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41)
# 43장 전력을 늘려라 (1) #
연회장의 사건이 터진 후, 사흘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마정(魔正) 동맹은 정상적으로 체결되었고 성내의 교인들에게도 공표되었다.
극도육무문이라는 새롭게 등장한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라는 당위성을 부여했지만, 긴 세월 동안 정파 무림맹과 대립을 해오던 교인들의 분위기는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본래라면 닷새는 더 머무르기로 예정이 되어있던 정파 무림맹의 사신단은 마교 내의 그런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이틀이 지난 이른 아침에 출성했다.
물론 실질적인 이유는 달랐다.
‘본 맹에 극도육무문의 간자가 있을 지도 모릅니다.’
군사인 제갈소희의 제기한 의견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두 웅주들은 쉽게 믿지 못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정파 무림맹을 지탱하는 십칠웅주들 중에 간자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말에 동의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납치된 것부터 시작해 여러 미심쩍은 부분을 조곤조곤 설명했고, 결국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한 사신단은 빠른 철수를 결정한다.
‘이건 본맹의 맹주님께서 드리는 초대장입니다.’
사신단의 대표인 제갈소희는 견고한 동맹을 위해 마교 측에도 신년에 있을 무림대회에 참석해달라는 무림맹주의 초대장을 전달하고 떠났다.
그렇게 무림맹의 사신단이 떠난 후 마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미시(未時) 초
비환귀종의 객당.
그곳에는 십 장로 연무화, 그리고 십일 장로 환의, 고왕흘, 문규, 허봉, 사마착, 백기 등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천여운이 소교주로 등극하면서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다소 심각했다.
허봉이 연신 불만스럽다는 듯이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아니. 대외전에서 다른 것들은 전부 공표하고 주군께서 소교주로 등극한 것은 어째서 밝히지 않은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네요.”
허봉의 말에 다들 인상을 쓴 채 침묵으로 일관했다.
연회장의 사건으로 미루어졌던 대외전의 공표가 오늘 정오에 있었다.
그때 교주 천유종이 직접 나와서 모든 교인들이 모여 있는 앞에서 여러 가지 공표를 했는데, 유일하게 천여운의 소교주 등극에 대한 이야기만 생략했다.
물론 교내에 있는 모든 종주들이 알고 있는 사항이기에 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었지만 이것을 공표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저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네? 저만 그런 건가요? 다들 아무렇지 않으신 겁니까?”
가만히 있던 고왕흘이 입을 열었다.
“사실…..허봉의 말에 일리가 있습니다. 주군. 뭔가 이상합니다.”
천마신교의 일인자인 교주가 직접 공표한 것이었기에 다들 조심스러웠지만, 계속된 허봉의 불만에 하나 둘씩 속내를 밝혔다.
“대외전의 공표는 교내로 대전 회의에서 결정된 주요 안건들을 발표하는 자리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교주 임명 사실만을 빼놓았다는 건….”
사마착은 차마 마지막 말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 뒷내용을 다른 이가 말해주었다.
“교주님의 심중에 변화가 생겼느냐는 말이 아닌가요?”
“아….환 장로님.”
십일 장로 환의였다.
마도관 시절부터 수하가 된 고왕흘, 허봉 등은 그렇지 않아도 기분이 좋지 않을 천여운을 생각해서 그 말을 뱉지 못했는데 환의는 아니었다.
여성스러운 말투와 달리 그는 화법에 있어서 직설적이었다.
“저희 장로들도 여러분들의 생각과 차이가 없답니다. 안 그런가요?”
환의의 물음에 인피면구를 벗고서 장원에 대타를 세워두고 온 연무화가 동의하는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여운을 지지하는 세 장로들 역시도 불과 반 시진 전의 공표가 의아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소교주 쟁탈전, 입회자까지 절차를 밟아서 오른 자리인데, 그것을 교주님의 심중만으로 뒤집을 수 있는 겁니까?”
백기가 궁금해졌는지 환의에게 물었다.
이에 환의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대답했다.
“글쎄요. 지금까지는 그런 일이 있었다고 듣지는 못했군요. 하지만……교주님의 권한이라면 여섯 종파가 반발을 하지 않는다면 뒤집지 못할 것도 없지요.”
그런 사례가 없다는 말에 얼굴이 밝아지던 수하들의 안색이 뒤에 이어지는 말에 일제히 어두워졌다.
