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16)
# 36장 뱀의 아가리 속 (2) #
눈짓 하나부터 시작해서 그의 행동을 면밀하게 살피고 있다는 것은 이 객잔 안에 놈이 있다는 소리였다.
위협을 가하는 전음성에 천여운이 애써 내색하지 않고 식사에 열중하는 척 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문규와 허봉은 이제나저제나 적이 언제쯤 접촉해올지 초조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짧은 찰나였지만 천여운은 전음을 해서 알려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목울대가 울리는 것만으로 전음을 하는지 안 하는지 파악할 수 있기에 괜한 섣부른 짓을 했다가 장 호위의 신변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보통 놈들이 아니구나.’
마도관에 있을 때와는 위협하는 방법부터가 달랐다.
천여운이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자 다시 전음 소리가 들려왔다.
[미리 경고한다. 기감을 열어서 내 위치를 파악할 생각 따윈 버려라. 조금이라도 허튼 수작을 부리면 그 자는 죽는다.]이미 저들은 천여운이 장 호위가 행방불명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가정 하에서 협박을 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위협을 넘어서서 자극하는 말에 천여운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지금까지 한 번도 자신의 사람을 납치해서 위협을 당해 본 적은 없었는데 이만큼이나 불쾌하고 화가 나게 만들 줄은 몰랐다.
물론 찾지 말라고 위협한다고 그대로 따를 천여운도 아니었다.
‘나노. 지금 들리는 전음의 위치를 파악해줘.’
[알겠습니다.진동이 다른 음파의 주파수를 탐지합니다.
사용자의 청각으로 다른 주파수의 소리가 들리도록 조정했습니다.]
나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천여운의 귀로 휘파람 소리보다도 얇은 이상한 소리가 멍하게 울리더니 주파수가 조정되었다.
예의 전음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오늘…]‘찾았다!’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쳐다보지 않았지만 전음 소리는 객잔의 입구 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시선을 마주칠 수가 없어서 정확한 얼굴은 볼 수 없었다.
전음이 계속 이어졌다.
[축시(丑時) 초까지 독마종의 장원으로 와라.]‘독마종?’
전혀 예상하지 못한 종파가 거론되자 천여운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검마종, 현마종, 음마종 이 세 종파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독마종이 튀어나오니 그럴 만도 했다.
[장원으로 올 때는 비무장으로 와야 한다. 그 등허리에 차고 있는 도검을 가져온다면 입구에 들어서기도 전에 팔 하나를 자를 것이다.]-꽉!
최대한 내색하려 하지 않았지만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식탁 아래에 가려진 왼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겠지만 장원에는 네놈 혼자서 와야 한다. 반경 삼백 보(步) 이내로 그림자 하나라도 비출 경우에 그 자의 목숨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라. 축시 무렵에는 근방에 사람이 돌아다니지 않으니 허튼 수작은 접어라.]철저하게 천여운을 고립시키기 위한 함정이었다.
알면서도 뱀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곳에서 벌어질 일은 안 봐도 그림이었다.
어떻게 본다면 장 호위 한 명만 포기한다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요구조건을 들어줄 필요가 없었다.
‘장 호위….’
하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장 호위는 의미가 달랐다.
다른 소교주 후보자들에게 있어서 호위 무사는 교주가 배정해준 사람일지 모르겠으나, 장 호위는 천여운에게 있어서 부모나 마찬가지였다.
태어났을 때부터 마도관에 들어가기 전까지 쭉 키워준 어버이와 같은 사람이었다.
그들도 이것을 알고 있기에 말도 안 되는 협박을 행하는 것이었다.
분노가 끝까지 치밀어 오른 천여운의 마음 한구석에서 자신에게 전음을 보내는 자의 목을 베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처럼 치밀어 올랐다.
[이상 전달은 끝났다. 참고로 나를 쫓을 생각 따윈 버려라.]그 말을 끝으로 전음을 보내던 자가 입구 쪽에서 자취를 감췄다.
반경 범위 내에서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 천여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윽!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주변의 식탁 곳곳에 앉아있던 네 명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천여운을 노려보았다.
-탓!
