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87)
# 56장 선상 위의 재앙 (4) #
“역시 주군이셔!”
허봉이 신이 나서 외쳤다.
예전부터 어떠한 적에게도 휘둘리지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꽤 난감하다고 여겼었다.
하다 못해서 아기를 내세워 협박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반면 사 장로 양단화는 내심 무섭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허패라는 확신이 있으셨던 것일까? 가끔 교주께서는 꼭 타인의 생각이나 전음을 듣는다는 착각마저 생기게 한다.’
천여운과 대면한 적들을 하나 같이 당황스러워 한다.
그가 그들의 계획을 관찰이라도 한 것처럼 알아채니 말이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그런 일이 있을 리는 만무하기에 대단한 배짱과 상황 판단 능력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그 여섯 종파를 무너뜨린 저력을 알 것만 같다.’
오직 천여운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판단되었다.
양단화가 힐끗 돌아서 백기의 옆에 주저앉아 있는 신의의 손녀 감미양을 바라보았다.
“읍읍읍…..”
허패라는 말을 듣고서 안도하고는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그녀였다.
양단화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저 여자가 문제군. 쯧.’
어찌 되었거나 이곳에 아기가 없다는 것은 다시 용호채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자신의 아기를 지키기 위해 구출하는 자의 뒤통수를 쳤던 그녀다.
이해하지 못할 부분은 아니었지만 그 아기를 구출하지 않는다면 똑같은 일이 반복될 지도 몰랐다.
그런 양단화의 귓가로 천여운의 전음이 들려왔다.
[양 장로.] [네. 교주님!]인주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복호선을 밟고 있는 천여운의 말투에서 허패가 드러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떻게 알아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선상에 아기가 없다는 사실을 적이 알고 있다.
‘기감으로 알아차린 것일까?’
어찌 되었거나 인주는 눈앞의 저 괴물이 무력 이상으로 상대하기 껄끄럽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어쩔 수 없구나.’
인주는 천여운의 신경이 온통 복호선에게로 향했을 때를 노려야 한다고 여겼다.
여기서 우물쭈물 했다가는 현경의 고수와 난전을 벌여야 한다.
[효명!] [네. 주군!]인주가 수적들의 뒤편에 가려져 있는 창천회의 무사 중 한 사람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들은 굳이 모습을 드러낼 필요가 없기에 뒤에서 대기 중이었었다.
[시간을 끌고 있을 터이니, 헤엄을 쳐서라도 뭍으로 올라가서 아기를 데려와라. 혹시나 문제가 생겨서 난전이 벌어진다면 그냥 죽여도 좋다.] [아….기를 말씀입니까?] [신의가 저놈들의 뜻대로 움직이게 된다면 창천 계획에 지장이 생긴다!] […..알겠습니다!]여차하면 아기를 죽이라는 말에 망설여졌지만 이내 효명은 알겠다고 답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배의 후미 쪽으로 향했다.
물살이 세서 헤엄치더라도 한참 밀려나겠지만 뭍으로 올라가기만 한다면 용호채까지는 경공으로 금방 갈 수 있다.
‘허패가 진패가 되어서도 강하게 나올 수 있나 보자꾸나.’
천여운의 발에 밟혀있는 용호채의 채주인 복호선에게 미안하기는 했지만 구해줄 수 없을 것 같다.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하니 말이다.
헤엄쳐서 건너는 시간부터 용호채에서 이곳까지 오는 거리를 친다면 적어도 이각 정도의 시각은 필요했다.
“끄으으으으윽! 제, 제발!”
채주 복호선은 정말로 죽을 것만 같았다.
공력을 끌어내서 밀쳐보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공력도 그렇고 이 말도 안 되는 괴력 때문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급해진 복호선은 죽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에 사로잡혀서 결국 항복의사를 밝혔다.
“그, 그냥 보내줄 터이니, 아니….아기도 줄 터이니 제발 살려주시오!”
수하들이 지켜보는 앞이지만 자존심을 챙길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천여운이 어느새 부터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뭔가 생각에 잠긴 사람처럼 말이다.
“이, 이보시오?”
“아아! 미안하군. 잠시 뭘 듣느라 말이야.”
“본 채주가 항복한다고 하지 않았소. 제, 제발 살려주시오.”
