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84)
# 56장 선상 위의 재앙 (1) #
천여운과 일행들은 묵경시를 벗어나 동쪽으로 황하를 따라서 백 리(里)를 이동했다.
말을 타고 이동했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태양이 지평선으로 반쯤 가라앉아서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누런 황하가 붉은 빛을 머금고 은은하게 반짝거렸다.
-다그닥! 다그닥!
“와아!”
“아름답군요.”
강을 따라 말을 몰고 있었는데, 그 해질녘의 모습은 금이라도 울리는 느낌마저 들었다.
태어나서 마교의 성에서만 자라온 천여운과 허봉, 백기 등은 그 광경을 눈만이 아닌 가슴에도 담아두었다.
한참을 달려온 그들은 드디어 두문산 근경에 이르렀다.
죽은 황하삼귀의 둘째인 갈택이 말했던 것처럼 큰 강이 좌측으로 갈라져서 작은 하로(河路)를 만들었다.
“정말 강이 갈라지는군요.”
그들은 강이 갈라지는 방향을 따라서 말을 몰았다.
그곳을 따라가자 작은 강이 두문산 쪽으로 뻗어가고 있었다.
어느 지점부터는 두문산이 이동 경로를 막고 있어서 말을 두고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강이 이어지는 곳을 산을 타고서 넘자, 산으로 가려진 곳에 수십 채의 투박한 오두막 집들이 보였다.
그들이 찾던 용호채였다.
“와! 저런데 숨어있으니 안 보일 만도 하네요.”
허봉이 혀를 내둘렀다.
강이 갈라지는 어귀에 가려져 있어서 천해의 요새라고 할 수 있었다.
산을 등지고 강을 앞에 끼고 있어서 언제든지 배로 이동할 수 있으니, 수적들에게 있어서는 최적의 보금자리이기도 했다.
“망루들이 꽤 보입니다.”
사 장로 양단화가 손으로 몇 군데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망루가 있었고 그 위에 감시를 서고 있는 수적들이 보였다.
중요한 거점지에 망루들이 있어서 어느 방향에서 접근하든 용호채 쪽으로 다가가면 단번에 포착할 수 있게 해놓았다.
‘단순한 도적들은 아니구나.’
사파에서도 악명이 자자한 수로십팔채 중의 한곳이다.
당연히 경계에 구멍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저기 배가 꽤 크군요.”
산 위에서 천여운이 수로채의 선착장에 정박해 있는 배 두 척을 가리켰다.
황하를 따라서 말을 타고 오면서 여러 배들이 떠있는 것을 보았는데 웬만한 것들보다 훨씬 컸다.
“흠….뭔가 이상합니다.”
그런데 양단화는 커다란 배를 보면서 이상하게 여겼다.
천여운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그 이유를 말해주었다.
“제가 알기로 수로채의 배들이 작은 편은 아니지만 저렇게 크진 않습니다. 수적들이다보니 좀 더 날렵한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황하의 인근인 호남성 북부 지부장을 맡았던 그답게 여러 차례 수로채의 약탈선, 전투선들을 보았다.
그런데 그런 배들치고는 상당히 컸다.
꼭 대량의 짐들을 옮기기 위한 배처럼 보였다.
“양단화님 저길 보세요.”
허봉이 가리키는 곳에 많은 사람들이 짐을 옮기는 것이 보였다.
스무 명 정도 되는 장정들이 수레에 많은 짐들을 담아서 끌고 가는데, 그곳은 선착장 방향이었다.
짐을 나르는 행렬이 긴 것을 보면 수로채에 있는 것들을 전부 옮기는 것 같았다.
“저긴 오두막을 해체하는 것 같습니다만.”
백기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서너 명의 장정들이 오두막에 달라붙어 그것을 해체하고 있었다.
막 도착했을 때는 몰랐는데 집의 삼분지의 일 가량이 해체되어 있었다.
그것을 유심히 지켜보던 양단화가 천여운에게 말했다.
