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15)
# 36장 뱀의 아가리 속 (1) #
“네?”
고왕흘이나 문규, 백기, 사마착 역시도 초절정의 고수답게 기감을 열어보았으나, 집안에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둘 중 하나였다.
상대가 무위가 높은 고수여서 기척을 숨기는데 능하거나, 정말 집안에 아무도 없는 것이었다.
천여운이 다급히 장 호위의 방문을 열어보았으나 방은 비어 있었다.
‘뭐지? 이 시간에 없다고?’
자시(子時) 초였기에 자고 있다면 모를까 어딘가에 돌아다닐 시각은 아니었다.
장호위의 물건으로 보이는 짐들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보면 여전히 이곳에 살고 있는 것은 확실한데 대체 무슨 영문인 것일까?
‘온기가 없다.’
살펴보니 방에서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겨울이기 때문에 아궁이나 화로에 불을 지펴서 집안에 온기가 돌게 했을 텐데, 방은 차가웠다.
사나흘 정도는 방치되어 있었던 듯 했다.
천여운이 장 호위의 방에서 나오자, 마당에 횃불을 밝히고 부엌부터 그의 방을 살폈던 수하들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하나 둘씩 모였다.
“아무도 없습니다. 주군.”
천여운의 표정에서부터 기분이 최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에 허봉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보고했다.
“공자님. 혹시 장 호위님이 본교에 있는 자신의 종파라던가 어딘가에 다녀온다고 자리를 비운 게 아닐까요?”
문규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지만 천여운이 고개를 저었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가 알기로 장 호위는 무가 출신으로 고아라고 들었었다.
‘진정하자. 처음부터 살펴보자.’
천여운은 마당으로 나와서 바닥을 살폈다.
처음 들어왔을 때는 마당이 깨끗하게 쓸려 있어서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장 호위가 이 늦은 시각에 자리를 비웠다는 것은 분명 뭔가가 벌어졌던 게 틀림없었다.
‘이상하다. 너무 깨끗하다.’
사람은 없는데 집부터 시작해서 마당까지 정리가 되어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차라리 격하게 싸운 흔적이라도 있다면 그것을 토대로 추측이라도 해볼 텐데 이렇게 아무런 흔적조차 없어서야 난감할 뿐이었다.
-꽉!
천여운이 입술을 깨물고 주위를 살폈으나 뭔가를 발견하기는 힘들었다.
아무래도 흔적을 지운 듯 했다.
이렇게까지 한다는 것은 이 일을 저지른 자들은 생각 이상으로 철두철미한 자들인 것 같았다.
육안으로 뭔가를 발견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천여운이 나노에게 명했다.
‘나노, 집과 마당 전체를 스캔해서 타인이 침입했거나 싸운 흔적이 있는지 확인해줘.’
[알겠습니다.사용자의 시각에 보이는 장소들을 전부 스캔하겠습니다.]
나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천여운의 동공이 파르르 떨리더니, 흰 빛의 선이 생겨나 마당부터 시작해 집을 스캔했다.
스캔을 전부 마치고 나서 얼마 있지 않아 나노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사용자의 시각 정보에 증강현실(增强現實) 개안(開眼) 가동합니다.]천여운의 동공이 미세하게 떨리며 시야로 흰 빛의 선들과 글자가 새겨지며 증강현실이 개안되었다.
천여운의 시각에 붉은색 빛이 생겨나며 어딘가를 표시했다.
‘아!’
집의 주춧돌 바로 위의 기둥 부근이었다.
워낙 밑에 쪽에 있다 보니 발견하지 못했는데, 그곳으로 다가가보니 뭔가 미세한 검흔으로 보이는 흔적이 남겨져 있었다.
‘검?’
이라기보다는 검기에 의해 남겨진 흔적이었다.
뭔가 검흔이 더 자세히 남아 있어서 초식을 그렸다면 더욱 알아내기 쉬웠겠지만 이렇게 살짝 그어져만 있어서는 뭔가를 알아내기 힘들었다.
이것만큼은 아무리 나노라고 해도 분석에 한계가 있었다.
“검흔이로군요? 허어.”
횃불을 들고 따라온 고왕흘도 주춧돌 위의 검흔을 바라보며 신음성을 흘렸다.
아무래도 장 호위는 누군가에게 습격을 당한 듯 했다.
문제는 그의 생사였다.
어릴 때부터 자신을 키워왔던 장 호위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다고 확신이 들자 천여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것은 지금까지 보여줬던 어떤 모습보다도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차갑게 식어버린 눈빛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터지기 일보 직전 상태의 화산을 보는 것만 같았다.
