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10)
# 35장 소교주의 자격 (1) #
오백여 년의 마도관 역사상 처음으로 현 마교의 실세이자 근본이라고 불리는 여섯 종파 중 네 종파의 혈손들이 하룻밤 새에 죽어나가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들의 수습된 시신은 다음날 정오를 기점으로 각 종파로 보내졌다.
사태가 보통 큰 것이 아니었기에 이 중심에 있는 현마종에는 출타한 교주와 장로들이 복귀할 때까지 소교주 후보자인 천무연과 혈손인 무진윤을 구금동에 억류시켜놓는다는 공문이 갔다.
마도관의 본관 일 층, 관주 집무실.
“참으로 절묘한 수로군요.”
무공 교두 호진창이 마도관주인 좌호법 이화명에게 말했다.
이화명 역시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애초부터 네 종파의 혈손을 죽인 진정한 범인이 천무연과 무진윤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시신만 본다면 누구라도 알기 힘들 겁니다.”
이화명조차도 죽은 독마종의 백철구에게 남겨진 상흔을 확인했을 때 천무연 이외에는 떠올리기 힘들었다.
‘이건 나도 정말 궁금하군.’
상식적으로 고작 한 번 보았던 초식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것은 화경의 고수라고 해도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좌장우검은 현마종주의 비기였다.
아마도 이번 일로 인해 네 종파는 어떤 식으로든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의 교주님조차도 그들의 힘을 약화시키는 데만 집중했건만.’
호진창의 말대로 절묘한 수였다.
이것은 오직 마도관 안에서만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마도관의 기간이 끝나게 된다면 이 네 종파의 혈손들을 무슨 수로 한 곳으로 모으겠는가.
‘제대로 익었다.’
기다려왔던 열매는 탐스럽게 익었다.
삼 년 전만 하더라도 분노에 사로잡혀서 사리판단이 되지 않았다.
가진 무력에 비해서 허술했던 냉철한 부분이 보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검마 공께서 바라셨던 진정한 교주가 탄생할 것이다!’
이번 일이 어떻게 돌아갈지는 모르겠지만, 그 동안 천여운 한 명에게 쏠려있던 여섯 종파의 시선이 분산될 것은 확실했다.
가장 좋은 결과는 다섯 종파가 이를 계기로 상쟁하는 것이야말로 천여운이 의도한 그림대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지금쯤이면 각 종파에 시신들과 서신이 도착했겠군.”
벌써 반 시진이 지났으니 네 종파에서는 시신들을 보고 있을 것이다.
호진창이 창밖으로 마도관의 서쪽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쩌면 독마종에서는 머지않아 사달을 일으킬 지도 모르겠군요.”
다른 종파들은 몰라도 불구가 된 소교주 후보자부터 시작해 종파의 종주, 혈손까지 전부 잃은 독마종이었다.
과연 어떤 식으로 나올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한편 십만대산의 마교 성내 서쪽에 자리한 독마종의 장원.
장원에는 흰 상복을 입은 독마종의 수뇌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여드레 전에 독마종의 종주인 백오가 죽으면서 장례를 치르고 있는 독마종의 수뇌부들은 핏줄이 선 눈으로 이 각 전에 도착한 관을 바라보았다.
뚜껑이 열려있는 관 안에는 핏기가 없어서 하얀 얼굴을 한 백철구의 시신이 누워있었다.
아직 종주의 장례절차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그 혈손마저 죽임을 당한 채 나타나자, 그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철구야! 아아악!”
아들을 잃은 조 부인이 관 앞에서 오열을 하며 통곡했다.
그 모습을 누구 하나 달래지 못하고 망연자실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으득!
어찌나 화가 났는지 상주를 맡고 있는 백오의 장남인 백문수가 이를 갈면서 말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소. 아버님의 넋을 달랠 때까지 미루려고 했으나, 이제 그 선을 지나친 것 같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들마저 죽임을 당했다.
아버지에 이어서 아들을 잃은 백문수의 분노는 무엇으로도 달랠 수 없었다.
오직 피의 복수만이 이 한을 풀 수 있었다.
“현마종!”
백오의 죽음이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이 현마종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독마종의 모든 수뇌부들이었다.
마도관의 육 단계 시험을 거절했던 독마종주 백오가 하루 만에 그 의견을 번복했다.
그것은 현마종의 무 부인이 다녀가고 나서였다.
“소 종주님의 말씀이 백 번 지당합니다! 더 이상 그들에게 농락 당해서는 안 됩니다.”
외당주인 백차우도 상기된 얼굴로 분노를 토해냈다.
이들의 모든 분노는 현마종으로 쏠렸다.
백문수가 종파의 수뇌부들을 바라보면서 한자 한자 곱씹으며 말했다.
“뻔뻔한 그년의 목을 베어야만 아버님과 철구의 한을 풀 수 있을 것이오!”
그년이라 함은 무 부인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독마종의 사람들은 여드레 전을 기억했다.
