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7)
# 7장 이놈, 모두를 속이고 있었어(3) #
이틀의 시간이 흘렀다.
마도관 생도들의 오후 훈련이 끝나고 저녁 무렵, 팔 조의 숙소로 복마종의 서열 후보자인 천무금이 기다려 왔던 이십삼 번 생도가 드디어 의무실에서 복귀했다.
머리에는 두건 같은 걸 하나 쓰고 말이다.
잇몸이 만개했던 이틀 전과 다르게 천무금의 얼굴은 나찰처럼 무섭게 일그러져 있었다.
‘놈이 오지 않는다면 저희가 보내는 것도 방법이죠.’
그의 심복인 팔십 번 생도 자현은 구체적이게 어떤 식으로 의무실로 사람을 보낼 지에 관한 계책을 짜서 천무금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가 사흘 전에 이십삼 번 생도에게 부상을 입혀서 의무실로 보낸 것이었다.
많은 선별 끝에 골랐던 이십삼 번 생도는 마교 내에 있는 종파들 중에서도 힘이 없는 약소 무가였다.
의무실에서 천여운의 발목과 손목에 있는 근맥을 긋게 하는 대가로 마도관에서 방출되더라도 복마종에서 책임지고 뒤탈을 무마해주고 끌어주기로 약조했다.
“신기하네. 원래 방출되었어야 하지 않나?”
천무금은 자신의 앞에 무릎 꿇고 앉아있는 이십삼 번 생도를 눈을 내리깔며 물었다.
임무를 실패했으니 당연히 질책이 있을 것은 짐작했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이십삼번 생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칠 번 생도의 근맥을 그으려고 했으나, 녀석의 내상이 정말 심한지 의무실에 의원께서 밤중에도 상시 대기를 하면서 천여운을 치료하고 있었습니다.”
“뭐? 의원은 잠도 없단 말이야?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고, 공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새벽 중에 일어나서 움직였더니 의원께서도 깨셔서.”
이게 정말 변명이 될까 걱정스러운 이십삼 번 생도였다.
사실 이 같은 변명거리는 천여운이 그에게 언급해준 것을 고대로 나열하는 것이었다.
“무슨 의원 따위가 귀가 얼마나 밝다고!”
-퍽!
“크헉!”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천무금이 그의 복부를 발로 걷어찼다.
내공이 실리지 않았지만 명치를 맞은 이십삼 번 생도가 바닥을 뒹굴었다.
“빌어먹을 새끼! 그런 것도 똑바로 못해!”
-퍽! 퍽! 퍽!
“끄윽!”
한 번 걷어찬 걸로는 성이 풀리지 않았는지 천무금이 계속해서 그의 몸에 발길질을 했다.
반항을 할 수가 없기에 이십삼 번 생도는 새우처럼 몸을 굽혀서 발길질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곁에서 지켜보던 자현이 그를 잠시 만류했다.
“잠시만 기다리십쇼. 공자님.”
“뭐야? 왜 그러는 거야?”
“혹시 지금 의무실에 있는 의원의 이름을 알고 있나?”
자현의 질문에 복부를 얻어맞고 벅찬 호흡을 내뱉던 이십삼 번 생도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떠올랐는지 말했다.
“헉…헉…..백종명….이라고 알고….있습니다.”
“백종명…..백종명….아!”
자현이 이렇게 이름을 물어본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예전부터 소교주 후보자인 천무금을 보좌하기 위해서 마교 내에 있는 많은 정보들을 숙지하고 익혀왔다.
“뭐야? 알고 있는 이름이야?”
“마의 백종우님의 제자일 겁니다.”
“백종우님의?”
백종우의 제자라는 말에 무작정 화만 내던 천무금의 표정도 한층 누그러졌다.
마의 백종우는 여섯 종가 중의 하나인 독마종 출신이었다.
독마종의 출신인데도 독술이나 독공보다도 의술에 뜻을 두어서 교주의 주치의 자리까지 올라간 인물이었다.
