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82)
# 55장 용호채 (3) #
오상루의 총관 만오는 당혹스러웠다.
그는 구실을 만들어서 의뢰자들을 돌려보내라는 루주의 명령을 이행 중이었다.
마교의 고위직에 있는 양단화가 모실 정도라면 본성이 있는 십만대산의 요직의 인물이라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그의 정체를 요구하면 어떤 식으로든 정보 교환에 응하지 않으리라 여겼다.
-꽉!
“컥!”
겉보기만 봐서는 그저 약관의 공자라고 여겼는데 단단히 착각하고 말았다.
허공섭물을 펼칠 정도의 고수라면 엄청난 실력자를 의미했다.
‘비, 빌어먹을…..이놈 인피면구를 쓴 마교의 수뇌부가 틀림없다.’
화경의 고수라면 자신들이 어찌할 수 있는 자가 아니었다.
괜히 다른 별실에서 접대하는 자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도리어 된통 깨지게 생겼다.
“루주가 호위인 척 하면 쓰나.”
‘마, 말도 안돼? 대체 어떻게?’
의미심장한 천여운의 말에 호위 무사로 분한 진정한 오상루의 루주는 놀란 나머지 말문을 잃고 말았다.
암문의 수장이자 루주의 자리에 오른 후로 외부의 누구에게도 정체를 밝힌 적이 없었다.
그런데 천여운이 단번에 그의 정체를 알아냈다.
‘그가 루주라고?’
천여운의 수하들 역시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지 놀라워했다.
무공 수위가 높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총관인 만오나 진정한 루주의 무위가 그리 높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소리였다.
‘안 된다.’
어떻게든 잡아떼야 한다고 생각한 만오가 여유롭게 뒷짐을 지던 것을 풀고서 외쳤다.
“무, 무슨 짓이오. 그는 내 호위 무사이건만.”
“호위 무사? 웃기는군.”
-고오오오오!
별실의 사방에서 요동치는 살기들은 바깥에 대기한 기척들이 내뿜고 있는 것이었다.
일개 호위무사가 제압 당했다고 보일 반응이 아니었다.
[루주!]만오가 어찌할 바를 몰라서 루주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러나 목을 움켜쥐고 있는 마당에 답변을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괴, 괴물이다.’
절정 초입의 고수인 루주였지만 천여운의 손아귀 속에서는 하찮은 벌레에 불과했다.
조금만 손에 힘을 준다면 언제든지 목이 부러져서 죽을 것이다.
‘우리의 선을 벗어났다. 사죄를 하고 돌려보내야 한다.’
루주는 짧은 순간에 수많은 고민을 했다.
처음부터 마교의 지부장 급의 고수라고 하여 함부로 할 수 없기에 적당한 명분으로 보내려고 했는데, 이러다가 정말 사달이 벌어질 것 같았다.
절대로 그들과 마주치게 해서는 안 된다.
“켁….켁…제, 제발…”
루주가 천여운에게 놓아달라고 부탁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 말이 바깥에서 대기하는 자들에게는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제발….살려달라고?’
구원요청으로 판단한 오상루의 무사들이 일제히 별실 벽을 부수고 난입했다.
-쾅!
벽을 뚫고 들어오는 무사들의 모습에 총관 만오가 놀라서 소리 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안….”
-촤아악!
벽을 부수고 난입한 무사들이 미리 뽑아둔 병장기를 천여운의 일행들에게 휘둘렀다.
그들의 도검이 단숨에 양단화, 허봉, 백기 등을 일도양단하려 들었다.
그러나,
-챙!
사 장로 양단화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상태로 가볍게 손가락을 움직여서 그들의 도검을 막아냈다.
마교의 사람들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십성 공력으로 공격 했던 무사가 당혹스러워했다.
손가락에 막힌 검날이 부러졌기 때문이었다.
‘소, 손가락으로 검을?’
고작 이류 고수인 그가 완숙한 화경의 경지의 고수를 벨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너무 커다란 격차로 양단화는 굳이 일어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다.
난입한 무사들 중에 가장 뛰어난 수준의 고수가 일류에 불과했기에 일행 중에서 가장 무공이 낮은 허봉조차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파파파팟!
“크헉!”
“으악!
-쿠당탕!
허봉이 검조차 뽑지 않고 가벼운 권각술로 덤벼드는 그들을 날려보냈다.
쾌속한 그의 권각에 맞은 오상루의 무사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나가떨어졌다.
“오!”
허봉이 자신의 손에 나가떨어진 무사들을 보면서 뿌듯해했다.
