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75)
# 53장 강림(2) #
한참을 천마검과 백룡도를 번갈아 꽂으며 절벽 위를 올라오던 천여운은 드디어 거센 바람이 몰아치던 구간을 지날 수 있었다.
바람이 잠잠해질 무렵 그의 기감에 수많은 기척이 감지되었다.
화경의 경지일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먼 곳까지 느낄 수 있었다.
‘많아.’
천여운의 눈빛이 떨려왔다.
자신이 낭떠러지에 떨어져 있는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위에서 느껴지는 수많은 기척들은 전부 무공을 익힌 무인들이었다.
‘연무화?’
익숙한 기운도 느껴졌다.
행방불명되었던 연무화와 백기, 호상화의 기척이었다.
‘살아있었구나!’
이들을 감지한 천여운은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감지하고 있는 수많은 기척들은 하나 같이 살기를 머금고 있었다.
서두르지 않으면 무슨 사태가 벌어질지도 몰랐다.
‘이제 벽에 검과 도를 꽂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다시 검들로 디딤 길을 만들려던 천여운의 눈에 저 멀리서 절벽을 가로질러서 뛰어넘고 있는 검은 점들이 보였다.
검은 점에서 너무도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문규!’
그녀는 문규였다.
문규에 이어서 다른 이들도 절벽을 뛰어넘고 있었다.
그들이 건너가는 절벽 쪽으로 수많은 무인들의 기척들이 몰려들고 있었는데, 그 중에 굉장히 위험한 자들도 껴있었다.
분명 그때 객잔에서 잠시 손을 섞었던 그 노인인 듯 했다.
현경의 경지에 오르기 전만 하더라도 느껴지지 않은 그가 감지되었다.
‘서둘러야 한다.’
하지만 이래서는 속도를 내기 힘들었다.
장벽에 박혀 있는 검들을 뽑아서 길을 내려고 했던 천여운이 방법을 바꾸었다.
일종의 발상의 전환이었다.
‘잠깐만 검을 조정할 수 있다면 차라리 타고 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 발상의 전환이 바로 어검비행술(馭劍飛行術)이었다.
천여운은 모르겠지만 현경의 고수들 중에서 검을 타고 날아다니는 자가 있다는 설은 종종 무림의 전설과도 같이 들려왔다.
그것을 천여운은 자의로 떠올린 것이었다.
-휙!
천여운이 천마검을 손에 놓고서 진기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천마검이 살아있는 것처럼 자유롭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여운은 조심스럽게 검신에 두 발을 올려놓았다.
-탁!
뭔가 허공을 짚고 서있는 듯한 미묘한 느낌에 사로잡혔지만 이것을 느긋하게 감상할 틈 따윈 없었다.
용천혈에 내공을 모아서 검에 발을 흡착시켰다.
그리고 검결지를 움직이자 천마검이 기다렸다는 듯이 세차게 허공을 날아올랐다.
근 백오십 여명에 가까운 엄청난 인원에 달하는 적들을 감지한 천여운이 선택한 비장의 수법은 바로 이기어검이었다.
-둥둥둥!
허공에 떠있는 수많은 검들이 그의 주위에서 대장군의 명령을 기다리는 대군처럼 대기하고 있다.
언제든지 천여운이 손만 뻗으면 당장에라도 쇄도해올 기세였다.
이 때문에 잔뜩 긴장한 복면인들은 경직되어서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공자님!!!”
문규가 토끼 눈이 되어서 눈물을 글썽이면서 외쳤다.
그것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주, 주구우우우운! 살아겠셨군요!”
“흑!”
호상화나 허봉 역시도 죽은 줄만 알았던 천여운의 등장에 가슴이 벅차서 눈물을 흘렸다.
더욱 전율적인 것은 천여운의 주위에 떠오른 수많은 검들이었다.
이것은 이기어검의 수법이 틀림없었다.
‘교, 교주님께서 현경의 경지에 오르신 건가’
연무화는 믿을 수가 없었는지 눈을 크게 뜨고서 천여운을 바라보았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자신과 동등한 경지였던 그였다.
그런데 낭떠러지에 떨어져서 죽었다고 알려진 고작 하룻밤 사이에 확연하게 달라져서 나타났다.
‘교주님께서는 정녕 마신의 선택을 받으신 분이란 말인가?’
그것으로 모든 걸 표현하기도 힘들었다.
흑색 장포를 펄럭이면서 수많은 검들 사이에 떠있는 모습만으로도 선택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신의 현신 그 자체로 보였다.
‘이놈. 분명이 죽은 것을 보았는데….’
노인은 분명 숲속 안에서 그가 폭발에 휘말려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설사 자신이라고 한들 몸에 불이 붙어서, 이런 까마득한 높이의 낭떠러지에 떨어진다면 살아남을 가능성은 전무 하다.
