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25)
# 37장 두 번째 입회자 (5) #
“비, 비급서?”
비급서라는 말에 연무화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검마의 사후에 그가 어떠한 비급서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만약 남겨져 있었다면 당시에도 실세였던 현마종과 검마종에서 비급서를 수습했을 것이다.
“검마 공께서 비급서를 남겼을 리가…..”
혼란스러워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천여운이 말했다.
“마도관이 왜 생긴 지 아십니까?”
“?”
의아한 표정을 짓는 그녀에게 천여운은 간략하게 좌호법 이화명에게 들었던 이야기 중에서 필요한 부분만 짚어서 알려주었다.
요점은 이것이었다.
검마가 마도관을 세운 진정한 목적은 자신의 후인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가 마도관에 남긴 여섯 단계 시험을 통과한 자는 검마의 모든 무공이 담긴 비급서를 얻을 수 있도록 안배가 되어 있다는 것만 알려주었다.
‘지하 보고에 관해서는 알려줄 필요가 없겠지.’
마도관에 숨겨진 지하 보고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가게 된다면 새로운 분란만 생길 것이다.
검마가 의도한 대로 자연스럽게 육 단계 시험을 통과한 자가 그의 심득을 얻을 수 있게 내버려두는 편이 나았다.
“거, 검마 공께서 그런 안배를….”
오백 년 동안 마연검종의 출신 중에서 육 단계 시험을 통과한 자가 없었으니, 이를 아는 것이 이상했다.
“듣는 것보다 눈으로 보는 편이 낫겠군요.”
-챙!
천여운이 검을 뽑아서 비어있는 마당 쪽으로 갔다.
모두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천여운이 현철검으로 검초를 펼쳤다.
-촤촤촤촥!
‘진신마검….’
검초로 직접 증명해보이는 것이었다.
기본기에 충실하면서도 검초 하나하나가 절묘한 이 검법은 진신마검이었다.
천마검법과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전설적인 검법답게 한 초식마다 그 위력은 명불허전이었다.
“와아!”
나노를 통해 전이 받았기 때문에 천여운이 펼치는 초식들은 교본을 보는 것처럼 정확했다.
이를 지켜보는 천여운의 수하들과 연무화가 연신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진신마검의 검 초식이 끝나자, 천여운의 검을 쥐고 있던 파지법과 기수식을 바뀌면서 새로운 검초를 펼치기 시작했다.
-촤촤촤촤촥!
허공을 가르는 검 소리가 경쾌했다.
그 위력은 진신마검을 훨씬 상회했고 보는 것만으로도 검초가 워낙 고절해서 입이 쩌억하고 벌어질 정도였다.
‘세상에! 이, 이런 검법이 있었다니?’
‘공자님께서 펼치는 이 검법은 대체?’
아까 전에 연무화와 천여운이 겨룰 때 보았지만 여전히 경악스러웠다.
‘이십….사마검!!!’
진신마검을 펼칠 때와 다르게 연무화의 표정이 붉게 상기되어서 흥분했다.
첫 번째 초식은 그녀도 십 년 동안이나 갈고 닦았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지만, 두 번째 초식부터는 처음 본다.
“아아아…”
절로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올 지경이었다.
천여운의 손에서 한 초식 한 초식 펼쳐지는 검마가 마지막으로 남긴 절세검법, 이십사마검의 검 초식을 볼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아, 이게 진정한 이십사마검이구나.’
오직 검마의 검법을 복원하는 데만 오백 년의 세월을 보내온 마연검종이다.
장원 안에 틀어박혀서 그 과정에만 얽매여 있던 그녀는 스스로를 얽매이던 답답한 응어리가 뚫리는 느낌을 받았다.
짙은 암막 속에서 한 줄기의 빛이 스며드는 것을 느끼는 순간,
-털썩!
“앗! 종주님!”
연무화가 갑자기 바닥에 주저앉았다.
본당 앞에서 서성이면서 지켜보고 있던 중년의 고용인이 놀라서 달려오려 했다.
그때 문규가 그를 가로막고서 제지했다.
“잠깐만요.”
“네넵?”
하마터면 그녀가 중간에 만류하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다.
연무화는 쓰러진 것이 아니라 바닥에 주저앉아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것은 깨달음을 얻어서 몰아의 상태로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솨아아아아!
