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69)
# 51장 폐검곡, 검들의 무덤 (1) #
안개로 앞이 보이지 않는 숲속.
비는 그쳤지만 축축한 바닥에 젖어있는 수풀로 인해 습기가 가득하다.
우거진 숲은 사람의 출입이 드물어서인지 앞을 헤치고 나가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촥! 촥!
“제대로 가는 건지도 모르겠는 데요.”
허봉이 선두에서 수풀을 검으로 베면서 투덜거렸다.
폐검곡이라 적혀 오래된 나무 푯말을 지나친 이후로 그들은 정처 없이 숲을 헤매고 있었다.
수풀이 너무 우거진 탓에 말을 타고 이동할 수 없어서 인근에 묶어두고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건초 더미에서 바늘 찾기 격이구나.’
폐검곡이라는 이 안개로 가려진 거대한 산속에서 행방불명된 특별 파견대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듯 했다.
계속해서 기감을 열어두고서 인기척을 감지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아무런 진척이 없다.
[지도 생성이 5퍼센트 가량 진척 중입니다.]천여운의 머릿속으로 나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금 천여운의 시야는 증강현실이 개안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의 시야로 작은 영상이 그려지고 있는데, 그것은 나노가 지금까지 이동한 경로들을 정리해서 지도를 만들고 있었다.
“아니. 왼쪽으로 이동해라.”
“넵. 주군.”
허봉이 천여운의 명령에 방향을 틀었다.
나노가 지도를 생성하고 있는 덕분에 적어도 같은 길을 반복할 우려는 없었다.
이 같은 나노의 능력을 알게 된다면 모두가 탐을 내리라.
다만 이런 식으로 수색을 해서는 어느 세월에 행방불명된 자들을 찾고 신의가 있는 곳을 알아낼지가 문제였다.
한 시진 가량을 숲을 헤매고 있던 차였다.
‘아까부터 공명음이 느껴진다.’
일정 지역에서 작은 공명음 같은 것이 윙윙 거리며 귓가에 맴돌았다.
천여운과 마찬가지로 사 장로 양단화 역시 그것을 느꼈는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느끼셨습니까?”
양단화의 물음에 천여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규와 허봉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이 느낄 수 없다는 것은 기감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이 공명음을 감지하기에는 무공의 경지가 모자란 탓이었다.
“뭔가 있는 것 같군요. 그쪽으로 가도록 하죠.”
“충!”
양단화가 답하자 허봉이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어, 어디로요?”
그들이 하는 대화를 도통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양단화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허 부관. 지금 보는 방향에서 북서쪽으로 틀게.”
“네, 넵!”
-촥! 촥! 촥!
양단화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설명하면 허봉이 풀숲을 베어서 뚫고 갔다.
그 뒤를 따라서 일행들은 이동에 좀 더 속도를 가했다.
공명음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이동하자 갈수록 공명음이 강해졌다.
-웅웅웅!
‘마치…..날카로운 예기와도 같다.’
그 방향에서 날카로운 예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신병들에게서나 느껴질 법한 그런 날카로운 기운을 풍겼다.
조금만 더 이동하면 그 진원지에 다가갈 것 같았다.
바로 그때,
‘이게 무슨 냄새지?’
습한 수풀이라 더욱 코끝을 자극하는 혈향이 어디선가 맡아졌다.
일행들도 이것을 맡았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주군. 피 냄새가 납니다.”
바로 근방인 듯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들은 혈향이 불어오는 방향을 향해서 빠르게 경공을 펼쳐서 갔다.
그들이 있던 곳에서 동쪽으로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나무를 비롯해 수풀 이곳저곳에 검흔들로 가득한 장소가 드러났다.
“윽!”
그곳에 도착한 문규가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수풀의 이곳저곳이 피로 난자되어 있었고, 가장 끔찍한 것은 반 토막으로 잘려진 시체였다.
장기 기관이 이리저리 튀어나와 있는 것이 비위가 약하면 견디기 힘든 장면이었다.
그런데 시체는 단 한 구가 아니었다.
두 구의 시신이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었는데, 이곳에 남아있는 대부분의 검흔들은 그들이 살기 위해 발악한 흔적인 듯 했다.
“아! 이들은?”
죽어있는 시신들의 얼굴을 본 천여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놀랍게도 그들은 어젯밤에 장주가 살해당했다면서, 흉수인 노인을 추적하러 계곡으로 들어갔던 자들이었다.
