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68)
# 50장 객잔의 밤 (3) #
노인이 허리를 숙여서 죽은 중년인이 떨어뜨린 주홍색 옥패를 주어 들었다.
그것을 품속에 갈무리한 노인이 굽었던 허리를 곧게 폈다.
-우드드득!
허리를 구부정하게 다니던 것이 거짓이었는지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몸을 풀었다.
“이걸 하나 얻자고 시간 낭비가 심했군.”
노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에게서 풍겨져 오는 기운부터 분위기까지 모든 게 달라졌다고 느낀 사 장로 양단화는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노인의 신형이 잔상처럼 흩어졌다.
이형환위의 수법이었다.
“큭!”
사 장로 양단화가 재빨리 보도를 뽑아서 앞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사라졌던 노인이 잔상처럼 나타나서는 상체를 뒤로 젖히며 보도를 피했다.
-쏴아아아아!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양단화가 긴장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런 그를 바라보면서 노인이 입 꼬리를 올렸다.
“제법 눈치가 빠르구나. 허허허.”
눈앞에 있던 빗방울이 튀어 오르지 않았다면 노인이 자신의 근처로 다가온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적어도 노인은 그보다 한 단락 이상의 고수가 틀림없었다.
“노인장….당신의 진짜 정체가 뭐지?”
“정체? 허허허. 보다시피 객잔의 주인이 아닌가.”
“허튼소리!”
고작 객잔의 주인이 이런 엄청난 고수일 리가 만무했다.
세찬 장대비에 노인의 얼굴 피부가 들썩거렸다.
‘설마 인피면구인가?’
교묘하게 만들어진 인피면구라도 이렇게 장대비를 연달아 맞으니 흐트러질 수밖에 없었다.
의아한 표정을 짓는 그를 향해 노인이 검결지를 뻗었다.
양단화가 도를 휘둘러서 찔러오는 검결지를 막았다.
-차아아앙!
‘엄청난 공력이다!’
검결지에 실려 있는 공력에 도신이 떨려왔다.
덕분에 이를 막아낸 양단화의 신형이 뒤로 다섯 보 가량 밀려났다.
-타타타타탁!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노인이 검결지로 검초를 펼쳤다.
그의 검초에 실려 있는 검기가 여러 갈래 뻗어오면서 양단화의 주요 요혈들을 노렸다.
양단화가 빠르게 몸을 회전하면서 도망(刀網)을 만들어내 검기를 튕겨냈다.
-채채채채챙!
도기를 튕겨내자 어느새 바로 앞까지 도달한 노인이 회전이 끝날 무렵의 양단화의 움직임에 맞춰서 미간에 검결지를 찔러왔다.
“헛?”
놀란 양단화가 고개를 뒤로 젖히는 순간, 노인이 발차기로 그의 다리를 걷어찼다.
-퍽! 쿠당탕!
“크헉!”
균형이 무너진 양단화가 흙탕물에 몸을 뒹굴었다.
쪽팔림이고 할 것 없이 양단화는 나려타곤(懶驢打滾)의 수법으로 몸을 뒹굴면서 노인의 다음 공격을 피해냈다.
-촤아아아악!
고여 있는 흙탕물를 가르며 날카로운 예기가 스쳐 지나갔다.
조금만 늦었어도 몸이 두 동강이 날 뻔했다.
손을 바닥에 짚어서 몸을 용수철처럼 튀어서 일으켜 세운 양단화가 도기를 발산하여 객잔을 향해 날렸다.
-쾅!
도기가 객잔 벽을 뚫고 들어갔다.
그것을 보면서 노인이 혀를 끌끌 차면서 말했다.
“고놈. 머리를 굴리는 구나.”
“하아….하아….”
양단화가 도기를 날린 것은 객잔 내에 있는 사람들을 깨우기 위해서였다.
이왕이면 교주인 천여운이 이를 알아차리기를 바랐다.
