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49)
# 44장 무명(無名) (4) #
알 수 없는 그의 말에 천여운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어째서 대호법 마라겸이 자신을 천마라고 지칭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천마는 본교의 개파 조사님이 아닌가.
“대호법.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당대 천마님에 대한 예를 갖추고 있습니다.”
진지한 그의 말에 천여운이 인상을 찡그렸다.
부상을 입은 몸을 이끌고 그들의 곁으로 다가온 십 장로 연무화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대호법을 바라보았다.
“이 자가 무명입니까? 소교주님.”
“…..대호법입니다.”
“네? 이 자가 대호법이라고요?”
늘 냉담한 표정으로 일관하는 연무화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첫 번째로 놀란 것은 무명의 정체가 대호법이라는 점이었고, 두 번째는 그 동안 가면에 가려져 한 번도 보지 못한 대호법의 얼굴 때문이었다.
완전한 중원인으로 보기에는 대호법은 생김새는 이국적인 느낌이 강했다.
‘이때까지 세 장로들을 불렀던 게 대호법이었다니…하!’
엎드려서 고개만 살짝 들어서 천여운을 바라보고 있던 마라겸이 그녀에게 말했다.
“연 장로. 당대 천마께 예를 갖추시오.”
“네?…..당대 천마?”
당대 천마라는 말에 연무화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의 눈이 자연스럽게 천여운이 쥐고 있는 흑검으로 향했다.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의 밝은 달빛에 비춰진 흑검의 검신에 천마검(天魔劍)이라고 음각이 새겨져 있었다.
“서, 설마…..”
“조사님의 제단에 참석했으니 연 장로도 아시겠지요.”
“천마검!”
-팍!
대호법의 무게감 있는 목소리에 연무화가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녀마저 머리를 조아리자 천여운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하아, 대체 왜들 이러는 겁니까?”
“소교주님께서 진정한 천마이시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천마라뇨?”
그 반문에 대답한 것은 대호법이 아닌 연무화였다.
“내성의 북쪽에는 역대 교주님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과 개파 조사님의 위패와 유언을 남겨놓은 제단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전에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천마신교에서는 역대 교주들을 위해 일 년에 단 하루 성대한 제례 의식을 치른다.
그 날은 개파 조사인 천마가 우화등선한 날이었다.
제례 의식이 치러질 때 성내 전체로 장엄한 배화(拜火) 의식이 이루어지는데 반나절 가까이 교인들은 엎드려서 추모를 한다.
이때 제례 의식을 주관하는 것은 교주를 비롯한 호법, 장로들이었는데, 이들만이 유일하게 일 년 중에 단 한번 천마의 제단에 들어가게 된다.
“제단에는 천마 조사께서 우화등선 전에 남기신 비문(碑文)이 있습니다.”
연무화는 제례 의식을 치를 때마다 그 비문을 보았었다.
비문의 글씨는 천마가 직접 새긴 것이라 하였기에 유심히 보아서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 비문에는 진정한 천마검을 얻는 자가 본좌의 칭호를 물려받게 되리라고 새겨져 있었습니다.”
칭호.
그것은 바로 천마(天魔)라는 이름이었다.
연무화는 제단의 비석에 새겨진 그것을 보면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지금 교주가 지니고 있는 천마검은 진정한 검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비문에는 천마령이 새겨져 있습니다.”
천마령(天魔令).
그것은 개파조사인 천마가 남긴 칙령의 문양이었다.
마교의 모든 것은 교주의 명령과 장로 회의를 통해서 결정되지만 가장 기본적인 법도는 천마령에 의거한다.
천마령은 천마신교의 교인이라면 누구도 거부, 거역할 수 없는 칙령이었다.
설사 당대 교주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현 교주께서는 단 한 번도 천마라는 칭호를 물려받지 않으셨습니다.”
마교에 있어서 천마 조사는 신(神)과 같은 존재였다.
아무리 본교의 하늘이라 할 수 있는 교주라고 할지라도, 천마령이 발동한 비문을 어길 수가 없었다.
그것은 기득권을 잡은 여섯 종파의 종주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체계가 흐트러지는 순간 중원에서 단일 집합체로 최고의 성세를 갖춘 천마신교의 기강이 무너지기 때문이었다.