“주군. 아무래도 용호채에서 근거지를 옮기려는 것 같습니다.”
“근거지를요?”
양단화는 정황상 저들이 수로채를 옮긴다고 판단했다.
원래부터 수적들은 몇 달에 한 번 꼴로 근거지를 옮겨서 관이나 적들의 눈을 피한다고 알고 있었다.
다만 하필 그들이 이곳에 도착한 시점에 옮기는 것이 공교로웠다.
그렇다고 해도 이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행일 수도 있습니다. 저들이 근거지를 이동하려는 때를 이용한다면 굳이 큰 마찰을 피하고서 신의의 손녀를 탈환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들이 평소와 같다면 오히려 탈환 과정에 마찰이 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근거지 이동을 위해서 바쁜 틈을 노린다면 더욱 쉽게 빼낼 수도 있다고 판단한 양단화였다.
“그 전에 저들의 상황부터 알아야겠군요.”
“그렇습니다.”
천여운의 말대로 정보가 필요했다.
저들이 정말로 근거지를 옮기는지부터 신의의 손녀가 구류된 곳.
그곳을 알지 못한다면 헤매게 될 것이다.
“백기.”
“네.”
천여운이 그들이 있는 위치에서 제일 가까운 망루를 가리켰다.
망루 위에 두 명의 감시자들이 있었다.
“저들을 조용히 잡아올 수 있겠어?”
“해보겠습니다.”
각법을 익힌 만큼 경공 실력이 육검들 중에 가장 뛰어난 백기였다.
게다가 망루에 감시자들이 있다고 해도 일류고수에 불과했기에 백기가 특별히 실수만 저지르지 않는다면 납치하는데 무리는 없어보였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팟!
천여운의 명을 받은 백기가 기척을 죽이고서 경공을 펼쳤다.
빠르게 산을 타고 내려가는 그의 모습이 어느새 망루 쪽까지 도달했다.
산 위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그들은 잘 보였다.
‘잘하고 있군.’
-타타탓!
백기는 단숨에 망루 위로 올라가 감시자들 중 한 사람의 목을 비틀었다.
-우득!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이 당황해서 소리를 지르려 하자, 그의 아혈을 점한 뒤에 뒷목을 쳐서 기절시켜 버렸다.
“후우.”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들키지 않고 해야 한다는 생각에 괜히 긴장되었다.
백기가 그를 들쳐 메고서 빠르게 망루를 내려갔다.
그런데 여기서 백기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뭐야? 네놈!”
공교롭게도 그가 망루에서 내려오자 교대 근무자들이 나타난 것이었다.
백기가 놀라서 그들을 향해 신형을 날리려는 순간,
-파팍!
“크헉!”
-우드득! 털썩!
두 교대 근무자들의 뒤에서 나타난 허봉과 양단화가 그들을 제압했다.
산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그들은 망루 쪽으로 다가오는 교대 근무자들을 발견하고서 얼른 내려온 것이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괜히 일이 커질 뻔했다.
“심장 떨어질 뻔 했죠? 히히.”
“아, 아니다.”
허봉의 놀림에 백기가 강하게 부정했다.
“조용히 하고 시신들부터 옮기게.”
“네넵.”
양단화의 말에 허봉과 백기가 죽은 교대 근무자들의 시신을 망루에서 떨어진 우거진 수풀에 숨겨놓았다.
그 사이에 양단화는 기절해 있는 감시자를 들쳐 매고서 산 위로 올라갔다.
천여운의 앞에 감시자를 내려놓은 양단화가 말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교대 근무자들까지 처리했으니 잠시간은 눈치 채지 못할 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닐 것이다.
오랫동안 있어야 할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면 눈치 챌 테니 말이다.
서둘러야 했다.
양단화가 기절해 있는 감시자를 깨웠다.
“헙?”
깨어난 감시자는 자신이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했는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그의 아혈을 풀기 전에 양단화가 단단히 경고했다.
-챙!
