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63)
# 48장 교주 취임식 (4) #
천여운은 교주 집무실의 탁자 위에 올려 있는 약품이 처리된 두 짝의 오른팔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깨까지 정확하게 잘려진 팔들은 가녀린 여성의 팔이었다.
하나는 어젯밤 도마종에서 보낸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그저께 음마종에서 보냈다.
‘자 부인께서는 이미 돌아가셨는지라 양해 부탁드립니다.’
복마종의 자 부인은 이미 죽었는지라 운이 좋게도 사 장로 자금경은 손에 혈족의 피를 묻히지 않을 수가 있었다.
천여운은 두 짝의 팔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제 놈들 목숨이 더 고귀하단 말이군.’
그래도 내심 본교를 움직여 왔던 장로로서의 자존심과 혈족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으로 말도 안 되는 자신의 요구를 거절하고 자긍심을 보여줄 거라 여겼는데 예상 밖이었다.
오백 년이라는 세월 동안 권력욕에 물든 위정자들의 끝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인가.’
경멸스러우면서 한편으로 씁쓸하기마저 했다.
본교가 이런 작자들에 의해서 휘둘렸다는 사실이 말이다.
‘운이 좋군. 목숨을 더 부지할 수 있게 되어서.’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세 종파 역시도 처리하고 싶은 것이 본심이었다.
하지만 지금 외부의 적들이 강성해지는 상황 속에서 내부의 썩은 부위를 단숨에 도려내는 것은 다소 위험부담이 컸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닷새 전, 천여운은 지휘를 막론하고 모든 수하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하여 의견을 청했다.
그 동안 본교를 휘둘러왔던 여섯 종파에 대한 건이었다.
세 종파가 해체되었고 남은 세 종파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의견이 궁금했다.
처음에는 복수를 단행하고자 했던 천여운이었지만 교내에 두 차례에 걸쳐서 간자가 침투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나니, 교내 전력의 약화를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의견은 거의 삼 대 칠로 나뉘었다.
‘훗날의 후환을 남겨둘 바에는 본교의 개혁을 위해서라도 확실하게 숙청해야 합니다.’
‘썩은 부위를 내버려둬서 더욱 곪게 만들 바에는 잘라내야 합니다.’
세 종파를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은 후환을 남겨둬서는 안 된다는 이유를 바탕으로 의견을 보였다.
의외로 이런 의견들은 삼 할에 불과했다.
그 동안 여섯 종파의 폐해를 지켜봐왔고 그들이 마교의 발전을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살려둬야 한다고 주장한 쪽이 칠 할이었다.
‘만약 외부에 적이 없다면 확실히 처단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때가 아닙니다.’
‘아직까지 세 종파와 유착되어 있는 산하의 종파들이 많습니다. 그들 모두를 숙청하려면 아군의 피해도 감당해야 합니다.’
‘저도 의견이 같습니다. 그리고 화경의 고수 셋이 차지하는 비중은 큽니다. 벌써 본교에 네 명이나 되는 화경의 고수를 잃은 상태에서 이 셋마저 숙청한다면 앞으로 다가올 적들을 감당키가 힘듭니다.’
반대하는 쪽은 아군의 전력 감소를 우려했다.
양 측에서 주장하는 바는 극명하게 장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세 종파를 남겨두게 된다면 계속 해서 내부에 골머리를 썩게 만들 적을 살려두는 셈이었고, 그들을 없앤다면 마교의 전력 감소로 외부의 적들에게 취약해진다.
이때 천여운은 많은 고심을 했다.
전력을 감소시키지 않고 남은 세 종파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말이다.
그렇게 떠올린 것이 바로 고독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고독으로 그들을 통제한 후에 본교를 개혁하여 세 종파의 전력을 분산시키는 방법이었다.
이렇게 된다면 이 할의 세력을 본교가 운용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나아가서 세 장로들을 외부의 적들과의 싸움에 선봉으로 세워서 활용할 수 있게 되는 장점이 생긴다.
수하들 역시도 이 같은 천여운의 중도적인 책략에 대부분 동의했다.
‘선대 교주들도 이런 고민을 했을까?’
아는 만큼 보이게 된다고 했던가.
막상 힘과 세력을 가지게 되었지만 확실하게 정리할 수 없는 현실이 씁쓸했다.
