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6)
# 7장 이놈, 모두를 속이고 있었어(2) #
의무실에서 한바탕 사건이 있었던 몇 시진 뒤의 어두운 새벽.
평소와 마찬가지로 인시(寅時) 무렵에 어김없이 우호법 광도 섭맹이 찾아왔다.
며칠 전보다도 섭맹의 얼굴은 기대감으로 넘쳐흘렀다.
그것은 어제 새벽에 천여운이 드디어 단전에 내공을 쌓는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이놈은 진짜다.’
섭맹은 진심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일주일을 목표로 잡은 것도 사실은 원래 예상한 기간보다도 짧았다.
그의 스승이 개발한 획기적인 방법 역시도 적어도 열나흘(2주)에서 스물하루(3주), 재능이 없다면 적어도 한 달은 소요되는데, 그것을 모두 뒤집고 닷새 째 되는 새벽에 달성했다.
원래는 어떻게 해서든 이 주 안에 내공만이라도 쌓게 만들고, 하루라도 그의 무공인 접무도법(蝶舞刀法)의 기본 식과 보법만이라도 이론적으로 가르칠 요량이었다.
‘흐흐흐. 이렇게 된다면 기간이 전부 단축되는군.’
왜 다른 동료들이 제자를 키우라고 그렇게 권했는지 알 것 같았다.
가르치는 제자가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그 만족감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제자, 천여운. 스승님께 아침 문안 인사를 올립니다.”
“오냐. 제자야.”
더군다나 예의도 참으로 바르기도 했다.
첫날에 들이 닥쳤을 때를 제외한다면 늘 먼저 깨어나서 가지런한 자세로 정좌로 대기하고 있었다.
일어나서 인사를 하는 천여운을 기특하게 바라보던 섭맹이 물었다.
“그것은 어디에 있느냐?”
“침상 밑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 말과 함께 천여운이 창가 쪽에 있는 의무실 침상으로 가서 작은 목함(木函)을 가지고 왔다.
목함을 열자 그 안에서 진한 약재의 냄새가 흘러나왔다.
환(丸)으로 만들어진 갈색 약은 다름 아닌 일 단계 통과자들에게 주어지는 마룡단이었다.
정해진 규칙대로 통과자들 사백십오 명에게는 마룡단이 지급되었다.
정제 기간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수량이 한정되어 있어, 오직 마도관의 인재 육성을 위해서만 사용된다. 마룡단은 복용 시 제대로 흡수한다면 이십 년을 수련해야 얻을 수 있는 내공을 단번에 가질 수 있게 된다.
-벌컥벌컥!
마룡단을 바라보던 섭맹이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호리병의 술을 들이켰다.
오늘 이것을 천여운에게 복용시켜서 자신이 돕는다면 약 기운의 손실을 최대한 줄여서 이십 년의 내공을 흡수시킬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 녀석이 적어도 최소한의 앞가림은 하게 되겠지.’
속성으로 하는 것치고는 정말 대단한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이 같은 방법은 적어도 높은 수위에 해당하는 내공을 지닌 스승과 자질이 뛰어난 제자의 궁합이 맞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클클, 제자야. 그런데 저 녀석은 대체 누구냐?”
“아!”
섭맹이 의무실의 우측 중간에 위치하는 흰 장막으로 가려놓은 침상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곳에 들어오면서 천여운 외의 다른 사람의 호흡 소리를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점혈이라도 해뒀는지 아주 미약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촥!
섭맹이 침상 쪽으로 다가가 장막을 걷어내자 상반신에 붕대를 매고 있는 대머리의 소년이있었는데, 예상대로 혈도를 점해서 기절한 듯 했다.
“호오? 훈혈(暈穴)을 점했구나.”
점혈법을 가르친 적은 없었는데 혈도를 점한 것을 보니, 내공을 익히기 전부터 이에 관련된 지식은 습득한 것 같았다.
“백 의원께서 퇴근하고 나서 저를 노리더군요.”
“네 녀석을 노려?”
마도관의 의무실에서 그를 노렸다는 말에 섭맹이 인상을 찌푸렸다.
어지간한 배짱이 있지 않고는 마도관에서 방출되는 것을 전혀 겁내지 않고 저질렀다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그를 뒤에서 봐주기로 약조하거나 시킨 배후가 있을 것이다.
섭맹이 무섭게 인상을 굳히며 물었다.
“누구냐?”
“같은 조에 있는 복마종의 녀석입니다.”
“하! 복마종? 하여간 복마종 출신치고 멀쩡한 놈을 본 적이 없더라니. 쯧쯧.”
