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5)
# 7장 이놈, 모두를 속이고 있었어(1) #
늦은 밤 해시(亥時) 무렵, 마도관 본관의 이층에 있는 의무실.
“으으으!”
알 수 없는 강한 전격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고 기절한 이십삼 번 생도가 깨어났다.
온몸에 아직도 그 짜릿한 기운이 남아 있는지 경련이 일어났다.
분명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천여운의 발목 근맥을 의료용 칼로 그으려다가 알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뿐이었다.
‘내, 내가 왜 기절한 거지?’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 의무실인 것을 보면 꿈이라도 꾼 것인가 착각마저 들었다.
분명히 의무실의 주치의원인 백종명이 퇴근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려 했던 그였다.
‘뭐지?’
주위를 돌아보던 이십삼 번 생도가 알 수 없는 감각에 그 눈빛에 불안감이 서렸다.
그리 긴 머리카락은 아니었지만 목까지 닿고 고개를 한 번 돌려주면 찰랑거리던 그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야. 아닐 거야.”
분명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머릿결이 느껴지지 않았다.
극도의 불안감에 사로잡힌 이십삼 번 생도가 자리에서 일어나 동경을 찾으려했다.
그러나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강한 압박에 상체를 일으키다가 그대로 다시 침상에 쓰러지고 말았다.
“크흑!”
근맥에 손상은 없었으나 바늘로 상처부위를 꿰맸으니 아플 수밖에 없었다.
고통으로 몸을 뒤틀던 이십삼 번 생도가 어둠으로 잘 보이지 않는 자신의 몸을 눈을 찌푸리며 바라보았다.
그의 상반신과 발목이 줄 같은 것으로 결박이 되어 있었다.
얼마나 세게 묶었는지 몸이 고정되어서 아무리 힘을 줘도 풀 수가 없었다.
“누, 누가 묶은 거야? 대체?
“나야.”
-촥!
온몸을 아등바등 거리며 줄을 풀어내려 하는 그의 침상 장막을 걷어내며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잠들어 있다고 생각했던 천여운이었다.
놀란 이십삼 번 생도가 두 눈이 커져서 말을 더듬으며 입을 열었다.
“네, 네 녀석이 어떻게?”
“뭘 어떻게야? 기절한 너를 묶어서 얌전히 침대에 올려준 거지.”
“기절?”
역시나 자신이 마지막에 기억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자 내상이 심하다고 알려진 천여운이 멀쩡히 걸어 다니며 자신을 포박한 것보다도 있어야 할 것이 없어졌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힌 그가 물었다.
“내, 내 머리카락은?”
“맞아. 너, 이제부터 대머리야.”
싱긋 웃으며 말하는 천여운의 얼굴을 잠시 멍하게 쳐다보던 이십삼 번 생도가 미칠 듯이 몸부림을 치면서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안 돼! 안돼에에에! 내가 대머리라니! 내가 대머리라…”
“조용히 해!”
-퍽!
의무실이 떠나가라 고함을 지르려던 이십삼 번 생도가 천여운의 주먹을 맞고 다시 기절하고 말았다.
“되게 시끄럽네. 재갈도 물려야 겠군.”
천여운이 기절한 그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대머리가 되었다는 충격에 휩싸여서 기절했던 이십삼 번 생도가 다시 정신을 차리기까지는 아까 보다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신을 차린 이십삼 번 생도는 아까 전의 기억이 떠올라서 또 다시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자신의 입에 재갈이 물려있다는 사실을 금방 깨닫고 만다.
“읍읍!”
그런 이십삼 번 생도의 곁으로 다가온 천여운이 침상 옆 의자에 걸터앉았다.
대머리가 되었다는 충격 때문에 정신이 혼미하던 이십삼 번 생도가 이윽고 진정을 되찾았다.
몸을 결박당한 것도 모자라서 입을 재갈로 물렸으니, 이 상황이 자신에게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인지한 것이었다.
“읍읍읍!”
“입에 재갈이 물려있는데 멍청하게 뭐라고 떠드는 거야?”
천여운의 차가운 목소리에 이십삼 번 생도의 눈빛이 흔들렸다.
입관식이 있던 날에 대연무장에서 문득 쳐다보았을 때는 멀뚱멀뚱 서있기만 해서 순진무구하고 단순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이 녀석 원래 이랬던가?’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서 천여운을 쳐다보니 그 표정이 싸늘했다.
이제야 자신이 처한 상황이 굉장히 위태롭기 그지없다는 것을 인지한 이십삼 번 생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몸을 이리저리 뒤트는 것도, 소리를 내려는 것도 멈추자 천여운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있잖아. 내가 이 나이가 되도록 어떻게 살아남았을 것 같아?”
입에 재갈이 물려있으니 대답을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천여운도 그것을 개의치 않는지 계속 말했다.
“네 녀석 같은 놈들이 시도 때도 없이 암살이니 독을 푸니, 얼마나 많이 왔을까?”