사실 허봉의 무위는 무림에서도 중상위권에 속하는 축이었지만 주변에 워낙 강자들이 넘치는 바람에 그 진가를 발휘할 틈이 없었을 뿐이었다.
게다가 최근에 폐검곡을 다녀온 이후로,
-챙!
-우웅!
“허, 헉! 거….검강?”
허봉이 뽑은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에 공격해 오던 무사들이 일제히 멈췄다.
초절정의 경지부터만이 가능한 검강을 선보였기 때문이었다.
‘고, 고수다!’
제일 어리버리해 보여서 그를 노렸는데 놀랍게도 초절정의 고수였다.
허봉은 얼마 전에 초절정 초입에 올랐다.
그것은 폐검곡의 암석 장벽에 있던 천마 조사가 남긴 검흔으로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중소 종파의 생도에 불과했던 그가 단주 급의 실력이 되었으니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이다.
“계속 할 건가요? 히히. 참고로 일행 중에서 제가 제일 약합니다.”
자신감이 넘치는 허봉의 목소리에 결국 그들은 항복의 의사를 밝혔다.
모두가 무기를 바닥에 내려놓자 천여운이 피식하고 웃으며 움켜 잡던 손아귀의 힘을 거두었다.
“쿨럭쿨럭!”
한참 기침을 하던 루주가 다소 공손해진 태도로 말했다.
“쿨럭….손님들께 신분을 속여서 죄송합니다. 오상루의 루주인 두현이라고 합니다.”
“총관인 만오라고 합니다. 죄송합니다.”
만오 역시도 바닥에 무릎까지 꿇고서 사죄했다.
일개 정보를 파고 사는 문파인 그들이 어찌할 수 없는 자들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괜히 심기를 건드리는 것보다 비굴하지만 이 편이 나았다.
분위기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자 천여운이 물었다.
“수로십팔채에서 후원한다고 했나?”
“…..그렇습니다.”
“그들의 산하에 속한다고 봐도 무방하겠군.”
“그, 그건 아닙니다. 상하 관계라기 보다는 서로의 이문을 위한 협약 관계로 보시면 됩니다. 후원이라는 것이…”
-쾅!
“크헉!”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백기가 그의 머리를 잡고 탁자에 내리찍었다.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오상루의 루주 두현의 귓가에 백기의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군을 상대로 말 장난을 할 생각 따윈 버려라.”
“아, 알겠습니다!”
정보 단체라서 그런지 말로 혼선을 주려는 것을 백기가 사전에 차단했다.
게다가 그들이 원하는 정보는 암문이 그들의 산하이든 협약 관계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거두절미하고 묻겠다. 수로십팔채 중에서 용호채의 위치가 어디에 있지?”
천여운이 궁금한 것은 오직 그것 뿐이었다.
그런데 그 질문을 하자 루주 두현의 반응이 이상했다.
뭔가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했다.
‘뭔가 있군.’
그 예상은 들어맞았다.
천여운의 귓가로 루주 두현에게로 향하는 총관 만오의 전음이 들려왔다.
[루주. 차라리 지금 별실에 있는 그자들을 내보내겠습니다. 이러다간 정말 사달이라도…] [아니다. 그자들이 가라고 한다고 고분고분하게 갈 사람들이느냐. 이 자들도 무섭기는 하지만 적어도 말은 통하지 않겠느냐.]‘별실?’
이곳에 들어왔을 때부터 전음을 도청하고 있던 천여운이었다.
그들의 전음 대화를 들어보면 별실에 그들이 두려워하는 누군가가 있는 듯 했다.
잠시 총관과 전음을 나눈 루주 두현이 천여운에게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대협. 부디 이번 한 번만 물러나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뜬금없이 물러나 달라고 부탁하자 천여운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이곳에 황하삼귀가 있습니다.”
“황하삼귀?”
“대, 대협 조금만 조용히…..”
그의 사정이 어찌되었든 천여운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호남성 북부 지부장으로 활동했던 양단화는 그 이름을 잘 알고 있었다.
황하삼귀(黃河三鬼).
그들은 수로십팔채 중에 북풍채의 간부들로 악명 높은 자들이었다.
무공이 뛰어나서 악명을 떨친 것이 아니라 습격한 배를 강탈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내들은 전부 죽이고 여인들은 납치할 만큼 악질적인 자들이었다.
관에서도 현상금을 걸고 있는 자들인데 태연자약하게 도시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알고 있는 자들입니까?”
“네. 갈씨 삼 형제는 유명합니다.”
천여운의 질문에 양단화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알려주었다.
가장 중요한 정보는 그들의 악명보다 가장 껄끄러운 점이었다.