이상을 이루려고 한다면 결국 현실과 부딪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나름의 타협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전력 감소가 두려워서 내부의 적을 죽이지 못한다면 답은 하나다. 그들을 처리해도 될 만큼 본교의 전력을 키운다.’
이것이 천여운이 얻은 최상의 답이었다.
당분간은 세 종파의 장로들을 이용해서 외부의 적을 견제하면서, 그들이 더 이상 필요 없을 만큼 내부의 힘을 키운 뒤에,
‘놈들을 없앤다.’
그 기간을 길게 두지 않을 것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본교에 새로운 고수들을 양성하는 일이었다.
무에 있어서 뛰어난 재능을 지닌 육검이나 삼십 위 권 내에 있는 단주 급에서 새로운 화경의 고수를 탄생시키는 것이 관건이었다.
천여운이 그렇게 향후 계획을 짜고 있을 때, 누군가 집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
“천마님이시여. 예복으로 준비 하셔야 합니다.”
대호법 마라겸이었다.
“아아…..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
천여운이 집무실의 책상 의자에서 일어났다.
* * *
정오 무렵의 차가운 겨울 하늘.
태양이 중천에 떠있는 새파란 하늘에는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큰 행사를 치르기에는 더 없이 좋은 날이었다.
-웅성웅성!
마교의 내성 대외전에는 수많은 교인들이 모여들어 발을 디딜 틈이 없을 만큼 북적거렸다.
성내에 있는 대부분의 교인들이 집밀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며칠 전의 공표로 인해 모여든 교인들의 얼굴에는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화르륵!
정오의 대낮이었지만 사방에 불을 밝혀놓았다.
그것은 마신과 불을 숭상하는 천마신교의 전통에 의해서였다.
단상 위에는 거대한 성화대가 놓여 있었는데 그곳에는 아직까지 불을 붙여놓지 않았다.
“조금 더 앞으로 물러나시오.”
“허어, 여기서 어떻게 뒤로 가란 말이오!”
호법전의 무사들이 앞으로 밀고 들어오는 교인들의 거리를 벌리게 했다.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새로운 본교의 하늘을 보기 위한 교인들의 마음은 이해했지만 위험할 수도 있으니 거리는 유지해야 했다.
-둥! 둥! 둥!
내성 벽의 위에서 북을 치는 소리가 퍼져왔다.
첫 번째 북소리는 행사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였다.
“오오오! 이제 시작하려나 보오.”
“드디어 취임식인가.”
내성에서 대외전으로 이어지는 곳에는 붉은 비단을 펼쳐 길을 만들어 놓았고, 그 양 옆으로는 본교의 수뇌부들과 종주, 단주들이 나란히 서있었다.
모두가 화려한 예복을 갖춰 입고 경건한 자세로 기다리고 있었다.
“주군께서 교주의 자리에 오르시게 되다니.”
고왕흘이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자, 백기나 다른 천여운의 수하들 역시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 순간을 만끽했다.
마도관에 있을 때만 하더라도 과연 쟁탈전을 이겨내고 소교주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까 걱정을 했는데 이렇게 교주의 위까지 오르는 날이 왔다.
“그나저나 허봉이 안타깝게 되었군요.”
사마착이 이 자리에 없는 허봉을 생각하면 안타까웠는지 말했다.
내성에서 대외전의 단상까지는 오직 단주 급 이상의 고위직들만이 자리했기에 대주급 이하로는 일반 교인들과 마찬가지로 밑에서 취임식을 지켜봐야 했다.
“뭐, 규칙이 그러한 걸 어쩌겠나.”
백기가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혼자 대주들의 푸른 예복을 입고서 이곳에 서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본교의 예복은 직위에 따라서 그 색이 결정되는데, 장로 급들은 보라색 예복을 입었고 단주 급들은 붉은 예복을 갖춰 입는다.
“허봉이 주군의 취임식을 가까이서 보고 싶어 했는데 아쉽긴 하겠네.”
제 일 수하라고 불리는 만큼 허봉의 충성도는 수하들 중에 최고였다.
취임식이 정해지고 나서 신나했던 그였지만 단주 급 밑으로는 일반 교인들과 같이 행사를 지켜봐야 한다고 해서 어깨가 축 쳐졌었다.