그 말을 하는 내내 천여운의 목소리에는 강한 살기가 서려 있었다.
그만큼 아직 소년에 불과한 그의 인생은 모진 풍파와도 같았다.
“이게 뭘까?”
천여운이 손에 무언가를 쥐고 꼼짝없이 누워있는 이십삼 번 생도의 눈에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보여주었다.
그것은 그가 천여운의 발목 근맥을 그으려고 했던 의료용 칼이었다.
천여운이 장난처럼 휘두르던 의료용 칼끝을 이십삼 번 생도의 목젖에 가져다대며 말했다.
“이걸로 장난질을 하려고 했으니 찔리면 얼마나 아플지 알겠지? 아 죽을 수도 있겠구나.”
이십삼 번 생도의 두 눈이 심하게 흔들렸다.
능청스럽게 말을 하는 천여운의 모습이 무섭게 느껴졌다.
“자! 그럼 말해.”
-꿀꺽!
이십삼 번 생도가 긴장된 나머지 마른 침을 삼켰다.
“누가 시킨 거야? 이 짓거리.”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라는 생각에 두려움이 커진 이십삼 번 생도였지만, 극도로 긴장하니 머릿속에서 이 난관을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수십, 수백 가지의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러다 떠올렸다!
“읍읍!”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 그의 태도에 천여운이 입에 물리고 있던 재갈을 당겨서 턱으로 내렸다.
“말 해!”
“하아…하아…”
긴장한 상태로 물려져 있던 재갈이 풀리자 거친 호흡이 터져나왔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이십삼 번 생도가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걸.”
“뭐?”
“나는 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그리고 마도관에 있는 의무실에서 내 목을 찔러서 죽인다면 네 녀석도 무사할 것 같아?”
이십삼 번 생도가 떠올린 생존 방법은 바로 규칙이었다.
마도관에서 훈련이나 공식적인 비무를 통해서 생도끼리 겨뤄서 부상을 당하거나, 죽는 것은 규칙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외에 상대를 해하는 것은 절대로 금해져 있었다.
‘네놈이 나를 어쩔 수 있을 것 같아?’
극도의 긴장으로 인해 활로를 생각해낸 이십삼 번 생도의 얼굴이 득의양양해졌다.
천여운이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흐음. 역시 그냥은 안 통하네.”
“당연한 소리를 하지 마라. 네 녀석이 설사 고문을 한다고 해도 내 입을 열 순 없을 거다.”
이 정도 패기마저 보였으니, 당연히 납득할 거라 여겼던 천여운의 표정이 이상할 만치 묘해졌다.
“열지 안 열지 해보면 알겠네?”
“뭣?”
-꽉!
“읍읍! 읍읍읍읍!”
‘대체 뭐하는 거야?’
갑자기 턱에 걸려있던 재갈을 다시 올려서 그의 입에 물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의무실의 한편에 있는 진열장을 뒤지더니 긴 장침들을 가져왔다.
아무 말을 할 수 없는 이십삼 번 생도의 두 눈이 커졌다.
“읍읍읍읍! 읍읍읍읍읍읍읍!”
‘뭐, 뭐야? 설마 그걸로 대체 뭘 하겠다는 거야?’
“내가 살던 숙소에는 이런 게 없었는데, 여긴 좋은게 참 많더라.”
극도의 불안감에 사로잡힌 이십삼 번 생도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천여운이 그것을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이내 묶여서 고정되어 있는 이십삼 번 생도의 왼손을 붙잡았다.
놀란 나머지 재빨리 주먹을 쥐었는데 그것을 강제로 폈다.
‘무, 무슨 힘이 이렇게?’
주먹을 쥐려고 안간 힘을 쓰는 이십삼 번 생도가 놀라했다.
무공을 익히지도 않았다는 놈이 손가락을 일일이 강제로 펴는데 그 힘이 너무 셌다.
“읍읍읍!”
‘제발!!!’
강제로 손가락이 펴지자 천여운이 잔인하게 웃으며 말했다.
“좀 아플 거야.”
그 말과 함께 검지 손가락의 손톱 밑으로 향해 장침을 그대로 꽂아 넣었다.
-푹!
“끄으으으으으으읍!”
손톱 밑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장침으로 인한 고통에 이십삼 번 생도가 재갈에 제대로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온몸을 들썩이며 눈물을 흘렸다.
얼마나 아픈지 목에 핏대가 써서 호흡마저 거칠어졌다.
그런 이십삼번 생도의 모습에도 천여운은 전혀 개의치 않는지 무표정하게 중지 손가락을 들어서 손톱 사이에 장침을 꽂아 넣었다.
“끄으으으으으읍!”
고작 두 개를 꽂아 넣었지만 아직 소년에 불과한 이십삼 번 생도가 견딜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눈물을 질질 흘리며 고통에 몸서리를 치는 그를 향해 천여운이 마지막으로 말을 남겼다.