‘그 자와 마주친 건가?’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 시신으로 발견될 이유가 없었다.
이들의 무위는 강해봐야 일류고수에 불과했다.
노인을 상대로 덤벼봐야 자살 행위 밖에 되지 않았으나, 그들 일행이 애써 그것까지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
“어, 어제 그들인 것 같은 데요. 주군.”
허봉도 알아보았는지 죽은 시신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툭툭!
시신을 몇 차례 손끝으로 건드린 허봉이 말했다.
“주군. 죽은 지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습니다.”
어젯밤에 그들이 노인을 추적했던 시각에는 한참 폭우가 쏟아졌다.
만약 시신이 계속 비를 맞았다면 퉁퉁 불어있거나 할 텐데, 피가 흘러내린 자국이 바닥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 분명했다.
‘나노, 분석해줘.’
천여운이 시신의 피와 피부에 손가락을 대고 나노에게 명했다.
그러자 손가락에서 찌릿하며 미세한 흰빛이 세어 나오며 시신에 대한 분석이 들어갔다.
이윽고 나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혈액의 응고 상태와 근육의 경직을 살펴본 결과 사망한지 한 시진 가량 지난 걸로 추측됩니다.]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정도 시간이라면 이들을 죽인 흉수가 한참 먼 곳으로 이동했을 것이다.
여기서 천여운은 또 한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그런데…..한 사람은 어디 간 거지?’
이들 일행은 분명 총 세 명이었던 걸로 기억했다.
죽은 문주까지 합하면 네 명이다.
천여운이 의아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주위 어디에도 또 다른 한 명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도망에 성공했을 리가 없다.’
고작 세 명뿐이라 도망쳐봐야 노인의 손바닥 안 일텐데, 어째서인지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기고 있을 때 양단화가 손을 들어서 신호를 보냈다.
“주군!”
천여운이 그곳으로 가보자, 눅눅하여 질척거리는 진흙 바닥에 발자국들이 보였다.
그것은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의 것이었다.
아직 마르지 않은 빗물로 인해 바닥에 발자국이 남은 것은 천운이었다.
‘흔적을 지우진 못했구나.’
단순한 흙바닥이나 모래였다면 조금만 노력해도 흔적을 지우기 쉽겠지만, 질척이는 진흙바닥의 흔적을 지우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두 명의 발자국이 향하는 방향은,
“……공명음이 느껴지는 곳입니다.”
-웅웅웅!
날카로운 예기가 흘러나오는 그곳으로 발자국은 이동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잘하면 공명음이 흘러나오는 장소에서 흉수로 짐작되는 노인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어째서 노인이 단 한 명을 살려뒀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일단 따라가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천여운과 일행은 자연스럽게 남겨진 발자국을 따라서 이동했다.
허봉이 검으로 풀숲을 베지 않아도 이미 앞서 만들어진 길이 있었기에 이동하기에는 그리 불편함은 없었다.
그렇게 반 각 정도를 걸어가자 이윽고 수풀이 끝나는 지점이 보였다.
“오오!”
허봉의 얼굴이 환해졌다.
계속 습한 풀숲에만 있던 것이 갑갑했던 차였다.
뿌연 안개가 없었다면 멀리서도 뭔가 보였겠지만 수풀을 완전히 빠져나가야 무엇이 있는지 확인될 것 같았다.
‘바닥에 진흙이 없다?’
빠져나오는 지점에 가까워지자 바닥이 돌로 바뀌었다.
그래서 진흙에 남겨져 있던 발자국도 사라졌다.
-사악!
숲을 벗어나자 사방이 확 트인 곳이 드러났다.
여전히 안개가 사방을 뿌옇게 만들었지만, 눈앞에 장엄하리만큼 버티고 있는 이 광활한 암석 장벽이 보이지 않을 리가 없었다.
“와아아! 산? 아니 바위산인가?”
문규가 고개를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려보았다.
그들의 앞에 있는 암석 장벽은 높고 거대한 산봉우리였는데, 흙이 아닌 암석으로 된 바위산이라고 해야 옳았다.
산면이 경사가 수평에 거의 발 디딜 곳이 없을 만큼 험준했다.
경공을 펼치는 무림인이라고 해도 이곳만큼은 등산 장비를 갖추지 않는다면 오르기 힘들 거라 여겨졌다.
“이런 곳이 숨겨져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좀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그들이 앞으로 다가갔다.