연무화의 전신에서 오색찬란한 빛이 흘러나오며 웅대한 진기가 일어나며, 그녀를 중심으로 거센 바람이 일어났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장원에 있는 고용인들조차도 신비로운 조화에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연무화의 몸에서 오색 빛이 발하고 있었다.
고왕흘이 탄성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오…..기조원!”
연무화에게 일어난 현상은 바로 오기조원이었다.
진정한 화경이라 할 수 있는 그 극(極)에 이르기 위한 최후의 과정이었다.
‘깨달음을 얻었구나.’
천여운이 등허리에 있는 검집으로 현철검을 꽂아 넣으며 연무화를 바라보았다.
깨달음을 얻은 연무화가 오행의 기운을 일원화시키고 있었다.
이 과정이 끝난다면 그녀는 뼈와 근육이 재구성되면서 환골탈태를 하게 될 것이다.
‘나도 저런 과정을 겪었던가.’
부러운 눈으로 연무화를 바라보는 세 수하들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던 찰나였다.
-슉!
무언가가 날아오는 소리가 귀를 자극하면서 천여운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가부좌를 펼치고 있는 연무화의 다섯 보 바깥 지점의 허공에서 무언가 멈춰 섰다.
-둥둥!
“이, 이건?”
허봉이 놀라서 허공에 떠있는 그것을 낚아챘다.
손에 움켜쥔 것을 살펴보니, 그것은 붉은 깃이 달려있는 뾰족한 장침이었다.
장침의 끝에는 독이 발라져있었는지 검게 변색되어 있었다.
“암기?”
대체 어디서 날아온 것일까?
“칫!”
작게 소리였지만 초절정의 고수인 고왕흘의 귀에 들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거구에 근육으로 가득한 고왕흘이었지만 신형이 튕겨져 나가는 속도는 굉장히 빨랐다.
고왕흘이 본당 건물의 한쪽 구석에 숨어서 도망치려 하는 한 고용인을 붙잡았다.
-쾅!
“끄악!”
고왕흘에게 목덜미가 붙잡힌 고용인은 안간 힘을 썼지만 소용없었다.
반항적으로 굴던 고용인의 몸이 갑자기 전신에 경련을 일으켰다.
“뭐야?”
고왕흘이 엎드려있는 그의 몸을 뒤집었더니 입에 거품을 물고서 죽어갔다.
등을 두드려서 게워내게 하려 했지만 이미 전신으로 퍼져나간 극독으로 고용인은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런….”
고왕흘이 뒤를 돌아서 천여운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했는데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언제 그쪽으로 간 것인지 천여운이 본당 건물 천장 쪽까지 올라가서는 고용인으로 보이는 한 사내를 끌고 오고 있었다.
‘한 사람이 더 있었구나!’
멱살이 잡혀서 끌려내려온 사내는 왼쪽 하관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얼굴이 굳어져 있었다.
독단을 씹기도 전에 혈도가 점해진 것이었다.
그의 손에는 검은 대롱 형태의 뭔가가 들려 있었는데, 그것이 장침 형태의 암기를 발사한 물건인 듯 했다.
“호법을 서줘라.”
천여운이 수하들을 향해 조용한 목소리로 명했다.
그 말에 세 사람이 고개만 끄덕이고서 가부좌를 틀고 있는 연무화의 중심에 삼각 형태로 호법을 섰다.
-팍!
본당 건물 안으로 고용인을 끌고 와서는 그를 바닥에 내팽개친 천여운은 눈동자만 겨우 움직이고 있는 그의 입을 향해 손을 뻗었다.
왜 그러나 싶어서 눈알을 굴리고 있었는데,
-드드드드!
‘뭐, 뭐야? 입 안이 어째서?’
고용인의 왼쪽 하관 쪽에 강한 경련이 일어났다.
굉장한 고통이 그를 잠식해왔지만 마혈(痲穴)과 아혈(啞穴)이 동시에 점해져서 닭똥 같은 눈물만 흘러내렸다.
-뿌드득!
뭔가가 뽑혀져 나오는 소리와 함께 고용인의 입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고용인의 어금니였는데, 이빨 옆에는 작은 철사로 무언가가 묶여 있었는데 작은 단 같은 것으로 보였다.
“이걸로 자살하려 했나 보지?”