환의가 말하는 바를 알아들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행해진 소교주를 뽑는 방식은 여섯 종파의 소교주 후보자들끼리만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중간에 교주라고 해도 결정된 사항을 바꾸기 어려웠다.
하지만 천여운은 여섯 종파의 출신이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큰 반발이 없다면 소교주 임명을 철회할 수도 있다는 말이군요.”
그때 묵묵히 듣고 있던 천여운이 입을 열었다.
모두가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는데, 천여운에게서는 특별한 감정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남의 일처럼 무덤덤하게 듣고 있었다.
환의가 그런 천여운을 빤히 바라보다가, 평소보다 진지해진 얼굴로 말했다.
“조금 후에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지금 하는 편이 좋겠군요.”
“…..무엇이죠?”
“소교주님께서 현마종의 종주인 무진원을 처리하신 후에 그가 가진 남은 현마종의 전력들을 회유하기 위해서 계속 접촉을 시도했습니다.”
그것은 천여운도 알고 있는 사항이었다.
환의는 남은 현마종의 전력을 없앤다면 마교의 전력이 감소될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하며 회유를 권했다.
천여운도 그것에 동의해서 이 일은 환의에게 일임했었다.
“그런데 어젯밤부로 현마종의 장원이 텅 비어 있었습니다.”
“비어….있었다고요?”
하룻밤 새에 현마종의 장원이 비어있다는 말에 천여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뭔가 문제가 있었다면 교내가 소란스러워졌을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천여운이 물었다.
“남은 네 종파에서 움직인 겁니까?”
천여운 측에서 흡수하고 싶어 할 만큼 남은 네 종파 역시도 주인을 잃은 현마종의 전력을 탐내기는 마찬가지였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그럼?”
“교주전에서 움직였습니다.”
“교주전이라면….”
마교의 내성에는 두 개의 무력 집단이 존재한다.
하나가 호법가의 무사들이었고, 다른 하나는 교주전에 소속된 무사들이었다.
호법가의 무사들은 세 호법들이 이끌고 있는 무력집단인 반면에 교주전 소속의 무사들은 철저한 호위 무사이면서 교주 직속의 무사들이었다.
“현마종의 남은 전력의 절반은 검마종으로, 그리고 그 절반은 도마종에 배속되었습니다.”
이 말에 천여운을 비롯한 수하들이 인상이 굳어졌다.
환의의 말대로라면 교주가 직접 손을 써서 검마종과 도마종에 힘을 실어줬다는 말이 아닌가.
교주전에서 직접 나섰다면 현마종의 수장을 처리한 천여운에게 남은 세력을 복속시키는 것이 맞았으나 전혀 예상 밖의 행보를 보인 것이었다.
“이건…..명백하게 소교주님을 견제하는 것이 아닙니까?”
사마착이 평소보다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까지는 여섯 종파만을 적으로 생각했던 천여운의 수하들에게는 이런 교주의 의중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교주님께서 그러시다니….”
문규가 입술을 질끈 깨물고 천여운을 살펴보았다.
자신들도 황당하면서도 기분이 나쁜데, 그 아들인 천여운은 얼마나 심기가 불편할지 걱정되었다.
하지만 천여운의 사고는 이들과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견제…..아니야. 이건 단순히 견제가 아니라 균형을 맞추고 있는 거다.”
“네?”
천여운이 지금까지 바라본 교주는 철저하게 자신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자였다.
처음부터 견제만을 위한 목적이었다면 애초부터 소교주가 되지 못하도록 막았을 테지만, 대전 회의에서 직접 소교주로 임명했다.
그러면서 천여운 쪽에 힘이 실리면서 기세가 넘어가는 듯 했다.
“두 종파의 힘을 강화시켜주면서 나를 견제하게 함으로써 균형을 맞추고 있다. 대외전에서 소교주 등극을 공표하지 않은 것 역시…..”
네 종파에게 여전히 기회가 있다고 공표한 셈이었다.
천여운이 소교주의 자리에서 실각될 수 있다고 네 종파에 희망을 주면서 그들이 천여운에 대한 한풀 꺾인 전의를 살려주었다.
“나와 네 종파가 서로 부딪치기를 부추기는 것이다.”
힘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균등해야 전의를 가질 수 있는 법이었다.
아무리 네 종파라고 해도 갈수록 확률이 없는 싸움을 하려고 들진 않을 것이다.