천여운의 신형이 번개처럼 움직이며 자신을 노려보았던 자들에게로 쇄도했다.
-퍼퍼퍽!
“크헉!”
자리에서 일어났던 남자들의 앞에 잔상을 일으키듯이 나타난 천여운이 그들의 복부를 주먹으로 쳐서 단숨에 기절시켜 버렸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말이다.
-콱!
“끄헉!”
천여운의 괴력이 담긴 손아귀에 목이 잡힌 중년의 사내의 몸이 그대로 허공으로 들렸다.
덩치가 상당히 컸는데 한 손으로 드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켁켁! 사, 살려주십시오!”
“네놈, 어느 종파의 사람이지?”
“조, 종파라뇨? 히익!”
화경의 고수인 천여운이 뿜어대는 살기는 어지간한 일류 고수들조차도 두려움으로 심장이 덜컹거릴 만큼 위압적이다.
그러나 그의 목에 잡혀 있는 자는 그저 일반 무가 출신의 삼류무사에 불과했다.
-주륵!
중년의 사내의 바지가 축축하게 젖었다.
공포를 이겨내지 못한 그는 오줌을 지린 후에 그대로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공자님!”
“주군. 설마 이 자들입니까?”
아무 것도 모른 채 앉아 있던 문규와 허봉이 다급히 달려와 물었다.
오줌까지 지려서 기절해 있는 사내를 바라보며 천여운이 인상을 쓰면서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여섯 종파의 사람들이라고 하기에는 한 명 한 명이 평범한 실력의 무사들이었다.
-웅성웅성!
객잔의 이목이 집중되자 천여운과 수하들은 기절한 남자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들을 데리고 와호 거리에서 벗어난 천여운은 마교 성내 남문에 있는 자신의 거처로 왔다.
후에 포박해놓았던 그들이 깨어나서 심문했는데 역시나 예상했던 결과가 나왔다.
“저, 저희는 부탁을 받고 공자님들을 쳐다만 보고 있어 달라고 해서 그랬습니다.”
“살려만 주십쇼. 정말입니다요.”
네 명이 이구동성으로 같은 말을 했다.
은전을 받은 그들은 그저 천여운 일행을 쳐다만 보고 있어달라는 한 사내의 부탁을 받았다고 했다.
그 자의 인상착의를 물어봤는데 죽립을 쓰고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모르겠다는 말뿐이었다. 거짓이라고 하기에는 그들의 신분 패를 확인하니, 교내에서도 평범한 무가의 사람들에 불과했다.
“죽이진 않겠다. 단, 이틀 정도는 여기 있어줘야겠다.”
“네?”
-타타타탁!
“읍읍!”
아직까지는 확실히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천여운은 그들의 혈도를 점해서 포박한 뒤에 창고에 가둬두었다.
‘고왕흘과 백기, 사마착이 와야 알 수 있겠구나.’
세 종파의 동태를 살피러 갔던 세 사람이 오면 정확한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외부에서 내부나 그 반대로 이동하는 동향을 살폈을 테니, 어느 종파가 진범인지 곧 드러난다.
유시(酉時) 초,
세 사람이 돌아오기로 한 시간이 되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은 음마종의 동태를 살피러 갔던 고왕흘이었다.
돌아온 고왕흘은 음마종으로 왕래를 하는 사람들은 있었으나, 내부 전력이 움직인다거나 하는 특별한 조짐은 없다고 보고했다.
혹시나 죽립인에 대한 것도 물어보았지만 전혀 그런 인물은 보지 못했다.
“음마종은 아니군.”
“그런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현마종이나 검마종 쪽이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음마종이 검법이 있기는 했으나 주 절기는 음공이었다.
이제 남은 두 사람이 온다면 어느 종파인지 확실해질 것이다.
그렇게 반 시진의 시간이 지났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오기로 했던 검마종과 현마종의 동태를 살피러 갔던 백기와 사마착이 나타나지 않았다.
“너무 늦는데요.”
벌써 해가 반쯤 저물어서 황혼이 지고 있었다.
허봉이 대문 바깥에 서서 계속 살폈지만 그들을 닮은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젠장!’