천여운이 그의 바로 눈앞까지 이빨과 작은 단을 갖다 대며 말하자, 고용인의 두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빠르게 흔들렸다.
방금 전에 손을 내민 행위는 다름 아닌 허공섭물의 일종이었다.
‘빌어먹을! 독단을 빼내다니?’
도망도 모자라서 자살을 시도하기 전에 막혀버렸다.
천여운이 그를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
“어디서 보냈지?”
-타탁!
어차피 독단은 제거했기에 대답을 할 수 있도록 아혈은 풀어주었다.
눈앞에 있는 상대가 반항조차 할 수 없는 절대적인 고수라는 사실을 인지한 고용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 말할 수 없다.”
“그래?”
-타탁!
그와 동시에 천여운이 그의 아혈을 다시 점했다.
고작 한 번만 묻고서 다시 입을 다물게 하자 고용인은 불안한 나머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천여운이 그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이 암살을 시도하려 한 사실을 알게 된다면 십 장로님이 퍽이나 좋아하겠구나.”
그 말에 고용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고용인이 저지른 짓은 그녀가 미처 깨달음을 얻기도 전에 암살을 시도한 것이었다.
절대로 그냥 곱게 죽일 리는 없었다.
“간자이니까 절대로 입을 열지 않겠지? 안 그래?”
-뿌득!
예고도 없이 그의 오른손 검지 손가락이 뒤로 꺾여나갔다.
“끄으으으으읍!”
말을 할 수 없기에 신음성만을 내뱉으며 고용인이 고통스러워했다.
그래도 두세 번 정도는 물어볼 거라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단 번에 고문에 들어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두려워하는 고용인을 쳐다보면서 천여운이 악마처럼 속삭였다.
“뼈를 하나씩 부러뜨릴 거니까 생각이 바뀌면 눈을 위아래로 움직여. 하지만 간자니까 절대로 굴복하지 않겠지?”
‘아, 아니야.’
본능적으로 이래선 안 되겠다고 생각한 고용인이 다급히 위아래로 눈알을 굴렸지만, 천여운은 그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있었다.
-뿌득!
‘끄아아아아아악!’
반 시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뿌드드드득! 뿌드드득!
연무화의 몸에서 뼈와 근육이 재구성되기 시작하면서 온몸이 뒤틀렸다.
일 각 가량 동안 들썩이던 그녀의 피부에 실금이 가기 시작했다.
호법을 서고 있던 문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환골탈태(換骨奪胎)!’
오기조원을 이루게 되면 환골탈태를 한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호법을 서고 있던 천여운의 수하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본당 건물 안에 있던 천여운도 어느새 마루 위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신비롭구나.’
-쩌저저적!
한 번 갈라지기 시작한 실금은 이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조금만 건드려도 그대로 깨져버릴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꿈틀! 쩌저적!
연무화가 몸을 움직이는 순간 그녀의 피부로 균열이 가있던 껍질들이 일어나 사방으로 흩날리며 먼지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진정한 화경(化境)을 이루면서 환골탈태를 마친 것이었다.
‘허어!’
‘우와아아아앗!…..이게 뭐야!’
환골탈태 자체에 놀란 문규와 달리 고왕흘과 허봉은 다른 것에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미간에 주름이 가득한 오십 대의 귀부인의 모습이었던 그녀가 완전히 달라졌다.
하얀 피부에 탄력을 되찾은 그녀는 마치 이십대 중반의 여인과도 같았다.
완고해 보였던 날카로운 눈매와 짙은 눈썹은 오히려 도도하면서 차가운 미인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아…..”
연무화가 감았던 두 눈을 떴다.
깨달음을 얻어 화경의 극에 오른 그녀의 두 눈은 총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스스로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된 연무화가 감격으로 몸을 떨다가, 이내 갑자기 어딘가로 신형을 날렸다.
-탁!
그곳은 바로 본당의 마루 앞이었다.
연무화가 한 쪽 무릎을 꿇고 마루 위에 서있는 천여운을 향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마연검종의 종주이자 십 장로 연무화가 진정한 검종의 후계자이신 천여운 공자님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 * *
문규가 그 광경을 얼굴이 익을 것처럼 새빨개져서, 넋을 놓고 쳐다보는 허봉과 고왕흘에게 조용히 전음을 보냈다.
[눈…..돌려요!]환골탈태를 마친 그녀는 나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