노인이 비릿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안에 있는 쭉정이들이 나온다고 해서 네놈에게 구명줄이 될 성 싶으냐? 허허허. 괜한 쓸데없는 짓으로 희생만 늘릴 뿐이다.”
“쭉정이? 하아….과연 그럴까?”
“허장성세를 부리기는!”
-스슥!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노인의 신형이 흩어지며 둘로 나뉘더니 양단화의 양옆으로 동시에 노려왔다.
움직임이 너무 빨라서 둘로 보이는 것이었다.
‘어디지?’
여기서 하나의 공격이 분명 진초였는데, 어느 것도 허점이 보이지 않았다.
고민하던 양단화가 공력을 끌어올려 보도에 도강을 일으켜서 크게 휘두르며 동시에 둘로 나뉜 노인을 베려했다.
-스슥!
가장 먼저 베인 노인의 잔상은 환영에 불과했다.
진초는 왼쪽에서 검결지를 찔러왔다.
‘더 빠르게!’
양단화가 도를 더욱 빠르게 휘둘렀지만 검결지를 막기에는 미처 늦었다.
-푹!
검결지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빛의 검강이 간발의 차로 양단화의 도강에 부딪치며 원래 노렸던 가슴을 꿰뚫지 못하고 왼쪽 어깨를 관통했다.
“크헉!”
어깨를 파고드는 고통에 양단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신형이 흔들리며 비틀거리는 양단화를 바라보며 노인이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다.
“저승으로 보내주마.”
노인이 검결지로 양단화의 머리를 찌르려는 순간이었다.
-흠칫!
빗속을 꿰뚫고 날아오는 날카로운 예기를 감지한 노인이 빠르게 신형을 뒤로 물렸다.
그 순간 그의 앞으로 푸른빛 도강이 스치고 지나갔다.
-콰콰콰쾅!
바닥에 꽂힌 도강에 고여 있던 빗물과 파편이 위로 튀어 올랐다.
노인이 가볍게 검결지를 휘젓자 그를 향해서 튀어 오르던 파편이 검막에 막혀서 튕겨나갔다.
-탁!
그 사이에 어느새 양단화의 앞으로 누군가 나타났다.
그를 알아본 양단화가 어깨의 부상으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화색이 밝아졌다.
“주, 주군!”
그를 위기에서 구한 자는 바로 천여운이었다.
급하게 나왔는지 상의를 반쯤 걸치다시피 한 그의 얼굴은 다소 상기되어 있었다.
‘저 자의 정체가 뭐지?’
막 나온 참이라 경황이 없었지만 무공을 펼치는 것으로 보아 노인이 단순한 객주가 아님은 눈치 챘다.
기습적으로 날린 도강도 여유롭게 피해낼 정도의 고수였다.
“크흠.”
노인이 방금 전과 달리 인상이 굳어졌다.
‘그저 젊은 애송이인줄 알았는데, 실력을 숨기고 있었나?’
화경의 극에 올라서 모든 기운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천여운이다.
그래서인지 객잔에 있을 때만 하더라도 양단화 이외에는 위협될 만한 고수가 없을 거라고 단정 지었던 노인이었다.
‘이놈을 부르기 위함이었군.’
그제야 양단화가 객잔에 도기를 날렸던 것을 납득할 수 있었다.
천여운이 그에게 백룡도로 겨냥하며 물었다.
“당신 정체가 뭐지?”
“……..”
그 물음에 노인은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당장 그와 겨뤄야 할지 아니면 피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객잔 입구 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칫! 목숨을 건졌구나.”
-팟!
좋은 명분거리가 생겼다.
양단화를 향해 그 말을 남기고서 노인이 어딘가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어딜!”
-촤아아아악!
천여운이 도망가는 그를 향해서 탄도강(彈刀?)을 날렸지만 노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것을 피한 뒤에 사라져버렸다.
그곳은 노인이 가지 말라고 당부했던 계곡이 있는 산 쪽이었다.
그를 따라가서 잡아야 하나 고민했던 천여운이었지만 이내 그것을 포기했다.
무위가 짐작이 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그와 동급이거나 그 이상의 실력자일지 몰랐다.
