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8)
# 8장 네놈이 자초한 거다(1) #
어두웠던 하늘이 점점 밝아지며 짙은 남색 빛을 띠어갔다.
차가운 새벽 공기에 마도관의 대연무장에 옅은 안개가 끼었다.
그런 대연무장의 구석 편에 조심스러우면서 빠르게 경공을 펼치는 이가 있었으니, 우호법 광도 섭맹이었다.
평소와 같이 마도관의 본관 이 층의 한 창문에서 뛰어내린 그는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 조심스럽게 탈출을 감행하고 있었다.
워낙 무공 수위가 높다보니 그가 작정하고 기척을 감추면 무공 교두들이나 경비를 서는 무사들이 알아채기는 힘들다.
그러나 그런 섭맹의 뒷모습을 본관 옥상 위에서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찰랑거리는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중년인과 독특한 문양의 가면을 쓴 존재였다.
그들은 바로 좌호법 염왕 이화명과 교주의 호위를 맡고 있는 대호법 명왕 마라겸이었다.
“드디어 저 쥐새끼, 아니 우호법이 가는군요.”
“그 동안 일부러 모른 척 하느라 수고했다.”
“훗, 누구의 명인데 이를 어기겠습니까? 이제 우호법이 쥐구멍을 드나드는 걸 보지 않게 되어서 좋군요.”
놀랍게도 그들은 열나흘 동안 우호법 섭맹이 몰래 마도관의 본관을 드나들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 있었다.
물론 엄밀히 이야기 한다면 눈치 챈 것이 아니라 실상은 묵인해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제 다시 이층 복도에도 경비 무사들을 세워야겠군요. 그 동안 충분히 쉬었을 테니 말이죠. 크큭.”
그 동안 유독 이 층의 경계가 늦춰져 있던 이유였다.
천여운이 입원을 하는 기간 동안 고의적으로 본관의 이 층에는 경비 무사들을 비워두고 있었기에 섭맹이 자유롭게 출입을 할 수 있었다.
경계가 느슨해진 조용한 새벽이라도 소음이 들렸어도 아무에게도 발각되지 않은 이유였다.
“나는 이제 가보겠다.”
볼일이 끝났다는 듯이 가려고 하는 대호법 마라겸에게 이화명이 물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칠 공자를 배려하는 이유가 뭡니까?”
무공을 가르치는 우호법 섭맹을 묵인하게 만든 것은 마도관의 규칙을 관주의 손으로 어기게 만든 꼴이었다.
마교의 지존인 교주의 명이 아니었다면 단 번에 거절했을 사항이었다.
그런 이화명의 물음에 가던 발걸음을 멈춘 대호법 마라겸이 조용한 목소리로 짧게 대답했다.
“그게 공평하니까.”
“후후후, 그래도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은 없다는 겁니까?”
이화명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늘을 두고 의문을 가지지 마라.”
대답을 마친 대호법 마라겸의 신형이 흐릿해지며 순식간에 본관 옥상에서 그 모습을 감췄다.
“핫! 작정하고 도망치면 절대로 못 잡겠군.”
그의 경공 능력은 마교 내에서도 명왕이라는 별호 이외에도 풍신(風神)이라 불리는 자답게 좌호법 이화명 조차도 순식간에 종적을 놓칠 정도로 대단했다.
대호법 마라겸이 사라지고 나서 이화명은 얼굴을 굳히며 중얼거렸다.
“고작 열나흘 만에 공평해질까?”
태어났을 때부터 벌모세수에서부터 각종 영약과 영재 교육을 받아온 여섯 종파의 소교주 후계자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우호법 섭맹의 무공을 배웠다고 한들 기간이 너무 짧았다.
과연 열나흘이라는 시간이 천여운에게 도움이 될지 의문인 이화명이었다.
날이 밝고 마도관의 대연무장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오전 일과가 시작되었다.
모든 생도들이 대강당에 모여서 전술과 전법에 관한 교육이 진행될 무렵에도 천여운은 의무실의 침상에 누워있었다.
“흐음?”
누워있는 천여운을 의아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이가 있었으니, 의원 백종명이었다.
평소라면 자신이 출근하기 전부터 일어나있던 천여운이 아직까지 잠이 들어있으니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긴 편하게 쉴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일 테니까.’
백종명이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무공 교두 임평이 와서 했던 말을 떠올려보면 같은 숙소에 복마종의 소교주 후보자인 천무금이 있다고 들었다.
아마도 퇴원하는 순간부터 천여운의 팔자는 사납게 돌아갈 것이다.
