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67)
# 50장 객잔의 밤 (2) #
처음에는 어색해 하던 천여운과 문규가 머뭇거리다 이내 방에 들어왔다.
예전에 마도관의 생도 시절에 같은 숙소를 쓴 적이 있지만 지금은 사뭇 느낌이 달랐다.
그때는 좀 더 어렸고 호감이 없던 때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많은 생도들이 같이 한 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천여운과 단 둘이 있는 상황이었다.
‘으으으.’
문규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속으로 본교의 경문이라도 외우고 싶은 심경이었다.
그런데 방안으로 들어와서 그들을 한 번 더 당혹스럽게 만든 것이 있었다.
“엇?”
“침상이…..하나네요?”
이 인실로 알았던 방은 생각보다 넓었는데 침상이 하나였다.
무당파의 도인인 무진자가 양보해준 방인 듯 했다.
“아, 아무래도 실수한 것 같은데요. 교, 교주님. 제가 가서 방을 바꿔달라고 다시 말하고 올게요.”
“문….”
천여운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문규가 방을 후다닥 나가버렸다.
방문을 닫고서 나온 문규는 심장이 쿵쿵 뛰어서 진정되지 않는 가슴을 가라앉혔다.
예전에 몰랐는데 좋아하는 사람과 한 공간에 둘이 있는 것이 이렇게 심장에 좋지 않은 일인 줄은 몰랐다.
‘떨려.’
문규는 부르르 떨리는 손을 보면서 어루만졌다.
어찌 되었든 침상이 하나 뿐인 방에서 자는 것은 아무래도 아니었다.
그녀가 ㅁ자 형태로 되어있는 이층의 반대편으로 향했다.
숙소 방이 떨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다각! 다각!
마침 무당파의 도사들도 대화를 나누던 것을 마치고 쉬려고 하는지 이 층 계단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계단의 앞 쪽에 마주친 무진자 도장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일행의 공자께서 참으로 독특한 취향을 지녔나 보구려. 혼자 쉬라고 했는데 둘이 같이…”
“네?”
“흠흠, 아니올시다. 원시천존. 원시천존.”
무진자 도장은 괜히 원시천존을 읊으면서 민망하다는 듯이 방으로 들어갔다.
뭔가 대단히 큰 오해를 한 것 같았는데, 다행스러운 점은 이런 방면에서 순진무구한 문규는 영문을 몰라서 갸우뚱거리기만 했다.
양단화와 허봉이 머무는 방 앞에 도착한 그녀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허봉. 허봉.”
차마 사 장로인 양단화를 부르기는 그랬다.
조심스럽게 허봉을 부르는 그녀는 안에서 아무런 답이 없자 조급해졌다.
“치이.”
양단화는 모르겠지만 분명 안에서 허봉의 인기척이 느껴지는데 일부러 모르는 척을 하는 건지 이상했다.
괜히 심술이 난 문규가 문을 세게 두드렸다.
“허봉!”
그때 방 안쪽에서 누군가가 뛰어나와서 문을 살짝 열었다.
안에 등잔의 불을 껐는지 어두웠다.
허봉이 고개만을 빼꼼 내밀고서 말했다.
“흠흠, 무슨 일인가요?”
“방이 바뀐 것 같아요.”
“방이요?”
“주군께서 들어가신 방에 침상이 하나 밖에 없어요?”
그 말을 듣는 허봉이 묘한 눈빛이 되었다.
두 방 모두가 침상이 두 개인 이 인실로 생각했는데, 하나라는 말에 더욱 잘 되었다고 여긴 허봉이었다.
“허봉…..지금 되게 이상하게 웃고 있는 거 알아요?”
굉장히 음흉한 표정에 가까웠다.
그런 그녀의 날카로운 지적에 허봉이 얼른 얼굴 표정을 바꾸어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이거 어찌 하나요.”
“왜요?”
“이 방도 침상이 하나뿐이에요.”
“거짓말!”
“아니에요. 진짠데…..그래서 저는 바닥에서 자야 하거든요. 그런데 지금 양단화 공이 주무시고 계신데 깨울까요?”
너스레를 떠는 허봉의 말에 문규가 울상이 되었다.
등잔을 키고서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그래도 명색이 장로인데 깨우라고 말하기도 모호했다.
결국 그녀는 투덜거리면서 돌아가야만 했다.
