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57)
# 47장 원흉 (2) #
‘뭐?’
‘역혈마공을 개량한 겁니다.’
‘잠깐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역혈마공은 본교에서 태상교주께서 금지시키신 무공이잖아!’
역혈마공은 그 부작용이 심해서 나중에는 아군을 알아보지 못할 만큼 이지를 상실하고 끝에는 주화입마를 입은 것처럼 되어서 금지된 마공이었다.
여불위가 권하는 것은 바로 그 역혈마공이었다.
‘다릅니다. 원래의 역혈마공은 그럴지 모르겠지만 본 종에서는 이것의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연구했고 개량시켰지요. 당연히 성과도 있었습니다.’
‘그걸 어떻게?’
‘……검마종주님의 명령 때문입니다.’
‘검마종주의 명령?’
여불위는 검마종의 산하에 있는 암검이종인 대무검종과 부주검종은 그들의 숨겨진 힘과 동시에 역혈마공을 연구하거나 더러운 일을 도맡아왔다고 했다.
그는 아직까지 역혈마공의 개량형인 역혈대라신공은 검마종주조차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이것은 역혈마공과 다르게 크게 이지를 상실한다거나 그러지 않습니다. 한두 번 위기 상황에 쓰신다고 해도 큰 부작용이나 해가 있지 않을 겁니다.’
‘……..’
‘친척이나 다름없는데 제가 공자님을 속이겠습니까?’
그때 여불위는 미묘하게 뒤틀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진실을 알고 나서 분노에 사로잡힌 천유종은 이를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마도관의 사 년이 끝나고 남아있던 모든 생도들이 일시에 졸업하여 나온 그날 밤.
마교를 떠들썩하게 만든 그 사건이 벌어졌다.
그 날은 폭우처럼 쏟아지는 우기의 밤이었다.
-쏴아아아아!
고여 있는 빗물은 피로 인해 붉게 물들어 있었고, 사방에는 수많은 시신들이 사분오열로 찢겨져서 비참한 꼴로 널려 있었다.
‘크르르르르…..’
붉은 안광이 짙게 물든 천유종의 앞에 누군가 무릎을 꿇고 빌고 있다.
-참방! 참방!
고인 빗물로 머리를 세차게 박으면서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는 것은 바로 천유중이었다.
천유중은 절대로 비밀을 발설하지 않겠다며 애걸복걸을 하면서 목숨을 구걸했다.
‘제발! 제발 살려주십시오! 형님. 혀, 형제이잖습니까? 제발! 제발!’
형제를 들먹이는 그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천유종의 머릿속에 그가 씨받이 계집의 자식이라고 말했던 것이 계속 맴돌았다.
‘죽이십시오. 공자님.’
역혈대라신공으로 짐승 같은 살의에 사로잡힌 천유종에게 여불위가 외쳤다.
그런데 그를 죽이기 위해 검을 내리칠려고 할 때마다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혀서 그것을 할 수가 없었다.
진실을 알게 되었지만 십 몇 년 동안에 쌓아온 정이 그것을 붙잡은 것이다.
결국 천유종은 끝내 배다른 동생인 천유중을 죽이지 못했다.
팔 한쪽만을 잘라버렸다.
‘네놈은 이제부터 내가 짖으라면 개처럼 짖고, 네 분수에 맞게 더럽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끄으으으….알겠습니다. 살려주셔서 가, 감사합니다.’
‘안 됩니다. 공자님께 후환이 될 겁니다. 죽여야 합니다!’
목숨을 건지게 된 천유중을 끝까지 죽이라고 여불위는 강요했다.
그러나 천유종이 이것을 거절하자 여불위가 검을 뽑아서 그의 목을 베려했고, 결국 천유종은 여불위를 쓰러뜨려야만 했다.
다음날 천유종은 네 종파의 소교주 후보자들은 전부 죽였고, 검마종의 소교주 후보자인 천유중의 팔을 잘렸다는 것이 회부되어 금옥에 갇히게 되었다.
‘왜 그놈을 죽이지 않은 것이야? 왜! 왜!’
금옥에 갇혀 있는 닷새 동안 천유종은 지독한 환상과 고통에 휩싸였다.
부작용이 없을 거라는 역혈대라신공은 이지를 상실하지 않았지만 그 후유증이 강했다.