이를 배려하기 위해서라도 조금이라도 쉴 수 있게 해주자는 의미에서 백종명은 조용히 장막을 쳐주고 자신의 집무 책상으로 갔다.
한편 그가 잠을 자고 있다고 생각한 천여운의 몸에서는 크나큰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접무도법(蝶舞刀法)의 초식 동작 시뮬레이션 데이터 목표치까지 사용자의 근육 섬유질 변환 80% 진행. 근맥 변환 75% 진행. 100% 완료까지 1시간이 예정됩니다.]천여운의 체내에 있는 육십사억 팔천이백사십만 개의 나노머신이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그의 근육 섬유질과 근맥을 변환시키고 있었다.
장호위의 단검비술의 초식 동작에 해당하는 변환을 할 때보다도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었다.
섭맹이 떠나고 난 묘시(卯時) 무렵부터 계속해서 진행 중이었는데 아직 완료를 마치지 못했다.
‘뭐? 세 시진? 왜 이렇게 오래 걸려?’
[위 동작을 행할 수 있는 비사용자 섭맹의 수준까지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변환 소요 예측시간입니다.]자그마치 세 시진이나 걸린다는 말에 천여운은 경악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은 어찌 본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장 호위의 단검비술 역시도 훌륭한 무공이긴 했지만 우호법 섭맹의 접무도법과는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다.
마교에서도 대대로 호법가의 무공인 접무도법은 절학이라 불린다.
그런 절학을 자유롭게 펼치기 위해서 우호법 섭맹이 거쳐야 했던 수련은 장 호위의 것보다 훨씬 지독하면서도 강한 끈기를 요했다.
아무리 나노 머신이라고 할지라도 사용자의 육신을 단 번에 변환시키면 심각한 반작용이 일어날 수 있기에 장시간을 소요해서 변환을 진행 중인 것이었다.
그렇게 반 시진의 시간이 지났다.
[사용자의 근육 섬유질 변환 및 근맥 변환이 100% 완료되었습니다.]그와 동시에 천여운의 마취가 풀리며 정신이 깨어났다.
눈을 뜨게 된 천여운은 침상에서 일어나 바닥을 향해 미친 듯이 토를 올렸다.
“우웨에에에엑!”
토를 하는 내내 온몸에 경련이 심하게 일었다.
장시간 동안의 마취 및 근육 섬유질과 근맥 변환으로 인해 몸에 과부하가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평생을 무공을 단련하여 지금과 같은 고절한 경지에 오른 우호법 섭맹의 수준에 상응하는 육신으로 변환 이전을 하는 것이니 반동이 큰 것은 당연했다.
“무, 무슨 일이야?”
오늘도 역시나 환자가 없는 의무실의 책상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던 의원 백종명이 놀라서 부리나케 달려왔다.
바닥에 토를 하고 있는 천여운의 등을 토닥이다가 진정되자 침상에 눕혔다.
심한 반동으로 인해 지친 천여운이 마취가 아닌 진짜로 잠이 들었을 때 그의 맥을 재본 백종명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뭐지? 꼭 몸을 아주 미친 듯이 혹사한 것처럼 맥이 뛰네.’
가만히 자고 있던 사람의 맥이라고는 믿기 힘든 현상이었다.
의구심이 드는 와중에 나노 머신은 천여운의 상태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다음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사용자의 육신 변환 전이에 대한 체내 반동의 안정화를 진행합니다.]그러나 그가 맥을 짚고 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심하게 뛰던 맥이 가라앉았다.
방금 전까지 그런 증상을 보인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평안한 얼굴로 잠이 들어 있었다.
“아나. 진짜 뭐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미궁에 빠져드는 백종명이었다.
그렇게 반 시진의 시간이 지나고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잠이 들어있던 천여운이 드디어 눈을 떴다.
잠에서 깨어난 천여운의 눈빛에는 지금까지와 다른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침상에서 일어나 주먹을 가볍게 움켜쥐어 보았다.
-꾸욱!
손에 들어가는 힘이 다르다는 것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이것만으로도 우호법 섭맹이 얼마나 고단한 단련을 해왔는지 짐작이 갔다.
만약에 자신이 훈련한 수준의 육신을 고작 세 시진 만에 얻어낸 것을 섭맹이 알게 된다면 까무러칠 정도로 놀랄 것이다.
“백 의원님?”
의무실에서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불러보았다.
점심 시간이었기에 식사를 위해 백종명은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그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천여운이 의무실의 한가운데로 가서 접무도법의 기수식을 취해보았다.
도는 없지만 손바닥을 펴서 도(刀)라는 느낌으로 초식을 발현했다.
-촤촤촤촥!