천여운과 수하들은 본능적으로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같은 시각 성내 북문 쪽의 현마종 장원.
장원의 본당의 마루 앞에 앉아서 붉게 물든 하늘을 쳐다보면서 차를 음미하고 있는 중년의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현마종의 무 부인이었다.
그러던 차에 내당 전각을 통과해 현마종의 무사들이 절도 있게 들어왔다.
선두에는 반백의 노인과 긴 턱수염을 기른 중년인이 있었는데, 그 뒤를 따르는 무사들이 부상을 입고 기절해 있는 두 청년을 옮겨왔다.
무 부인의 앞으로 두 청년을 내려놓고 무사들이 정렬을 맞춰서 섰다.
반백의 노인이 그녀에게 흡족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 말대로 검마종 장원 근처에 숨어있는 이 녀석을 발견했다. 제법 드센 놈이더구나.”
반백의 노인의 상의 곳곳에 발자국들이 가득했다.
노인이 바닥에 기절한 듯이 쓰러져 있는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는 다름 아닌 백기였다.
내상을 입었는지 얼굴은 창백했고, 가슴과 복부 쪽의 요혈에 검상을 입었는지 옷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 옆에 쓰러져 있는 다른 한 청년은 바로 사마착이었다.
현마종의 장원 근처에 숨어서 동태를 살피던 사마착을 제압해서 데려온 자는 긴 턱수염의 중년인이었다.
백기와 마찬가지로 내상을 입었는지 혈색이 좋지 않은 사마착과 다르게 턱수염의 중년인의 옷에는 부상의 흔적들이 가득했다.
“자네는 고전했나 보군.”
“…..고작 약관에 불과한 녀석이 완숙한 초절정의 경지더군요.”
턱수염의 중년인은 부끄럽지만 혼자서 사마착을 제압하지 못했다.
겨우 호각을 이루었을 뿐이었는데, 그가 이끄는 현마종의 외당 무사들이 아니었다면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부끄럽습니다.”
그런 중년인을 향해 무 부인이 면사포 너머로 희미하게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뭐 괜찮아요. 임무를 달성했으니까. 아무튼 구색은 갖췄군요. 지금쯤 검마종과 우리 현마종 사이에서 어디서 자신의 호위를 데려갔는지 혼란스러워 할 그 놈의 얼굴이 눈에 훤하군요. 호호호.”
즐거워하는 무 부인을 바라보며 턱수염의 중년인이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 무서운 분이다.’
이십 년 가까이나 모셨지만 지략만큼은 누구 못지않게 뛰어났다.
그녀는 천여운이 사람들이 많은 번화가에 그 자신을 노출시켰다는 정보를 듣는 순간에 그가 역추적을 위한 함정을 팠다는 사실을 곧바로 알아냈다.
‘이분 스스로 교주님의 처가 되길 원하지 않았다면, 현마종의 차대 종주의 자리는 부인의 것이 됐을 지도 모른다.’
그만큼 무 부인은 정말 무서운 여자였다.
“그런데 이 청년들은 어느 종파의 자제들이죠?”
그녀의 물음에 반백의 노인이 답했다.
“이 젊은이는 순각종의 자제인 백기라하더구나.”
“순각종? 상위 종파의 청년이군요. 흐음. 제법 마도관 안에서 분전했나보군요. 이런 수하를 거두다니.”
순각종이라면 최상위 종파는 아니더라도 상위 종파 중에서도 무(武)로써 꽤나 이름을 날리는 종파였다.
소교주 쟁탈전을 위해서 수하들을 모았을 거라고는 짐작했지만, 생각 외로 더욱 뛰어난 인재를 거둔 것이 의아한 듯 했다.
“그럼 이 청년은요?”
“그게 그렇지 않아도 어떻게 하시려는지 여쭤보려고 했습니다.”
“왜죠?”
“……구 장로님의 자제인 것 같습니다. 사무종 출신이라고 밝히더군요.”
“사무종? 설마 구 장로 사마의 공의 아들이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일단은 상관인 무 부인의 명으로 사로잡기는 했으나 장 호위라는 자처럼 어떻게 하기에는 까다로운 존재였다.
