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18)
# 36장 뱀의 아가리 속 (4) #
반 시진 전,
열 명의 무사들을 이끌고 마도관에 도착한 반백의 노인은 기척을 최대한 죽이고서 몰래 안으로 잠입했다.
마도관 내부를 지키는 경계 무사들이 우려되긴 했지만, 천여운과 그 수하들이 한 것을 자신과 은신술을 전문으로 익힌 무사들이 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런데 막상 안으로 들어와 보니, 입구에도 경계 무사들이 몇 명 없었고 생각보다 내부의 경계망도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고작 이 정도 수준이라니. 차라리 놈이 마도관에 있을 때 죽였어도 몰랐겠군.’
반백의 노인은 마도관의 경비 수준에 실소했다.
천여운이야 무위가 뛰어나기 때문에 이해가 갔지만 그 수하들마저도 쉽게 들락날락 할 만 하다고 여겨졌다.
구금동이 있는 산봉우리 도착한 반백의 노인은 산 중턱에 무사들을 매복시킨 후에 자신이 그들을 데리고 오면 기습하라고 명했다.
그렇게 구금동이 있는 꼭대기 쪽까지 도착한 반백의 노인은 기감을 열어서 소교주 후보자인 천무연과 혈손 무진윤을 찾으려 했다.
‘찾았다.’
어느 한 장소에 인기척들이 집중된 곳을 찾았다.
반백의 노인이 인기척들이 모여 있는 동굴 쪽으로 다가갔다.
입구를 가리고 있어야 할 암석이 열려 있었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려고 발을 내딛는 순간 반백의 노인의 눈동자에 당혹감이 서렸다.
-챙!
검을 뽑는 소리들이 들리며 동굴 안에서 세 명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그들의 복색을 보아하니 마도관의 무공 교두들이 틀림없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설마…..놈이 그 아이와 노부를 속였단 말인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얼굴을 복면으로 가리길 잘했다.
무공 교두 중 한 사람은 선임 무공 교두인 호진창이었다.
호진창이 그를 향해 검을 겨냥하며 외쳤다.
“마도관에 침입하다니 겁이 없는 자로구나. 당장 허리에 차고 있는 무기를 내려놓고 투항해라.”
물론 투항하란다고 할 리는 없었다.
-팟!
반백의 노인은 곧바로 몸을 돌려서 산 아래로 경공을 펼쳤다.
이들보다 무공이 높으니 경공으로 따돌릴 자신이 있었다.
“서랏!”
뒤에서 외침 소리가 점차 멀어져갔다.
최대한 빨리 내려가서 대기 중이던 수하들을 데리고 철수해야만 했다.
그리고 현마종으로 길을 틀어서 당장 인질들을 원래 자리로 복귀시켜야만 한다.
‘감히 속임수를 쓰다니. 용서할 수 없….’
“아닛?”
산 중턱까지 내려온 반백의 노인은 경공을 멈춰야만 했다.
매복을 하고 있으라고 명을 내렸던 현마종의 무사들이 바닥에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는 수풀 틈새에 비추는 달빛만으로도 구분이 가능한 긴 붉은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중년인이 보였다.
마교인들 중에 이 자를 모르는 이가 누가 있겠는가.
“……좌 호법.”
중년인은 바로 마도관주 좌호법 이화명이었다.
반백의 노인이 인상을 찡그렸다.
오랜 연륜을 가진 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놈의 사람이었단 말인가. 허어…..’
설마 교주를 보필하는 세 호법 중의 한 사람이 천여운의 수족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함정이 파져 있을 리가 만무했다.
‘도망가야 한다.’
이렇게 된 이상 붙잡히면 안 된다.
어차피 현마종의 무사들은 붙잡히면 정체를 숨기기 위해 자결을 하라고 명을 받은 자들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붙잡혀 버리면 괜한 트집거리가 생겨버린다.
-탓!
반백의 노인이 신형을 우측으로 꺾어서 도주를 시도했다. 무공의 격차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어차피 화경의 고수를 상대로 이길 가능성은 전무하다. 차라리 그나마 도망치는 편이 확률적으로 나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것은 노인의 착각에 불과했다.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하나?”
-흠칫!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놀라서 고개를 돌렸더니, 어느새 그의 주름진 목으로 이화명의 붉은 검날이 파고들고 있었다.
‘빌어먹을!’
그것이 노인이 생애 마지막으로 본 광경이었다.
* * *
“아아아아아악!!!”
좌호법 이화명의 손에 들려있는 잘린 수급을 바라보며 무 부인은 절규했다.
‘선 숙부!’
반백의 노인의 정체는 전전대 현마종 종주의 제자인 선구능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그녀를 가르친 스승이면서 든든한 호위를 맡아온 그의 죽음은 무 부인에게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절규하면서 외치던 무 부인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설마 이 일에 좌호법 이화명이 연루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잠깐만 수하들이 지키고 있다는 말이?’
무 부인이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이화명을 노려보았다.
좌호법 이화명은 이를 개의치 않고 천여운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가볍게 예를 표한 후에 반백의 노인의 수급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공자님의 말씀대로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좌호법.”
“별말씀을.”
그들은 애초부터 주종 관계를 숨길 생각도 없어보였다.
무 부인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분명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좌호법 이화명은 분명 천여운의 사람이 틀림없었다.
그녀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이화명에게 소리쳤다.
“좌호법. 언제부터 호법가에서 아직 정해지지 않은 소교주 후보를 지지하게 된 거죠? 본교의 법도에 어긋나는 월권 행위가 아닌가요?”
그제야 이화명이 그녀를 향해 눈길을 주며 입을 열었다.
“무 부인. 오랜만에 뵙는군요.”