천여운의 몸이 쾌속하게 움직이며 그 손날이 허공을 갈랐다.
유연하게 동작을 펼치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빠른지 섭맹이 그를 위해 보여주었을 때와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좋아!”
자신이 펼치는 접무도법의 일 초식에 기분이 좋아진 천여운이 이 초식을 펼치려다 복도에서부터 걸어오는 기척을 감지하고 그것을 멈췄다.
‘아!’
그리고 보니 미처 몰랐었는데 감각이 예민해졌다.
육신의 변환이 일어나면서 감각 역시도 그에 상응할 만큼 발달하게 된 것이었다.
의무실의 문이 열리고 백종명이 들어오려고 할 때, 천여운이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뭐? 뭐가 끝나? 언제 일어난 거야?”
영문을 모르는 백종명이 언제 일어났는지 의무실 한가운데 서있는 천여운을 향해 물었다.
머쓱해진 천여운이 괜히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퇴원 준비가 끝났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백종명은 마지막으로 진맥을 통해 천여운의 상태를 확인하고 그가 완치되었음을 공표했다. 그리고 이제 퇴원을 해도 좋다고 말해주었다.
왔을 때와 같이 녹청색의 무복을 입고 칠(七)이라 적힌 검은 명찰을 가슴에 달고 있는 천여운에게 백종명이 섭섭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에휴, 안 그래도 환자도 없는데. 너까지 가면 심심해서 어쩌냐?”
환자가 많을 거라 예측한 것과 달리 아직까지 텅 비어있는 의무실이다.
의무실을 나갈 준비를 마친 천여운이 웃으며 말했다.
“곧 많아질 겁니다.”
꽤나 의미심장한 말이었지만 백종명은 아무 생각 없이 환자가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그러겠지? 아니다. 환자가 없어서 오히려 좋은 거지.”
“의원님께 신세 많이 졌습니다.”
“그래. 고생이 많을 테지만 무운을 비마.”
우호법 섭맹에게 무공을 배운다는 사실을 그가 눈감아주지 않았다면, 불편한 마음으로 의무실에서 보냈을 것이다.
많은 배려를 해준 그에게 천여운은 많은 고마움을 느꼈다.
그 고마움에 대한 대가로 백종명이 그렇게 원하는 환자를 꼭 보내줘야겠다고 결심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대연무장에는 진형 훈련을 위해 전 생도들이 조별로 나뉘어서 모여 있었다.
-웅성웅성!
그때 팔 조에 있는 모든 생도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집중되었다.
그 동안 의무실에 입원해서 열나흘 동안이나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천여운의 등장 때문이었다.
‘드디어 왔구나. 크크크큭.’
팔 조의 조장을 맡고 있는 복마종의 소교주 후보자인 천무금의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번졌다.
그렇게 학수고대하던 천여운이 나타났다.
대연무장으로 온 천여운은 팔 조의 앞에서 색색의 깃발을 들고 있는 무공 교두 임평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걸어갔다.
“왔구나.”
“네 교두님!”
“몸은 더 이상 문제가 없나?”
“전부 완치되었습니다.”
“그것참 다행이구나. 이론으로 설명하긴 했다만 네 위치는 기억하고 있겠지?”
다행이라는 말은 했지만 퉁명스러운 목소리에 그다지 내켜하지 않고 있었다.
일부러 진형에서 가장 변화가 작고 역할이 많지 않은 곳으로 배치를 해두긴 했지만 한 명이라도 실수를 하면 위태로운 것이 전술진이었다.
“그렇습니다.”
“좋아! 그럼 이걸 들고 저쪽으로 가도록!”
임평이 진형 훈련에서 천여운이 맡은 자리를 가리켰다.
그 동안 계속 훈련에 빠졌기 때문에 좋은 평가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천여운은 철갑 안에 들어있는 진검과 방패를 챙겨서 빠르게 그곳으로 달려갔다.
공교롭게도 이레(7일) 단위로 진검으로 진형 훈련을 하는데 오늘이 그 날이었다.
진형의 맨 앞에서 중요한 위치를 맡고 있는 천무금이 자신의 앞으로 뛰어오는 천여운을 향해 이죽거리며 경고를 하려 했지만,
“무서워서 벌벌 떠느라 이제 온 거냐? 이 더러운…”
-휙!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천여운이 무시하듯이 그냥 스쳐지나갔다.
어이가 없었는지 천무금이 황당하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런데 그를 스쳐지나가는 천여운과 눈이 마주쳤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그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어떠한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뭐지?…..이 새끼 눈빛이…..’
오히려 천여운의 눈빛은 한 번 제대로 겨뤄보자는 듯이 천무금을 도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