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19)
# 36장 뱀의 아가리 속 (5) #
“그들은 괜찮습니까?”
현마종에서 극진히 대접했다는 말에 천여운이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그러자 환의가 살짝 어두워진 안색으로 답했다.
“수하 분들은 약간의 내상만 입은 것 같은데, 공자님의 호위 분은 매우 위험합니다. 일단은 의원을 불렀지만 언제 숨을 거둬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천여운의 명을 받은 환의는 미리 현마종의 근처에서 뛰어난 수하들을 데리고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현마종의 무사들이 장원으로 들어가서 인질들을 데리고 나오는 그 순간 기습을 감행했다.
그렇게 인질들을 탈취했지만 장 호위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만약 천여운이 온몸을 인두로 지지고 손톱과 발톱, 그리고 이빨까지 전부 빠진 장 호위를 보았다면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닐 정도였다.
“장 호위…..”
-사아아아아!
장 호위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말을 듣는 순간 천여운의 몸에서 강렬한 살기가 치솟았다.
지금까지는 냉정하게 참아왔던 분노가 폭발한 것이었다.
그들은 절대로 건드려서 안 될 존재를 건드렸다.
‘무, 무슨 살기가?’
‘심장을 옥죄이는 것 같다.’
정원에 정렬해서 무 부인의 명을 기다리던 현마종의 무사들이 엄청난 살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살이 떨려왔다.
화경의 극에 이른 고수가 내뿜는 살기는 위압적이다 못해 상대를 공포심으로 짓눌러 버렸다.
‘그때 나와 겨룰 때 전력을 다하지 않았구나.’
천여운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살기만으로 환의는 그가 원래의 실력을 전부 다 드러내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같은 화경의 고수라고 해도 초입부터 극(極)까지 네 단계에 걸쳐서 실력의 격차가 존재한다.
아직 완숙한 경지에 이르지 못한 환의였다.
‘으으으! 본 녀가….고작….고작 약관도 되지 않은 녀석의 꾀에 당하다니!’
무 부인은 지략만큼은 누구보다도 뛰어나다고 자부했다.
천여운의 함정마저 간파했기에 이겼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이런 엄청난 패들을 숨겼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안 돼! 이대로 굴복하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려!’
현마종이 여섯 종파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일석의 자리를 차지하기까지 그녀의 노고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서 패배를 인정하고 굴복해버린다면 현마종의 위신은 땅으로 떨어진다.
‘어떻게 해야 위기를 벗어날 수 있지? 머리를 굴려라.’
이미 전력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짧은 찰나에 수많은 고민에 잠겨 있던 무 부인이 앙칼진 목소리로 좌호법 이화명과 십일 장로 환의를 쳐다보면서 외쳤다.
“좌호법, 십일 장로. 두 분이 아무리 본교의 큰 어른들이라고 하여도 이런 식으로 군다면 그대들도 무사할 것 같나요?”
이화명이 의아한 눈빛으로 답했다.
“그게 무슨 의미이신지?”
“그대들이 이렇게 교주의 첫 번째 부인이자 일 장로의 누이인 본 녀를 핍박하고도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느냐 말입니다.”
“하!”
어떻게 본다면 그들을 자극하는 소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방법 외에는 위기의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마교의 수많은 무력 집단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현마단(玄魔團)과 교주를 제외하고는 최고 고수라 할 수 있는 무진원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이들이 돌아왔을 때 뒷감당을 할 자신이 있냐고 위협하는 것이었다.
“호호호, 재미있군요. 이런 상황에서 도리어 저희를 협박하실 줄이야?”
그런 무 부인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환의는 정말로 재미있다는 듯이 묘한 미소마저 짓고 있었다.
그때 천여운이 차갑게 식은 목소리로 좌호법 이화명에게 물었다.
“놈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쯤 공자님의 수하 분들이 데리고 오고 있을 겁니다.”
‘아!’
무 부인의 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살기 어린 목소리로 놈들이라고 지칭하는 말을 들어서는 아무래도 그녀의 자식인 천무연과 오라비인 일 장로 무진원의 아들인 무진윤을 의미하는 듯 했다.
그때 독마종 장원의 외당 쪽에서부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당장 도련님들을 풀어주지 못할까!”
“물러나지 않는다면 이들의 목숨은 없을 것이오.”
뒤에 들리는 목소리의 주인은 고왕흘이었다.
천여운이 기다렸던 자들을 데리고 온 모양이었다.
외당 쪽을 지키고 있던 현마종의 무사들이 고왕흘과 문규, 허봉이 데리고 있는 인질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그들을 안으로 들여보내야만 했다.
“무연아!”
어찌나 놀랐는지 무 부인이 얼굴을 가리고 있던 면사포마저 벗어버리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천무연을 불렀다.
고왕흘이 팔에 붙잡혀 있는 천무연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두 손이 잘려서 붕대로 감겨있었고, 한 쪽 눈알이 뽑혀서 안대를 착용하고 있었다.
위풍당당하던 공자의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어머님…..면목이 없습니다.”
“고, 고모님!”
그 옆에는 허봉에게 덜미가 잡히듯이 끌려오는 무진윤이 있었다.
심하게 당한 것은 천무연 하나뿐이었는지 무진윤은 얼굴이 멍투성이인 것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멀쩡했다.
오히려 부끄러운 나머지 무 부인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으득!
무 부인이 이빨이 부서질 것처럼 갈았다. 어머니라는 존재란 그런 것일까.
지금까지는 당했다는 생각 때문에 위축되어 있던 무 부인의 가슴 속이 분노로 치밀어 올랐다.