한 번도 얼굴을 본 적도 없는 어머니가 매일 밤 나타나서 그를 다그쳤다.
‘아니야! 아니라고!’
그렇게 닷새가 지나고 나서 쉬지 않고 운기조식을 하면서 심신을 가라앉힌 결과 후유증은 가라앉을 수 있었다.
금옥에 갇힌 지 열흘 째가 되는 날에 천유종은 풀려났다.
네 종파에 그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교주인 천인지에게 압력을 넣었지만 검마종주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되었다.
‘……약속을 지키길 바란다.’
그것은 천유종과 검마종주의 비밀스러운 협약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천유종은 검마종에서 암검이종을 통해서 역혈마공을 연구하고 있던 것을 밝히겠다고 협박하였고, 이를 중단하고 자신을 구제해준다면 함구하기로 약속했다.
‘공자님.’
그가 석옥되고 나서 여불위가 찾아왔지만 천유종은 더 이상 그에게 가까이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너는 내게 역혈대라신공이 부작용이 없다고 하였다.’
이것을 빌미 삼아 천유종은 그를 멀리했다.
가까이 하기에 여불위라는 자는 너무도 위험하다고 여겨졌다.
여불위는 그때 천유종에게 말했다.
‘술과 여자는 처음부터 하지 않았으면 몰라도 한 번 가까이 하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지요. 크크큭.’
그를 죽여야 할까 고민했지만 어머니의 혈육이라는 것과 어찌 되었든 자신을 구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에 참아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나서 어느 날 교주 천인지가 자신을 찾아왔다.
천인지는 그를 데리고 천마 조사의 제단으로 이끌었다.
‘네게 교주의 자리를 물려주겠다.’
‘네?’
천인지는 뜻밖에도 그에게 교주의 자리를 물려주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네 종파의 소교주 후보자들을 죽은 이후부터 일 년씩이나 소교주를 정하는 것을 미뤄왔기에 큰 기대를 버렸던 천유종이었다.
당연히 복마종의 후보자인 천유애가 교주가 되리라 여겼는데 예상과 달라졌다.
‘……유약한 그 아이는 앞으로 다가올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어째서 자신을 선택했냐는 물음에 교주 천인지는 그렇게 답변했다.
위기라는 말이 의아했지만 천인지는 더 이상 그것에 대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보다도 천인지는 천마 조사가 남긴 교주로서의 사명과 많은 것들을 일러주면서 간곡히 부탁했다.
‘교주의 위라는 것은 단순히 권력이 아니다. 그것은 무게이면서 사명이다. 네 어깨 위에 십만 교도들의 명운이 달려있는 것이다. 네 속에 분노를 가라앉히고 오직 교의 앞길만을 생각해라.’
‘……명심하겠습니다.’
교주 천인지의 당부에 천유종은 천마 조사의 제단 앞에서 약조했다.
오직 천마신교만을 위해 생을 바치기로 말이다.
그렇게 천유종은 교주의 위를 물려받았고 태상교주가 된 천인지와의 약조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분노를 죽였다.
그러나 한 번 쌓여 있던 분노가 그렇게 쉽게 가라앉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통대로 여섯 종파에서 한 명씩 추천받아 아내를 맞이했지만 그들에게 정을 가질 수가 없었다.
‘……강해져야 한다.’
천유종의 교주로서의 삶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교의 정무가 끝난 후에 그는 모든 시간을 무공 연마에 투자했다.
갑작스럽게 교주 위를 물려받은 그는 다른 장로들에 비해서 무공이 약했기에 대호법 마라겸의 보호를 받아야하는 처지였다.
강해지기 위해 천유종은 치열할 정도로 무공 연마를 했다.
그때 그에게 유일한 낙이 생겼다.
‘히잉. 어쩜 매일 같이 옷을 이렇게 만드세요? 교주님.’
훈련을 마치고 나올 때면 넝마가 된 옷을 보면서 울상을 짓는 여시종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귀엽다고만 여기고 한두 마디씩 걸던 말들이 어느새는 반나절 가까이 대화를 나누기까지 길어졌다.
‘와! 교주님. 오늘은 옷이 깨끗하네요.’
‘화연, 네가 하도 투덜거리니 본좌가 상의를 벗고 훈련을 해서 그런 거다.’