“수로십팔채의 총두목인 황하패주 갈모잠의 조카들입니다.”
황하패주(黃河霸主) 갈모잠.
그는 중원 구패의 일인이자 사파 연맹의 여덟 간부 중 서열 사 위에 해당하는 절대고수다.
갈모잠에 대해서는 천여운 또한 들은 적이 있었다.
그가 있기 때문에 황하에 수적 떼들이 무리를 이루어 판을 쳐도 관에서 암묵적으로 묵인해주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실상은 수로십팔채에서 관에 정기적으로 갖다 바치는 뇌물이 천문학적이기 때문이다.
“뒷배가 좋은 녀석들이군요.”
“그렇습니다.”
사파의 거두인 황하패주 갈모잠은 잔인한 성정을 가진 자였지만 자신의 형제나 가족들은 끔찍이 여겨서, 예전에 누군가 황하삼귀가 타고 있는 북풍채를 공격했던 자들을 찾아내 구족까지 멸한 적이 있다.
그 이후로 북풍채와 황하삼귀는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대협.]말을 하던 루주 두현이 갑자기 전음을 보냈다.
[저희를 후원하는 곳이 북풍채입니다. 이들에게 황하를 타는 표국이나 상단 배들에 대한 정보를 주는 대가로 보호받고 있습니다.]결국 루주 두현이 자신들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가 바닥에 기절해 있는 무사들과 병장기를 내려놓고 바라보는 자들을 눈빛으로 가리키며 전음을 보냈다.
그 말에 천여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루주가 전음을 보내가면서 눈치를 보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말실수를 했다가 간자들이 고할 지도 몰랐다.
[대협께서는 이번 한 번만 정보를 얻으시면 끝날 일이지만, 저희는 식솔들의 생계와 암문의 명운이 달려있습니다. 부디 선처 부탁드립니다.]황하삼귀는 수틀리면 아군이고 할 것 없이 칼부터 들이내미는 작자들이었다.
보통 그들이 이곳에 오면 나흘 가량을 방탕하게 먹고 놀면서 머무는데, 오늘이 고작 첫날에 불과했다.
그런 와중에 용호채에 일이 터지게 되면 당연히 정보를 팔아넘긴 그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팍!
루주 두현이 바닥에 이마를 박으며 정중히 말했다.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정보를 팔 수가 없습니다.”
[대협, 제발 부탁드립니다.]이것은 그에게 있어서 모험이나 마찬가지였다.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천여운을 비롯한 양단화는 마교에서 높은 자들이다.
마교 역시도 무섭고 껄끄러웠지만 적어도 대화라는 것이 통했는데, 이들 황하삼귀는 태생부터가 강도, 살인, 납치를 일삼는 도적들이라 하는 짓이 행패에 가깝다.
‘아무리 마교의 높은 자들이라고 해도 황하삼귀가 연루되어 있으니 어느 정도 이해는 해주겠지.’
라고 루주 두현은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한 가지 사실을 몰랐다.
천여운의 행보나 생각은 타인과는 남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군. 그런 사정이 있을 줄은 몰랐군. 그렇다면 그 황하삼귀란 녀석들은 아래층에 있나?”
“아!”
기감을 열어서 황하삼귀가 어디에 있는지 짐작하고 있었지만 천여운은 그들의 위치를 물었다.
천여운이 자신들의 사정을 이해했다고 여긴 그가 밝아진 얼굴로 답했다.
“양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황하삼귀는 이 층의 별실에 있습니다.”
그러자 천여운이 고개를 돌려 수하들을 향해 명했다.
“들었지? 허봉, 백기. 이 층으로 내려가서 황하삼귀를 잡아와라.”
“!?”
천여운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명령에 별실에 있던 암문 사람들의 두 눈이 커졌다.
이와 달리 허봉과 백기는 명령이 떨어지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외치며 별실 바깥으로 신형을 날렸다.
“충!”
“대, 대협! 대체 이게? 방금 전에 분명히 양해해주신다고…”
“내가? 그런 말을 한 기억은 없는데.”
퉁명스러운 천여운의 말에 루주 두현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천여운의 말대로 양해를 해주겠다는 식으로 직접 말을 한 적은 없었다.
어이가 없어진 두현이 다급히 말했다.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하시는 겁니까?”
“이런 짓.”
-우득!
그 순간 천여운의 손을 뻗어서 뭔가를 돌리는 시늉을 하자, 부서진 별실의 벽 쪽에 서있던 무사 중 한 사람이 갑자기 목이 꺾여서 바닥으로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