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43)
# 43장 전력을 늘려라 (3) #
단순히 인피면구를 벗은 것에 불과한 행동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일으킨 파장은 객당 누각의 모든 사람들을 놀랍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평소에 천여운과 마찬가지로 무뚝뚝한 백기조차도 두 눈이 동그랗게 커져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허봉은 입이 벌어져서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이거 진짜야?’
물론 이것은 현실이었다.
짧은 찰나에 허봉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과거들이 스쳐지나갔다.
숙소에서 옷을 홀라당 벗고 뛰어다녔던 것부터 시작해서 많은 과거를 떠올리자, 허봉의 안색은 창백하다 못해서 질려버렸다.
‘끄허어어어어!’
허봉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서 고개를 숙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규의 정체에 복마종의 후보자인 천무금 역시도 당혹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여자였다고?’
그 멍청해 보이던 얼굴에 이런 절세미녀가 숨겨져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했겠는가.
문규의 얼굴을 보는 순간 아름다움에 탄성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문제는 몰랐다는 것보다도 다른데 있었다.
‘이런 젠장….’
마도관에서 소교주 쟁탈전을 위해 천무금 그 역시도 상위 종파의 인재들을 영입하려고 여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었다.
천무금은 도마종의 천유찬처럼 극단적으로 공격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천성이 오만했기에 문규를 협박하면서까지 산하로 거두려고 했었다.
‘계속 산하로 들어오지 않겠다고 버티는데 약속하도록 하지. 훗날 본 공자가 소교주가 된다면 마룡장종이라는 이름을 마교에서 지워버리겠다. 만약 그것이 두렵지 않다면 계속해서 중립이니 뭐니 지껄여라.’
라고 했는데, 지금 그 협박했던 상대에게 공개적으로 구혼을 한 셈이었다.
아무리 오만한 그라고 해도 차마 문규를 쳐다볼 수가 없었다.
‘인피면구라….’
삼 장로 부철용은 그녀의 정체와 아름다운 얼굴에 놀랐다.
이 정도 외모라면 중원 삼대 미녀의 호칭을 갈아치워도 될 만큼의 절세미녀였다.
천무금과 맺어주기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면 첩으로 거두고 싶을 만큼 욕망을 일으키는 아름다움이었다.
‘아쉽군. 정말 아쉬워.’
하지만 그는 눈앞의 욕망에 이성을 잃을 만큼 어리석은 자가 아니었다.
장로의 위치에 있는 만큼 실리를 더욱 따졌다.
‘어차피 인피면구로 가렸었다고 한들 문 장로의 손녀인 것은 변함없지 않은가.’
천무금의 속사정을 모르는 부철용은 개의치 않고 말했다.
“이렇게 아름다우신 손녀 분이 인피면구를 하고 있을 줄은 몰랐구려. 나라도 이런 손녀를 두었다면 걱정되어서 그럴 것 같소. 하하하하핫.”
호탕하게 웃으면서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이어나갔다.
이를 보조하기라도 하듯 사 장로 자금경도 문규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며 말했다.
“우리 천 공자는 복도 많구려. 이런 미녀와 연을 맺게 되었으니.”
“배, 백부!”
외백부인 자금경의 그 말에 천무금이 난처함을 금치 못했다.
그의 심경을 모르는 사 장로 자금경이 문규에게 웃으면서 물었다.
“어차피 매파를 보냈던 것을 이 자리에서 같이 들었을 터이니, 문 소저가 답변을 해주면 될 듯 하네. 천 공자의 구혼을 받아들이겠는가.”
그러자 문규가 빙그레 웃으며 천무금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침 천무금 공자님을 뵈니까 생각이 나네요. 마도관에 있을 때 제게 해주셨던 말씀이 있었거든요.”
“오오, 이미 안면도 있었다니 더욱 잘 되었구려.”
뭔가 느낌이 좋다고 생각했는지 자금경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러나 이어지는 문규의 말에 한순간에 깨지고 말았다.
“천무금 공자님께서 소교주가 되신다면 저희 마룡장종을 마교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하셨는데. 다행히 소교주가 되지는 않으셨네요? 휴.”
“뭣?”
웃고 있던 사 장로 자금경의 인상이 굳어졌다.
‘아아….’
천무금이 안색이 어두워지며 시선이 밑으로 향해졌다.