“헤에, 그런데 저기 뒷모습이 익숙하지 않나요?”
붉은 예복을 갖춰 입어서 평소보다 훨씬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문규가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은 대외전의 단상이었다.
대외전의 단상 위에 성화대 옆에 어딘지 익숙한 느낌의 뒷모습이 보였다.
“흐음.”
모두가 유심히 지켜보는 가운데 그 익숙한 뒷모습의 사내가 고개를 획하고 돌려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고왕흘과 백기, 사마의 등의 눈이 일제히 커졌다.
“허, 허봉?”
그는 다름 아닌 허봉이었다.
멀리서 허봉이 성화대의 불을 붙이는 기름을 적신 횃불을 잡고서 신이 난다는 듯이 그들을 향해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취임하는 교주에게 횃불을 넘겨주는 역할을 부여 받은 모양이었다.
헤벌쭉 웃고 있는 모습에 모두가 방금 전까지 그를 안쓰러워했던 것을 허탈해 했다.
“……쓸데없는 걱정을 했군.”
“흠흠, 그러게 말일세.”
백기의 담담한 말에 고왕흘은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 내성 벽 위에서 다시 한 번 북소리가 들리며 동시에 뿔피리 소리가 성내 전체로 울려 퍼졌다.
-둥! 둥! 둥!
-뿌우우우우우우!
내성의 대문이 열리며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독특한 문양의 가면을 쓴 그는 대호법 마라겸이었다.
예복을 갖춰 입은 마라겸이 무언가를 공손히 받치고서 들고 나오는데, 붉은 비단 길의 양옆에 나란히 서있던 장로, 종주, 단주들이 일제히 엎드려서 외쳤다.
“천마신교! 천세! 천세! 천천세!”
그들이 외치자 대외전에 모여있는 모든 교인들이 일제히 복창했다.
“천마신교!!! 천세!!! 천세!!! 천천세!!!”
몇 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동시에 외치자 마교의 성내 전체가 뒤흔들다 못해 하늘까지 쩌렁쩌렁 울리는 느낌이었다.
대호법 마라겸이 공손히 받쳐서 들고 있는 것은 천마령(天魔令)이었다.
마라겸의 뒤로 여시종 두 명이 면류관이 올려 있는 받침대를 들고서 따라서 걸었다.
보조하듯이 북소리가 울렸다.
-둥! 둥! 둥!
원래는 선대 교주가 앞서서 단상 위로 오르나 교주는 아직 의식불명이었다.
그 역할을 천마령의 수호자인 대호법 마라겸이 대신하는 것이었다.
천마령을 앞세움으로써 천마 조사의 의지가 깃들어 있음을 만 교인들에게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탁!
단상 위에 오른 대호법 마라겸이 천마령을 높이 들고 외쳤다.
“대 천마신교의 교인들은 천마령을 받들라!”
“천마신교!!! 천세!!! 천세!!! 천천세!!!”
교인들의 그런 거대한 외침에 단상 위에 서있는 허봉이 다 떨릴 지경이었다.
주군인 천여운의 취임식인데 오히려 자신이 더 긴장되었다.
“지금부터 대 천마신교의 교주 취임식을 거행하겠다.”
“와아아아아아아!!!”
환호성을 지르는 교인들의 외침 소리가 마교 전체를 뒤덮었다.
-뿌우우우우!
뿔피리 소리가 길게 울려 퍼지는 소리와 함께 내성의 입구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긴 머리카락에 새하얀 얼굴.
금빛용이 수 놓여 있는 검은 정복을 입은 청년은 바로 천여운이었다.
천여운이 내성의 입구에서 대외전의 단상까지 이어진 붉은 비단길을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고작 약관에 불과해 보이는 외모와 다르게 천여운에게서 느껴지는 패왕과도 같은 존재감에 이를 지켜보는 교인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클클클, 이놈아. 교주님께서 이 몸의 제자이니라.]천여운의 우측에서 허름한 옷 대신 예복을 갖추고 있는 우호법 섭맹이 흐뭇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이에 좌측에 서있는 좌호법 이화명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놈의 제자 타령은 언제까지 우려먹을 참이냐.]천여운의 취임식이 결정된 이후로 종종 이화명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섭맹이었다.
