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66)
# 50장 객잔의 밤 (1) #
-쿠르르쾅쾅!
천둥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이윽고 장대비가 쏟아졌다.
-쏴아아아아!
조금만 늦었더라면 비를 고스란히 맞을 뻔했다.
왁자지껄 떠들면서 식사를 하고 있던 모든 객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열리는 객잔의 입구로 향했다.
물론 무당파의 도인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난감하군.’
사 장로 양단화는 하필 폐검곡의 근방에 있는 객잔에서 무당파의 도인들과 마주치자 당혹스러웠다.
그들은 정파 무림맹 내에서도 확고한 위치를 가진 자들이었다.
게다가 정파 무림에서도 가장 큰 규모라 불리는 구파일방에서도 세 손가락에 꼽히는 성세를 자랑하는 무당파였다.
‘승냥이들을 피해서 왔더니 범이 기다리고 있는 꼴이군.’
물론 대 천마신교의 장로이자 그 동안 전장만을 찾아다녔던 그가 이들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지금 그들 일행에는 교주 천여운이 있었다.
장기패로 치면 왕이 직접 움직인 것과 마찬가지였는데, 정파 무림맹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동맹과 상관없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알 수가 없었다.
양단화가 천여운에게 은밀히 전음을 보냈다.
[교주님. 이곳에 정파 무인들이 꽤 많습니다.]가장 성가신 자들이 무당파라는 것이었지 객잔 내에 있는 자들의 태반이 무림인들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뛰어나봐야 고작 일류고수에 불과했다.
허봉 혼자서도 짧은 시간 내에 전부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다.
[다른 자들은 그저 쭉정이들 같으나, 저기 저자들은 정파 무림맹에서도 요직을 맡고 있는 무당파의 도인들입니다. 어떻게 할까요?]이 질문의 답은 두 가지였다.
비를 무릅쓰고서 객잔에서 머무르는 것을 포기하느냐.
혹은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마찰을 피해서 객잔에 조용히 머무르는가 였다.
-쏴아아아아!
천여운이 객잔 바깥을 쳐다보니 쏟아지는 비가 금방 그칠 것 같진 않았다.
거의 폭우 수준에 가까웠는데, 이런 날씨에 계곡을 수색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선택은 아닌 듯 했다.
[난처하지만 조용히 있는 편이 좋겠군요.]어차피 인피면구로 변장을 했기 때문에 저들이 알아볼 위험은 없었다.
더군다나 기감으로 느끼기에 무당파의 도인들 중에서 가장 강한 자라고 해봐야 절정의 극에 불과했다.
이곳이 정파의 영역 한복판이 아니었다면 굳이 두려워할 자들은 아니었지만 괜한 분란은 피하는 편이 나았다.
-팍!
“후아! 비가 갑자기 내려서…엇?”
뒤늦게 들어온 허봉이 비에 젖어서 들어왔다.
아무 생각 없이 들어온 허봉도 객잔 내에 있는 무당파의 도인들을 보고서 인상이 굳어졌다.
[내색하지 마라.]“흡!”
하지만 양단화가 미리 전음을 보냈기에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자리에 앉았다.
처음으로 적지에서 보게 된 정파 무림인은 무림 초출인 허봉이나 문규를 긴장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반면 천여운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담담했다.
‘교주께서도 초출이라고 들었는데, 배짱이 남다르구나.’
사 장로 양단화가 내심 감탄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들은 무당파의 도인들과 최대한 떨어진 것이 아닌 바로 옆 좌석에 앉았다.
이런 대담한 행동 때문에 처음에는 경계심이 서린 눈으로 쳐다보았던 무당파의 도인들도 어느새 식사를 하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후우.”
자욱한 담배 연기를 내뿜는 한 노인이 있었다.
객잔 주방 앞에서 의자에 앉아서 곰방대를 물고 있는 노인이 천천히 일어나서는 그들이 있는 좌석으로 다가왔다.
“식사만 하는 것이오?”
보통 객잔에는 점소이 한두 명이 있지만 노인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듯 했다.