반대편으로 발을 동동 굴리면서 돌아가는 그녀를 보면서 허봉이 므흣하게 웃었다.
‘나중에 저한테 감사하실 겁니다.’
그런 허봉의 뒤편에서 사 장로 양단화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 한 번만 눈 감아 주는 걸세. 허 부관.”
“넵! 히히히.”
그렇게 다시 천여운이 있는 방 앞까지 온 그녀는 어찌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방금 전까지 괜찮았는데 다시 심장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가슴이 너무 뛰어서 방 안으로 들어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때 방문이 열렸다.
“방을 바꿔 준다고 했나?”
문 밖의 인기척을 느낀 천여운이었다.
그의 물음에 문규가 얼굴이 새빨개져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 아니요. 저쪽 방도 침상이 하나라고 하네요.”
“……그래?”
허봉이 바로 앞에서 그렇게 말했다면 믿지 않겠지만, 문규가 직접 그리 말을 하니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한 천여운은 방문을 열어서 들어오라고 했다.
방으로 들어온 그녀는 다시 어찌 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그때 천여운이 말했다.
“문규, 네가 침상에서 자라. 오늘 밤은 정좌해서 심상 수련을 할 테니.”
“네?”
문규가 반문했다.
그러자 천여운이 살짝 얼굴을 붉히면서 한 번 더 침상에서 자라고 권했다.
처음에는 긴장 되서 몰랐는데 천여운 역시도 쑥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게 되니, 그녀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혹시 교주님도?’
아무래도 떨리는 것이 자신만이 아닌 듯 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떨리던 것이 가라앉고 천여운이 귀엽게 느껴졌다.
‘헤에.’
늘 담담한 모습만 보이고 냉철하게 행동하는 그였는데, 본인도 모르게 얼굴이 상기된 것을 보니까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그녀였다.
그 동안 반신반의 했는데 천여운도 자신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어서 자라.”
“그래도 교주님이….”
“나는 괜찮다.”
“정말요?”
“…..그래.”
“후회하셔도 전 몰라요.”
긴장이 풀려서 장난스럽게 묻는 문규의 물음에 천여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규가 피식하고 웃고는 겉에 걸치고 있는 옷을 벗어서 탁자에 걸쳐 놓았다.
‘헛.’
순간 놀란 천여운이 고개를 돌렸다.
분명 자신과 함께 있으니 옷을 전부 벗진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상의를 벗는 시늉만 했는데 괜히 민망해졌다.
쑥스러워하며 기다리던 찰나에 문규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응?’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돌린 천여운의 표정이 굳어졌다.
언제 벗은 것일까.
인피면구를 벗은 문규가 자신의 한 보 앞에 서있었던 것이다.
은은한 등잔불에 비치는 문규의 아름다운 얼굴은 방금 전보다도 천여운의 심장을 더욱 크게 뛰게 만들었다.
-두근두근!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문규.
탐스러운 복사 꽃잎을 머금은 듯한 입술은 고혹적이기 마저 했다.
천여운이 당혹스러운지 말을 더듬었다.
“이, 인피면구는 왜 벗은 것이냐?”
그 모습마저도 사랑스럽게 느껴졌는지 그녀가 반달 웃음을 지었다.
처음 달빛 아래에서 보았을 때처럼 문규는 싱그러우면서도 맑은 미소를 가지고 있었다.
멍한 눈으로 바라보는 천여운에게 그녀가 말했다.
“교주님…..절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조심스럽게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문규.
그런 그녀의 떨림을 느꼈는지 멍해져 있던 천여운의 눈이 어느새 문규와 마주했다.
문규가 조심스럽게 작은 입술을 움직이며 말했다.
“혹시 제가 싫으신 건가요?”
그녀의 눈동자는 오직 천여운 하나만을 담고 있었다.
문규의 물음에 한참을 말이 없던 천여운이 천천히 손을 올려서 그녀의 하얀 뺨 위에 손을 얹었다.
이에 문규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아…..”
작고 가녀린 새처럼 떨고 있는 모습에 천여운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지 않다.”
“아!”
처음 보았을 때부터 쭉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던 그였다.
하지만 어머니인 화 부인의 임종 후로 정을 받지 못하고 자라온 그는 정에 관련된 모든 것이 어색했다.
뺨을 만지면서 쑥스러워 하는 모습에 그녀가 피식 웃었다.