그는 의원이기도 했지만 마교 내에서도 무위로 서열 삼십 위 안에 드는 인물이었다.
“이건 정확하지 않지만 그분의 제자라면 충분히 무공이 뛰어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짐작에 불과했다.
정확하지 않고 어설픈 정보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때는 알 수 없었다.
백종우는 독마종의 출신이기는 하나, 공과 사를 철저히 했기에 의술을 전수한 제자들에게 무공을 전수하지는 않았다.
“제기랄! 그렇다면 이놈을 보낸 것이 헛고생이었잖아!”
본인이 계획한 것도 고생한 것도 없었지만 천여운이 멀쩡하게 있는 것만 생각해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 천무금이었다.
이십삼 번 생도의 말을 뒷받침 해주는 자현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천무금은 화풀이를 위해 그의 몸을 계속해서 걷어찼다.
-퍽! 퍽! 퍽!
“크헉! 컥컥!”
“빌어먹을 새끼! 네놈 종파에 지원 같은 건 꿈도 꾸지 마라!”
처음에는 임무에 대해서 얘기해줄 때만 하더라도 실패하더라도 무조건 자신의 종파를 지원해준다고 사탕발린 말로 설득을 해왔던 천무금과 자현이었다.
그러나 어느새 그것은 사라졌고, 오직 분풀이 이외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몸을 웅크린 채, 맞는 와중에도 이십삼 번 생도의 눈빛에는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독기가 서렸다.
‘그래. 지금 계속 화내고 실컷 그래라! 그놈이 오고 나서도 그게 가능한가 봐라.’
천무금과 자현이 만약 그를 달래주고 약속한 것에 한 번 더 확답을 주었다면 이십삼 번 생도는 자신이 알아낸 정보들을 고대로 알려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그놈이 얼마나 괴물 같은 녀석인지, 네놈이 직접 겪어봐라!’
불과 사흘에 불과했지만 이십삼 번 생도는 천여운의 진면목의 일부를 보았다.
녀석은 절대로 그들이 알고 있는 내공도 없는 무공을 쥐뿔도 할 줄 모르는 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너 못 보던 두건 같은 걸 왜 쓰고 있는 거야?”
한참을 때려대던 천무금이 아무렇지 않게 이십삼 번 생도가 두르고 있는 두건을 풀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던 이십삼 번 생도의 머리카락은 온데간데없고 불빛이 반사되는 대머리가 드러났다.
천무금은 입술을 실룩이며 대머리가 된 그를 내려다보며 피식하고 웃었다.
“허참, 가지가지 하네. 뭐 이런 식으로 머리라도 밀고 반성하는 척 하면 봐 줄줄 알아?”
웃어놓고는 안 그런 척 표정을 굳히고 계속해서 이십삼 번 생도를 걷어찼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발길질에 힘이 아까보다 많이 죽어있었다.
가리고 싶었던 것이 들통 난 이십삼 번 생도는 속으로 저주를 부르짖었다.
‘천무금이고 천여운이고 다 죽어! 십 할 놈들아!!!!!’
그렇게 사흘의 조용함이 끝나고 다시 팔 조의 숙소는 천무금의 포악한 행동으로 시끄러워지고 말았다.
마도관 생도들의 입관이 열나흘 째, 즉 그날로부터 이레(7일)라는 시간이 흘렀다.
복마종의 천무금이 인내하며 기다리던 천여운의 의무실 퇴원 날이었다.
이 날 새벽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어두운 신시 무렵 우호법 섭맹이 의무실로 찾아왔다.
평소와 다르게 그의 비어있던 오른손에는 검은 소가죽으로 만든 도집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오셨습니까? 스승님.”
천여운이 침상에서 일어나 섭맹을 맞이했다.
열나흘(2주)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짧은 기간이었지만 섭맹을 대하는 태도가 한결 편해진 그였다.
