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76)
# 53장 강림(3) #
화경 초입과 현경의 경지에서 오는 무위의 간극.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 복면인들의 이 단주는 허무하게 목숨을 잃고 말았다.
물론 무위의 간극과 별개로 천여운의 검에서 이어지는 도가 허를 찌른 것도 있었다.
“흑! 공자님!”
-슥!
뺨 위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소매로 닦아주며 천여운이 부드럽게 문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걱정시켜서 미안하다.”
“힝! 정말 돌아가신 줄 알았다고요.”
걱정을 했다 뿐이겠는가.
밤새 오열을 해서 목이 다 쉬었다.
그때 천여운이 몸을 비틀거렸다.
‘두통이….’
머리가 멍해지면서 강한 통증이 뇌 전체를 파고들었다.
“공자님?”
문규가 그를 부축했다가 이마에 심하게 올라온 핏줄들을 보며 놀라했다.
천여운의 이마에 핏줄들이 부풀어 올라서 터질 만 같았다.
[체내에 있는 에너지 소모율 75% 초과했습니다. 대뇌의 과부하로 인해 판넬 원격 조정 시스템을 중단합니다.]나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끊임없이 단전에서 빠져나가던 내공의 소모가 멈춰졌다.
욱신거리던 두통도 가라앉았다.
나노가 판넬 시스템을 중단하자 허공을 가로지르며 수많은 궤적을 그리던 검들이 힘을 잃고서 바닥에 떨어졌다.
-챙그랑! 챙그랑!
“아? 거, 검들이 멈췄다.”
어차피 녹이 슨 검이어서 복면인들을 공격하는 와중에 반 이상이 손상이 갔지만, 진기의 연결이 끊긴 검들은 바닥에 떨어지자 대다수가 부서지고 말았다.
‘역시 너무 많았군.’
천여운이 여전히 멍한 머리를 부여잡고 신형을 바로잡았다.
아무리 나노가 연산 능력을 보조했지만 그것을 조정하는 기본 주체가 천여운 본인이다 보니, 뇌에 무리가 가고 내공의 소모가 심할 수밖에 없었다.
‘반에 반각도 못 버티는군.’
검 백이십팔 개를 이기어검으로 다룰 수 있는 시각은 반의 반각(3분)이 한계였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괴물이라 불릴만한 능력이었다.
혈향과 시신들로 가득한 폐검곡의 절벽 위에 서있는 복면인들이라고 해봐야 고작 열여덟 명 정도에 불과했다.
그들의 실력이 다른 자들보다 뛰어난 것도 있었지만, 운이 좋게도 손상이 심한 검으로 인해 부상을 피할 수 있었다.
‘괴, 괴물!’
‘저 자는 정녕 마신이란 말인가?’
비록 공격이 멈췄다고는 하지만 복면인들은 전의를 상실해 있었다.
불과 반의 반각 만에 백오십 여 명에 팔 할이 죽었으니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두려움과 경외심이 동시에 느껴질 정도였다.
‘남은 놈들을 처리해야 한다.’
“후우!”
천여운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대자연의 기운을 통해 소진된 내공을 회복하려는 순간이었다.
-팟!
“이노오오오옴!”
어느새 그의 두 보 앞으로 노인의 신형이 뻗어와 있었다.
수하들을 잃어서 분노에 차오른 노인이었지만, 천여운이 무리했다는 사실을 발견하자 그 기회를 놓칠 새라 공격해왔다.
“물러나!”
-팍!
“아앗!”
천여운이 자신의 옆에 서있던 문규를 밀쳐내고서, 천마검을 휘둘러 찔러오는 노인의 검을 재빨리 막아냈다.
-채에에에에에엥!
두 현경의 고수가 검을 부딪치자 강한 파장이 생겨나며 두 사람의 주위로 거센 바람이 일어나 주변에 있던 자들을 밀려나게 만들었다.
‘검을 부딪친 것만으로?’
신의 감로수를 업고 있는 백기가 놀라서 보법을 펼치며 그들에게서 떨어졌다.