“오랜만이고 자시고, 제 말에나 답변하시죠.”
좌호법 이화명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소교주 쟁탈전은 이미 끝난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 그건….”
마도관에서 모든 후보자들을 제친 지금 소교주 등극에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천여운 뿐이었다.
그가 입회자들을 모으는데 실패하지 않는 이상 확고한 위치였다.
물론 쟁탈전에서 밀려난 후보자들의 입장에서는 천여운을 제거하게 된다면 다시 남은 자들끼리 경합을 벌일 기회가 생겨날 수도 있기에 무 부인이 이런 인질극과 같은 함정을 판 것이기도 했다.
-으드득!
그런 이화명의 태도에 더욱 노기가 치솟은 무 부인이 이를 갈면서 말했다.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하나요? 우습군요. 아직 그대가 아끼는 세 사람이 내 손아귀에 있다는 것을 잊었나요?”
비록 인질로 잡힌 아들을 탈취하는데 실패하긴 했지만 아직 그녀의 수중에 장 호위를 비롯한 천여운의 수하 백기와 사마착이 있었다.
현마종으로 데리러간 이들이 천여운의 수하가 아닌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화명의 등장으로 기세가 등등해진 천여운일지라도 아직까지 인질이 붙잡혀 있는 이상, 섣불리 움직이진 못할 거라 여겼다.
‘다만 이화명이 끼어든 이상 놈을 죽이긴 글렀다. 인질을 붙잡은 상태로 현마종으로 돌아가야 해.’
천여운 혼자였다면 지금 이곳의 전력만으로 어찌해볼 수 있겠지만 이화명까지 합류한 이상 그것은 무리였다.
화경의 고수 둘이 작정하면 이곳에 있는 자들을 전멸시키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비록 분한 마음이 있었지만 현마종주를 비롯한 여섯 종파의 장로들이 돌아올 때를 노리는 편이 나았다.
‘그들을 규합해서 천여운을 죽여야 한다. 내 선을 넘어섰어.’
천여운 혼자라면 아무리 강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죽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밑에 수하들이 있다면 사정이 다르다.
말없이 머리를 굴리는 무 부인을 바라보며 천여운이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손아귀에 있다고 장담할 수 있나?”
“…..좌호법 하나만 믿고 그러나 본데, 본 녀를 더 이상 자극하지 마세요. 수틀리면 장 호위란 자를 시험 삼아서 죽일 겁니다.”
“장 호위를 죽여?”
“본 녀가 그러지 못할 거라고 생각…”
그녀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외당 건물의 천장 위에서 망을 보고 있던 현마종의 궁수들이 외쳤다.
“크, 큰일입니다!”
“무 부인…..지금 장원 바깥 쪽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궁수들의 외침에 무 부인이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서 기감을 열었다.
그 순간 그녀의 표독스러웠던 표정이 일순간에 일그러지고 말았다.
장원 바깥에서 무수히 많은 인기척들이 느껴졌다.
그 숫자가 족히 삼백 명은 되어 보이는 자들이 물 샐 틈 없이 장원을 둘러싸고 있었다.
‘대,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교주가 없으니 호법가의 무사들일 리가 없었다.
그럼 대체 이들은 누구란 말인가?
그때 좌호법 이화명이 장원의 천장을 넘어왔을 때처럼 누군가가 내당 건물 위로 올라와 사뿐하게 몸놀림으로 본당 정원으로 내려왔다.
노란 나비가 그려진 붉은 비단옷을 입고 하얀 분칠에 입술을 붉은 연지를 바른 중성적인 미남자였다.
그는 십일 장로이자 비환귀종의 종주인 환의였다.
‘이 요상한 자는 대체 누구지?’
교주 이외에는 장로 회의에서 밖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환의이다 보니, 무 부인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확실한 것은 움직이는 몸놀림만 보더라도 보통 고수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환의가 입술을 수줍은 손동작으로 가리면서 천여운에게 말했다.
“비환귀종의 종주 환의가 공자님의 명을 이행하고 이곳으로 왔나이다. 후후후. 너무 늦지 않은 모양이네요.”
“비환귀종? 서, 설마 당신은 십일 장로?”
미간이 일그러져있던 무 부인의 얼굴이 더욱 구겨졌다.
뭔가 심상치 않은 자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십일 장로일 줄은 몰랐다.
‘명을 이행했다고? 그럼 십일 장로도 저 놈의 산하로 들어갔단 말인가? 맙소사!’
전혀 상정하지 못한 정보였다.
이제 막 마도관을 나온 걸로 알고 있었는데, 대체 어느 틈에 장로를 수하로 거둬들인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큰일이구나.’
인질이 없다면 오히려 그녀 자신이 벗어날 수 없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상황이었다.
호법에다가 장로까지 머리가 복잡한 정도를 넘어서서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무 부인은 초조함을 넘어서 몸이 떨려왔다.
“말씀하신 대로 그들은 본 장원으로 옮겼습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옮겼다니?’
환의의 말에 무 부인의 눈이 커졌다.
방금 전까지 이제 유일하게 믿을 것은 인질들뿐이라고 여겼던 그녀였다.
환의가 놀라하는 무 부인을 바라보면서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아~데리고 계신 인질 분들은 저희 비환귀종의 장원에 잘 모셨답니다. 아주 극진히 대접하셨더군요. 무 부인.”
“……..이….인질들을….”
무 부인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 다리에 힘이 풀릴 뻔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환의의 말대로라면 데리고 오던 인질들을 탈취했다는 의미가 아닌가.
‘내….내가 당했단 말인가?’
인질극을 통해서 천여운을 죽음으로 몰아가려던 그녀의 완벽한 패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