가장 앞서 걷고 있던 허봉이 한달음에 달려갔다가, 갑자기 멈춰서면서 소스라치게 놀라했다.
“히익!”
암석 장벽만을 보고 달리다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몰랐는데 암석 벽은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절벽이 존재하고 있었다.
“주, 주군 절벽입니다. 가까이 가시면 안 됩니다.”
허봉이 사색이 된 얼굴로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절벽과 거대한 암석 장벽 사이에 거리가 상당히 먼데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절벽 낭떠러지의 밑이 보이지 않을 만큼 굉장히 깊었다.
-휘이이잉!
깊은 절벽에서 나오는 곡풍이 스산하게 들려왔다.
“왁! 저, 정말 깊은데요. 공자님.”
문규도 조심스럽게 밑을 내려다보았다가 아찔했는지 고개를 들어올렸다.
안개가 뿌연 것과 별개로 밑이 완전히 검게 보일 만큼 깊었다.
이곳에 떨어졌다가는 평범한 사람이든 무공을 익힌 고수이든 단번에 즉사할 만큼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웅웅웅!
예의 공명음이 들려왔다.
선명하게 느껴지는 날카로운 예기와 공명음에 천여운이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와 동시에 천여운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
“이, 이럴 수가…..”
사 장로 양단화 역시도 무의식적으로 그곳을 보았다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수풀을 막 빠져나왔을 때는 안개로 보지 못했는데, 조금 더 가까워지자 암석 장벽에 있는 그것을 볼 수 있었다.
검(劍).
놀랍게도 암석 장벽에는 너무도 거대하게 검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대체 무얼 보시길래….헉!”
“이, 이건…..”
두 사람이 놀라하자 궁금해 하던 허봉과 문규 역시도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말문을 잃고 말았다.
‘전율적이다!’
검이라는 글자를 보고서 떠오른 것은 그 한 마디였다.
가까이에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암석 장벽에 새겨진 검이라는 글자는 누가 조각칼로 새긴 것이 아니었다.
‘검? 아니 검기로 새긴 것이다.’
이 글자는 기(氣)로써 새겨진 것 같았다.
언제 새겨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검이라는 글자에서 흘러나오는 검의(劍意)와 날카로운 예기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강렬한 충격을 가져왔다.
마치 청옥석 벽에 새겨진 천마의 검흔을 보았을 때와 거의 동등한 수준이었다.
‘대체 누가 이것을 새긴 거지?’
글자에서 풍겨지는 검의에서는 세상을 거침없이 내려다볼 만큼 오만함과 절대자의 품격이 느껴졌다.
마치 이 한 글자로 스스로 검에 있어서 천하제일이라 칭하는 듯 했다.
검을 갈고 닦는 자의 마음을 일순간에 굴복시킬 정도였다.
“으으으.”
비교적 검에 대한 깨달음이 낮은 허봉조차도 식은땀을 흘리면서 검이라는 글자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 쉬지 않고 한 번에 새겼다. 대체 어떻게 한 거지?’
기로써 새긴 것은 알 수 있었지만 한 획도 쉬지 않고 새긴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이렇게 한참 떨어진 절벽을 가로질러서 말이다.
그런데 그 방법도 그랬지만 이 검이라는 글자가 굉장히 거대하게 새겨져서 몰라볼 뻔했는데, 이 필체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았다.
‘이 필체는 마치….’
“공자님. 저걸 보세요.”
문규의 외침에 천여운이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보았다.
검이라고 적혀 있는 거대한 글씨 밑으로 암석 장벽에 수많은 무언가가 꽂혀 있었다.
고슴도치처럼 박혀 있는 그것은 다름 아닌 검이었다.
“검?”
수많은 검들이 그 글씨 밑에 박혀 있었는데, 어렴풋이 세어보아도 백 개는 넘어보였다.
여러 종류의 검들이 박혀 있었는데 그 중에는 평범한 장검부터 시작해 보검들도 있었다.
꽤 오랜 세월 동안 방치되어 있었는지 대부분이 심하게 녹이 슬어 있었다.
‘이 많은 검들이 어째서? 설마….검을 버린 것인가?’
자신의 몸이나 매한가지인 독문병기를 버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검을 포기했다는 말과도 같았다.
그만큼 저 검이라는 글자에 굴복한 자들이 많았단 말인가.
한참 그것을 바라보던 천여운이 문득 깨달았다.
‘잠깐! 절벽 골짜기에 검을 버려두고 갔다는 건……설마 여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