백기를 보호하고 있는 세 사람 역시도 보조를 맞춰서 물러섰다.
기습적으로 천여운에게 일검을 먹이려 했던 노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내공을 전부 소진한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듯 했다.
십성 공력이 실린 일검을 막아냈는데 오히려 검병을 쥐고 있는 자신의 손이 더욱 떨렸다.
내공의 여부와 상관없이 무위에서 한 단락 차이 때문이었다.
‘나노가 내공이 완전히 소진되기 전에 끊어줘서 다행이군.’
반면 천여운은 다행스러워했다.
내공을 부족했다면 노인의 기습적인 일검에 부상을 당할 뻔했다.
천여운이 왼손의 백룡도를 휘둘러 이 단주를 죽였을 때처럼 노인의 목을 노렸다.
그러나,
-파치치칙!
반대 손으로 검결지를 만든 노인이 검강을 형성해 이를 막아냈다.
천여운처럼 우검좌도를 펼칠 수 있는 것은 아니나 양손에 강기를 일으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당장 신의를 빼앗아라!”
서로 대치한 와중에 노인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살아남은 복면인들에게 소리쳤다.
한참 망연자실해 하던 복면인들이 이내 정신을 차렸다.
“추, 충!”
자신들의 문주가 저 괴물 같은 놈을 상대할 때 얼른 신의를 빼앗아야 했다.
가까이에 있던 복면인들이 일제히 호상화, 허봉, 문규를 향해 병장기를 휘두르며 쇄도했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촥!
“크악!”
어느새 복면인의 앞을 가로막은 사 장로 양단화가 일도에 그의 목을 베어버렸다.
“어리석은 놈들. 우리는 안중에도 없구나.”
그것은 양단화 뿐만이 아니었다.
이 장로 연무화 역시도 노인의 외침을 듣는 순간, 곧장 신형을 날려서 신의를 노리려는 복면인들을 공격했다.
-채채챙!
‘너, 너무 강해.’
검초를 펼칠 필요도 없이 연무화는 기본 검식만으로 그들을 빠르게 쓰러뜨려 나갔다.
복면인들 역시도 고수들이기는 했지만 화경의 고수의 상대가 될 리가 만무했다.
곁눈질로 이를 확인한 노인의 눈빛이 흔들렸다.
‘크으! 이 괴물 같은 놈이 껴서 모든 게 망쳤구나. 대체 이놈과 저들의 정체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들의 정보망에도 없었던 존재들이었다.
무위를 본다면 분명 오대고수에 비견되는 실력을 지닌 천여운이다.
특히 오대고수와 구패에 관한 정보는 확실하게 모았는데, 그들 중에서 고작 약관에 불과한 고수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놈이 지쳤다고 해도 수적으로 밀린다.’
상황이 완전히 반전되어버렸다.
그 혼자서 이들을 감당하기에는 전력으로 밀렸다.
‘별 수 없다. 최고의 살초로 이놈에게 부상을 입힌 후에 도망간다.’
고민하던 노인이 결정을 내렸다.
상당한 시간과 공을 들인 계획이 무산되고 수하들을 대다수 잃어서 화가 나긴 했지만 여기서 물러나지 않는다면 목숨이 위험했다.
‘아쉽구나. 이놈이 내공을 소진했을 때 없애야 하건만.’
단 한 초식 내로 과연 죽일 수 있을지는 확신이 가지 않았지만 별 수 없었다.
-채애앵!
‘검에 힘을?’
천여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검을 맞부딪치고 있던 노인이 검끝을 아래 방향으로 흘려서 이화접목의 수법으로 힘의 방향을 땅바닥 쪽으로 돌렸다.
-쾅!
천여운이 쥐고 있던 천마검과 노인의 검이 동시에 땅바닥에 내리꽂히자 절벽 바닥에 균열이 일어났다.
-쩌저저적!
그 순간 노인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거리를 벌렸다.
그것은 최고의 살초를 펼치기 위한 거리였다.