이에 천여운이 담담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글쎄. 네놈이 항복한다고 해도 다른 한 녀석의 생각은 그렇지 않아 보이는데.”
“그, 그게 무슨 소리요? 한 녀석이라면 설마?”
“네놈과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것이지.”
“자, 잠까아아안!”
-우드드득!
채주 복호선의 가슴을 밟고 있던 천여운의 발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복호선의 가슴이 움푹 들어가면서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더니, 그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오며 비명을 질렀다.
“끄릅! 끄아아아아아악!”
하지만 그 비명은 오래가지 않았다.
천여운의 발에 가슴이 완전히 함몰되면서 복호선의 숨이 끊겼기 때문이었다.
“채, 채주!”
“이, 이놈이 감히!”
자신들의 채주가 비참하게 죽자 이를 지켜보던 수적들 중에 분노를 이기지 못한 일부가 천여운을 향해 병장기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촥!
“헉? 이게 무슨?”
“사, 사라졌어!”
그런데 그들이 휘두른 병장기가 천여운을 통과해 지나가버렸다.
그들이 공격한 대상은 잔상에 불과했다.
어느새 천여운의 신형은 다시 양단화가 서있는 배의 머리 부근에 도달해 있었다.
‘어째서?’
인주가 의아해했다.
채주가 자신의 입으로 항복하고서 아기를 준다고까지 했다.
충분히 솔깃할 만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천여운은 아무런 고민도 없이 그를 죽여 버렸다.
‘큭, 시간을 더 끌어야 하는데.’
자신의 수하들이 강물로 뛰어 내린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마 지금쯤 물살에 밀려나가면서 뭍으로 올라가려고 부단히 애쓰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시간을 끌어야 할지 고민하던 차에 천여운이 인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놈. 잔꾀가 많은 놈이군.”
“잔꾀?”
그 말과 함께 천여운이 손으로 검결지를 만들어, 이기어도에 죽은 수적들의 시신이 있는 곳을 향해 휘젓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둥둥!
시신들의 곁에 있던 여섯 자루의 도검들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히이익!”
“도, 도검들이?”
“비, 비켯!”
-쿠당탕!
근처에 있던 수적들이 허공으로 떠오른 도검들에 화들짝 놀라서는, 서로 도망치려고 밀치고 바닥에 넘어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런데 떠오른 도검들이 노린 것은 그들이 아니었다.
천여운이 배의 머리 쪽으로 다가가서 강물이 있는 방향을 힐끔 쳐다보더니, 인주를 향해 큰 목소리로 말했다.
“열심히 헤엄치고 있군.”
그 말을 듣는 인주의 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배 갑판 쪽으로 다가가는 게 불안했는데 헤엄치고 있는 수하들의 존재를 들켰다.
‘어, 어떻게 알아차린 거지?’
분명 죽은 용호채의 채주를 상대하는 사이에 조용히 지시를 내렸다.
아무리 기감이 넓다고 해도 삼백 명이 넘는 무인들이 포진해있는 곳에서 이것저것 신경 쓰는 것은 힘들었다.
“강물에서 헤엄치고 있으면 못 잡을 거라 생각했나? 그럭저럭 닿을 것 같네.”
하류로 이어지는 곳이라 빠른 강물의 유속 때문에 배에서 상당히 멀어진 수하들이었다.
그런데 천여운은 충분한 거리라고 말했다.
“그게 무슨?”
그때 인주의 두 눈이 커졌다.
‘서, 설마?’
천여운이 검결지를 움직이면서 강물이 있는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둥둥 떠있던 여섯 자루의 도검이 일제히 빠른 속도로 강물 쪽을 향해 날아갔다.
-슈슈슈슈슈슉!
“안 돼에에에에!”
인주가 놀라서 경공을 펼쳐서 뛰어오른 후에 넓은 도신의 도를 뽑았다.
그의 도에서 푸른빛 도강이 치솟았다.
인주가 다급히 강물로 날아가는 도검을 향해 탄도강을 날렸다.
-촤아아아악!
어떻게든 막으려는 발악이었지만 이미 먼저 날아간 도검을 기가 응집한 강기라고 해도 따라잡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공력을 끌어올려서 물살을 헤치며 헤엄치고 있던 창천회의 무사들에게 봉변이 일어났다.
