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14)
# 35장 소교주의 자격 (5) #
비환귀종의 장원 안으로 들어온 백기는 정원을 지나쳐서 외당 쪽에서 금속성이 들려오는 진원지를 찾았다.
-채채채채채챙!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는 우측 편의 전각 너머의 건물에서 들려왔다.
백기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곳을 향해 경공을 펼치려 했다.
그러나 불과 몇 걸음도 가지 못해서 멈춰야만 했다.
-파파파팍!
갑작스럽게 나타난 푸른 비단 옷을 입은 중년의 사내가 음산한 내공이 담긴 조법으로 백기를 공격해왔다.
완숙한 초절정의 고수답게 백기는 기습 공격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각법으로 막아냈다.
-팟!
순식간에 일 초식을 겨룬 두 사람의 신형이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중년의 사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이제 고작 약관의 청년으로 보이는 백기의 무위에 놀란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고 중년의 사내가 외쳤다.
“젊은이.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함부로 침입한 것인가?”
-우르르르르!
중년의 사내의 외침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오십 명 정도 되는 흑의에 무장한 무사들이 외당 건물에서 몰려나와 그를 둘러싸려 했다.
“백기!”
그때 뒤늦게 따라온 허봉과 고왕흘, 사마착 등이 나타나서 백기의 사각을 서로 등졌다.
-탁!
“으음, 예상대로 되었네요.”
사마착이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들며 중얼거렸다.
주군인 천여운이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밀고 들어오긴 했는데, 최상위 종파인 비환귀종이 외부침입에 대한 방비가 없을 리가 만무했다.
-챙챙!
쌍단검을 들고 있는 흑의의 무사들은 경비 무사들과 비슷한 인피면구를 하고 있었는데, 얼굴 생김새들이 전부 흉악한 괴인과도 같았다.
“진짜 악취미네요.”
허봉이 긴장된 표정으로 환영검법의 기수식을 취하며 말했다.
오싹하게 만드는 저 인피면구는 상대로 하여금 위축감이 들게 만들었다. 물론 그것이 아니더라도 한 명 한 명이 일류고수의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과연 최상위 종파 중 하나인 비환귀종다웠다.
“한 명도 아니고 네 명이라니 정말 겁을 상실했구나. 대체 어느 종파의 자제이기에 이렇게 무례한 것이냐!”
푸른 비단 옷의 중년의 사내가 노기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만약 마교의 성내에 있는 장원이 아니었다면 일단 제압부터 했겠지만, 이곳 성내의 사람들은 전부 교인들이었기에 묻는 것이었다.
“무례라면 당신들이 더욱…”
“잠깐만 기다려보게.”
수하들은 밖에서 기다리게 해놓고 주군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는데 이를 가로막는 것에 불만이 차오른 백기가 화를 내려했지만 고왕흘이 이를 만류했다.
‘무조건 부딪칠 수는 없지.’
이에 고왕흘이 품속에서 두 개의 패를 꺼내 들어서 보였다.
“응?”
하나는 마교의 단주 직위를 상징하는 금색 패였고, 하나는 종파를 상징하는 패였는데 마권종(魔拳宗)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마권종의 고왕흘이라고 합니다.”
“마권종?”
상위 종파이자 권으로 명성이 드높은 마권종이었다.
이를 알고 있는 중년의 사내가 더욱 불쾌해진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마권종이라면 고왕현 종주님의 자제인가?”
“그렇습니다.”
“상위 종파의 자제가 이 밤중에 타 종파의 장원에 허락도 없이 들어오다니. 부친께서 이렇게 무례한 행동을 저지르라고 가르쳤는가!”
부친을 들먹이는 것이 기분이 나빴지만 고왕흘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언짢으셨다면 죄송합니다만. 아까 전에 장원으로 들어갔던 저희 주군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 듯하여 결례를 무릅쓰고 장원에 들어왔습니다.”
“주군?”
“본교의 십이 장로이신 천여운 공자님이십니다.”
천여운의 이름을 듣자 푸른 비단 옷의 중년인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현재 본교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이었다.
마도관의 역사상 칠십여 년 만에 육 단계 시험을 통과한 여섯 종파에 속하지 않는 교주의 자식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설마 아까 전의 그 손님이 천여운 공자였나?’
푸른 비단 옷의 중년인은 비환귀종의 외당주인 오궁이었다.
종주인 환의가 직접 나서서 응대하기에 지인인가 보다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괴짜인 자신의 종주가 뭔가 문제를 일으킨 듯 했다.
-채채채채채챙!
객당에서 들려오는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그들에게 들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쾌속하게 부딪치는 소리만 들어도 호각임을 알 수 있었다.
‘어째서 종주께서 천여운 공자가 겨루고 있는 것이지?’
의아해하는 오궁에게 고왕흘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주군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는데 수하들인 저희가 어찌 그냥 지켜만 본단 말입니까?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고왕흘의 말에 일리가 있었지만 이곳은 비환귀종의 근거지였다.