백오의 장례식을 치루는 첫날에 현마종의 무 부인이 다녀갔다.
무 부인으로 인해서 백오가 의견을 번복했기 때문에 심기가 불편한 독마종의 수뇌부들을 상대로 그녀는 뻔뻔하게도 종주를 죽인 천여운을 용서할 수 있느냐며 그들의 화를 유도하려 들었다.
물론 천여운 역시도 종주의 원수였기에 용서할 수 없었던 독마종이었고, 장례를 치르는 와중이었기에 조용히 넘어갔지만 그 선을 지나쳤다.
‘우리 독마종을 우습게 보았구나! 현마종!’
백철구의 사인은 현마종의 비기인 좌장우검에 의한 내상과 검상이었다.
마도관의 관주인 좌호법 이화명이 보내온 공문의 내용을 참고한다면 범인은 변명할 여지가 없이 현마종의 소교주 후보자인 천무연이었다.
“소종주! 아직 장례를 치르는 종주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지금이야말로 가장 적기입니다!”
“제 생각에도 그렇습니다. 현마종주와 그 전력이 반 이상이 빠져있을 때를 노려야만 승기가 있습니다.”
총관과 외당주의 말에 다른 수뇌부들도 모두 동의했다.
일 장로부터 팔 장로까지 교주를 따라서 출타를 하면서 독마종을 제외한 다섯 종파의 전력이 반 이상 빠져있는 상태였다.
“형님. 어차피 저들은 저희가 조카의 장례를 치른다고 정신없다고 여길 겁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네 말이 옳다.”
호전적인 백오의 둘째 아들 백문웅이었지만 이번 의견은 일리가 있었다.
소종주인 백문수도 그 의견이 타당하다고 여겼다.
백문수는 낮에는 백철구의 장례 절차를 진행하고, 은밀히 본교의 교내에 퍼져 있는 독마종의 전력을 새벽의 축시(丑時)까지 집결시키라 명을 내렸다.
교주의 압박으로 인해 삼 년 전보다 약해진 전력이었지만, 현마종주이자 일 장로인 무진원이 없는 지금이야말로 현마종을 쓸어버릴 수 있는 기회였다.
그렇게 몇 시진이 흘러 새벽 공기가 스산한 인시(寅時) 무렵.
독마종의 소종주 백문수가 결행 시간으로 정했던 축시보다 한 시진이 지났다.
마교의 성내 북문 쪽에 자리하고 있는 현마종의 장원.
여섯 종파 중에서 가장 큰 성세를 자랑할 만큼 장원은 독마종의 두 배에 달할 만큼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현마종의 장원의 본당 앞에 자리한 넓은 정원이 피 냄새로 자욱했다.
어두운 정원에는 수많은 시신들이 널려 있었고, 얼핏 보아서는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였다.
독마종의 복수가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의도한 바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꿇어라!”
-콱!
“끄흑!”
심상치 않은 기세를 풍기고 있는 반백의 노인이 한 중년인을 강제로 바닥에 무릎을 꿇렸다.
반항을 하고 싶어도 노인의 심후한 공력에 의해 중년인은 버티지 못했다.
-화르르륵!
어두웠던 정원에 횃불들이 밝혀지며 중년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다름 아닌 독마종의 소종주인 백문수였다.
양 어깨가 피로 물들어있는 백문수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
‘빌어먹을…..어쩌다 이렇게 된 것인가.’
백문수는 분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횃불로 밝아진 정원 내의 시신들은 하나 같이 검은 복면을 쓰고 있었는데, 그들은 독마종의 무사들이었다.
저들 중에는 외당의 당주인 백차우부터 둘째 동생인 백문웅, 그 외의 여러 수뇌부들도 껴있을 것이다.
한 명도 남김없이 전부 죽임을 당했다.
백문수는 아직도 방금 전에 벌어졌던 일들을 믿기가 힘들었다.
‘괴물 같은 년!’
축시에 전력을 결집시킨 백문수는 그들을 이끌고 불시에 현마종의 장원을 기습했다.
장례를 치르는 와중이었기에 현마종은 방심할 수밖에 없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장원으로 진입하여 외당을 지나쳐서 내당으로 들어갈 때까지도 사람의 그림자 하나 찾을 수가 없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백문수가 함정이라 생각하여 후퇴하려 했지만 늦었다.
현마종의 본당까지 집결한 독마종의 무사들에게 내공이 실린 화살 비가 쏟아졌고 그로인해 전력의 반을 잃었다.
그것도 모자라 수많은 현마종의 무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 남은 전력을 에워싸고 공격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분노로 전의가 올라있는 백문수를 비롯한 독마종의 무사들은 결사적으로 싸웠으나, 이 반백의 노인과 붉은 면사포의 여인이 나타나면서 전황은 완전히 달라지고 말았다.
‘믿을 수가 없다.’
백문수가 분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피로 끈적이는 검을 천으로 닦고 있는 붉은 면사포를 쓰고 있는 중년의 여인이 보였다.