‘바보.’
그때 그녀가 까치발을 들어서 천여운의 입술에 작고 앵두 같은 입술을 가져왔다.
입술과 입술이 맞닿자 천여운의 눈이 커졌다.
부드러우면서 향긋한 문규의 살향이 그의 코를 자극했다.
‘문규…..’
그때 천여운의 머릿속에 나노의 목소리가 울렸다.
[사용자의 심장 박동수가 급격하게 오르고 있습니다. 호르몬 수치가 상승…]‘나노. 음 소거.’
[음 소거 모드를 발동합니다.]한참 동안 입을 맞추던 천여운과 문규가 조심스럽게 입술을 뗐다.
입술을 맞추고 있는 동안 숨을 참고 있었던 문규가 벅찬 호흡을 내뱉었다.
“하아….하아….”
두 볼이 붉게 상기되어서 수줍어하는 그녀의 모습에 천여운의 심장이 더욱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처음 겪어보는 입맞춤에 강한 자극을 받은 천여운과 문규의 눈빛이 몽롱해졌다.
두 사람은 배우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다시 한 번 입을 맞추면서 서로의 뺨과 몸을 매만졌다.
어느새 두 사람은 침상에 앉아서 누구 할 것 없이 서로를 갈구하기 시작했다.
* * *
한편 반 시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사 장로 양단화가 숙소의 방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나왔다.
-드르렁! 드르렁!
방안에서 허봉은 코를 골면서 잠이 들어 있었다.
이 층에서 난간을 붙잡고 밑을 내려다보니 대부분의 손님들이 호실로 들어갔는지 조용했고 바깥의 빗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지금까지 방안에서 사람들이 들어가기만을 기다렸던 그였다.
-슉!
양단화가 가볍게 신형을 날려서 일 층으로 내려왔다.
바닥에 닿는 그의 두 발은 깃털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만큼 화경의 무위는 범인을 넘어선다.
‘자고 있을 려나.’
지금은 자시 중엽이었기 때문에 숙수나, 곰방대의 노인도 자고 있을 수도 있었다.
더군다나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는 늦은 밤에 손님이 있을 리도 없으니 말이다.
아까 전에 보았을 때 주방 옆에 그들이 묶는 숙소가 있는 듯 했다.
양단화가 기척을 죽이고서 노인만 깨우기 위해서 숙소의 방문을 조용히 열고서 등잔불을 가져갔다.
그런데,
‘엇?’
숙소 안에는 주방장으로 보이는 털보 중년인 외에는 침상 하나가 비어있었다.
이불이 들쳐 있는 것을 보면 분명 누군가 있었던 것은 틀림없었다.
‘대체 어디로 간 거지?’
양단화가 기감을 넓혀서 인근 반경까지 인기척을 느끼려고 집중했다.
장대비로 인해 자연 현상이 기감을 방해했지만 가까운 곳에서 사람의 인기척이 감지되었다.
‘마구간?’
그곳은 바로 마구간이었다.
양단화가 조심스럽게 객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콰르르쾅쾅!
-쏴아아아아!
아직까지 천둥 번개가 치면서 비가 폭우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양단화가 최대한 비를 맞지 않기 위해서 빠르게 경공을 펼쳐서 객잔의 마구간으로 향했다.
한달음에 마구간의 근처로 도착한 양단화가 신형을 틀어서 몸을 숨겼다.
곰방대의 노인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듯 했다.
노인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한 주홍색 옥패를 손에 들고 있는 중년인이었다.
‘저건?’
이곳에 오기 전에 들었었다.
신의를 만나기 위해서는 의(醫)라고 새겨진 주홍색 옥패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저게 그것인가?’
특별 파견대가 들고 갔다는 것과 흡사해보였다.
먼저 온 손님이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볼까 하던 찰나였다.
-푹!
‘헛?’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노인의 손가락으로 검결지를 만들더니, 쾌속하게 중년인의 미간을 뚫어버렸다.
-털썩!
방심하고 있던 중년인이 눈을 부릅 뜨고서 죽음을 맞이했다.
‘이럴 수가…..’
무공을 전혀 익히지 않은 자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엄청난 고수였던 것이다.
놀라하고 있는데, 노인이 뭔가를 중얼거렸다.
그 입술 모양은,
“쥐새끼 한 마리가 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