뭐 그래도 부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유일하게 천여운을 가르친 스승이라고 한다면 섭맹뿐이었으니 말이다.
-팍!
내성의 입구 쪽에 서있던 삼 장로 부철용을 시작으로 장로들이 순차적으로 천여운에게 무릎을 꿇고 포권을 취한 후에 그 뒤를 따랐다.
대외전의 단상 쪽으로 이동하기 위해서였다.
장로들을 지나서 종주, 그리고 단주들을 지나칠 무렵 천여운의 눈에 고왕흘, 문규, 사마착, 백기, 호상화, 채택겸 등이 보였다.
마도관을 나간 후로 얼마 있지 않아서 단주가 된 호상화와 채택이었다.
[진심으로 경하드리옵니다. 주군, 아니 교주님.] [경하드립니다. 교주님!] [헤에, 이제는 공자님이라고 정말 부르지 못하겠네요. 경하드립니다. 교주님.]하나 둘 씩 전음을 보내는 그들의 눈빛은 감격으로 물들어 있었다.
장난스럽게 말하는 것과 달리 문규는 콧등까지 빨개져서 눈시울을 붉혔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천여운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들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보였다.
-둥! 둥! 둥!
단주들까지 합류해서 행렬이 진행되자 그 광경은 가히 장관이었다.
한 일국의 왕이 보위에 오르는 것만 같은 경건함마저 느껴졌다.
붉은 비단 길을 걸어서 성화대가 있는 단상이 보이자 천여운의 머릿속에 많은 일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어머니…..’
소교주 후보 최하위에 속했던 그가 이제는 교주의 위에 오른다.
이 순간만큼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어머니인 화 부인이었다.
누구보다도 어머니인 화 부인에게 이 모습을 보이고 싶었지만 그녀는 머나먼 곳에 있다.
‘……제가 본교를 바꾸겠습니다. 다시는 그런 폐해와 비극이 없도록.’
수백, 수천 번도 다짐했던 결심이었다.
붉은 비단 길을 걸어서 단상 앞까지 도착하자 장로들과 종주, 단주들이 멈춰 서서 두 갈래로 나뉘어져서는 오와 열을 맞춰서 단상 앞 쪽에 자리했다.
-탁! 탁! 탁!
천여운이 계단 위를 한 걸음씩 밟고 올라섰다.
그리고 단상 위에 오르자 대외전을 가득 메우고 있는 수만 명의 교인들이 보였다.
지난번에는 단상 아래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몰랐는데, 이 위에서 바라보는 광경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었다.
“오오오오오!!!”
“당대 천마님이시다!”
“천마님께서 단상 위에 오르셨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천여운이 단상 위에 올라서 그 자태를 보이자, 교인들이 열광을 하듯이 환호성을 질렀다.
최근에 있었던 모든 일들이 밝혀지고 당대 천마가 되었음이 공표되고 나서부터 모든 교인들은 그의 존안을 뵙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었다.
‘드디어 진정한 신교의 주인이 탄생하는구나. 역대 천마령의 수호자들이시여. 그 순간이 왔나이다.’
대호법 마라겸 역시도 감격을 금치 못했다.
가면 속에 감춰진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천여운의 앞으로 대호법 마라겸이 다가와 천마령을 보이며 소리쳤다.
“새롭게 이십사 대 교주가 될 천여운은 천마령을 받들라.”
-탁!
“대 천마신교의 혈손 천여운이 천마령을 받듭니다.”
천여운이 한 쪽 무릎을 단상 바닥에 꿇고서 천마령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대호법 마라겸이 횃불을 들고 있는 허봉에게 명했다.
“횃불을 드려라.”
“충!”
허봉이 크게 외치며 천여운의 앞으로 횃불을 가져왔다.
횃불의 손잡이를 잡고 있는 허봉의 손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취임식의 가장 중요한 행사인 성화 의식을 앞두자 긴장되는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허봉.’
천여운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그의 첫 번째 수하이자 어려움을 함께 해주었던 동료였다.
천여운이 횃불을 받아들면서 그의 어깨에 공력을 불어넣어서 긴장이 가라앉게 해주었다.
허봉이 떨리는 목소리로 울먹거리면서 말했다.
“교, 교주님. 경하드리옵니다.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겁니다.”
“……나도 그렇다.”
