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78)
# 54장 나라고 못할 것 같으냐? (2) #
단전을 파고드는 심후한 공력은 사내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다주었다.
구슬과도 같은 형태를 갖추고 있던 사내의 단전에 실금 같은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쩌저저적!
무림인에게 있어서 가장 큰 고통은 단전이 파괴되는 고통이라 했다.
육신의 고통도 상상 이상이었지만, 무인이 평생을 이룬 성취를 일순간에 잃는 그 고통은 정신을 피폐하게 할 만큼 크나큰 상실감을 안겨준다.
“끄아아아아아아악! 이노오오옴! 차, 차라리 나를 죽여라.”
비명을 지르던 사내의 입에서 죽이라는 말마저 나왔다.
하지만 천여운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그의 단전을 파괴시켜버렸다.
-콰지직!
“끄어어어어억!”
뭔가 속에서 일그러지는 소리가 나며 사내가 비명을 지르다가 이내 혼절해버렸다.
물론 그 혼절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짝!
뺨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통증에 사내가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
얼굴이 땀으로 젖어서 하얗게 질려버린 얼굴.
단전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고통.
“헉….헉…헉…”
‘내, 내가 내공이 없다니…..내공이….’
이미 적에게 잡힌 마당에 죽음을 각오했지만, 내공을 상실하자 그 심정은 말로 이룰 수가 없었다.
그런데 천여운이 갑자기 그의 눈 앞에 대고 두 손바닥을 마주쳤다.
-짝!
알 수 없는 그의 행동에 의아해하던 사내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놈 설마?’
내공을 상실했지만 손바닥을 부딪칠 때 미묘하게 다른 소리가 났다.
그것은 분명 내공을 실은 것이 틀림없었다.
“하? 지금 네놈 혹시 암시를 걸려고 한 것이냐?”
암시.
그것은 최면의 전조다.
극도육무문의 수뇌부라 할 수 있는 사내가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극도육무문의 문주들 중에서 환술에 능한 자가 있었다.
마교에 스스로 간자를 자처해서 들어갔다가 소식이 끊겼기에 극도육무문에서는 그가 죽었다고 판단했다.
‘마교에 밑천을 털린 것이냐?’
그렇게 자신만만해 하더니 결과가 한심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환술은 자신에게 아무 소용이 없다.
“잘 아는군.”
천여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박수 한 번을 쳤을 뿐인데 바로 알아차릴 줄은 몰랐다.
이에 사내가 비웃음을 흘렸다.
“하아….하아….멍청한 놈이로구나. 본문의 술법을 따라하다니?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나?”
비록 단전이 파괴되어서 내공을 상실했지만,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서 암시를 견디는 훈련부터 양귀비 약물을 견디는 내성까지 생기도록 대비했다.
자신들의 술법에 당할 만큼 허술하지 않았다.
“하아….크큭…..크하하하하핫.”
“?”
“괴물 같은 무위 때문에 걱정했는데 괜한 기우 였구나. 머리가 생각만큼 돌아가지 않는구나. 네놈이 정말 마교 교주라고? 헛소..”
-꽉!
“우읍!”
“시끄럽군.”
또 다시 천여운이 그의 입을 움켜잡았다.
기분이 나빴지만 밧줄이 몸이 묶여있어서 반항할 수가 없었다.
천여운이 사내의 입을 잡고 강제로 벌리게 하더니, 바닥에 있던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그것은 약탕기였다.
“우으으읍! 쥐, 쥐굼 뭘 허료는 고냐?”
-팍!
“웁!”
천여운은 아무 대답없이 약탕기의 길게 뻗어나온 주둥이 부분을 사내의 입에 물렸다.
그리고는 탕기 안에 담긴 약물을 입안에 들이 부었다.
당황한 사내가 그것을 뱉어내려고 했지만,
-꽉!
“켁켁! 꿀꺽! 꿀꺽! 크엑!”
천여운이 손가락을 움직이자 코가 막혀서 약물을 강제로 넘길 수밖에 없었다.
약물이 아직 식지 않아서 입안이 데일 만큼 뜨거웠다.
-팍!
적당히 약물을 먹인 천여운이 약탕기의 주둥이를 입에서 빼냈다.
“쿨럭….쿨럭!”
한참을 기침을 하던 사내가 입안이 데인 고통도 잊고서 천여운을 향해 비웃으며 말했다.
“크큭, 소용없다고 했을 텐데. 정말 어리석구나.”
약물 제조법을 용케 알아냈다고 해도 자신들은 내성이 있었다.
옆 방에 있는 복면인들에게도 똑같은 짓을 해도 쓸데없는 시간 낭비였다.
“본문에서 그 정도 대비를 하지 않…..흐어어….뭐, 뭐얏? 이, 이게 무슨….”
-휘청휘청!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온몸이 나른해지면서 뭔가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세상이 요지경으로 바뀌는 것 같았다.
흐물흐물 녹을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힌 사내가 겨우겨우 정신을 붙잡고 물었다.
“네…..흐으으….네놈….대체 약에 무슨 짓을?”