“지금 교주님이 지니시고 있는 천마검은 모조입니다. 모든 장로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죠.”
‘아…..’
천여운이 자신이 쥐고 있는 흑검을 바라보았다.
어째서 흑검에 천마검이라고 새겨져 있었는지 의문스러웠는데, 그 비밀이 풀렸다.
천여운이 가진 흑검이야말로 진정한 천마검이었다.
“하지만 천마검의 진위를 아는 것이 교주님뿐이라면 아무리 천마령이라고 해도 속일 수도 있었을 텐데 이상하군요. 장로들도 이를 묵인하는 것도 그렇고요.”
그가 보았던 교주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다.
비록 천마령이 절대적이라고 하나, 교주로서 모조 천마검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위엄이 손상되는 일이었다.
매년마다 치러지는 제단의 제례 의식으로 이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하는 것 역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소교주님의 말씀대로 교주님께서 이를 숨기지 않는 것은 저도 의문이지만 장로들이 이를 묵인하는 것은 저희 선조 때부터 구전으로 들은 게 있습니다.”
“그게 뭐지요?”
그것은 오백 년 전에 극도신의 사건 때 진정한 천마검을 강탈당했다는 풍문이 있었다.
마교에 있어서는 수치스러운 역사였기 때문에 그때부터 교주를 비롯한 장로들이 이 사실을 묵인하고 숨겨왔다는 것이었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기에 천여운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대호법 마라겸이 고개를 저으며 끼어들었다.
“연무화 장로의 말도 일부 맞지만 정정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
“교주께서는 천마검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 것은 천마령의 수호자 때문입니다.”
“천마령의 수호자?”
연무화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장로들보다는 교내 사정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지만 처음 들어보는 직책이었다.
이에 마라겸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천마령의 수호자는 천마 조사 시절부터 천마령을 수호하면서 역대 교주들을 보필했습니다. 수호자의 임무는 보필하는 교주님이 천마령을 어기지 않도록 중심을 잡게 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천마령의 수호자를 만든 것은 개파 조사인 천마라고 하였다.
천마에게 직접 무공을 전수받은 역대 천마령의 수호자들은 교주 못지않은 무공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숨겨진 강자가 본교에 있었다니….”
연무화가 처음 알게 된 진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천마 조사님의 명을 받들어온 천마령의 수호자들은 늘 교주님의 그림자로서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다른 교인들은 알지 못합니다.”
다른 교인들이 모르는 것을 대호법 마라겸은 알고 있었다.
“잠깐……그 말은?”
천여운의 물음에 마라겸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제가 천마령의 수호자입니다. 역대 대호법들의 숨겨진 직책입니다.”
“아!”
마라겸이 품속에서 손바닥 만한 푸른 옥패를 꺼내들었다.
그 앞면에는 [대호법(大護法)]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반대로 돌리니 놀랍게도,
천마령(天魔令)이 새겨져 있었다.
“처, 천마령!”
천마의 명령이자 인장이라 할 수 있는 천마령이 대호법의 신분패 뒤에 숨겨져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천마령의 새겨진 부분은 일 자로 그어져있었다.
인장이 다시 활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인 듯 했다.
“이 패는 천마 조사님께서 직접 만드신 것입니다.”
“아아아!”
이것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수호자를 의식해서 천마령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이때 천여운은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교주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천마 조사 때부터 내려온 직책이라 할지라도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호법이 천마령의 수호자라면 교주님이 위험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는 교주님께 해를 가할 수 없습니다.”
“……그걸 교주님이 믿을 까요?”
현 교주의 성격상 이를 쉽게 믿을 리가 없었다.
그런 천여운의 의문을 마라겸이 풀어주었다.
“천마 조사께서는 저희 수호자들에게 제약을 걸어두었습니다. 그것은 특별한 금제가 걸린 고독입니다.”
고독(蠱毒).
그것은 체내에 기생하는 독을 가진 벌레였다.
대호법 일족은 선대로부터 이 고독을 대물림 받아왔다.
천마가 직접 만들어낸 이 고독은 대호법의 심장과 단전에 파고들어 있는데, 그가 직접 교주의 목숨에 해를 가하게 되면 발동한다고 한다..
“교주님께서 영고(令蠱)를 복용하셨기 때문에 그분께 위해를 가한다면 저는 죽게 됩니다.”