“받아랏!”
노인의 검 끝에서 강한 공력과 함께 살기가 응집되며 폭발적인 역량의 검초가 펼쳐졌다.
살기를 잔뜩 머금은 검초가 패도적인 기세로 수 갈래로 갈라졌다.
그런데 이 검초가 매우 낯이 익었다.
‘이건?’
-촤촤촤촤촥!
검초의 검식들이 뻗어오는 경로는 일반적인 초식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찌르기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도초에 가까웠다.
‘극도신류?’
그것은 극도신의 도법과 매우 흡사했다.
이 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해 했던 천여운은 본능적으로 그가 극도육무문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채채채채챙!
천여운이 천마검공의 이 초식을 펼쳐서 이것에 대항했다.
일반적인 경로와는 다르게 꺾어 들어오는 검법이었지만 이미 그것을 알고 있는 천여운이었기에 변초를 써서 막아냈다.
-채챙!
‘엇?’
왼쪽 겨드랑이 쪽을 위로 베려고 했던 노인의 두 눈이 커졌다.
이 각도에서는 절대로 예측하지 못할 검식이었는데, 그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던 것처럼 막아내자 뭔가 이상했다.
-채챙!
천여운이 그의 검을 쳐내며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 극도육무문이구나.”
노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정파의 영역에 잠입했기에 최대한 극도신류에 가까운 초식을 자제했는데, 딱 한 번을 쓰고서 탄로가 났다.
‘이놈? 본문의 무공을 알고 있는 건가?’
그런 노인의 반응에 천여운은 그가 극도육무문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이 정도 무위를 지닌 자라면 분명 수뇌부급이 틀림없었다.
‘께름칙하다. 여기서 벗어나야 해.’
-채채챙!
정체가 탄로 난 시점에서 더욱 초조함을 느낀 노인이 검강을 일으켜서 눈을 난잡하게 만드는 검초를 펼쳤다.
그리고서 거리를 다시 벌리려고 했다.
그러나 천여운이 독특한 보법을 펼치며 바로 앞에서 쇄도해오는 검강의 초식을 작은 움직임만으로 피해냈다.
‘이 보법?’
방금 전에 천여운이 펼치는 경신법은 풍신공이었다.
노인은 이것을 보자 몇 달 전에 절강성에서 상대했던 독특한 문양이 그려진 가면을 쓴 사내를 떠올렸다.
‘이놈 설마 그놈인가?’
한 번 겨뤘던 상대가 쓰는 무공 정도는 알아볼 수 있다.
분명 이 보법은 그 가면의 사내가 쓰던 것과 동일했다.
다른 마교의 장로들과 다르게 절묘한 신법으로 극도신류의 절초를 피해낸 후에 자신에게 일격을 가했던 그 자가 틀림없었다.
“네놈 그때 그 가면을 쓴 마교인이구나!”
‘가면?’
노인의 외침에 천여운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 자가 말한 사람은 분명 대호법 마라겸이었다.
‘대호법이 절강성에서 겨뤘다고 한 그 검으로 극도신류의 무공을 썼다는 그 자다.’
마라겸에게 절강성 탈환전에 있었던 일을 상세히 들었던 천여운이다.
그렇다면 이 자를 확실하게 잡아야 했다.
‘이놈이 그 마교인이라면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없애는 편이 좋다!’
도망치려고 했던 노인이 일순간 계획을 변경했다.
그들의 목적 중에는 마교의 전력을 최대한 약화시키는 것도 있었다.
마교의 수뇌부라면 이 자리에서 없애는 편이 본문이 대계를 위해서도 좋다.
-팟!
거리를 벌리려던 노인이 땅을 박차고 다시 신형을 좁혀왔다.
노인은 지금까지 남겨두었던 여력을 전부 끌어올려 극도신류의 절초인 회룡승천(回龍昇天)을 펼쳤다.
“흥! 이번에는 못 벗어날 것이다!”
‘이 초식은?’