곰방대 노인의 물음에 양단화가 말했다.
“빈 방이 있습니까?”
“하긴 이 궂은 날씨에 식사만 하긴 그렇지요? 그런데 이를 어찌하나.”
“방이 없습니까?”
“허허허, 이렇게 손님들이 많은 것을 보면 모르겠소?”
객잔 내에 좌석은 총 여덟 탁자가 있다.
그 중에 다섯 탁자에 손님들이 앉아 있었고, 그 숫자가 스물다섯 명이었다.
방이 있는 이 층을 올려다보니, 객잔에 머무를 수 있는 방은 탁자 수와 같은 여덟 개였다.
“비는 방이 하나도 없습니까?”
“이 인실이 하나 비는데 비좁더라도 괜찮겠소?”
작은 객잔의 규모를 생각한다면 이 인실이라 말한 방이 작은 모양이었다.
양단화가 난감하다는 듯이 턱을 쓰다듬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명색이 교주님이신데 네 명이서 잠을 청하게 할 순 없었다.
그때 누군가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원시천존. 원시천존. 방이 모자란 가 봅니다.”
천여운이 고개를 돌려보니, 무당파의 한 도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갈한 도사 복에 삼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콧수염이 멋들어진 자였다.
양단화의 눈빛에 경계심이 서렸다.
일부러 그들과의 접점을 피하려고 했는데 이런 식으로 대화를 섞어야 하는 상황이 올 줄은 몰랐다.
다행히 도사의 말에 대답한 것은 곰방대의 노인이었다.
“허허허, 무 도장께서 방이라도 양보하실 생각이신가 보오?”
“객들께서 곤란해 하는데 도를 수양하는 사람들이 그깟 방이 무슨 대수라고 양보하지 못하겠습니까?”
그들의 대화를 보면 꽤 안면이 있는 듯 했다.
노인이 곰방대를 한번 주욱 빨아들이고는 연기를 내뱉으며 말했다.
“여기 무당파의 무진자 도장께서 방 하나를 양보해 주신다고 하는 구려. 어떻게 하겠소?”
노인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던 양단화가 자리에서 일어나 무진자라 불린 무당파의 도인에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무 도장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원시천존. 원시천존. 아닙니다. 사해가 동도라 하지 않습니까? 세 분도 보아하니 무공을 익히신 영웅 분들인 것 같은데, 형제들을 위해서 이 정도 양보를 해드려야지요.”
‘아…..’
무진자 도장는 아무래도 그들을 같은 정파의 무림인으로 오해한 듯 했다.
허리춤에 각자의 병장기를 차고 있으니 당연히 무인임을 눈치 못 채는 것도 이상했다.
기운을 갈무리하고 있었지만 조심해야겠다고 여겼다.
그때 무진자가 은밀하게 전음을 보내왔다.
[보아하니 모시는 공자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오? 걱정 마시고 방을 쓰십시오.]그 전음과 함께 무진자가 눈 한 쪽을 찡긋거리며 허봉을 쳐다보았다.
양단화는 순간 콧방귀가 나올 뻔 했지만 겨우 참았다.
이때 천여운 역시도 혼자 피식하고 웃었다.
‘그런 거였나.’
무진자라 불리는 무당파의 도사는 이들 중에 가장 항렬이 높은 자였다.
그는 절정의 극에 달하는 무인이었는데, 천여운의 일행 중에서 유일하게 무공 수위가 드러나는 허봉을 보고서 그가 일행의 대표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겉보기만 봐서는 다들 약관에 청년들이었는데, 누가 그들이 화경에 초절정의 고수들이라고 짐작하겠는가.
“응?”
아무 것도 모르는 허봉은 어리둥절해 했다.
무진자 도장이 웃으면서 그렇게 자리로 돌아가고 나서, 허봉은 괜히 기분이 나빠진 얼굴로 천여운에게 전음을 보냈다.
[주군. 저 말코 도사 놈이 이상합니다. 저를 보면서 한쪽 눈만 깜빡거리는데 꼭 환 장로님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혹시 변태일까요?]‘……….’