“클클, 아직 가르칠 게 많은데. 마지막 날이구나.”
평소와 달리 술을 마시지 않았는지 코끝의 붉은 기가 적었다.
섭맹의 표정을 보면 정말로 아쉬움이 가득해 보였다.
이렇게 숨어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무공을 전수해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마도관에 입관한 이상 규칙대로 해야만 했다.
“스승님 그게 뭡니까?”
“흐흐흐, 네 녀석이 가기 전에 이 스승님의 도를 보여주려고 가져왔다.”
자랑처럼 들렸지만 사실 이것은 천여운의 마지막 부탁 때문이었다.
어제 새벽에 천여운은 마지막 가르침으로 섭맹이 처음부터 끝까지 접무도법을 펼치는 것을 보고 싶다고 했던 것을 이뤄주기 위해서였다.
“궁금하지?”
-챙!
섭맹이 오른손에 쥐고 있던 검은 도집을 왼손에 쥐고 도를 뽑아보였다.
일반적인 도에 비하면 폭이 그리 넓지 않지만 길이는 대략 네 자(尺) 정도 되었다.
날카로운 도신의 안쪽에는 광무(狂舞)라는 음각이 새겨져 있었다.
“들어봐라.”
-휙!
가볍게 던졌는데 받아들자 생각보다 도가 많이 가벼웠다.
하지만 처음 도를 만져보는 천여운이 그것을 비교해서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가볍지?”
“생각보다 무거운 것 같진 않습니다.”
“보통 일반적으로 무인들이 사용하는 도의 무게는 대략 두세 근 정도다. 하지만 우리 사문에서 내려오는 보도인 광무도는 한 근 하고도 반 정도 밖에 안 된다.”
“접무도법 때문입니까?”
“클클클, 역시 네녀석은 영특하단 말이야.”
천여운의 말대로 우호법 섭맹의 접무도법의 접무(蝶舞)를 풀이하면 나비가 춤을 춘다는 말이었다.
접무도법은 여타의 도법보다 쾌(快)를 추구하고, 도를 극성으로 익혔을 때 나비가 날아드는 것처럼 초식에 잔상이 생겨나기에 무거운 도보다 가벼운 도를 선호한다.
“그렇다고 해도 광무도가 도신이 약한 것은 아니다. 도를 다오.”
“여기 있습니다.”
천여운이 도신을 거꾸로 잡고 도병 쪽으로 해서 섭맹에게 도를 넘겼다.
도병을 움켜쥔 섭맹이 가볍게 침상의 모서리를 향해 광무도를 휘둘렀다.
-촤악!
가볍게 휘두른 도였는데, 날카로운 예기에 침상 모서리가 쉽게 베여나갔다.
바닥에 떨어진 침상의 나뭇조각을 주워서 천여운이 조심스럽게 한 쪽 구석에 숨겼다.
침상을 벨 줄 알았다면 말릴 걸 후회했다.
‘쩝.’
의외로 깔끔한 걸 좋아하는 백종명은 늘 의무실을 깨끗하게 청소하곤 했는데, 침상의 모서리가 잘려나가 있는 것을 보면 꽤나 짜증낼 것이다.
“……도가 참 날카롭군요.”
“클클, 한철(寒鐵)을 제련해서 만들어서 도신의 폭이 좁고 그 무게가 가볍다고 해도, 날카로움과 단단함이 보도라고 할 만 하지.”
섭맹은 그 외에 도에 관해서 자세한 언급을 하진 않았지만, 그의 도는 마교 내에서도 삼대보도(三代寶刀)라고 불릴 만큼 유명한 도였다.
“그 전에 지금까지 배웠던 걸 복습해보자꾸나.”
“알겠습니다.”
마룡단의 내공을 흡수한 천여운은 남은 입원 기간 동안 섭맹에게 사문의 보법(步法)과 식(式)을 배웠다.
섭맹은 모든 무공의 기초와 중심이 발에 있음을 강조하고 보법에 많은 신경을 써주었다.