‘그저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아닌가.’
그때는 분명히 화경의 극에 이른 걸로 판단했다.
그런데 이기어검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현경의 경지가 틀림없었다.
더군다나 이 많은 검들을 떠오르게 했다는 것은,
‘초입이 아니다. 이놈은 확실하게 현경의 경지에 올랐다.’
어이가 없는 것을 떠나서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죽음만이 도사리고 있는 절벽 낭떠러지 아래에 엄청난 기연이 숨겨져 있기라도 한 것일까?
노인이 시선을 돌려서 백기에게 업혀있는 신의를 쳐다보았다.
‘아니야. 분명 신의 저 노파가 그것을 가지고 있을 텐데.’
순간 그 분의 물건이 혹시 낭떠러지 아래에 있었던 것을 아닐까 추측했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닌 듯 했다.
노인이 천여운을 향해 소리쳤다.
“용케 죽지도 않고 살았군. 허허허, 지고의 경지에 올라선 것을 축하하네.”
무림인들에게 있어서 지고의 경지.
그것은 현경을 의미한다.
수백만 명에 이르는 중원의 무인들 가운데 열 손가락에 꼽히는 자들만이 오른 절대적인 경지였다.
약관에 불과한 천여운에게 부러움과 시기의 눈빛을 보낼 만도 했지만 복면인들의 눈빛은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둥둥!
그들을 겨냥하고 있는 저 수많은 검들이 주는 위압감은 엄청났다.
이 수많은 검들의 한 가운데서 어검비행술을 펼치고 있는 천여운의 모습은 괴물 혹은 마신과도 같았다.
사기가 현격히 떨어진 복면인들을 의식한 노인이 이어서 소리쳤다.
“허장성세는 그만 부리고 이리로 와서 손을 섞지 않겠나? 그 검들을 전부 제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본좌가 모를 것 같나?”
이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노인 역시도 현경 초입의 고수였다.
충분히 이기어검을 다룰 수 있지만 그는 그것이 진정한 고수를 상대로는 효용성이 크게 떨어짐을 알았다.
이기어검 자체는 검식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아무리 높은 경지에 올라 사고의 폭이 넓어져도 검을 다룰 수 있는 숫자에는 한계가 있었다.
‘기공만 줄곧 파고있는 그놈조차도 열두 자루가 한계라고 선을 그었다. 암. 저것은 허장성세다.’
그 열두 자루조차도 세밀하게 다루는 것은 무리다.
이기어검으로 세밀하게 다룰 수 있는 숫자는 기껏해야 세 자루에서 다섯 자루가 한계다.
‘멍청한 녀석이구나. 같은 현경의 고수 앞에서 속임수를 부리려고 하다니.’
노인은 허공에 떠있는 검들이 허세라고 확신했다.
이것은 수적으로 불리하기에 복면인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천여운의 계책이리라.
그때 천여운이 노인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허장성세로 보이나?”
“그럼 그게 허장성세가 아니라면 대체 뭐….”
천여운이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검결지를 뻗어서 복면인들을 향해 가리켰다.
그러자 허공에 떠있는 백여 개의 검신이 떨리며 움직이려고 했다.
‘아니야. 절대로 불가능하다.’
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불길한 느낌이 들었지만 부정했다.
그리고 검병을 굳게 잡고 천여운 있는 허공으로 신형을 날리려 했다.
찰나의 순간, 천여운이 나노에게 명했다.
‘나노. 보조해줘.’
이에 나노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사용자의 명령에 의거하여 128개의 검에 판넬(Funnel) 원격 조정 시스템을 가동합니다.타겟(Target) 락 온(lock on)]
-삐삐삐삐삐삐삐삐삐!
이미 증강현실이 개안되어 있는 천여운의 시야에 붉은 입자들이 십자 형태로 빠르게 생성되면서 복면인들을 조준 겨냥했다.
그것은 땅을 박차고 자신을 향해 쇄도해오는 노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천여운이 방아쇠를 잡아당기듯 검결지를 살짝 위로 올렸다.
[판넬(Funnel). 가동.]나노의 목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백이십팔 개의 검이 일제히 움직였다.
-촤촤촤촤촤촤촤촤촤!
그 위용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장관을 그려냈다.
수많은 검들은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며 복면인들 향해 하나씩 쇄도했다.
“마, 말도 안 돼!”
“이 많은 검들이?”
놀란 복면인들이 병장기를 휘두르며 막으려고 했지만, 검이 움직이는 속도는 천여운이 직접 검을 다루는 속도와 거의 동일했다.
-푹!
“끄악!”
-푹!