‘네에. 네에. 감사합니다.’
‘허어. 무엄하다.’
‘……지금 화내시는 거에요?’
‘그….그게……크흠.’
여시종 화연과의 장난스러운 대화는 천유종이 일생 동안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던 따뜻함 그 자체였다.
늘 한 결 같이 자신을 향해 웃어주는 그녀에게 천유종은 점차 빠져들었다.
화연의 말 한 마디에 설레고 손짓 한 번에 웃을 수 있었기에 그녀는 천유종에게 햇살이었다.
몇 개월이 지나고 천유종은 자신의 아이를 가진 그녀에게 정중히 청혼하였다.
본교의 법도에서 어긋난다며 화연이 눈물을 흘리며 성 밖으로 떠나겠다고 했지만 천유종은 그럴 수가 없다고 하였다.
‘본좌가…..본좌가 너와 아이를 지키겠다.’
그의 유일한 햇살이면서 희망을 절대로 잃을 수 없었다.
천유종은 대전 회의를 열어서 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밝히고 혼례를 강행했다.
그 반발은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했다.
중간에 폐관에 들어갔던 태상 교주가 잠시 나와서 중재를 해야 할 정도였다.
천유종은 중재 끝에 그녀와 혼인할 수 있었지만 교주전이 아닌 외부에 그녀의 거처를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매일 같이 화연의 거처를 찾는 천유종의 발걸음은 늘 가벼웠다.
천유종은 이 행복이 한결 같기를 바랐다.
그러나 여섯 종파의 부인들에게 소홀했던 그가 한 여인과 아이에게 관심을 가지니 당연히 시기와 질투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누가 이런 짓을 한단 말인가.’
어느 날부터 화연의 거처에는 짓궂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것은 갈수록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절대로 약해지거나 하지 않았다.
교주는 호위 무사를 배치하고 여러 방면으로 그녀가 해를 입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그러던 어느 날.
폐관에 들어갔다고 나온 태상교주 천인지가 갑작스럽게 행방불명되었다.
천유종은 그를 찾기 위해 사람을 풀었지만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파연맹의 패왕 항연이 대규모의 전력을 이끌고 침공해왔다.
본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오대고수인 태상교주가 사라진 정보가 외부에 새어나가지 않도록 최대한 차단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사파연맹에서는 그것을 알아챘다.
전쟁은 근 여섯 달 가까이나 지속되었다.
그런데 전쟁을 치르는 어느 순간부터 화연이 병에 걸려서 낫질 않았다.
‘교주님. 제 걱정은 하지 말고 다녀오세요. 이깟 병은 금방 이겨낼게요.’
화연이 걱정되었지만 교주는 어쩔 수 없이 출진해야만 했다.
귀주로 패왕 항연이 직접 친정을 나왔는데, 그로 인해서 장로 두 명이 죽었고 배다른 동생인 천유중마저 전사했다.
교주인 그가 직접 나가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마저 온 것이었다.
‘금방…..금방 다녀올게.’
‘네에.’
아픈 와중에도 화연은 천유종에게 밝게 웃어주었다.
그것이 그가 마지막으로 본 아내의 미소였다.
대규모의 전력을 이끌고 출진한 교주 천유종은 귀주의 사원 평야에서 패왕 항연이 이끄는 사파연맹의 대군과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
그때 천유종은 일대일로 패왕 항연과 겨루게 되었는데,
‘크하하하하하핫! 고작 네놈 따위가 교주라니 정말 실망스럽구나. 천인지 공에 비하면 애송이에 불과하구나.’
화경의 극에 이른 그에 비해서 패왕 항연은 현경 초입의 고수였다.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그라고 해도 무위에서 밀렸기에 도저히 상대할 방도가 없었다.
‘안 돼. 본좌가 지면 본교는….화연은…..’
결국 천유종은 근 칠 년 동안이나 스스로 금지해온 역혈대라신공을 펼쳤다.
갑작스럽게 폭증한 공력에 야수처럼 돌변해, 미칠 듯이 덤비는 천유종의 변화에 당혹스러워 한 항연은 결국 그를 죽이지 못하고 후퇴해야만 했다.
‘이, 이놈이 정녕 미쳤구나!’