“네놈이야말로 멍청하군. 내가 설마 네놈들이 쓰는 그 약물을 그대로 쓸 것 같았냐?”
“뭣?”
천여운이 사내에게 먹인 약물은 나노가 미래의 약물 지식이 복합되었다.
나노는 그것을 자백제라고 불렀다.
[총 서른다섯 가지 자백제 중에서 서른 가지는 국제법에 의거하여 금지 되었습니다. 의료용으로 겸용해서 쓰이는 약물 중에 리탈린(ritalin)이라는 것이 있습니다.]리탈린은 정신흥분제, 중추신경을 자극하는 약물이다.
의료용으로 보편적으로 쓰이지만 군(軍)에서는 자백제로 쓰기도 한다.
나노는 기존의 약물에 이것을 더해 비율을 맞춰서 더욱 효과를 높게 만들었다.
왠만한 약재가 다있는 신의의 의약당 덕분이기도 했다.
“네놈들 것보다 훨씬 강하게 만들었다.”
“마…말도 안 돼? 그 약물을 강화시켰다고?…..흐으으…어떻게?”
내성을 길러서 약물이 소용 없으리라고 여겼는데,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잘 먹혔다.
갈수록 몸이 나른해지고 뭔가 계속 말을 하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다.
-꽉!
입술을 깨물며 겨우 잠에 깨려는 것처럼 고개를 흔드는 그에게 천여운이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네놈들도 한 것을 나라고 못할 것 같으냐?”
“비, 빌어먹을!”
-짝!
“아, 안 돼!”
-짝!
천여운의 손에서 특정 주파수를 내는 내공이 담긴 박수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지자, 이내 그의 동공이 멍해졌다.
완전히 암시에 빠져든 것이었다.
내심 반신반의 했었는데 정말로 최면이 먹혀 들자 천여운은 내심 신기해했다.
단전이 폐해지면서 무공을 잃어서 더욱 잘 걸렸다.
‘그럼 하나씩 물어볼까?’
나노가 알려준 최면법을 기준으로 행해보기로 했다.
천여운이 그의 눈앞에 박수를 한 번 치고서 암시의 기준을 정했다.
“내가 손가락을 튕길 때마다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한다.”
-딱!
“…..알겠다.”
이제 조건이 걸렸으니 질문만 하면 된다.
천여운은 멍하게 있는 사내에게 먼저 정체를 물었다.
“이름이 뭐지?”
-딱!
“본좌는 극도육무문의 여섯 문주 중의 한 명인 검도문주 이백이다.”
천여운의 눈이 반짝였다.
확실하게 통했다.
스스로의 정체를 뚜렷하게 이야기를 했으니 말이다.
무엇부터 물어야 할지 고민하던 천여운이 우선 가장 궁금한 것부터 묻기로 했다.
“신의를 왜 데려가려 한 거지?”
-딱!
“그가 그분이 남기신 물건을 가지고 있다.”
그분이라는 지칭에 천여운이 인상을 찡그렸다.
최면에 걸린 상태에서도 존칭을 칭하는 것을 보면 머릿속에 강하게 각인된 자인 듯 했다.
“그 물건이 뭐지?”
-딱!
“극무지체(極武至體)를 만들 수 있는 인체도다.”
“극무지체? 그게 뭐지?”
-딱!
“그것은 본문 최고의 무공인 극도신무(極刀神武)를 완벽하게 익힐 수 있는 신체이다.”
‘극도신무?’
왠지 모르게 그가 말한 무공 명이 극도신의 도법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천여운이 물었다.
“내가 네놈에게 펼쳤던 그 도법이 극도신무인가?”
-딱!
“그렇다.”
도법을 익힌 지 근 몇 달 만에 그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이 극무지체를 만들 수 있는 인체도를 얻으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어째서 그 인체도가 필요한 거지?”
-딱!
“극도신무는 보통 방법으로는 익힐 수 없는 무공이다. 대법을 통해 인간이 단련할 수 없는 신체부위를 한계치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아!”
이 이야기를 듣자 천여운이 납득이 가는지 탄성을 흘렸다.
생각해보면 극도신무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익히기 힘든 무공이었다.
천여운 본인은 나노의 도움으로 근육과 근섬유질을 인간의 한계치까지 변환 시킬 수 있었지만, 이 무공은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익힐 수 없는 도법이었다.
‘잠깐…..그런데 이들이 어째서 그게 필요한 거지?’
극도신의 후예라는 자들이 선조의 무공을 완벽하게 익힐 방법을 모르기라도 한 단 말인가.
어째서 이 대법을 구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게다가,
‘어떻게 신의가 그 인체도를 가지고 있는 거지?’
궁금했다.
그래서 그것을 물었지만,
“그것은 알 수가 없다.”
“응?”
의외로 극도육무문에서는 신의 감로수가 그 물건을 얻은 경로는 모르고 있었다.
하긴 그것마저 알고 있었다면 진즉에 탈환하려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질문을 바꾸었다.
“그럼 어떻게 안 거지?”
-딱!
“정파 무림맹의 숨겨진 비밀 조직 창천회의 간자를 통해 알았다.”