-푸푸푸푸푹!
“끄악!”
“컥!”
갑작스럽게 날아온 도검에 헤엄치던 그들의 몸이 꿰뚫렸다.
물속에서 무방비로 있던 그들은 어이없이 도검에 죽음을 맞이하여 수장되고 말았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전부 도검에 맞은 것은 아니었다.
“비, 빌어먹을!”
“잠수해!”
-푸웃!
선두에서 헤엄을 치다가 비명소리를 들은 효명과 한 사람이 물속으로 잠수했다.
단번에 헤엄치던 다섯 사람을 죽인 도검이 힘을 잃고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투투툭! 풍덩!
거리가 점점 멀어져서 진기가 끊겼기 때문이었다.
‘아아아!’
그것을 본 인주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무리 현경의 경지에 오른 괴물이라고 해도 저렇게 먼 거리까지 이기어검의 수법을 유지하는 것은 무리였다.
두 사람만 살아남은게 그랬지만 이제 충분했다.
-탁!
인주가 선상 바닥으로 내려오자 쾌재하며 소리쳤다.
“아무리 그대라고 해도 저들을 막을 수 없소! 저들이 어디로 향했는지는 그대도 갈 거라 생각하오. 허패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겠소?”
다시 유리한 고지에 섰다고 생각한 인주의 목소리가 득의양양해졌다.
아기를 가지고 위협하는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 따윈 사라진지 오래였다.
이에 천여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는,
“양단화.”
“충!”
양단화가 들고 있던 보도를 손에서 놓자 그것이 공중에서 멈췄다.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양단화가 보도의 위로 뛰어올랐다.
-탁!
그의 발이 도에 안착하자마자 천여운이 손을 좌측을 향해 길게 뻗자, 양단화를 태운 보도가 배를 벗어나 허공을 가로질렀다.
“아, 아닛?”
물살이 거센 허공을 가로지른 양단화가 거의 뭍에 도착했다.
그쯤 되어서 도에 실려있던 천여운의 진기가 끊겼지만 이 정도 거리는 단숨에 뛰어넘을 수 있었다.
-팟!
양단화가 힘이 약해지는 도를 박차고 경공을 펼쳐서 뭍으로 도약했다.
-탁!
‘성공했다!’
양단화 역시도 처음 도전해보는 일이었기에 내심 불안했는데, 성공하자 얼굴이 환해졌다.
이것을 보면서 인주가 놀라다 못해서 어이가 없어했다.
아직 두 명의 수하들이 강물에서 올라온 것을 보지도 못했는데, 천여운의 수하는 너무도 쉽게 뭍에 도착했다.
“이, 이런 미친!”
결국 그의 입에서 거친 소리가 튀어나왔다.
‘이기어도를 이런 운송 수단으로 이용하다니?’
생각지도 못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사실 이 방법으로 아까 전 수하들을 배 위로 올려 보낼 수도 있었지만, 너무 눈에 띠는데다가 들킬 수도 있기에 조용히 잠입하는 것을 택했던 그들이었다.
천여운이 당혹스러워하는 인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를 어찌하나? 그 아기도 내 손에 들어오게 생겼네.”
이죽거린다고 생각한 인주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소리쳤다.
“빌어먹을! 아기가 있는 위치나 알고 하는 소리요?”
“채주의 거처가 아닌가?”
“뭣?”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천여운의 말에 죽립에 가려진 인주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정확하게 아기가 있는 위치를 알고 있었다.
‘마…..말도 안 돼!’
처음에는 그저 아무렇지 않게 여겼는데 뭔가 이상했다.
‘채, 채주가 내게 전음으로 했던 말을 저자가 대체 어떻게 안단 말인가?’
전음을 엿듣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능력은 사람으로 하여금 경외감만을 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경계심 혹은 두려움마저 준다.
‘아기나 신의가 문제가 아니다.’
인주는 이제야 진짜로 위험한 것이 무엇인지 인지했다.
저 약관에 불과해 보이는 괴물은 무위만 위험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능력마저 가지고 있다.
정말 그것이 전음을 읽어내는 능력이라면 최악이라 할 수 있었다.
‘저놈을 여기서 수장시키든 도망치든지 무슨 수를 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