자신의 목숨마저 불태우는 전의에 두려움을 느낀 탓이었다.
오대 고수인 항연이 후퇴하면서 천유종은 태상교주에 이어서 그 칭호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적들을 물리쳤지만 천유종은 기뻐할 수 없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교내로 복귀한 그는 아내인 화연의 사망 소식을 듣고 격분할 수밖에 없었다.
마의 백종우는 그녀가 미독에 의한 사망이라고 하였고 천유종은 교내를 샅샅이 뒤져서라도 범인을 색출하게 했다.
그러나 끝내 범인을 찾지 못하고 그녀의 죽음은 미궁으로 빠지게 되었다.
더욱 그를 처절하게 만든 것은,
-쾅! 쾅! 쾅!
‘끄아아아아아아!’
천유종은 스스로를 교주전 폐관 연공실에 가둬두고 역혈대라신공의 후유증과 싸워야 했다.
아내인 화연이 장례를 치르는데도 환영과 두통에 사로잡힌 그는 폐관 연공실을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청옥석으로 만들어진 폐관 연공실 벽에 주먹이 부서지고 피가 흘러내릴 만큼 격분하고 오열하면서도 자신이 환영에 사로잡혀 아이를 해칠까봐 두려웠다.
‘끄흐흐흐흑.’
그렇게 밤낮으로 격분하고 오열하기를 한 달이 되던 날.
격통에 시달리던 두통이 사라졌다.
한 달이나 매일 같이 나타나 그의 앞에서 말을 거는 천유중의 환영도 보이지 않았다.
전보다 훨씬 길어진 후유증이었다.
폐관 연공실에서 나온 천유종은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원래부터도 무표정했던 얼굴에는 차가운 냉기만이 흘렀고 모든 것에 냉소적이게 바뀌었다.
‘…..누구인가.’
천유종은 여섯 종파 중에서 범인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남겨진 천여운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대로 그를 방치한다면 분명 여섯 종파의 그 간악한 계집들이 또 다시 수작을 부릴 지도 몰랐다.
‘그 아이에게 무공을 익히지 못하게 했다고?’
‘그렇습니다.’
대호법의 보고에 천유종은 기가 차서 할 말을 잃었다.
이젠 하다하다 못해서 아무런 해가 되지 못하는 그 아이에게 무공조차 익히지 못하게 막는 것을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더욱 슬픈 것은 그게 아니었다.
‘…….그 아이를 살리려고 그렇게까지 한 것이냐. 화연.’
자신이 전장터에 나가서 지키지 못하는 사이에 죽어가면서도 천여운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약조까지 한 것이었다.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마음 같아서는 여섯 종파의 부인들을 전부 불러서 죽여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필시 여섯 종파와 사생결단으로 싸워야만 할 것이다.
그것은 본교가 자멸로 들어가는 지름길이었다.
-으득!
천유종은 입술을 깨물고 독하게 마음먹었다.
이렇게 된 이상 철저하게 본교를 변화시켜서 더 이상 여섯 종파가 교의 근간이 되지 못하게 바꿔나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당장에 많은 것을 변화시키려들면 마교는 약해질 게 틀림없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천여운을 생각하면 천유종은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지금이라도 어린 천여운을 걷어서 보호 속에서 크도록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한다면 여섯 종파와 갈등만 더욱 심화되고, 아내를 죽인 범인을 색출하기도 힘들 것이다.
‘이 아비를 원망해라.’
천유종은 어린 천여운을 미끼로 삼아서 범인을 찾고, 천여운이 어미인 화연과 같은 전철을 받지 않도록 여섯 종파의 힘을 약화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천여운을 찾아간다면 마음이 약해질 까봐 그것도 삼갔다.
‘본좌는 냉정하다. 본좌는 본교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내 아들 역시도 그저 패에 불과하다.’
구슬프게 교주전의 집무실에서 그는 그 말만을 되뇌었다.
그렇게 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교주는 보이지 않게 천여운을 보호하면서도 여섯 종파에는 무관심한 척 일관되게 행동해왔다.
마도관의 입관식 날.
교주는 긴장되는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근 십 년 만에 화연과 자신의 아들을 만나는 그 날이 찾아왔다.