“창천회?”
무림으로 출도하기 전에 정파 무림맹의 조직 정보에 대해서 꽤 숙지했는데 처음 들어본다.
창천회는 대체 무슨 조직일까?
의아해하는데 이백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창천회의 계획 중에 신의의 대법을 이용해 인간의 한계치를 넘어선 무인 양성이 있다는 것을 입수하면서, 그것이 극무지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정보를 입수한 극도육무문에서는 이를 탈환하기위해 그를 파견한 것이다.
무당파에서 신의를 감시, 보호하고 있다는 정보까지 얻어낸 그들은 숨겨진 신의의 은신처를 찾아내기 위해 한 달이 걸렸다.
폐검곡이 워낙 정파의 영역 한 가운데 였기 때문에 전력을 분산시켜서 한곳에 다시 모이느라 시간을 소요한 것도 있었다.
‘그래도 의문점은 풀렸구나.’
이 정도면 극도육무문이 신의를 노린 의문점을 풀 수 있었다.
이제 가장 중요한 그들의 비밀을 알아낼 차례였다.
그 동안 밝혀지지 않은 극도육무문의 숨겨진 전력, 비밀들을 알아낸다면 더이상 그들이 만들어내는 흐름에 휘둘리지 않고 반격을 가할 수 있으리라.
* * *
한편 폐검곡의 암석 장벽 안으로 허봉과 백기가 복귀하면서 단 한 명만 도착하지 않았다.
도망간 무당패검 현운자를 추적하고 있는 이 장로 연무화였다.
절벽에 있던 복면인들의 시신들을 전부 태우느라 옷과 얼굴이 그을린 자국으로 가득한 허봉과 백기였다.
“이것도 일이네요. 휴.”
허봉이 지친다는 듯이 말했다.
백기 역시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숨을 돌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들에게 사 장로 양단화가 말했다.
“고생했네. 언제 출발할지 알 수 없으니, 허 부관과 백 단주는 잠시 눈이라도 붙이고들 있게나.”
정파 영역의 한 가운데였기 때문에 도망간 현운자가 아니더라도 언제 정파인들이 나타날지 몰랐다.
그래서 양단화는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쉬기를 권했다.
그때 의약당 건물에 있던 신의 감로수가 난처한 얼굴로 나타났다.
“감 파파?”
“이, 이보게들.”
“무슨 일입니까? 아직 그 물건을 못 찾은 겁니까?”
감로수가 중요한 서적을 잃어버려서 찾아야 한다는 말을 들은 그들이었다.
“의약당에는 아무 것도 없네. 혹시 밖에 특이한 종이로 만든 서적이 떨어져있다거나 본 적이 없나?”
감로수의 물음에 세 사람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있을 리가 없었다.
그 물건은 무당패검 현운자가 들고 있으니 말이다.
“아아아!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선조 대대로 물려받은 보물을 이런 식으로 잃어버리니,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던 차에 장벽 안으로 들어오는 입구 쪽에서 뭔가 소리가 들려왔다.
-바스락!
‘앗!’
놀란 사 장로 양단화와 백기, 허봉이 경계심이 올라서 기수식을 취하며 언제라도 출수할 준비를 했다.
조용히 전음을 보내서 신의 감로수에게 말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긴장하고서 기다리는 차에 동굴 통로 쪽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사람은 바로,
“연 장로!”
통로에서 나타난 사람은 바로 이 장로 연무화였다.
도망간 무당패검 현운자를 추적하러 갔던 그녀가 드디어 복귀한 것이다.
뒤늦게 복귀한 그녀는 등에 무언가를 찢은 옷가지로 동여매고 있었는데, 팔 다리가 잘려서 머리만 있는 몸통이었다.
“아!”
그 자는 바로 무당패검 현운자였다.
상대가 구패 중의 한 사람이라 걱정한 것과 달리 연무화는 그를 잡아오는데 성공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피로 얼룩진 연무화의 옷이나 창백한 얼굴을 보면 그를 잡느라 꽤나 고생한 모양이었다.
동급의 고수였으니 쉽게 제압할 수 없었으리라.
‘이, 이 자들은 정말 잔인하구나.’
그 동안 자신을 압박해온 현운자이지만 몸통만 남은 몰골을 보자 신의 감로수의 눈빛이 떨려왔다.
의원이라서 괜찮았지 보통 사람들이라면 눈을 뜨도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감로수는 이들이 절대로 정파인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반면,
‘훌륭하다!’
동맹을 떠나서 정파의 큰 전력 중 하나인 구패 중 한 사람인 현운자를 제압한 것은 마교의 입장에서는 큰 성과였기에 사 장로 양단화가 그녀를 축하해주려 했다.
“연 장로! 정말…”
-펑!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장원의 어딘가에서 폭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저, 저곳은?”
그곳은 바로 천여운이 극도육무문의 수뇌부 중의 한 사람인 도검문주 이백을 심문하는 건물 쪽이었다.
“주, 주군!”
-팟!
놀란 천여운의 수하들이 일제히 그곳으로 신형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