“소리를 지르면 죽일 것이다. 알겠다면 고개를 끄덕여라.”
목에 닿아 있는 차가운 도날에 감시자가 고개를 미친 듯이 흔들었다.
죽기는 싫은 모양이었다.
아혈을 풀어준 양단화가 그에게 은밀한 목소리로 물었다.
“오늘 용호채의 근거지를 옮기는 것이냐?”
“그, 그렇습니다.”
예상대로였다.
신의의 손녀의 소재를 묻기 전에 양단화가 한 가지를 더 물었다.
“왜 오늘 옮기는 거지?”
“저, 저희 채의 근거지가 노출되었다고 해서 옮기는 겁니다.”
“근거지가 노출 돼?”
그 말에 천여운이 인상을 찡그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아니야. 곧장 이곳으로 오지 않았나.’
황하삼귀를 처리하고 나서 곧바로 묵경시를 떠나, 이곳 용호채로 온 그들이었다.
이 짧은 시간 내에 정보가 흘러나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양단화가 그를 다그쳐서 어디에 노출되었는지를 물었지만 감시자에 불과한 그는 그것까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저, 정말 모릅니다!”
목에 칼을 들이대도 말하지 않는 것을 보면 정말 모르는 듯 했다.
양단화가 가장 중요한 것을 물었다.
“신의의 손녀는 어디에 구류되어 있지?”
“네? 신의의 손녀?”
-팍!
피부를 파고드는 도날에 감시자가 기겁을 했다.
“히이이익!”
“수작부리지마라.”
“저, 정말 처음 들어봅니다. 신의의 손녀는커녕 지금 저희 채에 구류된 자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구류된 자들이 없다고?”
이상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신의의 손녀다.
자백제에 당한 무당패검 현운자가 했던 말이었다.
용호채에 연통을 넣어서 언제든지 받을 수 있도록 손을 썼다고 했는데, 그것이 거짓일 리가 없었다.
‘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천여운이 물었다.
“감미양이라는 여자를 모르나? 근육질에 얼굴의 코에 점이 있고…”
신의 감로수는 손녀가 자신과 완전히 쏙 빼다 닮았다고 했다.
특히 대대로 의술을 익혀온 그녀의 가문은 남녀 할 것 없이 근육을 발달해서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했었다.
“근육질의 여자? 아! 부, 부채주님의 전리품, 아니 여자 분을 말씀하시는 건지?”
외모와 이름을 말하자 감시자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챘다.
천여운의 예상대로 용호채에서는 그녀의 정체를 모르는 듯 했다.
알고 있다면 신의를 끌어낼 수 있는 중요한 인질이니, 현운자가 일부러 숨겼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데 있었다.
“부채주의 여자?”
감시자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소식에 일행들의 인상이 굳어졌다.
아무래도 일 년 사이에 뭔가 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감 파파가 알면 난리 나겠는데요.”
“…..그렇겠군.”
아무리 무당패검 현운자와의 뒷거래로 납치했다고 하나, 일 년씩이나 수적인 용호채에서 여자인 감미양을 그냥 내버려뒀을 리가 만무했다.
허봉의 말대로 신의 감로수가 이것을 알게 되면 대성통곡을 하리라.
“그렇다면 그녀는 어디에 있지?”
어쨌거나 생사를 확인했으니 위치를 알아야 했다.
양단화의 질문에 감시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 지금 그녀는 배에 있습니다.”
“저 배를 말하는 거냐?”
한참 짐을 옮기느라 정신이 없는 선착장 앞의 배를 가리켰다.
그러자 감시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강 어귀를 벗어나 다시 황하로 빠지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호걸(豪傑) 분들은 전부 강 위의 배에 있습니다.”
“뭐?”
의아해진 천여운이 경공을 펼쳐서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가보았다.
황하로 빠지기 전의 부근에 다섯 척의 날렵한 전투선들이 쇠사슬로 연결해놓고 닻을 내리고 강 한가운데에 정박해있었다.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