마음이 약해질 까봐 절대로 보지 않으려고 했지만 입관식 날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최대한 시선을 마주하지 않으려 했지만,
‘아아아……’
한 눈에 그를 알아보았다.
화연과 많이 닮은 모습에 콧등이 시큰해졌다.
결국 천유종은 단상 위에서 짧게 입관식 인사를 끝내고 내려갔다.
더 있으면 감정이 복받칠 것만 같았다.
‘우호법이 녀석에게 관심 있어 한다고?’
‘네. 그렇습니다.’
‘……좌호법에게 일러서 어느 정도 배려하게 해라.’
‘어찌?’
‘본좌의 아들이란 놈이 고작 마도관의 일 단계, 이 단계 시험에서 떨어지는 꼴을 보라는 것이냐.’
‘알겠습니다. 충!’
대호법을 보내서 의무실에 있는 경비 무사들을 물리게 했다.
그 동안은 여섯 종파에서 눈치챌까봐 무공을 직접 전수하는 것을 꺼렸지만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도관에 입관했으니 이런 배려를 하더라도 눈치를 볼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두 달 정도가 지났을 때 드디어 검마종에서 미끼를 물었다.
분명히 역혈마공에 대한 연구를 하지 말라고 약조를 했는데 그것을 어기고 대무검종에서 흔적을 노출시켰다.
‘우호법. 대무검종을 전부 체포하라. 반항할 시에 전부 죽여도 좋다.’
내심 부주검종에서 그러길 바랐지만 그곳은 여전히 잠잠했다.
그의 명령을 받은 우호법 섭맹이 표정이 썩 좋지 않다.
제자로 받은 천여운을 미끼로 이용했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그들의 힘을 약화시키지 않는다면 전면전을 해야 했다.
‘본좌에게 그 아이도 패에 불과하다. 패에 불과하다.’
이렇게 스스로의 마음을 붙잡지 않으면 약해질 것이다.
다시 삼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절강성이 정체모를 문파에 의해서 탈환되면서 사태가 심각해지자, 천유종은 정파 무림맹과 협정을 통해서 그들을 치기로 하였다.
근 십오 년 만에 큰 전쟁으로 치닫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두르기로 했다.
‘그 아이가 출관하기 전에 해결해야 한다.’
만약 전쟁이 길어져서 또 다시 그곳에 신경을 써야 한다면 예전과 같은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르기에 두려웠다.
그렇게 절강성에 천유종은 극도육무문의 고수들과 맞부딪쳤다.
그들은 지금까지 보았던 어떠한 적들보다도 강했고 위험한 자들이었다.
‘어떻게든 처리해야 겠다.’
원래는 장로들의 선에서 해결하게 하려 했던 그가 대호법과 나서서 세 명을 죽이려고 했다.
그때 그 자가 나타났다.
천유종은 그 자의 엄청난 무위에 전율을 느꼈다.
그가 아직은 현경의 경지에 오르지 못했던 애송이로 돌아간 느낌이 들 정도로 너무 강했다.
불과 십여 초식 만에 수세에 내몰린 천유종에게 그 자가 말했다.
‘…..그대는 아니군.’
그와 함께 그 자가 마무리를 짓기 위해 일격을 가하려고 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그의 머릿속에 화연과 천여운이 스치고 지나갔다.
‘안 돼. 안 돼! 본좌가…..본좌가 여기서 죽으면 그 아이는 혼자 남게 된다.’
자신이 죽게 되면 분명 천여운은 마도관을 나와서 혼자 여섯 종파의 적들과 힘겹게 고군분투하게 될 것이다.
비록 그 아이에게 정을 주지 않고 미끼로 삼았지만, 자신이 살아있어야 여섯 종파에서도 선을 넘는 행동을 하지 못한다.
‘교주님. 확실하게 경고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특정 무공을 쓰신 후에 한 달 동안 환영을 보셨다고 했는데, 앞으로는 그 무공을 삼가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다시 쓰시게 된다면 후유증이 지금과 같이 끝날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마의에게 진맥을 받았을 때 신신당부했지만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었다.
‘여기서 죽을 수 없어.’
결국 천유종은 다시 한 번 역혈대라신공을 펼쳤다.
그 다음부터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의 앞에는 대호법 마라겸이 걱정스러운 투로 부르고 있었다.
‘교주님? 교주님?’