사무종이라고 밝혔을 때는 순간 망설여지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무 부인은 그의 정체가 구 장로의 자제인 것보다도 다른 점에서 놀란 듯 했다.
‘사무종마저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고?…….정말 위험한 놈이로구나. 역시 내 판단이 옳았어. 지금 교주께서 계시지 않을 때 죽이지 않는다면 훗날에는 더욱 감당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무공, 지략, 그리고 사람에 대한 운.
앞선 두 가지는 스스로 노력에 의해서 뒤바뀔 수 있지만 마지막 세 번째는 달랐다.
타인의 위에 군림을 해야 할 수장의 운명은 타고나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무 부인은 이 순간만큼은 한 번 더 천여운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 * *
축시(丑時) 초엽.
차가운 밤공기가 폐부까지 서늘하게 만드는 마교의 성내.
성내 서쪽 편에는 독마종의 장원이 자리하고 있다.
독마종 장원의 반경 삼백 보까지 건물의 천장 위마다 현마종의 무사들이 은신을 하고서 사방으로 움직이는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눈에 독마종의 장원을 향해 걸어오는 한 인영이 보였다.
흑의에 붉은 문양이 섞인 옷을 입고 있는 긴 머리카락에 새하얀 얼굴이 인상적인 청년이었다.
‘병기는 들고오지 않았다.’
항상 등허리에 차고 있던 검집과 도집은 없었다.
이를 확인한 천장 위에 있던 현마종의 무사들이 깃발을 들었다.
-착! 차차차차착!
그러자 깃발들이 순차적으로 올라가면서 최종적으로 독마종의 장원까지 이동했다.
독마종의 내당은 넓은 정원과 마당이 있었는데, 그곳에 백 명에 이르는 현마종의 무사들이 무장을 하고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당 건물과 외당 건물 위에는 궁수들이 있었는데, 붉은 깃발이 올라오는 순간부터 활에 화살을 걸어서 시위를 당긴 채 준비했다.
내당 건물의 앞에는 탁자 하나가 있었고 붉은 면사포의 무 부인이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양옆에는 반백의 노인과 긴 턱수염의 중년인이 좌우 신장처럼 그녀를 호위했다.
“후후후, 왔군요.”
이미 반 시진부터 와서 진을 치고서 기다리고 있던 현마종이었다.
천여운을 저승으로 보내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이윽고 독마종의 건물 안으로 천여운이 들어왔다.
‘철저하게도 준비했구나.’
외당을 지나쳐서 내당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어림잡아도 이백 명에 가까운 인원을 감지한 천여운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어지간히 작정하지 않고는 이렇게 준비하지 않았으리라.
내당의 전각을 통과해 들어오는 천여운을 바라보며 붉은 면사포 속의 무 부인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그때 그 꼬마가 청년이 되었구나. 나를 위협하는 암적인 존재로 말이야.’
마도관에 들어가기 전까지 내공마저 익히지 못하게 만들고, 독마종, 검마종을 배후에서 움직이면서까지 없애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는데 끝내 살아남아서는 자신의 뒤통수마저 쳤다.
-찌릿찌릿!
경고대로 병장기를 두고 왔지만 천여운의 몸에서 풍겨져 나오는 강렬한 기운은 그 강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화경의 경지에 올랐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는데,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이 정도 기세라면 본교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꼽을 만큼 강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꾸욱!
건물 위에 있는 현마종의 궁수들이 긴장된 얼굴로 시위를 겨냥했다.
언제든지 천여운을 벌집으로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무 부인이 전각 입구로 들어오는 천여운에게 여유롭게 손짓을 했다.
“드디어 만나는군요. 이쪽으로 오세요.”
‘저 여자?’
천여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어머니인 화 부인이 미독으로 죽기 전에 여러 부인들과 찾아와서 끝내 천여운이 마도관에 들어가기 전까지 내공을 익히지 않겠다는 맹약을 하게 만든 현마종의 부인이었다.
‘……지독하다. 끝까지 나를 노리는 것인가.’
가슴 속 전체를 불태울 만큼 강한 분노가 입속의 침마저 바짝 바르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어릴 적의 그 철부지가 아니었다.