오한이 난다는 듯이 몸서리를 치는 허봉을 보면서 천여운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간단히 고기 국수와 요깃거리를 주문한 그들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서 평범한 대화를 하면서 중요한 내용은 전음으로 했다.
신의를 만날 수 있는 주홍 옥패를 특별 파견대에 맡겼기 때문에 폐검곡 전체를 수색하듯이 살펴볼 수밖에 없었다.
“내일은 비가 그치길 바라야 겠군요.”
-탁!
한참 대화를 나누던 차에 노인이 주방에서 나온 음식을 탁자에 올려놓았다.
그래도 음식을 가져올 때 만큼은 곰방대를 의자에 얹어두고 왔다.
“아마 이른 아침이면 비가 그칠 것이오.”
그들의 대화를 일부 들은 모양이었다.
이에 허봉이 말했다.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는데 그럴까요?”
“허허허, 노부가 이곳에 정착한지만 삼십 여 년이라네. 우기도 아니고 이 정도는 잠시 내리는 소나기라네.”
“오오! 그럼 잘됐군요.”
확신하는 노인의 말에 허봉이 잘됐다는 듯이 천여운에게 말했다.
그러자 노인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물었다.
“흐음, 혹시 객들은 폐검곡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오?”
노인의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객잔 내가 일시에 조용해졌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왁자지껄 시끄러웠던 곳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말이다.
대부분 손님들이 아닌 척 하고 있지만 노인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상하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천여운과 일행들도 경계심이 높아져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에 있는 자들 중에서 무당파를 제외하고 두 집단이 무공을 익힌 자들이었는데, 그들 모두가 하던 대화를 동시에 멈췄다는 것 자체가 수상했다.
이를 개의치 않는지 노인이 하던 말을 계속 이었다.
“괜한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폐검곡에는 들어가지 마시오.”
“네?”
허봉이 반문하자 노인이 빈 쟁반을 챙기고서 의자에 걸쳐놓은 곰방대를 주어 들었다.
그리고는 깊게 그것을 빨아들이고는 연기를 내뱉으며 말했다.
“후우, 요 근래 계곡에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이 없소. 괜한 불나방이 되는 짓은 하지 않았으면 하는 구려.”
“……노인장,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양단화가 다소 진지해진 눈빛으로 물었다.
이곳에 출발하기 전에 암종의 수장인 칠 장로 환의에게 여러 정보를 들었다.
그러나 특별 파견대 이외에도 폐검곡 내에서 다른 자들이 행방불명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없었다.
“요 얼마 전부터 댁들 같은 무인들이 왔었는데, 계곡에 들어가는 것은 보았지만 살아서 나오는 걸 본 적이 없소. 후우.”
노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자욱한 담배 연기가 객잔을 메웠다.
-콰르르르릉!
천둥 번개마저 내리치자 분위기가 묘하게 스산해졌다.
무서운 이야기라도 듣는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조용하게 집중하고 있었다.
“계곡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그런 것은 노부 같이 일개 장사치가 어찌 알겠소. 아무튼 노부는 분명이 경고 했소. 그리고 비가 그친다면 분명 안개가 낄 것인데, 괜히 계곡에 들어갔다가 비명횡사하지 말고 돌아가도록 하시오.”
단호한 노인의 말에 천여운을 비롯한 일행들의 인상이 굳어졌다.
뭔가를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주변에서 경청하고 있는 저들이 마음에 걸렸다.
사 장로 양단화가 천여운에게 전음을 보냈다.
[주위에 듣는 귀가 많으니, 제가 나중에 따로 노인장에게 자세한 내막을 물어보겠습니다. 교주님께서는 식사를 하신 후에 쉬십시오.] [알겠습니다.]양단화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 천여운과 일행들은 식사를 시작했다.