“검흔이라면 범위는 좁혀지는 군요.”
곁으로 다가온 사마착이 검흔을 바라보더니 천여운에게 말했다.
수하들 중에서 천여운의 적이 누구인지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여섯 종파 중에서 검을 쓰는 종파는 셋입니다.”
검마종과 현마종, 그리고 음마종이 검을 다룬다.
물론 음마종의 주류는 검이라고 할 수 없으나 의심이 간다면 용의선상에 세우는 것이 맞았다.
고왕흘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주군께서 찾은 흔적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이 일을 벌인 자들이 지운 것 같습니다. 철두철미한 자의 소행으로 보입니다.”
나노의 스캔으로도 단 하나의 흔적만 발견했으니 확실히 이런 일에 능숙하면서 철두철미한 자들이었다.
‘어느 종파지?’
라고 추측을 해보려 해도 세 종파 모두가 가능성이 높았다.
검마종과 음마종의 소교주 후보자의 팔을 잘랐기 때문에 그들은 분명 천여운에게 분노를 불태우고 있을 것이다.
‘현마종은 빼야 하나?’
마도관에서 역으로 그들을 함정에 빠뜨려서 살해 혐의자로 만들었지만, 아무 정보도 없는 현마종에서 이를 알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현마종의 소교주 후보인 천무연과 그 혈손인 무진윤이 생도 살해 혐의로 구금동에 갇혀 있는데다가, 죽은 네 명의 혈손들로 인해 네 종파와의 알력으로 천여운에게 신경 쓸 여력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심적으로 현마종도 용의선상에서 빼서는 안 될 것 같다고 여겨졌다.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하는 천여운에게 허봉이 한 가지 의견을 제시했다.
“주군. 차라리 의심 가는 종파를 수색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듣기로는 지금 본교의 모든 장로님들이 자리를 비워서 좀 더 잠입하기 쉽지 않을까요?”
일 장로에서 오 장로까지 맡고 있는 여섯 종파의 종주들이 자리를 비우고 있는 틈을 노리자는 말이었다.
이에 대답한 것은 사마착이었다.
“그게 쉬울 것 같으면 가능했죠. 종주가 없더라도 여섯 종파의 저력을 우습게보면 안 됩니다.”
여섯 종파에는 미치지 못하는 최상위 종파인 비환귀종조차도 예고 없이 침입자가 발생하자마자 외당의 일류고수들이 출동하였다.
침입하는 것도 힘들었고, 설사 운이 좋아서 들어갔다고 해도 그 종파의 장원 전체를 수색해야 한다면 아무리 조심하더라도 눈에 띨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건 사마착의 말이 맞네. 허봉. 여섯 종파가 괜히 본교의 근간이라 불리는 게 아니네. 더군다나 이런 짓을 벌인 자들이라면 분명 경계가 엄중할 게 틀림…아! 주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고왕흘이 문득 좋은 방법을 떠올렸다.
“주군! 이렇게 하심은 어떻습니까?”
* * *
그렇게 심란한 하룻밤이 지나갔다.
습하고 어두운 지하 공간.
작은 등불 하나 만이 이 어두운 공간을 밝힐 뿐이었다.
어두운 공간은 철창들로 둘러싸여서 외부에서 문을 열지 않고는 밖으로 나갈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음침한 철창 안에는 고약할 정도로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등불이 비치지 않는 어두운 벽면에는 양팔이 쇠고랑이 고정되어서 매달려 있는 처참한 몰골의 사내가 있었다.
사내는 알몸이었는데, 얼마나 심하게 고문을 당했는지 온통 피투성이였다.
손톱은 전부 뽑혀서 없었고, 손가락과 발가락도 몇 개가 잘렸는지 붕대로 감겨져 있었다.
딱지가 앉을 틈도 없이 고문을 가했는지 상처가 난 곳에서 진물이 흘러내렸다.
-툭!
모진 고문에 지친 사내가 기절했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자 앞에 있던 고문지기로 보이는 중년인이 불에 달군 인두를 사내의 가슴에 지저 버렸다.
-치이이익!
“끄아아아아악!”
머리를 풀어헤치고 있던 사내가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깨어났다.
그러면서 가려진 얼굴이 드러났는데, 그는 행방불명 된 천여운의 호위인 장가경이었다.