여섯 종파들 중에서 무공의 성향 때문인지 유독 포악하면서 과격하여 문제를 잘 일으키는 인물들을 유독 많이 배출한 복마종이었다.
비록 외가라고 해도 그 피가 이어지고 복마종의 무공을 익혔으니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하는 섭맹이었다.
“네 녀석의 인생은 바람 잘 날이 없구나.”
“…..괜찮습니다. 익숙하니까요.”
어차피 어릴 적부터 겪어왔던 일이기에 정말 익숙했다.
하지만 이런 천여운의 덤덤한 태도가 내심 섭맹의 마음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타탁!
“아?”
섭맹이 침상에 곱게 누워있는 이십삼 번 생도의 훈혈에 한 번 더 점혈을 가했다.
그리고는 그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고작 1년에 못 미치는 내공으로 훈혈을 점혈 하면 몇 시진도 안 돼서 자동적으로 풀리게 된다. 제대로 하려면 적어도 10년 이상의 내공이 필요하다. 알겠느냐?”
“명심하겠습니다.”
좋은 걸 배웠다는 듯이 천여운이 눈을 반짝이며 답했다.
섭맹이 다시 한 번 점혈을 해둔 덕분에 중간에 이십삼 번 생도가 깨어날 위험은 없어졌다.
그가 우호법 섭맹에게 무공을 배운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려져선 안 된다.
“마룡단을 꺼내서 삼켜라.”
“그냥 삼키면 됩니까?”
“아니. 전부 씹어서 삼켜야 체내로 약기운의 흡수가 더욱 효과적이다.”
이런 사소한 조언조차도 만약 섭맹이 해주지 않았다면 영약을 흡수하는데, 본래의 효과를 오 할 이상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천여운은 운이 좋았다.
-우적!
마룡단을 씹으니 지독한 약내와 함께 혀가 쓴 맛으로 속이 메스꺼워졌다.
좋은 약일수록 쓰다는 만고의 법칙은 마룡단 역시도 적용되었다.
인상을 쓰면서 마룡단을 꼭꼭 씹어서 억지로 삼킨 천여운이 속이 뒤집힐 것 같은 표정으로 바닥에 앉아 가부좌를 취했다.
“지금부터 무천심법의 운기 조식을 취하면 이 스승님께서 내공으로 마룡단의 약효과 더욱 잘 흡수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운기조식을 시작해라.”
“네.”
천여운이 가부좌를 틀고 무천심법으로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그런 천여운의 등 뒤로 우호법 섭맹이 양손을 가져다 대고 내공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운기 경로를 알려줄 때와 다르게 영약을 흡수하도록 돕는 것이기에 명문혈로 내공을 넣어서 순환시키진 않았다.
식도를 타고 들어간 분해된 마룡단은 식도를 타고 넘어가, 장기기관을 거쳐서 천여운의 몸으로 퍼져가기 시작했다.
이때 천여운의 머릿속에 나노 머신인 나노의 목소리가 울렸다.
[체내로 강한 에너지 활성을 돕는 물질이 유입되었습니다.사용자의 체내 십사경맥(十二經脈)의 특정 혈(穴)로 순환하고 있는 에너지와 호응하여서 증식하고 있습니다.
체내 신진 대사를 촉진시켜 물질이 흡수되는 것을 승인하시겠습니까?]
대다수의 말을 알아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영약 흡수를 돕겠다는 말로 들렸기에 천여운은 심법 운용에 집중하느라 짧게 답했다.
‘그래!’
[사용자의 승인으로 체내 신진 대사의 촉진을 높입니다.]천여운의 승인이 떨어짐과 동시에 그의 체내에 있던 나노 머신들이 빠르게 가동되며 신진 대사를 촉진시켜 마룡단의 약효가 흡수되는 것을 도왔다.
“후우.”
천여운의 단전에서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이것은 마룡단을 흡수하는 천여운에게 있어서 굉장한 행운이라 할 수 있었다.
외부에서는 스승인 섭맹과 체내에선 나노 머신이 돕게 되면서 본래라면 최대 칠 할에서 팔 할 정도만 흡수되고, 나머지는 체외로 배출되는 약효가 마룡단이 생겨난 이래 처음으로 복용자의 몸에 전부 흡수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심법을 운용하는 천여운의 전신에서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이 녀석 타고난 무재의 육신을 지니기라도 했단 말인가.’
내공으로 마룡단의 흡수를 돕고 있는 섭맹이 두 눈이 화들짝 커져서 놀람을 금치 못했다.
이대로만 계속 된다면 마룡단의 약효를 전부 흡수하는데 성공하게 될 것이다.