곰방대의 노인이 다시 의자에 앉아서 조용히 담배를 피는데 집중하자, 조용했던 객잔이 다시 떠들썩하게 바뀌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무 사형. 역시 그분께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객주가 무언가 알고 있지 않을까요?] [원시천존. 원시천존. 사제, 괜한 섣부른 추측은 삼가게.] [죄송합니다.]객잔 내부가 전음들로 가득해지고 있었다.
나노를 통해서 미리 전음의 주파수를 열어놓은 천여운의 귓가로 사방의 전음들이 들려와 여러 정보들을 알려주었다.
일류 고수들로 이루어진 집단 중에 하나는 정파 무림의 한 방파의 무인들인 듯한데, 그들 역시도 폐검곡에서 무언가를 찾는 것 같았다.
[역시 폐검곡에서 뭔가 일이 터진 게 틀림없습니다.] [단정 짓기에는 이르다. 부방주께서 쉽게 당하실 리가 없다.] [하나….] [허어! 어찌 되었든 수색은 예정대로 행한다.] [알겠습니다.]이 한 집단의 경우는 천여운 일행과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행방불명되어서 찾아온 자들인 듯 했다.
하지만 또 다른 집단의 목적은 달랐다.
[이상하군요. 그 물건이 없어서 그런 걸까요?] [그럴 리가. 예전에도 왔었지만 그것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누군가가 죽거나 하진 않았는데.] [……그렇다면 혹시 신의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럴 리가 없다. 신의를 지키는 게 누구인지 몰라서 하는 소리이냐?] [하긴. 그렇겠군요.] [사람이 너무 많다. 비가 새벽에라도 그친다면 빨리 출발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또 다른 무인들의 집단의 목적은 신의였다.
그들이 말한 물건은 아무래도 주홍 옥패인 것 같았다.
‘폐검곡에 신의가 있는 게 확실하다. 그런데 어째서 연무화와 파견대들이 행방불명 된 거지?’
그것을 알 수가 없었다.
화경의 극에 이른 연무화가 행방불명되었다.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려면 적어도 그 이상이 무위를 지니거나, 압도적인 전력으로 습격을 해야만 가능한데 대체 이 계곡에서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한참을 식사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은 무당파를 포함한 세 집단은 천여운 일행과 마찬가지로 폐검곡에서 누군가를 찾는다는 것이었다.
-콰르르릉!
-쏴아아아아!
곰방대의 노인의 예상과 다르게 밤이 깊어질수록 빗줄기는 더욱 굵어졌다.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서면서도 내일을 위해서 여독을 풀어야 하기에 천여운과 일행들은 객실 방으로 들어가 쉬기로 했다.
계단을 올라가서 방 앞에서 양단화가 말했다.
“주군께서 이곳에서 쉬시고 저희들은…”
그때 허봉이 그의 말을 잘랐다.
“잠깐만요.”
“뭔가?”
“이 인실이 비좁다고 했는데, 세 명이서 한 방을 쓰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
허봉의 말에 양단화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무라려 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주군께서 당연히 혼자 쓰셔…”
“이렇게 좁은 방에 여….흠흠….자인…문규와 셋이 쓰는 것보다 주군과 같은 방을 쓰면서 호위라도 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에엑?”
헛기침을 하는 허봉의 말에 문규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양단화 역시도 문규가 여자인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교주님을 혼자서 쉬게 하는 편이 옳다고 여겼었다.
‘흐음…..하긴 누군가 교주님을 모시는 편이 나을 려나.’
틀린 말은 아니라 생각했는지 양단화가 납득해했다.
다만 이 시끄러운 허봉과 같은 방에서 자는 것이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알겠네. 문 단주, 아니 문규가 주군을 모시도록 하게.”
“자자! 저희는 방으로 가지요. 얼른요. 히히히.”
허봉이 양단화의 등을 떠밀 듯이 재촉했다.
그러면서 고개를 돌려서 천여운을 바라보면서 무당파의 도인인 무진자가 했던 것처럼 눈 한쪽을 깜빡이는 것이 아닌가.
‘교주님! 이 제 일의 충신인 허봉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좋은 밤 보내십시오. 히히히.’
능글 맞는 허봉의 표정에 천여운의 미간이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