그 당시에 아무렇지 않게 했던 말이 비수가 되어 돌아올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문규의 말을 들은 팔 장로 문연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본 종을 지워버리시겠다?”
“그, 그게 아니라….”
아무리 마교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여섯 종파 중 하나인 복마종을 등에 업고 있다고는 하나 선을 지나친 협박이었다.
복마종이라고 해도 마룡장종을 상대하려면 상당한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전음으로 다그치는 자금경의 말에 천무금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어차피 벌어진 일이었기에 수습해야 한다고 생각한 자금경이 얼른 문연을 달래려 했다.
“문 장로. 아무래도 공자님께서 어린 치기에 말실수를 한 것 같은데….”
“실수라는 말로 변명이 될 것 같소?”
팔 장로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어지간한 일로는 평정심을 잃지 않는 그였지만 사랑하는 자신의 손녀에게 마룡장종을 두고 협박을 했다니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문 장로. 이러다 출수라도 하시겠소?”
“본 종을 지우시겠다는 데 못 할 것도 없지요.”
“허어.”
처음에는 오해를 풀려고 했던 사 장로 자금경도 점차 표정이 굳어져갔다.
그 역시도 여섯 종파의 일원인 만큼 직위 상으로 밑에 있는 팔 장로가 기세를 내뿜는 것에 빈정이 상한 듯 했다.
-고오오오오!
화경의 고수인 두 사람이 기세를 내뿜자 누각 안이 어느새 진기로 가득 차졌다.
고요했던 누각 주위 연못에 파문이 일어났다.
무림인들답게 감정싸움이 격해지면 결국 무력으로 표출되기 마련이었다.
이를 지켜만 볼 수 없었던 삼 장로 부철용이 한숨을 내쉬며 끼어들었다.
“후우, 그만! 두 분은 기세를 거두시오.”
“삼 장로라면 이 같은 말을 듣고도 그냥 참을 수 있겠소?”
인상을 잔뜩 쓰고 있는 팔 장로 문연을 바라보던 부철용이 말했다.
“팔 장로의 심경도 이해가 하지 못할 부분도 아니오. 하나, 천 공자님께서 생도 시절에 철없이 내뱉은 말에 무슨 힘이 있겠소. 그리고 본교에서 마룡장종을 쉽게 건드릴 종파가 있다고 생각하시오?”
“크흠.”
마룡장종을 띄어주면서 달래는 부철용의 말에 기세를 올리던 팔 장로 문연의 표정이 한결 누그러졌다.
천무금은 불쾌할 수도 있겠지만 그를 깎아내리는 것만이 팔 장로 문연의 기분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후우, 언젠가 쓸모 있을 것 같아서 이건 쓰지 않으려 했는데….’
삼 장로 부철용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주홍색 옥패였다.
옥패의 한 가운데에는 의(醫)라고 새겨져 있었다.
“본 장로가 듣기로는 팔 장로께서는 몇 년 전부터 계속 용한 의원을 찾고 있다고 들었소.”
“그건…..”
최대한 종파 내부의 일을 숨겼지만 의원을 구하는 것을 숨길 수는 없었다.
문규의 쌍둥이 동생인 문유는 선천적인 천치(天癡)로 태어났다.
문연은 이를 고칠 의원을 찾기 위해 마교의 성내만이 아니라 중원 각 지부를 통해서도 신의에 대한 출처를 수소문한 적이 있었다.
“이 패는 신의를 만날 수 있는 옥패요.”
“아!”
삼 장로 부철용의 말에 팔 장로 문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토록 소재를 찾아다니던 신의를 만날 수 있는 옥패라고 하니 마음이 동할 수밖에 없었다.
‘현마종의 장원에서 이것을 발견한 것이 신의 한수로군.’
사실 이 옥패의 주인은 원래 무 부인이었다.
그녀와 현마종의 종주인 무진원이 죽고 나서, 교주의 인가가 떨어지면서 검마종과 도마종에서 현마종에 남겨진 모든 것을 수습했었다.
‘마음이 동할 것이오. 문 장로.’
신의를 만날 수 있는 옥패가 귀한 보물이기는 했지만, 이로 인해 마룡장종을 얻고 팔 장로를 끌어들일 수 있다면 충분한 값어치를 했다고 볼 수 있었다.