제자인 천여운에게 일어나는 행운에 신이 난 섭맹이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내공을 주입하여 약효의 흡수를 도왔다.
그렇게 한 시진 가량의 시간이 지났다.
“하아….하아…진땀을 뺐구나. 클클.”
-벌컥벌컥!
고생을 한 보람을 느낀 섭맹이 땀으로 젖은 이마를 닦으며, 호리병에 들어있는 술을 단숨에 전부 들이켰다.
첫 제자였기 때문에 영약 흡수를 돕는 것은 처음이기도 했다.
제대로 흡수하지 못할 거라는 우려와는 달리 천여운은 마룡단의 모든 약효를 흡수하는데 성공했다.
“크하!~ 고생했느니라.”
“아닙니다. 스승님이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리고 나노. 너도.’
나노의 딱딱한 기계적인 답변조차도 지금만큼은 기분 좋게 들렸다.
처음 내공을 생성했을 때보다도 단전에서 묵직하게 느껴지는 기운은 그가 제대로 마룡단을 흡수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클클, 천운을 타고 났구나. 네 녀석은 이로써 반 갑자(삼십 년)의 내공을 얻었느니라.”
“네? 반갑자요?”
“대략적인 수치로 표현한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클클클, 네 녀석의 동기들인 다른 생도들은 혼자서 마룡단의 약 기운을 흡수할 테니, 반 정도 흡수했다면 성공한 걸게다.”
“아아! 스승님께 제자가 감사의 절을 올립니다!”
마치 자신의 노고를 알아달라는 섭맹의 말투에 천여운이 작은 절을 올렸다.
우호법 섭맹의 말대로 실제 영약을 흡수해서 이십 년에 미치는 효과를 본 자들은 여섯 종파의 소교주 후보자들이나, 극소수 상위 종파의 생도들에 불과했다.
대다수는 많아도 십 년에 불과한 내공밖에 얻지 못했으니, 천여운의 이러한 흡수율은 대단한 행운이라 할 수 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절을 올리는 천여운의 모습을 흡족하게 지켜보던 섭맹이 창문으로 보이던 어둠이 서서히 옅은 남색 빛을 띠는 것을 발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의무실을 나가려는 섭맹에게 천여운이 말했다.
“스승님.”
“무어냐?”
“내일부터는 스승님의 독문무공인 접무도법의 식(式)을 배워도 되겠습니까?”
“클클클, 당연한 소리를 하는구나. 네 녀석이 입원한 남은 기간 동안 배워도 빠듯하니 열심히 익힐 준비나 하거라.”
원래부터 그것이 새롭게 수정한 계획이었지만 천여운의 입으로 들으니 감회가 남달랐다.
기특하다고 생각한 섭맹이 흡족한 얼굴로 말을 하고는 의무실을 나갔다.
날이 밝고 의원인 백종명이 출근할 시간에 맞춰서 천여운은 이십삼 번 생도의 훈혈을 점해두었던 것을 풀었다.
얼마 있지 않아 이십삼 번 생도는 깨어났고, 밤새 진면목을 알게 된 천여운의 눈치를 보느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침상에 누워있어야만 했다.
오전에 출근하게 된 백종명은 밤새 머리카락이 전격으로 전부 타서 대머리가 된 이십삼 번 생도를 발견하고는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푸하하하핫.”
‘빌어먹을….크흡.’
그런 비웃음에도 이십삼 번 생도는 속으로 화를 삼켜야 했다.
의무실 안에 있는 한 천여운의 눈 밖을 벗어나는 행동은 절대로 삼가해야 했다.
“아아! 미안. 미안.”
웃음을 참지 못했던 것이 미안했는지 백종명이 사과와 함께 침상을 장막으로 가려주었다.
‘흐음.’
자신이 웃어대는 데도 화조차 내지 않고 묵묵부답으로 침상에 누워있는 것에 밤새 무슨 일이 있었을 거라 짐작은 갔지만, 백종명은 일부러 아는 체 하진 않았다.
마도관의 주치의로 일을 한다는 것은 오직 치료 이외의 어떠한 것에도 의문을 품지 않는 다는 것이 규칙이었다.
“흐흐흐! 상쾌한 아침이로구나.”
오전 훈련을 위해 대연무장으로 모인 팔 조의 조장, 복마종 소교주 후보자인 천무금의 얼굴에서 웃음꽃이 떠나가질 않았다.
심복인 자현의 계략으로 의무실로 보낸 이십삼 번 생도를 생각하면 묵혔던 화를 풀 수 있어서 속이 시원했다.
덕분에 팔 조의 생도들은 한결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었지만 그것은 고작 이틀에 불과한 행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