천여운이 냉정한 표정을 유지한 채 탁자를 중심으로 무 부인과 마주했다.
무 부인이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어렸을 때보고 참 오랜만이네요. 세월이 무상하군요. 그대는 참으로 어미와 많이 닮았어요.”
처음 천여운을 보는 순간 화 부인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버지인 교주 천유종보다도 어머니를 닮은 모습에 비위가 상할 정도였다.
“더러운 어미 쪽이나 그대나 본 녀를 수고롭게 만드는 건 똑같군요. 그래도 버러지는 버러지군요. 고작 정 따위에 휩쓸려서 이런 하찮은 함정에 빠지다니. 큰일을 하기는 글렀군요. 후후후.”
그녀는 고작 하찮은 호위 무사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함정인지 알면서 이곳까지 나타난 천여운을 진심으로 비웃었다.
그런 무 부인의 태도에도 천여운은 흔들리지 않고 무표정하게 물었다.
“장 호위와 내 수하들은 어디에 있지?”
“호호호, 순진한 건가요. 본 녀가 그들을 이곳으로 데려왔을 것 같나요? 참 어리석군요.”
처음부터 그녀는 그들을 풀어줄 생각 따윈 없었다.
천여운을 이곳에서 처리한다면 장 호위는 죽이고, 그 수하들은 설득해서 자신의 아들인 천무연을 따르도록 권할 참이었다.
그런데 천여운의 태도가 이상했다.
‘어째서 눈빛이 여전히 당돌한 거지?’
완전히 불리한 상황이었는데도 천여운의 눈빛은 전혀 죽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눈빛은 언제든지 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다는 확신에 차있는 것 같았다.
“그 눈빛…..건방지군요. 일단 내공부터 폐하고 대화를 마저 진행해볼까요.”
무 부인의 손을 들어 올리자 옆에 서있던 긴 턱수염의 중년인이 앞으로 걸어 나와 천여운에게로 다가왔다.
“네 호위 무사를 살리고 싶다면 반항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긴 턱수염의 중년인이 천여운에게 속삭이는 목소리로 경고했다.
그 순간 천여운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면서 차갑게 식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이었냐?”
-흠칫!
턱수염 중년인의 목소리.
그것은 객잔에서 그에게 협박했던 전음과 같았다.
자신을 기억하는 천여운의 말투에 묘한 공포심을 느낀 턱수염의 중년인이 일갈을 내지르며 공력을 끌어올린 손을 뻗었다.
“허세 부리지 마라!”
-팟!
천여운의 단전 쪽에 그 손이 닿으려는 순간,
-꽉!
“이, 이놈이?”
천여운이 재빠른 손놀림으로 그의 손목을 잡아챘다.
당황한 턱수염의 중년인 공력을 끌어올려서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거대한 바위 틈새에 갇힌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놔라. 이놈…”
-우드드드득!
“끄아아아아아악!”
나무 막대기를 부러뜨리듯이 천여운이 손아귀에 힘을 주자, 턱수염의 중년인의 손목이 반대로 꺾여서 뼈가 부러져서 튀어나와 버렸다.
이에 무 부인이 노기가 서린 목소리로 천여운에게 외쳤다.
“그대의 호위 무사가 죽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보죠. 본 녀가 손짓 한 번만 해도 그 자의 목숨은…”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천여운이 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탁자 위에 던졌다.
그것은 작은 목함이었다.
알 수 없는 물건에 무 부인이 경계심이 가득 찬 표정으로 물었다.
“이게 뭐죠?”
“직접 열어봐라.”
천여운의 태도에서 뭔가 불길함을 느낀 그녀가 잠시 망설이다가 목함을 집어 들어 그 뚜껑을 열었다.
그 순간 무 부인의 두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죠?”
그녀가 마교의 무인이 아니라 평범한 여인이었다면 목함을 떨어뜨릴 뻔했다.
목함 안에는 다름 아닌 사람의 눈알이 들어있었다.
뽑힌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핏기가 가득한 눈알에 그녀조차도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천여운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그게 누구의 눈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