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12)
# 35장 소교주의 자격 (3) #
‘허어, 정말 독마종의 종주가 죽긴 죽었구나.’
경비 무사는 내심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마교의 성내로 독마종주이자 괴독마장 백오의 죽음은 소문이 날 대로 나있었다.
마도관의 육 단계 시험을 위한 도전을 받고 사망한 것이 알려지면서 모든 교인들이 천여운의 존재를 궁금해 했었다.
‘고작 약관에 불과한데 화경의 고수라니.’
믿기지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청년이 비환귀종의 종주인 천면귀인 환의와 맞먹거나 그 이상의 고수일 수도 있다는 것이 말이다.
그런데 아직 마도관에 있는 걸로 알고 있던 천여운이 어째서 이곳에 온 것일까?
의아해하던 경비 무사 중 한 명이 말했다.
“종주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잠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경비 무사가 대문 우측의 소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허봉이 작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고왕흘에게 속삭였다.
“꼭 귀신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네요.”
“그러게 말일세.”
평소에 호탕한 고왕흘조차도 열려진 소문의 틈 사이로 보이는 음침한 비환귀종의 분위기에 침을 꿀꺽 삼켰다.
근육질의 거구에 맞지 않게 은근히 이런 것에 약한 면모를 보였다.
‘오랜만이다. 근데….좀 무섭긴 하네.’
예전에 방문했을 때는 조부인 구 장로 문연과 함께 왔었기에 덜했는데, 생각 외로 음침한 분위기에 닭살이 돋을 것 같았다.
천면귀인 환의는 열두 장로들 중에서도 가장 괴짜라고 불리는 인물이었다.
‘공자님께서 설득이 가능하려나.’
그들이 이곳을 방문한 이유는 천면귀인 환의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였다.
최상위 종파인 비환귀종의 종주이면서 장로인 환의는 조부인 문연과 더불어 여섯 종파 어디도 지지하지 않는 중립적인 인물이었다.
‘할아버지께서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원래는 구 장로였던 문연은 육 장로였던 백오가 직위가 낮아지면서, 얼떨결에 팔 장로로 승진했다.
덕분에 교주를 따라서 마교 밖으로 출타 중인 상태였다.
지인의 손녀라고 해도 본인이 아닌 이상 크게 도움 될 것 같진 않았다.
그때 대문 안쪽에서 누군가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이었다.
한 명은 손님이 온 것을 알리기 위해 들어갔던 경비 무사였고, 한 명은 머리를 옥비녀로 틀어 올려서는 노란 나비가 그려진 붉은 비단 옷을 입은 미남자였다.
분명 남자였는데, 하얀 분칠에 입술에 붉은 연지를 발라서 묘하게 중성적인 느낌이 났다.
‘여긴 정상적인 사람이 없네.’
하마터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지만 허봉은 입을 굳게 닫았다.
붉은 옷의 미남자가 그들을 향해 다소곳하게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비환귀종의 총관을 맡고 있는 누야연이라고 합니다. 십이 장로님께서 오셨다고 들었는데…..이분이신가요?”
말투마저도 묘하게 여성스러웠다.
그런데 그가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천여운이 아니고 고왕흘이었다.
아무래도 처음 보는 이들은 거구인 그에게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흠흠, 이분이 제 주군이십니다.”
고왕흘이 천여운을 두 손으로 가리키며 정정해주었다.
그 말에 붉은 옷의 미남자, 누야연이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여성스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어머머, 본의 아니게 결례를 범했네요. 십이 장로님을 뵙습니다.”
“천여운입니다.”
거북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천여운은 무표정하게 포권으로 답례했다.
총관 누야연이 경비 무사들에게 대문의 문을 열게 하고는 천여운에게 말했다.
“저희 주인님께서 객당으로 드셔서 다과(茶菓)라도 하시길 권하십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불쑥 찾아왔는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말과 함께 천여운이 일행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가려하자, 경비 무사들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천여운이 눈을 가늘게 뜨고 누야연을 바라보았다.
“아아아, 깜빡했군요. 저희 주인님께서는 장로님 혼자 오시라고 하셨습니다.”
“…..이들은 제 사람입니다.”
“죄송하지만 저희 주인님께서는 낯을 많이 가리셔서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정중하게 이야기를 했지만 천여운 외의 다른 사람은 들이지 않겠다는 의사가 분명했다.
불쾌한 부분도 있었지만 밤늦게 찾아와서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입장은 천여운 자신이었다.