그리고,
“양단화 공. 괜찮습니까?”
“저, 저는 괜찮습니다. 주군.”
그렇게 말하면서도 안색이 창백했다.
어깨가 검강에 관통 당했으니 그 고통을 말로 이룰 수 없을 것이다.
-타타탁!
천여운이 어깨 부위에 지혈점을 눌러서 출혈이 멎게 도왔다.
그 사이에 객잔 밖으로 무당파의 도인들을 비롯한 두 무림인 집단들이 주섬주섬 나왔다.
객잔 일층을 관통한 도기로 한껏 긴장한 눈빛들이 역력했다.
-팟!
무당파의 무진자 도장이 경공을 펼쳐서 그들에게로 다가와 물었다.
“원시천존. 원시천존. 무슨 일입니까?”
이를 어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해하는 차에 양단화가 임기응변으로 말했다.
“큭, 무 도장. 습격을 당했습니다.”
“습격이라뇨?”
피로 물들어 있는 왼쪽 어깨를 본다면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는 양단화가 마구간 쪽으로 고개를 돌려서 눈빛으로 가리켰다.
“말을 살피러 가는데, 객잔주인 노인장이 한 남자를 살해했습니다.”
“살해?”
그 말을 엿들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놀란 얼굴로 마구간으로 달려갔다.
마구간에는 미간이 꿰뚫려서 죽어있는 중년인이 있었다.
“자, 장주님!”
그들의 일행이었던 세 사람이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객잔주에게서 정보를 얻겠다며 나갔던 자가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는데,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슬픔과 격노에 빠져있던 와중에 그들 중 한 사람이 중년인의 품을 뒤졌다.
그런데 품속에 있어야 할 주홍색 옥패가 보이지 않았다.
-팟!
“없어! 없어!”
당황한 그들이 이곳저곳을 살피더니 이내 양단화가 있는 곳으로 부리나케 달려왔다.
그리고는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 정말 이곳의 객잔주가 장주님을 살해한 것이 틀림없소?”
“쿨럭….쿨럭…..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소. 여러분들이 나오려고 하자 계곡 쪽으로 급히 도망갔소.”
“큭! 당장 채비를 해라!”
“알겠습니다!”
장주가 살해되고 중요한 물건을 탈취 당했다는 격분에 그들은 노인의 정체나 그 실력보다도 당장 잡아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쏴아아아아!
비가 폭우처럼 쏟아지는 밤이었는데, 그들은 마구간에서 말을 몰고 와서 살해당한 문주를 챙겨서 다급히 객잔을 떠났다.
무당파의 도인들 몇몇이 폭우로 위험하다고 만류했지만 소용없었다.
무진자 도장은 아직도 믿을 수가 없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도경을 외웠다.
“원시천존. 원시천존. 어찌 이런 일이….허어.”
몇 년 동안이나 알고 지내왔던 노인이 고수였고, 손님을 살해했다는 것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들 역시도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노인에게 정보를 물으려고 했는데 한 편으로는 운이 좋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출혈이 심한 듯하니,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도우님.”
천여운이 부상당한 양단화를 부축해서 객잔으로 들어가자, 무당파의 도인들 중에 한 사람이 그에게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형. 보셨습니까?”
“…..보았네.”
“인피면구입니다.”
그들은 천여운의 얼굴을 덮고 있는 인피면구를 알아챘다.
장대비가 쏟아지면서 인피면구가 약간 흐트러진 것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혹시 저들이 노인장과 죽은 사내를 해한 범인이 아닐까요?”
“그건 아닌 듯 하네.”
“네?”
“그것은 무 사형의 말이 맞네. 그들은 둘 다 도(刀)를 사용하는 자들이었네. 그런데 죽은 사내는 검상을 입었었네.”
“아!”
천여운과 양단화가 들고 있는 도를 유심히 살폈던 무진자와 한 도인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범인이 아니라고 해도 인피면구를 쓰고 있던 점이 마음에 걸렸다.