노인이 펼치는 극도신류의 초식은 천여운이 비룡(飛龍)이라 명칭했던 극도신류의 육 초식이었다.
그 위력은 전 일 장로 무진원의 육신을 갈가리 찢을 만큼 강렬하다.
검초를 펼치는 노인의 몸이 지면 아래에서부터 위로 회전하자, 검결이 회오리를 치듯이 위로 이어지며 검강이 천여운을 감싸려 했다.
‘네놈이 용케 살아남았던 그 초식이다!’
지난번에는 이 초식을 완전히 익히지 못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때의 분함을 잊지 않기 위해 검초에 맞게 확실하게 보완하여 초식을 완성했다.
-들썩들썩!
천여운의 몸이 극도신류 회룡승천이 만들어낸 강대한 검력에 떠오르려고 했다.
이미 그 시점에서 초식의 팔 할이 먹고 들어간 셈이었다.
‘끝이다!’
그런데 천여운의 표정이 묘했다.
“이걸 당사자인 네놈들에게 시험해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뭐?”
-차차차차차착!
천여운이 오른손에 들고 있던 천마검이 분해되어 팔목 보호대로 변했다.
허공으로 두 발이 살짝 떠오른 상태에서 천여운이 오른손에 쥐고 있던 백룡도를 두 손으로 쥐고서 지면을 향해 내리찍었다.
-쾅!
-스스스스스슥!
그 순간 천여운의 신형이 잔상을 일으키듯 여덟 갈래로 갈라지며, 그의 몸을 둘러싼 회룡승천의 도강을 향해 일시에 여덟 잔상이 여덟 도식을 펼쳤다.
그걸 보는 순간 노인의 입에서 당혹성이 터져 나왔다.
“서, 설마 이건?”
-파치치칙!
“헛?”
여덟 잔상이 펼치는 도식이 용이 승천하는 것처럼 회오리를 치면서 좁혀오는 도강을 일시에 파훼시키며 도강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콰콰콰콰콰쾅!
응집해있던 역량을 일순간에 폭발시키는 패도적인 도초식.
그것은 절벽 아래에서 천여운이 새롭게 얻게 된 극도신류의 칠 초식이었다.
‘이럴 수가! 어, 어찌 이런 일이?’
놀란 노인이 다급히 검강을 일으켜서 극도신류의 방어 초식을 펼쳤다.
그러나 그 위력은 너무도 파괴적이었다.
-채애애앵!
“끄으으으윽!”
-쩌저저적!
방어 초식을 펼치는 노인의 검신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금이 간 검신을 꿰뚫고 푸른빛의 도결이 그의 상반신을 갈랐다.
-촤아아악!
“컥!”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와 함께 사방으로 퍼져나간 도초의 위력에 땅바닥에 모래 파편이 일어나 일시적으로 시야가 뿌옇게 변했다.
‘쓸 만한데?’
천여운이 바닥에 내리꽂힌 백룡도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마지막 팔 초식과 다르게 칠 초식은 기존의 도식들을 이용한 초식이었기에 짧은 시간 내에 분석하여 익히게 된 새로운 절기였다.
그 위력은 전반부 초식들보다도 훨씬 뛰어났다.
-고오오오오!
이윽고 뿌옇게 일어난 먼지가 가라앉았다.
천여운의 주위로 여덟 갈래로 갈라진 도흔의 흔적은 포탄이라도 터진 것만 같았다.
-챙그랑!
땅바닥으로 부러진 검신이 떨어졌다.
그것은 노인이 들고 있던 긴 장검이었다.
“쿨럭.”
겨우 버티고 있던 노인의 입에서 선혈이 터져 나왔다.
그의 상반신 쪽이 비스듬하게 피로 젖어가고 있었는데, 도식을 막아내지 못하고 베인 듯 했다.
부상보다도 노인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네, 네놈이 어떻게 그 분의 도법을…..푸웃!”
-털썩!
그 말을 끝으로 노인이 입에서 한 번 더 피를 뿜으며 고꾸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