“아……”
고를 이용한 영고의 제조법은 오직 대호법 일족만이 알고 있었는데, 이들은 새롭게 교주로 등극하는 자에게 영고를 바치고 충성을 맹세했다.
이 비밀을 아는 것 역시도 오직 교주와 대호법뿐이었다.
하지만 대호법이 교주에게 해를 가할 수 없다고 해도 천마령을 보이며 이를 문제 삼을 수 있기 때문에 함부로 어길 수가 없는 것이었다.
참으로 묘한 관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비밀이 있을 줄이야…..”
다소 씁쓸하게 말하는 천여운을 바라보며 마라겸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천마 조사님께서는 본교에 마(魔)를 봉해두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격을 갖춘 자가 천마검을 얻게 되리라고 예언하셨지요.”
그것이 바로 봉마동의 전설이었다.
몇 백 년에 달하는 동안 수많은 역대 소교주 후보자들이 시험을 치렀으나 누구 하나 천마검을 찾아낸 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천마의 마지막 심득이라 할 수 있는 천마검공을 터득한 자도 없었다.
“천마 조사님의 유지를 받들기에 저희 수호자 일족은 계속해서 기다렸습니다.”
그러기를 수백 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긴 세월이 지나도 당대 천마는 나타나지 않았고 점점 수호자 일족 역시도 이것을 포기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이제 달라졌습니다.”
“달라졌다는 건?”
“소교주님께서 진정한 당대 천마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저희 천마령의 수호자는 오직 당대 천마님만을 주군으로 모십니다.”
“아!”
진중한 대호법 마라겸의 목소리에 연무화는 전율로 몸이 떨려왔다.
그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들었기 때문이었다.
대호법 마라겸은 현 교주인 천유종이 아닌 당대 천마인 천여운을 진정한 천마신교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제게 천마기(天魔氣)를 내려주십시오.”
“천마기?”
“천마님께서 천마검에서 얻으신 기운이 있지 않으십니까?”
“……혹시 이것을 말하는 겁니까?”
천여운이 천마검에 흉흉한 마성의 기운을 주입하자 짙은 어둠을 머금은 검은 빛 검강이 치솟았다.
-우우웅!
“아아아! 역시!”
바로 앞에서 이것을 보게 되자 마라겸의 눈빛이 감격으로 물들었다.
이 장로 경본기를 쓰러뜨릴 때 검은 검강을 보면서 확신했었는데 역시 천마기가 틀림없었다.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당대 천마님을 모실 수 있게 부디 천마기를 하사하여주십시오.”
“그게 무슨 말이죠?”
“제 몸에 있는 고독은 천마 조사님의 천마기를 주입하여서 만들어졌습니다.”
마라겸의 말에 의하면 영고는 당시에 천마기를 얻은 천마 조사의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에 임시로 만들어진 최소한의 금제라고 한다.
“천마 조사님께서 이르기를 제 고독은 천마기를 가진 숙주를 주인으로 인식한다고 하셨습니다. 부디 저를 거둬주십시오.”
고독의 제어권을 천여운이 가지기를 바라는 대호법 마라겸이었다.
스스로 충성의 의지를 보이는 모습에 천여운의 마음이 움직였다.
천여운이 말없이 그의 머리에 있는 백회혈(百會穴)로 흉흉한 마성의 기운을 끌어내 일부를 주입했다.
-우우웅!
마성의 기운이 백회혈을 타고 들어오자, 마라겸이 운기를 통해 전신의 경맥으로 이것을 순환시켰다.
“큭!”
마라겸의 체내에 파고들어 있던 고독이 천마기와 접촉했다.
심장과 단전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잠시 느껴졌지만 그것은 길지 않았다.
이윽고 기운을 완전히 받아들였는지 마라겸의 눈빛에서 강렬한 안광과 함께 흉흉한 마성이 일렁였다.
-탁!
마라겸이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큰 소리로 외쳤다.
“신을 거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천마령의 수호자이자 대호법 마라겸이 당대 천마님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천여운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현 마교에 있어서 최고의 무인이자 교주를 모시는 대호법 마라겸이 충성을 맹세했다.
이로써 천여운은 호법가의 모든 힘을 얻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