“컥!”
순식간에 수십 명의 복면인들의 몸이 무력하게 이기어검에 꿰뚫렸다.
사방에서 피가 튀어 오르고 죽음의 비명 소리가 퍼져나가는 것이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채채채챙!
“막아랏! 막아야 한다!”
“뭐? 이, 이걸 무슨 수로?”
복면인들이 소리를 치면서 검초를 펼쳤지만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
하나 하나가 고절한 검초를 펼치는 이기어검들을 무슨 수로 막겠는가.
점차 폐검곡의 절벽 앞이 짙은 혈향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이 광경에 노인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설마 정말로 백 개가 넘는 검으로 이기어검을 펼치는 것을 보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대체 어떤 뇌 구조를 지녔기에 이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통상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노인이 나노의 존재를 알 리가 없었다.
천여운의 대뇌에 자리 잡고 있는 메인 시스템을 담당하는 나노는 원격으로 수억이 넘는 나노머신을 조정할 수 있다.
일반적인 인간의 뇌가 감당하지 못하는 궁극의 연산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나노의 연산능력 보조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네놈도 예외가 아니다.”
천여운이 노인을 향해 검결지를 뻗었다.
-슈우우욱!
“헛?”
노인이 자신을 향해 쇄도해오는 네 자루의 검들에 신형을 날리던 것을 멈추고 재빨리 검초를 펼쳐서 그것들을 막아냈다.
-채채채챙!
고절한 검초를 펼치는 이기어검이기는 하나, 녹이 슨 검들이었기에 노인의 심후한 공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전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큭, 본좌를 우습게 여겼구나. 아닛?”
그런데 허공에 떠있던 천여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애초부터 녹이 슬고 다 부러져 가는 검으로 현경 초입의 고수인 노인을 죽일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천여운 역시도 알고 있었다.
-푹! 푹! 푹!
“크헉!”
“끄아아악!”
검들이 허공을 날아다니며 사방에 피를 뿌리며 끝없이 움직였다.
퍼져 나오는 비명은 죽음의 장송곡이었다.
-타아아앗! 타아아앗! 타아아앗!
땅을 딛고 뛰어가는 소리가 천천히 울려 퍼졌다.
마치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사방에서 피어오르는 핏물들과 아비규환으로 쓰러지는 복면인들의 틈 사이를 가로질러 천여운의 신형이 어딘가로 내달리고 있었다.
‘더 빨리!’
그곳에는 이 단주라 불린 사내가 문규를 향해 검초를 펼치고 있었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재빨리 신의를 탈취하려는 것이었다.
문규가 두 손에 강기를 일으켜서 뻗어 올리고 있었지만 한 박자 늦었다.
-스! 스! 스!
공간을 가로질러서 그의 검이 빠른 속도로 문규의 미간을 향해 찔러들고 있었다.
바로 그 찰나의 순간 천여운의 손에 들려있는 천마검이 횡으로 그어지며 그의 검을 위로 쳐냈다.
-챙!
검을 든 손이 위로 튕겨나간 이 단주의 눈이 커졌다.
‘어, 언제 여기까지?’
그의 눈에는 천여운이 잔상처럼 나타난 걸로 보였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오른손에 쥐고 있는 천마검으로 검을 튕겨낸 것에 이어서 천여운의 왼손에 들려 있는 백룡도가 쾌속하게 이 단주의 목에 닿고 있었다.
-슥!
피부에 차가운 도신이 닿아서야 이 단주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헉?’
동공이 파르르 떨리며 당혹스러워 하던 그 짧은 찰나에 그의 목을 백룡도가 스치고 지나갔다.
-촥!
천천히 흘러가던 시공간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것이 현경의 고수가 보는 속도의 세상이었다.
“앗?”
기습적으로 미간을 찔러오는 쾌검에 놀라서 막으려던 문규가 뜻밖의 상황에 그것을 멈췄다.
어느새 자신을 찔러오던 검이 빗나가서 위로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선?”
-서걱!
이 단주의 목에 붉은 선이 생겨나더니, 이내 갈라져서는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이 단주의 눈동자는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푸슉!
이 단주의 잘려진 목의 단면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천여운이 피를 뿜고 있는 이 단주의 시신을 발로 차서 넘어뜨려, 문규에게 피가 튀지 않도록 했다.
-주륵!
“공자님!”
위기에서 자신을 구해준 천여운의 등장에 문규의 붉은 뺨 위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반면 다른 한 사람의 기분은 최악으로 치닿고 있었다.
“이노오오오오옴!”
네 개의 이기어검을 막느라 일순간 천여운의 족적을 놓쳤다가, 뒤늦게 그를 발견한 노인의 입에서 분노의 일갈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