벌써 사흘이 넘게 계속 된 고문으로 장 호위는 이미 심신이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누구 멋대로 자게 내버려둔다고 했느냐. 내 질문에 전부 답할 때까지는 네놈은 편해질 수 없어.”
-치이이이이익!
“끄아아아아악!”
이번에는 허벅지였다.
붉게 달궈진 인두에 장 호위의 허벅지는 타들어갔다.
정신력이 강한 그라고 할지라도 계속 된 고통으로 죽고 싶었다.
하지만 자결도 할 수 없도록 내공을 폐했고 심지어 혀를 깨물 수 없게 이빨을 전부 뽑아버려서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입이 참 무겁군요. 일개 호위 주제에.”
철창 밖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음험한 고문실이나 다름없는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게 화려한 복색을 갖추고 붉은색 면사포를 쓰고 있는 그녀는 현마종의 무 부인이었다.
“공사가 다망하니 마지막으로 묻고 가도록 하죠. 교주님이 그놈에게 뭔가 무공을 전수해주었나요?”
“끄으으….흐….런 건….헚습니다.”
이빨이 없어서 발음이 새는 장 호위가 힘겹게 대답했다.
처음 이곳에 갇혔을 때부터 일관적으로 답변했으나 무 부인은 원하는 대답을 들을 때까지 고문을 멈추지 않았다.
“쯧, 다 죽어가는 주제에 참으로 지독하군요. 계속 진행하세요.”
“넵. 부인!”
고문지기가 인두를 들고 계속 고문을 하려고 할 때였다.
-끼이이익!
지하실에 닫혀있던 철문이 열리며 누군가 급하게 들어왔다.
관운장처럼 긴 턱수염의 중년인이었다.
무 부인이 쳐다보자 중년인이 고개를 숙여서 예를 표한 후에 보고했다.
“부인! 놈이 나왔습니다.”
“놈이 나오다뇨?”
“천여운이 마도관에서 나왔습니다.”
그 말을 듣자 의자에 앉아있던 무 부인이 눈을 반짝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여운이 마도관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려왔던 그녀였다.
“호호호, 잘됐군요. 이런 시기적절한 시점에 마도관에서 나오다니. 녀석의 운이 다했나 보네요. 그런데 놈은 어디에 있죠?”
“그게…..”
현재 천여운이 있는 위치를 들은 무 부인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고문을 받고 있으면서도 철창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장 호위의 두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공자님……’
그로부터 반 시진 후,
마교의 성내에서 가장 번화한 두 거리가 있다.
한 곳은 마교의 중심부라 할 수 있는 교주전과 대전이 자리한 중앙 내성의 바로 남쪽에 자리하고 있는 비작(飛鵲) 거리였고, 한 곳은 북쪽에 자리한 와호(臥虎) 거리였다.
이 두 거리는 마교의 성내에서도 가장 번화가라서 교인들이 북새통을 이룬다.
와호 거리에서 가장 큰 객잔인 섬풍(嬐風) 객잔의 일 층에 한 좌석에 세 명의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바로 천여운과 문규, 허봉이었다.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그들은 이곳에서 근 한 시진 반이 넘게 앉아 있었다.
허봉이 조용한 목소리로 문규에게 말을 걸었다.
“정말 이 방법이 통할까요?”
“글쎄요. 고왕흘이 말 한 대로라고 한다면 분명 어떤 식으로든 접촉하지 않을까요?”
문규도 솔직히 말한다면 크게 확신하지 못했다.
일부러 사람들의 이목이 가장 많이 띠는 와호 거리로 오긴 했지만 과연 그들이 접촉해올 지는 알 수 없었다.
‘저들의 목적은 장 호위님이 아니라 주군입니다. 분명 주군이 마도관에서 나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접촉해 올 겁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 곳에 있는 다면 함부로 수작을 부리진 못할 겁니다.’
이것이 고왕흘의 계획이었다.
고왕흘과 백기, 사마착이 없는 이유는 그들은 세 종파 근거지 주변에서 숨어서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대담하게도 천여운을 미끼로 장 호위를 납치한 범인을 잡아내기 위함이었다.
위험부담감이 있었지만 고왕흘이 제시한 방법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천여운은 이렇게 객잔에서 일부러 자신을 노출시킨 것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때 였다.
초조해져가는 천여운의 귓가로 정체 모를 전음이 들려왔다.
[내 목소리가 들려도 가만히 듣고만 있어라. 만약 고개를 돌린다거나 동료들에게 눈짓을 포함해 작은 신호라도 보낸다면, 네가 절대로 바라지 않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