교주의 일처이자 현마종의 무 부인이었다.
그저 현 교주인 천유종의 처에 불과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검에 외당주 백차우와 백문웅이 죽임을 당했다.
초절정의 경지에 이르고 파마독경의 육, 칠층에 올라있는 두 사람이 합공을 했는데, 전혀 상대가 되지 못했다.
마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이런 전율적인 강함을 모르고 있었다.
“네년…..힘을 숨겼구나.”
“아직 입을 열 수 있을 기운이 남았나 보네요? 숨겼다라. 단지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랍니다.”
“지금 나와 말장…”
-촤악!
백문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검이 목을 갈랐다.
목이 잘려서 바닥을 구르는 백문수의 머리통을 바라보며 무 부인이 혀를 찼다.
“쯧쯧, 내가 당신과 말장난을 해서 뭐하나요.”
-치이이익!
무 부인이 들고 있는 검날에 묻은 피에서 매캐한 냄새와 함께 뿌연 김이 흘러나왔다.
독마종의 고수들은 파마독경으로 피에 독을 품고 있다.
그녀가 흰 빛의 검기를 일으키자, 검날에 묻은 피가 들끓더니 보랏빛 김이 흘러나오면서 이내 피가 끈적거리게 바뀌었다.
“더럽군요.”
더럽다는 듯이 검날에 묻은 끈적거리는 피를 천으로 닦아낸 그녀의 앞으로 관운장처럼 긴 턱수염의 중년인이 나타났다.
“장원에 있는 쥐새끼들은 전부 정리가 끝났습니다. 부인.”
“잘했어요. 항상 예상을 빗나가는 법이 없군요. 호호호.”
놀랍게도 그녀는 이미 독마종이 기습할 것을 알고 있었다.
마도관주로부터 소교주 후보자인 천무연이 독마종의 혈손을 죽인 혐의로 억류되어 있다는 공문을 받았을 때부터 이미 이렇게 되리라고 예측한 무 부인이었다.
“더 써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아쉽군요. 호호호.”
“그런데 부인. 독마종에서도 이렇게 기습을 감행했는데, 도마종에서는 가만히 있을까요?”
도마종의 혈손인 부양강 역시도 현마종의 장법인 유현운장에 살해당했다고 적혀 있는 공문의 내용을 우려했다.
그러나 그녀는 걱정하지 말라며 고개를 저었다.
“도마종은 종주의 명이 떨어지지 않는 한 직접 움직일 일이 없어요.”
종주인 백오가 죽은 독마종과 다르게 도마종은 종주가 건재하기 때문에 그의 명령이 떨어지지 않고는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너무 많은 것을 잃어서 이성을 상실한 독마종과는 입장이 달랐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아침 마도관으로 사람을 보내서 공자님과 도련님의 신변을 양도 받겠습니다.”
어차피 다른 생도를 죽였다는 혐의가 확실해진 이상 마도관에서 방출되어야 할 천무연과 무진윤이었다.
“흐으으음. 아니에요. 그냥 내버려둬요.”
“네?”
“무연이 그 아이는 조금 반성할 필요가 있겠어요.”
“하지만 도련님을 그런 곳에….”
“내 아이는 내가 잘 알아요. 스스로를 과신하다가 상대의 수에 당했으니, 정신을 차릴 필요가 있어요. 교주의 자리가 쉽지 않다는 것을 가르치려고 했는데, 마침 잘 됐군요.”
한 번 결정을 내리면 번복을 하지 않는 무 부인의 성정을 알기에 긴 턱수염의 중년인은 더 이상의 의견을 내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보다도 먼저 할 게 있어요.”
“하명하십시오.”
“본 종파의 모든 인력을 동원해서 알아내세요. 그 더러운 종자 놈과 관련된 모든 것. 놈을 돌보았던 장 호위란 놈부터 시작해서 마도관에서 방출되었던 생도들을 전부 이 잡듯이 뒤져서라도 말이에요.”
“알겠습니다.”
턱수염의 중년인이 사라지자, 반백의 머리카락의 노인이 다가왔다.
아무렇지 않은 척 냉정하게 보였지만 마도관주로부터 공문을 받은 후부터 심기가 불편해 있는 무 부인을 걱정했다.
“괜찮느냐?”
“안 괜찮을 것도 없지요. 흥. 본 녀의 뒤통수를 쳤으니,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해줘야죠. 이대로 두기에는 놈은…..”
‘너무 위험해졌어요.’
마지막 말은 입밖으로 내지 않았다.
화경의 경지에 오른 것도 모자라서 뛰어난 지략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이번 일로 천여운의 의도에 놀아나서 제 손으로 독마종을 처리한 것을 불쾌하게 여기고 있었다.
‘…..무연이가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내가 직접 나서야 겠어.’
붉은 면사포에 가려져 있었지만 그녀의 살기 넘치는 안광은 뚜렷하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