그들이 활보하게 내버려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미안하네만. 자네들과 마찬가지로 종주께서 하시는 일에 수하들인 우리 역시도 간섭할 수 없네.”
오궁의 말이 끝나자 오십여 명의 흑의의 무사들이 더 이상 진입할 수 없게 객당 쪽으로 가는 방향을 가로막았다.
일이 이렇게까지 흘러가니 어쩔 수가 없었다.
충분히 예의를 차렸기에 더 이상은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판단한 고왕흘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서 기수식을 취했다.
오궁도 공력을 끌어올려 귀영조법의 기수식을 취하며 마지막 경고를 했다.
“아직 젊은 친구들이니 경고하겠다. 지금이라도 물러난다면 종주께 아뢰어 천여운 공자의 안위에 문제가 없도..”
-오싹!
오궁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강렬한 기운이 객당 쪽에서 치솟았다.
외당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곳으로 향해졌다.
바로 그 순간,
-콰콰콰콰쾅!
엄청난 파공음과 함께 객당을 두르고 있는 담벼락이 갈라지더니, 푸른빛 도강이 뻗어 나와 바깥쪽 외당 마당의 바닥까지 선명한 도흔을 남겼다.
“조, 종주!”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고 판단한 오궁과 비환귀종의 무사들이 천여운의 수하들을 버려두고서 객당 쪽으로 경공을 펼쳐서 들어가 버렸다.
“우리도 따라가세!”
고왕흘과 백기, 사마착, 허봉도 기회다 싶어 그들을 따라서 객당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객당 마당에 들어섰더니 그들은 비환귀종의 무사들이 당혹스러운 듯이 가만히 서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아아아!”
수하들의 입에서 동시에 탄성이 흘러나왔다.
객당의 마당에는 천여운이 백룡도를 들고 서있었고, 그 앞에 나비 문양이 그려진 붉은 옷을 입은 총관이라 했던 누야연이 한쪽 무릎을 꿇고 무언가를 바치고 있었다.
그것은 본교의 십일 장로의 신분을 나타내는 옥패였다.
“본교의 십일 장로, 비환귀종의 종주 환의가 천여운 공자를 소교주로 인정합니다. 제 충성의 증표를 받아주십시오.”
‘총관이 아니었어.’
그의 정체를 몰랐던 수하들은 놀라워했다.
그러는 한편으로 엉망이 된 객당 마당을 보면서 천여운이 십일 장로 환의와의 대결에서 승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허봉이 히죽 거리면서, 경악한 나머지 멍하게 자신의 종주를 바라보는 오궁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히히, 감사합니다. 주군의 안위에 전~혀 문제가 없네요.”
* * *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고 객당에서 제대로 된 다과 자리가 준비되었다.
홀대 받듯이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천여운의 수하들도 다과 자리에 앉아서 따뜻한 차를 마셨다.
땀으로 얼굴이 젖어서 분칠 했던 것이 지워졌던 십일 장로 환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고쳐서 나왔다.
그런데 지금 이 얼굴 역시도 환의의 원래 얼굴이 아니라 인피면구였다.
환의는 자신이 얼굴을 가리는 이유는 마교의 암종(暗宗)에 속해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였다.
비환귀종은 대대로 마교에서 암살 및 정보조작을 맡는 암종의 단원들을 육성했기에 그들을 통솔하는 환의는 누구에게도 얼굴을 밝히지 않도록 교주의 허락을 맡았다.
“공자께서 교주의 자리에 오르신다면 제 얼굴을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호호호.”
“…..알겠습니다.”
이런 여성스러운 태도는 의도된 것일 지도 몰랐다.
다과 자리의 가장 상석에 앉아있는 천여운이 바로 우측에 있는 십일 장로 환의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환야는 장로님의 친 자식이 아닙니까?”
“아아….알고 계셨군요.”
사실 천여운은 환의를 직접 만나서 설득하는 것보다 그의 자식인 환야를 만나서 수하로 거두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었다.
흉측한 외모를 가진 환야는 누구의 수하로도 들어가지 않았었다.
‘인피면구?’
나노가 있었기에 천여운은 그가 인피면구를 하고 있음을 바로 알아챘다.
어차피 외모와 상관없이 그를 수하로 받으려고 했던 천여운은 이것을 개의치 않고 환야를 설득했다.
그런 환야도 관심을 보이긴 했지만 끝내는 거절했다. 환야는 종주의 명이 없으면 자신은 누구도 따를 수가 없다고 밝혔다.
환야는 이야기를 하는 내내 자신의 부친을 깍듯하게 종주라고 칭했다.
자신의 의지로 주군을 정하지 못하는 환야를 이상하게 여긴 천여운은 그를 수하로 거두는 것을 포기하고, 이렇게 직접 환의를 찾았던 것이었다.