호접도법을 펼치기 위한 접영보법(蝶影步法)은 경쾌하면서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보법에 익숙하게 되면 초식에 많은 변화를 줄 수 있다.
-탁탁!
천여운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정해진 폭과 간격에 맞춰서 보법을 행했다.
고작 며칠 밖에 신경써주지 않았는데, 그 자세에 흐트러짐이 없고 움직임이 자연스러웠다.
‘역시 이 녀석은 타고난 천재다!’
일부러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섭맹은 감탄했다.
고작 몇 번만 보여주고 자세를 교정해준 것에 불과했는데, 이 정도 오성이라면 꾸준히 연마만 한다면 초식을 운용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으리라.
사실 천여운은 나노 머신인 나노가 섭맹의 보법을 펼치는 자세를 스캔 해준 적분에 이미 뇌에는 정보가 전이되어서 각인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완벽하면 의심받으니까.’
아무리 섭맹이 스승이라고 할지라도 고작 며칠 만에 그와 동일한 수준의 보법을 펼치면 의심을 받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에 일부러 천천히 보법을 밟고 있는 것이었다.
“그 다음은 식(式)!”
스물 네 개의 식으로 이루어진 접무도법은 세 개의 식이 이어져서 하나의 초식을 이룬다.
그렇게 이루어진 초식은 여덟 초식이 되는데, 아직까지 천여운은 식 만을 배웠고 초식이 연결되는 것은 알지 못한다.
모든 무공에는 그 기초와 자세가 중요하기에 식을 바로잡는데 섭맹이 많은 시간을 투자했기 때문이었다.
“허어.”
천여운이 접무도법의 식 동작을 펼치는 것을 보며 섭맹이 한탄했다.
이 정도의 재능이라면 적어도 한두 달만 시간이 주어졌다면 초식까지 제대로 가르쳤을 텐데,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식만 가르친 것이 아쉬웠다.
“되었다. 잘 익혔구나. 클클.”
“과찬이십니다. 스승님.”
마지막 날이기에 섭맹이 흡족하다는 얼굴로 칭찬했다.
섭맹이 품속에서 처음 만났을 때처럼 구깃구깃 구겨져 있는 종이를 꺼내서 그에게 넘겼다.
꾸불꾸불 서체가 그리 좋진 않았지만, 조금이라도 더욱 상세하게 적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가득한 그것은 접무도법의 초식과 내공 운용 방법이었다.
“이 스승님이 직접 가르치고 싶긴 하다만, 이제 시간이 없으니 이걸 주마. 네 녀석 정도의 머리와 오성이라면 충분히 기본은 터득할 수 있을 게다. 나중에 다시 만나면 확인해볼 터이니 게으름 피우지 말고 똑바로 익히거라. 흠흠.”
“…..감사합니다. 제자가 기대에 부응토록 하겠습니다.”
많은 것을 신경 써주는 스승을 만난 것에 감동할 수밖에 없는 천여운이었다.
거친 말투와는 다르게 우호법 섭맹은 그에게 많은 것을 넘겨주었다.
“줄 것도 다 줬으니, 이제 네 녀석이 그렇게 보고 싶다던 걸 보여주마. 뒤로 물러나라.”
-챙!
천여운이 뒤로 물러나서 공간을 만들어주자, 섭맹이 도집에 꽂아 넣었던 광무도를 출도 시켰다.
우호법 광도 섭맹에게 무공을 배우는 내내 아직까지 한 번도 제대로 초식을 펼치는 것을 본적이 없던 천여운이었다.
제자에게 마지막으로 도법의 진수를 보여주기 위해 섭맹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그렇게 섭맹이 그를 바라보며 접무도법의 기수식을 취하자, 천여운이 감동하는 눈빛을 보이며 속으로 말했다.
‘나노, 스캔 준비 해.’
[사용자의 명령에 의거해 지켜보는 동작의 스캔을 진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