“어, 어떻게 교주님께서 그런…..”
허봉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결국 교주는 천여운을 소교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패로 여긴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교주님의 본질을 잘 파악했군요.’
십일 장로 환의나 십 장로 연무화는 이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현 교주인 천유종은 참으로 무정한 인물이었다.
그에게는 혈족, 혈육이라는 정이 존재하지 않았고 모든 것이 교권을 강화하고 지키기 위한 패에 불과했다.
‘교주님이 아군이 아니라니…..’
‘이걸 대체 어찌 해야 한단 말인가.’
교주의 심중을 짐작하게 되자 분위기가 더욱 무거워졌다.
그렇게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지던 차에 천여운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한 사람씩 눈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여기 모여 있는 모든 분들에게 여쭙고 싶습니다.”
“?”
“만약…..어떤 일이 있어도 나를 믿고 따라줄 수 있겠습니까?”
“!!!”
천여운의 마지막 말에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천여운은 지금 이들에게 교주와 부딪치더라도 자신을 따라줄 수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었다.
여기에 모여 있는 모든 사람들은 소교주가 될 천여운에게 충성을 맹세한 이들이었지만, 그것이 현 마교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교주를 배척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지금의 본교는 많은 것이 잘못되었습니다. 나는 다시 본교를 예전의 천마 조사님께서 개파 하셨던 시절로 돌리고 싶습니다. 그것이 설사 본교의 현 하늘과 부딪치는 일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한 번 숨을 고른 천여운이 그들에게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믿고 따라주십시오.”
-탁!
천여운이 그들에게 포권을 취했다.
한 점의 흔들림이 없는 천여운의 곧은 눈빛에 모두가 말문을 잃고 말았다.
‘주군께서 결의 하셨구나!’
‘교주님과 부딪치는 것도 불사하시겠다는 것인가.’
한참 동안 적막이 흐르던 객당에 누군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천여운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그는 바로 허봉이었다.
-탁!
“무슨 섭섭한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저는 주군이 어떠한 길을 걷는다고 해도 무조건 따를 것입니다.”
이미 어떠한 일이 있어도 천여운을 따르기로 결심했던 허봉이었다.
허봉의 그런 행동은 계기가 되었다.
곧바로 고왕흘이 자리에 일어나서 포권을 취하며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역시 허봉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내가 어찌 한 입으로 두 말을 하겠습니까? 그것이 설사 수라의 길이 되던, 가시밭길이 되어 온몸에 피가 흐를지언정 주군을 따르겠습니다.”
뜨거움이 솟구치게 하는 고왕흘의 결의가 담긴 말에 남은 사람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것은 두 장로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천여운에게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여 다시 한 번 충성을 맹세했다.
“저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주군을 따를 것을 맹세합니다.”
-꾹!
천여운의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어쩌면 네 종파뿐만이 아니라 교주와 부딪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누구 한 명은 이탈할 지도 모른다고 여겼던 천여운이었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따라준다고 하니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렇게 이번 대외전의 공표는 천여운과 수하들을 더욱 굳건하게 만드는 자리가 될 수 있었다.
뜨거워졌던 분위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고 천여운은 지금까지 여섯 종파를 상대하기 위해 계획했던 모든 것들을 전면 철회했다.
“교주님이 네 종파에 힘을 실어주었으니, 그에 맞게 움직여야겠습니다.”
“고견이 있으십니까? 후후후.”
환의의 질문에 천여운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균형을 맞추려고 했으니, 저는 그것을 깨야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천여운의 시선이 문규에게로 향했다.
‘응?’
* * *
마교 성내의 서북쪽에 자리하고 있는 마룡장종의 장원.
지금은 네 종파가 되어버린 여섯 종파에 버금간다는 명성에 걸맞게 웅장하면서 큰 규모의 장원이었다.
조용했던 장원의 내당 정원을 가로질러 누군가 급하게 종주의 집무실 앞으로 뛰어왔다.
급하게 뛰어와서 거친 호흡을 내뱉는 사내가 집무실 문 앞에서 고했다.
“헉헉! 조, 종주님! 경비 무사인 부송입니다!”
“무슨 일이느냐?”
“소, 소교주님께서 종주님을 뵙기를 청하십니다.”
“뭣?”
집무실에 앉아서 서적을 읽고 있던 팔 장로 문연이 놀란 얼굴로 문을 열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