더군다나 이곳 폐검곡은 비밀이 많은 장소였다.
-콰르르르릉!
천둥 번개와 폭우가 쏟아지는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무진자가 중얼거렸다.
“폐검곡에 또 다시 심상치 않은 바람이 일렁이는구나.”
* * *
다음 날 이른 새벽,
그렇게 그칠 것 같지 않던 폭우가 어느새 잠잠해졌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는 걸 보면 더 이상 비가 내릴 것 같진 않았다.
떠나려는 이들에게는 희소식이었다.
동이 트기 전에 천여운 일행은 일찍 여장을 꾸렸다.
객잔에 들어가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무당파 도인들이 대화를 나누는 것을 엿들은 천여운은 의심받고 있다는 생각에 일찍 떠나려고 했다.
그런데,
‘먼저 떠나다니?’
그가 막 일어났을 무렵, 새벽 인시에 비가 수그러들자 기다렸다는 듯이 무당파의 도인들이 서둘러 먼저 객잔을 빠져나갔다.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 나가는 것을 보아서 아무도 모르게 나가려는 듯 했다.
‘역시 어젯밤의 그 일 때문인가?’
한 밤 중의 사건이 터진 후에 천여운과 무당파의 도인들은 자고 있는 숙수를 깨웠다.
숙수에게 노인의 정체를 캐묻기 위해서였다.
‘저, 저는 정말 몰랐습니다요. 정말입니다.’
노인과 달리 숙수는 정말로 무공을 익히지 않은 평범한 자였다.
여기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 노인은 한 달 전에 닷새 정도 사라졌다가 태연히 돌아왔다고 했다.
‘뭐, 뭔가 평소랑 다르다고는 생각했지만…..’
원래부터도 괴팍한 성격의 객잔주였기에 그러려니 하고 여겼다고 했다.
그런 숙수의 말에서 천여운은 그 자가 한 달 전에 객잔에 몰래 잠입한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닷새라는 기간은 죽은 노인의 얼굴 가죽으로 인피면구를 만들 시간이었으리라.
무림인이었다면 한 번쯤은 의심해 볼만도 했는데, 평범한 객잔 숙수로서는 의심해볼 여지는 없었다.
그런데 숙수의 증언으로 한 달 전에 사람이 뒤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무당파의 도인들의 표정이 뭔가 심각해졌다.
[사형! 그 분과 연락이 끊긴 시점과 동일합니다.] […..허어, 서둘러야겠구나.]전음을 도청했을 때 뭔가 숨겨진 사정이 있다고 여겼는데, 역시 이렇게 일찍 출발한 것으로 보아서 그 분과 연락이 끊겼다고 한 말과 관련이 있는 듯 했다.
‘그들도 폐검곡으로 향했다면 뭔가 알게 되겠지.’
왠지 모르게 그런 느낌이 들었다.
마구간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차에 사 장로 양단화와 허봉이 객잔 밖으로 조용히 나왔다.
객잔 주방에서 식량과 물을 챙겨서 나온 그들이었다.
아직까지 안색이 창백한 양단화의 모습에 천여운이 걱정스러운지 물었다.
“괜찮습니까?”
“심려를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주군. 그래도 한 사람의 몫을 하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몸을 자중하세요.”
“충!”
밤새 운기조식을 하여 내상을 어느 정도 치료했지만 관통된 어깨의 상처가 금방 아물 리가 없었다.
그래도 왼쪽 어깨였기를 망정이었지 오른쪽이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코를 골면서 숙면을 취한 허봉은 이른 새벽에 양단화가 깨워서야, 밤새 있었던 사건을 알게 되었다.
“제, 제가 말들을 끌고 나오겠습니다.”
“그러게. 허 부관.”
미안한 마음에 고개가 축 쳐져 있던 허봉이 어쩌다가 문규와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눈이 마주친 문규가 양볼이 새빨개져서는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획하고 돌려버렸다.
이에 허봉의 입 꼬리가 음흉하게 올라갔다.
‘했네.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