“팔 장로의 손녀 분과 천무금 공자님께서 맺어지게 된다면 본 장로가 이것을 예물로 드리리다.”
“그, 그 옥패를 예물로 말이오?”
“본 장로는 절대로 허언을 하지 않소.”
“아니 어째서 삼 장로가 이 귀한 것을 예물로 준 단 말이오?”
팔 장로 문연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네 종파의 입장에서는 향후를 위해서 마룡장종을 영입하고 싶어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엄밀히 말한다면 천무금은 복마종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도마종에서 귀한 보물까지 내놓으면서 지원하는 것이 이상했다.
‘중요한 게 있지.’
삼 장로 부철용이 천무금을 가리키면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까는 말씀드리지 못했는데, 천무금 공자는 우리 네 종파의 장로들이 공동 전인으로 삼기로 했소이다.”
“공동….전인?”
그 말에 천여운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아들었기 때문이었다.
‘네 종파가 힘을 합치겠다는 건가?’
천여운의 그 짐작은 정확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네 종파에서는 힘을 합칠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천여운이 소교주의 자리를 차지한 것부터 시작해 본교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무진원과 극도육무문의 고수를 죽인 것에서 그들은 큰 위기의식을 느꼈다.
‘이대로는 안 되오!’
그때 교주가 명분을 주었다.
소교주가 언제든지 바뀔 수도 있다는 희망을 말이다.
네 종파에서 천무금을 공동 전인으로 삼았다는 말은 마도관에서 유일하게 멀쩡하게 나온 그를 소교주로 추대하려한다는 의미와도 같았다.
천여운이 바로 앞에 있으니 이것을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충분히 의사를 내비친 그들이었다.
‘잔머리를 굴렸군. 그냥 당하지는 않겠다는 건가.’
천여운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네 종파가 힘을 합친다면 지금까지보다 더욱 힘든 싸움으로 이어질 것이다.
‘문 장로가 흔들릴 수도 있겠구나.’
천여운이 우려의 눈빛으로 문연을 바라보았다.
그 예상은 정확했다.
‘네 종파에서 천무금 공자를 지지하는 것인가?’
팔 장로 문연의 속내가 복잡해졌다.
지금 그들은 자신들의 패를 전부 보인 셈이었다.
‘노부에게 선택하라고 종용하는 것이구나. 허어…..’
문연은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한 쪽은 자신의 손녀인 문규가 충성을 맹세한 소교주였고, 다른 한 쪽은 손자인 문유를 치료할 수 있고 앞으로의 판도를 바꾸려고 하는 네 종파였다.
저울질을 하면 할수록 점점 추가 다른 쪽으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아아…..규야.’
한참을 고민에 빠져 있던 문연이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문규를 바라보았다.
다른 것보다도 문유를 고칠 수 있다는 점에서 너무도 흔들렸다.
이에 득의양양해하는 삼 장로 부철용의 귓가로 사 장로 자금경의 흥분한 목소리의 전음이 들려왔다.
[삼 장로. 훌륭하오!] [후후후, 무릇 정치란 이런 것이오. 상대가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고서 그것을 내어줘야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얻는 법이오.] [과연!……본 장로가 한 수 배웠소이다.]천여운은 지금 당장의 대가없는 충성을 바라겠지만 자신들은 팔 장로 문연이 원하는 바를 가져다주었다.
그런 점에서 이 승패는 결정이 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소교주. 이 판은 우리가 이겼소이다. 하하하하핫.’
망설이는 팔 장로 문연에게 삼 장로 부철용이 쇄기를 꽂듯이 말했다.
“문 장로. 손녀 분과 천무금 공자님의 혼인을 허락하시겠소?
“노부는……”
한참을 말이 없던 문연이 무언가를 말하려던 때였다.
가만히 그들의 대화를 지켜만 보던 문규가 갑자기 천여운의 팔짱을 끼더니 두 볼이 새빨개져서는 소리쳤다.
-꽉!
“응?”
“저…저는 이미 소, 소교주님의 사람이라고요!”
“!?”
누각 아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일제히 굳어졌다.
그것은 천여운 또한 마찬가지였다.
분명 자신의 수하이기 때문에 맞는 말이기는 했지만 오해의 소지가 다분했다.
무게의 추가 천무금에게로 쏠리던 팔 장로 문연 역시도 어안이 벙벙해져서 천여운을 바라보았다.
“소, 소교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