“실례인 줄 알겠지만 수하들인 저희를 두고 독대했을 때, 주군께서 위험하지 않다고 어떻게 장담하실 겁니까?”
고왕흘이 나서서 누야연에게 기분 나쁜 기색을 드러냈다.
그러자 누야연이 베시시 웃으면서 마음에 든다는 듯이 말했다.
“멋지신 분이 충성심도 높군요. 저희 종주님께서 본교의 장로님에게 함부로 대할 만큼 무례하신 분은 아니랍니다. 호호호, 그럼 이렇게 하지요. 한 분만 참관을 하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이상은 제가 종주님께 혼난답니다.”
“하!”
허봉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다섯 명 중에 고작 한 명이 같이 간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그러나 없는 것 보다는 나았다.
누가 같이 들어갈지 눈치를 보고 있는데 문규가 자발적으로 나섰다.
“제가 함께 들어갈게요.”
그녀가 이중에서 유일하게 십일 장로 환의와 안면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모두가 납득했다.
“흐음.”
문규를 바라보는 누야연의 눈빛이 묘하게 빛났다.
그렇게 천여운과 문규는 총관 누야연을 따라서 비환귀종의 장원으로 들어갔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외당 바깥 쪽의 넓은 마당이 드러났다.
보통은 잔디가 있을 법한 마당은 돌바닥이었고, 그 위에는 짚으로 만들어진 인형에 붉은 옷을 입혀놓은 특이한 구조물들이 세워져 있었다.
짚으로 만든 인형의 얼굴에 인피면구를 씌어놓았는데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악취미로군.’
바깥에서 볼 때도 어렴풋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안으로 들어오니 더욱 그랬다.
외당에서 내당으로 들어가는 작은 전각으로 지나치자, 우측에 화려하게 꾸며놓은 객당이 보였다.
“종주님. 손님을 모셔왔습니다.”
누야연이 객당 앞에서 큰 소리로 고했다.
객당의 대청에는 긴 탁자가 놓여 있었는데, 그곳에 일곱 명의 푸른 비단 옷을 입은 학사의 자태를 가진 중년인들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은 전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인피면구?’
천면귀인 환의가 인피면구 제작의 일인자라고 들었지만 이렇게 정교할 줄은 몰랐다.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어색한 부분도 없었고 완전히 같은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대청으로 오르자 가장 상석에 앉아있던 중년인이 혼자 일어나서 천여운에게 포권을 취했다.
“어서 오시게. 비환귀종의 종주인 환의라고 하네.”
이에 문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예전에 보았던 얼굴과 달랐다.
천면귀인이라는 별호답게 환의의 원래 얼굴을 본 사람은 현 교주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짖궃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대체 무슨 짓이지?’
예전부터 조부인 팔 장로 문연에게 환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문규였다.
독특한 사람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첫 만남부터 기괴한 짓을 할 줄은 몰랐다.
[공자님. 제가 알고 있던 장로님의 얼굴과 달라요.]문규의 전음에 천여운이 아무 내색하지 않고 환의라고 칭한 중년인에게 포권을 취했다.
“이번에 십이 장로가 된 천여운입니다.”
“알고 있네. 이쪽으로 와서 다과라도 하면서 이야기하세.”
긴 탁자 위에는 단향이 나는 간식들과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 주전자가 있었다.
가만히 있던 문규가 미심쩍은 눈빛으로 환의를 향해 포권을 하며 말했다.
“마룡장종의 문규입니다. 오랜 만에 환 숙부님을 뵙습니다.”
그녀의 인사에 자리에 앉아있던 환의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던 자들 중에 우측에 앉아있던 한 명이 살짝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반면 상석 앞에 서있던 환의의 눈빛은 처음 보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잠시 후에 입 밖에서 나온 말은 문규를 안심시켰다.
“아! 오랜 만에 보는구나. 마도관으로 들어가기 전에 문연 형님과 함께 봤었는데 그건 잘 관리하고 있었군. 주의사항을 잘 기억했나보군.”
“아아아! 기억하고 계셨군요. 숙부님.”
그 말을 듣고서야 문규의 얼굴이 환해졌다.
[환의 장로님이 맞아요!]그녀가 인피면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자는 그것을 만든 당사자인 천면귀인 환의뿐이었다.
‘흐음.’
그런데 그런 그녀의 확신이 가득찬 전음에도 불구하고 천여운의 표정은 개운치 않았다.