“저는 자식을 가질 수 없답니다.”
“네?”
의아해하는 천여운과 일행들에게 환의가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희 비환귀종의 심법인 귀음공(鬼陰功)은 음기가 강하기 때문에 이를 익히기 위해서 어릴 적에 거세를 해야 하죠.”
“힉!”
듣기만 해도 뭔가 그랬는지 허봉과 고왕흘이 자신들의 주요 부위를 힐끗 쳐다보며 오만상을 찌푸렸다.
‘고, 고자라니!’
거세라는 말에 화들짝 놀란 문규는 붉어진 얼굴로 덥다는 듯이 손을 휘저었다.
중성적인 환의의 태도는 의도된 것이 아니라 어렸을 적부터 거세된 생활을 해보면서 기인한 것이었다.
음기가 강한 귀음공을 익히면 더욱 음기가 강해지면서 외양이 남자보다는 여성스러움이 강해지는데, 어릴 때는 그것이 더욱 강하기 때문에 환야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흉측한 인피면구를 통해 타인과 거리를 둔 것이었다.
“저희 비환귀종은 그 대를 잇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양자를 거둔답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사제지간으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의문이 풀린 천여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는 교주가 아닌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밝히지 않는 환의였지만, 충성을 맹세한 천여운을 마음에 들어 했기에 말해준 것이다.
“여러분들은 오늘 여기서 들은 이야기는 머릿속에서 지우세요.”
물론 그것은 천여운 뿐이었다.
위압감이 가득한 목소리에 허봉이 긴장한 얼굴로 침을 꿀꺽 삼켰다.
환의가 잠시 무섭게 굳혔던 얼굴을 풀고는 고왕흘을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싱긋 웃으며 말했다.
“우리 듬직한 고왕흘 단주는 괜찮아요.”
“…….저도 함구하겠습니다.”
다른 의미로 고왕흘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한참 다과를 먹으면서 담소를 나누던 환의가 문득 궁금했는지 문규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런데 우리 조카는 언제 밝힐 참이죠?”
“네에?”
“……마도관에서 나왔는데 계속..”
“으아아아아아아아!!! 조, 조만간에 조부님께서 돌아오시면 마룡장종에 들린다고 하니 그때 얘, 얘기할 거에요.”
기겁을 하면서 환의가 하는 말을 사전에 차단하는 문규였다.
그녀의 진짜 성별을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천여운뿐이었다.
마도관에 들어갈 때야 그만한 사유가 있기 때문이었지만 굳이 동료들에게까지 계속 인피면구를 쓰고서 숨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은 그녀도 인지하고 있었다.
다만 당장에 밝히기에는 뭔가 쑥스럽기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후후후, 알겠어요.”
그렇게 시끌벅적한 다과 담소 자리가 끝나고 환의가 천여운과 일행들에게 권했다.
“혹시 불편하시지 않다면 제대로 대접도 하지 못했는데, 당분간 저희 비환귀종의 객당에서 머무셔도 된답니다.”
천여운에게 머물 종파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둘러서 권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당분간 여섯 종파의 눈을 피해서 있을 장소가 필요했던 천여운이었다.
부탁하지 않더라도 배려해주니 감사했다.
“장로님의 깊은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혹시 괜찮다면 한 사람을 데려와도 괜찮을지…”
“물론이죠.”
흔쾌히 허락하는 환의였다.
마도관을 출관하면서 천여운은 마음 같아서는 자라왔던 숙소로 돌아가서,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장 호위를 보고 싶었지만 비환귀종의 장원으로 바로 왔었다.
환의가 사람을 보내서 그를 데려와주겠다고 했지만 천여운이 직접 가겠다고 하였다.
오랜만에 자신의 유일한 안식처였던 그곳으로 가보고 싶었다.
천여운은 일행을 데리고 마교의 성내 남쪽에 자리하고 자신의 원래 집으로 향했다.
많이 변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천여운의 집은 여전히 깔끔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늘 부지런했던 장 호위는 매일 같이 일찍 일어나서 수련을 마친 후에 마당을 쓸고 정리했었다.
‘여전하구나.’
작은 마당에 부엌과 방이 두 개가 있는 기와집에서 장 호위와 열다섯이 되는 해까지 같이 지냈었다.
어떻게 본다면 부모와 같은 역할을 해준 그였다.
장 호위를 볼 생각에 즐거워진 천여운은 평소보다 경쾌한 발걸음으로 대문을 열어젖히고 들어갔다.
‘여기가 공자님의 생가(生家)구나. 헤에.’
문규와 수하들도 궁금해 하는 눈치로 뒤를 따라갔다.
그런데 대문 안으로 먼저 들어간 천여운이 마당에 우두커니 서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공자님?”
천여운이 떨리는 눈으로 장 호위의 굳게 닫힌 방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무 기척도 느껴지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