“고문으로 입을 열지 못한다고 했으니까 그냥 내 화풀이로 생각해.”
고통으로 눈물을 흘리던 이십삼 번 생도가 그 말에 두 눈에 커져서 몸을 더욱 심하게 뒤틀면서 뭔가를 말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것은 정말 잔인한 고문의 시작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십삼 번 생도의 왼손 손가락의 전부에 장침이 꽂혀 있었고, 두 번 정도 고통을 참지 못하고 기절했다가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끼이이이이이!
천여운이 일어나 의자를 끌고 침상의 왼쪽 편에서 우측으로 이동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기에 이십삼 번 생도는 두려움이 가득차서 눈물을 쏟아냈다.
천여운이 자리를 잡고 그의 오른손을 잡으려 하자, 이십삼 번 생도가 기를 쓰고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재갈을 뱉어내려했다.
“읍읍읍!”
그 모습에 천여운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이제 말할 생각이 들었어? 진작 처음부터 얘기하지 그랬어.”
천여운이 빙긋 웃으며 그의 입에 물려 있던 재갈을 내려주었다.
얼마나 고통스러워서 했던지 하얗던 재갈이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재갈을 벗기자 거친 호흡을 내뱉던 이십삼 번 생도가 더 이상 후환이니 뭐니, 뒤도 생각하지 않고 뭔가를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가 뭔가를 고하기도 전에 천여운이 먼저 입을 열었다.
“천무금이지?”
“헉? 그….그걸 어떻게?”
놀랍게도 천여운은 자신을 보낸 사람을 정확하게 지목해냈다.
물론 그 계략을 짠 사람이 누구인지는 몰랐지만 그것만으로도 이십삼 번 생도를 놀라게 만들어냈다.
“네 녀석 이십삼 번 생도면 팔 조잖아. 나랑 같은 조.”
“…..그, 그렇습니다.”
이미 천여운에게 모진 고문을 당해서 심적으로 굴복한 이십삼 번 생도가 공손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와중에도 계속 의무실에만 있던 천여운이 조가 편성된 것을 알고 있고, 자신이 그 조에 속해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네 녀석 명찰이 여기에 있거든.”
그의 생각이라도 알아챈 것처럼 천여운이 침상 옆의 탁자에 올려 진 이십삼 번 생도의 숫자가 기입된 명찰을 들어보였다.
“그것만으로 조를 알았다는 게?”
“아아….아주 훌륭하신 우리 팔 조 조장님의 배려 덕분에 매일 오전 때마다 무공 교두님께서 오셔서 과외 수업을 해주었거든.”
이것은 복마종의 후계자인 천무금이 전혀 상정하지 못한 정보였다.
매일 오전마다 진행되는 전술과 전법 강의는 대강당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무공 교두들이 할 일 없이 그들의 곁에 서서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그때마다 팔 조를 담당하던 임평은 본관의 의무실로 와서 천여운에게 이론만이라도 설명했던 것이었다.
시말서를 쓰지 않고 자신의 조에서 누락자가 없도록 하려는 필사적인 임평의 노력 덕분에 천여운은 그의 조가 몇 조이며, 누가 같은 조인지를 이미 파악한 상태였다.
“대충 짐작은 했지만 네 입으로 들으려고 해본 거야.”
가볍게 말을 하는 천여운이었지만 이십삼 번 생도는 너무나도 두려웠다.
눈앞의 소년이 정말로 천무금과 자현이 말했던 것처럼 허접한 쓰레기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누가 그랬어? 이, 이놈은 절대 허접 쓰레기가 아니야!’
오히려 자신을 감추고 있는 괴물이었다.
아직까지 힘을 갖추지 않았기에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자신의 힘을 가지게 되는 순간 얼마나 두려운 행보를 할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뭐, 덕분에 좋은 정보도 알았고 조금이라도 자둬야 하니까 이쯤에서 끝내자.”
“저, 정말입니까?”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이십삼 번 생도의 눈빛에 실 낱 같은 희망이 솟아났다.
“그래. 아! 참고로 방금 전에 있었던 일말이야.”
“누…누구에게도 절대로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제발! 노여움을 거둬주십시오!”
마음 같아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머리라도 박으면서 말하고 싶었지만 온몸이 구속되어 있어서 그건 무리였다.
그런 이십삼 번 생도의 급변한 태도에 천여운이 한 쪽 입 꼬리를 올리며 그의 훈혈(暈穴-기절시키는 혈도)에 손가락을 가져다댔다.
-타탁!
“엇?”
그 짧은 순간에 이십삼 번 생도의 동공이 흔들렸다.
혈자리에 점혈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내공을 필요로 하는데, 분명 천여운은 내공이 전무한 걸로 알고 있었다.
‘이놈, 모두를 속이고 있었어.’
그것을 마지막으로 이십삼 번 생도의 험난한 의무실 첫날의 기억은 끝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