은 있었다.
어차피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모든 책임을 독마종의 백철구에게로 몰았다.
“….했지만 저는 그게 비겁하다고 여겨 거절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저희가 이들을 죽인다고 해서 무슨 득이 있습니까? 더군다나 천 단주는 퇴출된다면 소교주 쟁탈전도 치르지 못하는데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죽은 것도 부름을 받고 와서야 처음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는 내내 이화명의 표정이 묘했다.
그럴 듯하게 각색을 했는데도 조금이라도 의문스러워하지 않았다.
이를 답답해 한 무진윤이 최후의 수단을 꺼냈다.
“천여운과 다른 생도들을 불러서 대질 시켜주십시오! 설명을 드렸는데도 저희만 혐의자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무진윤에게는 이 사건과 관련이 없다는 정확한 증좌가 있었다.
사건이 벌어졌던 당시에 그 자신이 천여운, 천무연의 수하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증언한다면 더욱 확실해 진다.
“어서 부탁드립니다!”
이런 용도로 천여운의 수하들을 붙들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좌호법 이화명의 반응은 그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어이가 없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무 대주. 본 관주를 어지간히 우습게 여겼군.”
“네? 제가 어찌.”
“그런 말도 안 되는 해명이 통한다고 생각했나?”
“네?”
“이 시신들을 누가 발견했을 것 같나?”
“무, 무공 교두들이 아니십니까?”
“천 장로께서 다른 단주, 대주들과 함께 현장을 발견하고 본 관주에게 직접 신고한 것이다.”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이화명의 말에 무진윤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건을 벌인 당사자가 이것을 신고했다는 게 대체 말이 되는 소리인가.
이제는 어이가 없다 못해서 화까지 치밀어 오른 무진윤이 혐의를 받고 있는 상황마저 잊고 항의했다.
“관주님! 천여운 그놈이 진짜 범인인데 어째서…”
“내가 어째서 범인이라는 거지?”
“엇?”
익숙한 목소리에 무진윤과 천무연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향했다.
등불을 들고 원진을 두르고 있는 무공 교두들 사이에서 천여운이 시신들이 있는 안쪽으로 들어왔다.
‘하! 진짜 범인 놈이 현장을 찾아와? 네놈은 대담한 거냐? 미친 거냐?’
뜻밖의 등장에 무진윤은 황당하기마저 했다.
그런데 천여운이 들어오는 순간, 무공 교두들이 동시에 그를 향해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여 큰소리로 예를 갖췄다.
“천여운 장로님을 뵙습니다!”
“장로님을 뵙습니다!”
일흔 명이 넘는 무공 교두들이 동시에 예를 표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그 광경에 무진윤이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육 단계 시험을 통과했기 때문에 장로의 직위를 얻었다고는 생각했지만, 여전히 그들의 머릿속에는 같은 생도였고 하찮은 시종의 자식에 불과했다.
“예를 갖춰라.”
좌호법 이화명의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굳어졌다.
마교의 직위 체계 상 분명 맞는 말이기는 했지만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두 사람이 머뭇거리자 이화명의 기세가 점점 위압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예를 갖추라고 했다.”
천무연이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천여운에게 억지로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췄다.
“천여운…..장로님을 뵙습니다.”
“크윽!…..천여운 장로님을 뵙습니다.”
설마 자신들이 그렇게 멸시해왔던 천여운에게 머리를 숙여야 하는 상황마저 벌어질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빌어먹을!’
극도로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고개를 다시 들어 올리는 무진윤에게 천여운이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무 대주. 이게 전부 독마종과 도마종, 음마종, 검마종에서 함정을 파서 노린 것이고, 이들을 전부 내가 해쳤다고 했나?”
상황이 이상하게 되어버렸다.
여기서 그렇다고 말을 하면 본교의 장로에게 살인 혐의가 있다고 주장하는 꼴이었다.
무진윤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천여운이 좌호법 이화명을 바라보며 물었다.
“관주님. 여기에 있는 시신들이 어떻게 죽은 건지, 제가 알 수 있겠습니까?”
“어려울 게 있겠습니까.”
-딱!
이화명이 손가락을 튕기자 무공 교두들이 시신들을 한 곳으로 모았다.
음마종의 항유직의 시신을 가지고 온 무공 교두가 그 상태에 대해서 설명했다.
“항유직 대주는 도마종의 부양강 대주의 도법에 팔이 잘리고, 독마종의 백철구 대주의 독에 당했습니다.”
검마종의 경표의 시신을 가지고 온 무공 교두가 이어서 설명했다.
“경표 대주는 음마종의 항유직 대주의 비마음검의 검날이 심장에 관통해서 사망했습니다.”
두 무공 교두의 설명에 천무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처음에는 그저 이 사건이 천여운이 자신에게 혐의를 뒤집어씌우기 위한 것이라고만 여겼었다.
‘이런…..’
천무연이 뭔가를 깨닫는 것과 별개로 도마종 부양강의 시신을 가지고 온 무공 교두가 이어서 사인을 설명했다.
“부양강 대주는…..현마종의 유현운장으로 추측되는 장법에 내상을 입은 상태에서 머리가 으깨져서 사망했습니다.”
마지막 시신인 독마종의 백철구의 시신은 바로 앞에 있었기에 좌호법 이화명이 직접 설명했다.
“백 단주는 현마종의 비기인 우검좌장에 당해서 내상과 과다 출혈로 죽었습니다.”
그리고는 얼굴이 상기되어 있는 천무연을 바라보았다.
범인이 그라는 것을 한 번 더 강조하듯이 말이다.
천여운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번에는 천무연과 무진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상하군. 내가 독공부터 이 많은 무공을 할 줄 안다고?”
“그, 그건….”
무진윤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어떠한 시신에도 천여운의 무공과 관련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교두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째 다섯 명이서 다투다가 서로를 죽인 걸로 밖에 보이지 않는데.”
‘천여운…..이놈!’
천무연이 충격을 받았는지 두 눈이 커져서 천여운을 노려보았다.
시신들의 사인을 들으면서 중간에 눈치 챘던 추측이 확실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다섯 종파를 상쟁시킬 작정이구나!’
처음에는 그저 소교주 쟁탈전에 유일하게 남은 호적수인 자신을 탈락시키기 위한 목적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천여운의 진정한 목적은 자신만이 아니었다.
이 시신들이 네 종파로 퍼져나가게 된다면, 그 종파에서는 시신에 남겨진 상흔으로 범인을 확신할 수밖에 없다.
그 중 유현운장과 우검좌장의 비기에 의해 혈손이 살해당한 도마종과 독마종은 자신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현마종에 증오심을 불태울 것이다.
‘…..당했다!’
그 자신이 계획했던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수를 역(逆)으로 받아쳤다.
천여운은 이번 한 수로 소교주 쟁탈전의 호적수도 제거하면서 다섯 종파가 상쟁시키게 만들어버렸다.
천무연은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어머니인 무 부인 이외에 이렇게까지 무서울 정도로 치밀한 지략은 처음 보았다.
그저 영악하다 수준을 넘어섰다.
-부들부들!
‘크으으윽! 천여운!’
이미 모든 것이 드러난 마당에 무진윤 역시도 이것을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진실을 알면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천여운이 이 모든 짓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입증하기에는 시신의 상흔부터 무공까지 무엇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완벽한 천여운의 승리인 것이다.
좌호법 이화명이 입 꼬리를 올리며 무공 교두들에게 명을 내렸다.
“두 사람을 구금동으로 압송해라.”
“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