‘천…..여….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하나뿐인 자식이 거의 병신이 되었으니 화가 나지 않는 것도 이상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 분노로 거친 호흡을 내뱉던 무 부인이 이내 천여운을 향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부인!”
“어, 어머님!”
현마종의 무사들과 천무연의 입에서 당혹스러운 외침이 흘러나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지금 이곳에서 현마종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무 부인이 무릎을 꿇는 것은 현마종이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쿵!
무 부인이 바닥에 이마를 박으면서 애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천여운 공자. 본 녀가 졌습니다. 그대가 소교주가 된 것을 인정할 터이니, 부디 자비를 베풀어 저희 자식들과 현마종의 무사들을 놓아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자존심을 버리는 그녀의 간청이었다.
그런 무 부인의 말에 도리어 분에 겨웠는지 천무연과 무진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자존심이 강하던 무 부인이 자신들을 살리기 위해서 그렇게나 멸시하고 미워하던 화 부인의 자식에게 굴욕스럽게 땅바닥에 이마까지 박았다.
“어머님! 어째서…”
[그만!]“아…….”
[이 치욕을 기억한다면 반드시 이곳에서 살아남아서 훗날을 기약하자꾸나. 네 외백부께서 돌아오신다면 언제든지 갚을 수 있다. 그리고….이 어미는 너를 살릴 수 있다면 천 번이든 만 번이든 이놈에게 고개를 숙일 수 있다. 그러니 이 어미를 생각한다면 입을 다물고 있어라.]들려오는 무 부인의 전음 소리에 천무연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의 말대로 여기서 자신이 입을 열면 열수록 어머니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차라리 이 치욕을 기억하고 복수를 기약하는 편이 나았다.
‘네놈을 무슨 수를 쓰던지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 천여운.’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겉으로는 표출시키지 않았다.
“저희 현마종에서는 절대로 천여운 공자께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을 약속할 터이니, 제발 자비를 부탁드립니다.”
-쿵쿵!
무 부인이 연거푸 바닥에 머리를 찍으며 애절하게 간청했다.
“공자님?”
좌호법 이화명이 천여운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분노로 살기를 내뿜어대던 천여운이 이를 가라앉히고 고민에 빠진 듯이 무표정하게 무 부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긴….’
마교에서도 큰 영향력을 가진 무 부인이 처음으로 머리까지 박아가며 자식들을 살려달라고 간청했다.
이 정도만 하더라도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 편으로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다.
‘…..철의 여인이라 불리는 자가 과연 이 치욕을 그냥 넘어갈까?’
마도관 관주 이전에 좌호법으로 수차례 여러 부인들을 지켜보았지만 그녀만큼 생각을 읽을 수 없고 위험하다고 여긴 여인은 없었다.
아무래도 어머니에 대한 정을 갈구하면서 자라온 천여운이다보니, 분노만큼이나 이런 모정에 마음이 약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되었다.
가만히 그녀를 내려다보던 천여운이 말없이 구속되어 있는 천무연과 무진윤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고왕흘과 허봉에게 말했다.
“풀어줘라.”
“네?”
“풀어주고 옆으로 물러나라.”
납득할 수 없는 명령에 고왕흘과 허봉이 순간 반문했다가 결국 그들을 풀어주었다.
억지로 붙들려 있다가 풀리는 모습을 확인한 무 부인의 얼굴이 밝아졌다.
‘됐다! 넘어갔어!’
잘하면 이 위기를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때 천여운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작 머리를 숙이는 걸로 내가 용서할 거라 생각했나?”
“뭣?”
“소중한 사람이 고통스러워할 때 어떤 기분인지 네년도 느껴라.”
그 순간 천여운의 오른손에서 새하얀 도기가 서리며 천무연과 무진윤의 몸을 무차별적으로 난도질했다.
“안돼에에에에에!!!”
무 부인이 미칠 듯이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늦었다.
-촤촤촤촤촤촥!
어찌나 빠르게 움직였는지 순식간에 두 사람의 양팔이 양 허벅지가 날카로운 도기에 잘려나갔다.
무 부인의 고육지책이 통했다고 생각하여 기뻐했던 두 사람의 표정이 일순간에 고통으로 뒤틀리며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아아악!”
“끄아악! 내 팔! 내 다리가!”
사지가 잘려나간 두 사람이 엄청난 피를 뿜어대며 바닥을 몸통만으로 미친 듯이 뒹굴었다.
천여운의 전신이 그들이 피로 붉게 물들었다.
고왕흘과 허봉은 그제야 천여운이 왜 옆으로 물러나 있으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헉! 지, 직접 하시려고 그랬구나.’
“끄흑! 끄흑! 으으으으으!”
자식들의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모습에 분노로 얼굴이 새빨갛게 상기되어서 호흡이 넘어갈 것처럼 거칠어져 있는 무 부인을 바라보며 천여운이 다시 입을 열었다.
“소중한 사람이 죽는다면 어떤 기분일지 느껴봐라.”
“!?”
사형 선고를 내리는 천여운의 말에 무 부인의 핏줄이 선 눈동자가 미친 듯이 흔들렸다.
애원이고 자시고 할 문제가 아니었다.
놈은 한다면 정말로 한다.
“아, 안 돼! 제…제발 그만둬!”
막아야만 했다.
발바닥의 용천혈로 기를 끌어 모아서 신형을 날리려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촤악! 툭! 뎅구르르르!
그녀의 투명한 동공으로 천여운의 도기에 목이 잘려나가는 천무연의 모습이 선명하게 박혀버렸다.
눈앞에서 자식이 목이 잘려 죽어버렸다.
“학! 학! 학!”
너무 큰 충격으로 인해 호흡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 그녀에게 천여운이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말했다.
“그게 내가 겪었던 고통이고, 이제 네년이 겪을 고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