가만히 서있는 천여운에게 환의가 자리를 가리키며 앉기를 권했다.
“왜 그러나? 이쪽으로 와서 앉게나.”
“하나만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무엇인가?”
“제가 왜 장로님을 뵙기를 청했는지 혹시 알고 계십니까?”
곧바로 본론을 꺼내들자 문규가 눈이 동그래져서 천여운을 바라보았다.
장로인 그의 지지를 얻고자 왔기에 담소를 나누면서 좋은 분위기를 유도할 거라는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런 천여윤의 질문에 환의가 여유로운 얼굴로 답변했다.
“본 종주의 옥패를 얻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닌가?”
놀랍게도 환의는 천여운이 이곳으로 온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다.
소교주로 등극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전자는 열두 상위 종파의 종주들이 입회를 하는 방법이 있다.
그리고 다른 후자는 열두 장로들 중에서 세 명의 장로들에게 소교주로 인정을 받는 것이었다.
그 인정의 증표가 바로 그들이 가진 장로의 신분을 나타내는 옥패였다.
옥패를 바치는 것은 소교주로 인정 하는 것과 동시에 그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증표가 되기도 했다.
“역시…..알고 계셨군요.”
“소교주 쟁탈전에서 승리한 천 장로가 마도관에서 나오자마자, 급히 본 종주를 찾았다는 것은 그 이유밖에 없지 않나?”
열두 명의 입회자들을 찾았다면 천여운이 이렇게 조용히 마도관을 나오자마자 자신을 찾을 리가 없다고 짐작했던 환의였다.
교주를 비롯한 여섯 종파의 종주들이 교내에서 자리를 비운 지금이야말로 방해받지 않고 남아있는 장로들을 끌어들이기에 적기였던 것이었다.
“잘 됐군요. 그럼 더 이상 본교의 장로로서 대하지 않겠습니다. 본교의 소교주 후보로서 독대를 요청 드립니다.”
이 의미는 컸다.
장로로서는 동등한 입장이었지만, 소교주 후보로서 대한다는 것은 장로인 환의에게 충성맹세를 받으러 왔다는 의지를 표출한 것이었다.
그 말이 끝나자 잠시 가만히 있던 환의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처음부터 소교주 후보로 대했네만.”
“네?”
“자네도 알고 있지 않나? 장로들의 충성이 담긴 옥패를 받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시험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을 말이야.”
“그 말씀은?”
“본 종주는 지금 자네를 소교주 후보로서 시험하고 있는 것일세.”
환의는 말로만 들어왔던 여섯 종파 이외의 소교주 후보자인 천여운을 만나기를 학수고대 해왔다.
마도관의 기수 역사상 칠십여 년 만에 육 단계 시험을 통과한 소교주 후보.
심지어 열두 장로들 중에서 살상 능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독마종주 백오를 꺾은 천여운이 어떤 인물일지 매우 궁금해 했었다.
“본 종주는 자네에게서 두 가지 시험을 해보려고 하네. 첫 번째가 통찰력이지. 사실은 담소를 나누면서 시간을 주려고 했지만 자네가 먼저 본론을 꺼냈으니, 나도 본론부터 말하도록 하지. 이곳에서 본 종주가 누구인지 알 수 있겠나?”
환의가 자신의 양옆에 앉아있는 여섯 명을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신까지 포함해서 총 일곱 명이었다.
‘아!’
문규의 눈에 당혹감이 서렸다.
일곱 명의 환의들은 어떤 특수한 수를 썼는지, 동일한 수준의 기운을 풍기고 있어서 기감으로도 쉽게 구분할 수 없었다.
‘너무 어려워.’
더군다나 환의가 만든 인피면구는 너무도 정교해서 주름 하나부터 수염의 모양까지도 동일해서 육안으로는 더더욱 불가능했다.
‘본 종주가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인피면구에 몇 년이나 행동 훈련을 시킨 자들이다. 아무리 기감이 뛰어나도 쉽게 맞출 수가 없지.’
통찰력을 운운할 만큼 충분히 자신감을 보일 만 했다.
“그냥 맞추라고는 하지 않겠네. 우리와 다과를 먹으면서 담소를 나누면서…”
“찾았습니다.”
“뭐?”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천여운이 누군가를 응시했다.
그런데 그가 응시한 자는 일곱 명의 환의들 중에 있지 않았다.
“아?”
천여운이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자는 대청의 입구 쪽에 서있는 총관 누야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