그런데 그가 자신을 불렀을 때 이상하게 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아무 느낌이 없었다.
어떻게 적을 물리쳤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멍한 느낌에 사로잡혀 있는데 그의 옆에서 대호법 마라겸과 함께 누군가 자신을 부축했다.
‘유중?’
그는 천유중이었다.
죽었다고 생각한 그가 나타나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또 무리하셨군요. 이런 식으로 하다가 본교의 균형을 맞출 수 있겠습니까?]‘균형?’
[쯧쯧, 형님, 아니 교주님이 돌아가시면 누가 본교를 바로 세운단 말입니까?]천유중의 말에 멍하게 혼이 빠져있던 천유종이 흐릿해진 눈으로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면서 중얼거렸다.
‘그래…….본교의 균형을 바로 잡아야 해. 본교의 균형을……’
.
.
.
“크르르르! 그래. 네놈은 고작 패에 불과하다. 본좌가!…..본좌가 본교의 균형을 바로 잡아야 해!!!”
두 손으로 머리를 붙잡고 괴로워하던 천유종이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고개를 들었다.
아까 전과 다르게 완전히 붉어진 두 눈을 보면 역혈대라신공을 펼치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대전에 있는 사람들이 교주의 붉어진 두 눈에 당혹스러워했다.
“헉!”
“서, 설마 지금 역혈마공을?”
아무리 상태가 좋지 않아서 수세에 몰렸다고는 하지만 교주가 역혈마공을 펼칠 거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면서 입 꼬리가 올라가는 중년인이 있었다.
‘크크큭, 됐다. 날뛰고 날뛰어서 소교주도, 여섯 종파의 종주들도 전부 없애버리고 네 할 일을 마쳐라.’
애써 전음을 보내서 자극한 보람이 있었다.
이제 교주는 폭주해서 대전 내에 있는 자들을 닥치는 대로 공격할 것이다.
역혈대라신공을 펼치자 교주의 상의가 찢겨져나가며 상반신의 근육이 핏줄이 곤두서서 부풀어 오르려고 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천여운의 신형이 번개처럼 뻗어나가서 단숨에 교주의 머리를 붙잡고 가슴에 손을 얹었다.
-꽉!
“크르르르, 이게 무슨 짓이냐?”
“죄송한데 이걸 너무 많이 겪어서요. 많이 아플 겁니다.”
“뭣?”
‘나노!’
[알겠습니다.]-파치치치치치칙!
머리를 붙잡고 있는 천여운의 왼손에서 새하얀 전기가 번쩍이면서 전격이 흘러나와 교주의 백회혈(百會穴)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옥당혈(玉堂穴)을 짚고 있는 오른손에서 웅후한 내공이 파고들면서 역류하려는 교주의 내기를 붙들었다.
“끄가가가가가가각!!!”
파고드는 엄청난 전격에 교주 천유종이 전신에 경련을 일으켰다.
온몸을 떨면서 괴이한 비명을 질러대던 천유종이 한참을 부르르 떨다가 머리카락이 전부 타들어가고 얼굴이 시꺼멓게 타서는 바닥에 쓰러졌다.
-쿵!
이 광경에 모든 사람들이 어안이 벙벙해져서 넋을 놓고 쳐다보았다.
‘비, 빌어먹을 이게 무슨?’
이것을 지켜본 중년인이 당혹감에 사로잡혔다.
설마 교주가 역혈대라신공을 미처 펼치기도 전에 천여운의 손에 이런 식으로 제압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방금 전에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저 이상한 기운은 무엇이란 말인가.
바로 그때였다.
-스륵!
“헉!”
언제 경공을 펼친 것인지 천여운이 잔상처럼 중년인의 앞에 나타났다.
“이, 이형환위?”
이형환위(移形換位).
극도로 빠른 신법으로 잔상이 남는 현상을 말한다.
중년인이 놀라서 어떻게 해볼 틈도 없이 천여운이 그의 목을 움켜잡고서 들어올렸다.
-콱!
“케엑!”
움켜잡은 손을 풀려고 해보았지만 괴력에 가까운 힘에 어찌해볼 수가 없었다.
천여운이 바둥거리는 중년인을 살기 어린 눈빛으로 노려보면서 말했다.
“네놈…..대체 누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