횃불을 받아든 천여운이 천천히 성화대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성화대에 불을 붙였다.
-화르르르르륵!
근 이십 년 만에 불타오르는 성화대에서 푸른 불꽃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일대 교주인 천마 조사의 시절부터 내려온 성화대에는 불을 붙이면 특이하게도 붉은 불꽃이 아닌 푸른빛 불꽃이 피어올랐다.
-탁!
천여운이 양팔을 가슴에 모으고서 바닥에 두 무릎을 꿇고 암송했다.
그것은 천마신교의 경문이었다.
“이 한 몸 성화 불에 불사르니 생과 사에 미련 없네. 선을 위해 악을 제거하고 광명을 밝히니, 기쁨과 슬픔은 모두 한낱 먼지로 남으리.”
천여운이 경문을 암송하기 시작하자 수뇌부들을 막론하고 대외전에 모여 있는 모든 교인들도 따라서 두 팔을 가슴에 교차하듯이 모으며 경문을 복창했다.
“이 한 몸 성화 불에 불사르니 생과 사에 미련 없네!!! 선을 위해 악을 제거하고 광명을 밝히니, 기쁨과 슬픔은 모두 한낱 먼지로 남으리!!!”
그것은 천마신교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배화교, 그리고 성화대를 보내온 페르시아교에서부터 내려온 경문이었다.
고요하면서 엄숙한 경문 암송에 천마신교 전체가 성스러워졌다.
“근심 많은 중생 가련하도다.”
“근심 많은 중생 가련하도다!!!”
마신과 불을 숭상하는 천마신교이지만 그 경문은 뭇 세상 사람들의 근심을 걱정하는 경건함이 깃들어 있었다.
엄숙했던 경문 암송이 끝나자 대호법 마라겸이 외쳤다.
“천마령에 의거하여 당대 천마이자 소교주인 천여운에게 교주의 위를 물려주노라. 제 이십사 대 교주인 천여운은 면류관을 받으라.”
드디어 위를 물려받는 순간이 왔다.
면류관을 쓰게 되면 천여운은 대 천마신교의 교주로 등극하는 것이었다.
천여운이 한 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두 눈을 감고서, 면류관을 받아들일 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면류관을 씌우는 시간이 생각보다 지체되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단상 위로 누군가 걸어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무공을 익히지 않은 것처럼 평범한 기척이었다.
그 자가 눈을 감고 있는 천여운의 앞으로 걸어오더니 이내 뭔가를 머리에 씌어주었다.
그것은 바로 면류관이었다.
천여운이 눈을 뜨고서 앞을 바라보자,
“공자, 아니…..교주님. 경하드리옵니다.”
장 호위가 눈물을 흘리면서 감격스럽게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얼마 전에 백종명과 대장장이 구선웅에게 부탁하여 임플란트 시술을 받은 장 호위는 이빨을 환하게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화 부인께서도 웃고 계실 겁니다.”
-주르륵!
예상치 못한 장 호위의 이런 등장은 처음으로 천여운의 심금을 울렸다.
그의 뺨 위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이것은 천여운의 수하들이 취임식을 준비하는 대호법 마라겸에게 청해서 준비한 선물이었다.
그리고 그 선물은 성공했다.
활짝 웃으면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천여운의 수하들이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외롭기만 했던 그의 짧은 인생에 처음으로 기쁨을 느꼈다.
면류관을 쓴 천여운이 상기된 얼굴로 단상 위로 걸어가 손을 뻗었다.
-차차차차차차차착!
그러자 그의 양팔에 보호대의 흑철들이 분리되어 하나의 검의 형태를 이루었다.
영롱한 자태를 자랑하는 흑검은 바로 천마검이었다.
“오오오오오!!!”
“천마검이닷!”
이를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교인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허공에 떠있는 천마검의 검병을 잡은 천여운이 그것을 하늘 높이 치켜 올렸다.
그 순간 모든 교인들이 천지가 떠나가라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천마신교!!! 천세!!! 천세!!! 천천세!!!”
그렇게 천마신교의 제 이십사대 교주이자, 제 이대 천마가 탄생했다.
훗날 중원 무림의 사기를 적은 백로사가(白老史家)에서는 이 날을 일컬어 천마신교에 마신(魔神)이 그 몸을 일으킨 날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