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90)
# 58장 오대고수의 전인 (1) #
횃불 몇 개만이 밝히고 있는 어두운 밤.
황산의 숲에 둘러싸여 가려진 용호채로 누군가 나타났다.
걸음 소리가 작고 일정한 발걸음을 가진 그는 무림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기척을 감지하기 어려운 것치고는 이 낯선 방문자는 눈에 띨 수밖에 없었다.
등에 교차로 차고 있는 상당한 크기의 두 개의 대검(大劍).
그리고 한 쪽 어깨에 걸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산중왕이라 불리는 범이었다.
죽어서 늘어진 범을 가지고 용호채 내로 들어온 것이었다.
-화르르륵!
용호채 내로 들어선 그의 얼굴이 일렁이는 횃불에 드러났다.
헝클어진 머리에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털옷을 입었는데, 많이 봐줘도 이십대 중반에 불과한 청년이었다.
“응?”
용호채로 들어온 청년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이상하네. 이 시간 때쯤이면 수적 녀석들도 전부 들어와서 쉬었던 것 같은데.’
청년이 느끼기에는 용호채에 있는 기척이라고는 오십여 명에 불과했는데, 전부 여인과 어린아이들 정도인 것 같았다.
‘뭐,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지.’
어차피 이들이 어디를 나가든 관심이 없었다.
자신의 볼 일은 ‘그녀’에게 있으니까 말이다.
청년은 익숙하게 용호채의 어딘가로 향했다.
그곳은 용호채에서도 채주인 복호선의 오두막보다는 작았지만 다른 일반 수적들의 것보다는 훨씬 큰 규모를 가진 곳이었다.
울타리가 쳐져 있는 오두막으로 다가가던 청년이 멈춰 섰다.
미묘한 느낌을 받은 그는 바로 울타리 안쪽의 항아리들을 모아놓은 곳으로 가보았다.
“어?”
그곳에 수적으로 보이는 사내가 몸이 접혀서 죽어있었다.
숙여서 이 자를 살펴보니, 정확한 사인은 목이 부러져서 죽은 듯 했다.
‘시신을 몰래 숨기기 위해 허리를 접은 건가?’
죽어있는 수적의 시체를 발견한 청년은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쿵!
울타리 안에 죽은 범의 사체를 내려놓은 그가 오두막을 두드렸다.
솔직히 말하면 ‘그녀’와 그 남편이란 놈이 있어야 할 방안에 아무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 유모가 있어야 할 오두막의 방안에도 말이다.
‘약을 받아야 하는데. 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가 오두막의 한 방에 들어가 보았다.
그곳은 약재실처럼 꾸며져 있었는데 혹시나 그곳에 만들어놓은 물건이 있나 싶어 확인했다.
그러나 약재들은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고 조합된 환약 같은 것이 없었다.
“칫. 이 정도로 자주 왔으면 여분 정도는 만들어놨겠다.”
혀를 차면서 청년이 약재실을 나와 어딘가로 향했다.
그곳은 근방에 있는 오두막 중 하나였다.
오두막 중 한 곳에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에 말을 묻기 위해서였다.
-쿵쿵!
두드리는 소리에 오두막 방안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중년의 여인 한 명이 잠에 깨서 초췌한 얼굴로 나왔다.
“아니. 누가 이 밤중에 두드리는….아?”
청년을 본 중년의 여인이 화들짝 놀라했다.
그를 잘 알고 있는 눈치였다.
놀란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대, 대협께서 어찌 제 오두막에 오신 겁니까? 감 부인을 찾아온 게 아닙….아!”
중년의 여인은 지금 용호채에 그녀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긴 그렇지 않고 이 청년이 근방의 거처에 살고 있는 자신을 찾아올 리가 없었다.
“어디에 있어?”
“가, 감 부인을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
중년의 여인은 그녀가 지금 강 위에 있는 합쳐진 선단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 위치를 알려주자 청년은 고맙다는 말 한마디와 함께 사라졌다.
청년이 사라지자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중년의 여인이 문지방에 털썩 주저앉아서 중얼거렸다.
“어휴. 간 떨어질 뻔 했네. 이래서 채를 얼른 옮겨야 해.”
청년이 나타날 때마다 두렵다.
혹시나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서 그 괴물 같은 자가 모습을 드러낼까봐 말이다.
한편 같은 시각.
용호채의 전투선과 수적들이 수장당한 곳의 앞에 자리하고 있는 산중턱.
그곳에서는 누군가의 심문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큰 나무에 묶여 있는 전신의 피부가 찢겨져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는 사내가 있다.
그는 수적들에게 인주라 불리는 자였다.
인주라 불리는 자는 두 눈동자의 동공이 풀려서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상이….창천회….의 조직 구조요.”
“흠.”
그 앞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자들은 천여운과 그 수하들이었다.
사 장로 양단화가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정파에서도 이런 급진주의자들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이에 허봉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완전 미친놈들인데요. 정파의 세상이야 뭐 그렇다 치고 사파와 본교와 관련된 자들은 구족까지 깡그리 죽이겠다는 발상 자체가 웃기네요.”
창천회(蒼天會).
푸른 하늘을 만들기 위해 뭉쳤다는 정파의 비밀 조직이다.
그들은 정파 내에서도 대문파나 큰 힘을 가진 자들이 뭉쳐서 만든 조직이라고 한다.
정도를 지향하는 정파 내에서도 가장 급진주의자들로 뭉쳐졌다.
자백제와 최면에 걸린 인주는 창천회의 목적과 조직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말해주었다.
“거의 망상 수준인데요.”
허봉이 이렇게 열을 내는 것은 그들의 목적에 있었다.
앞서 그가 말한 대로 창천회의 목적은 그들의 정의에 벗어나는 자들을 전부 몰살시켜 정도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은 정파에서 지향하는 이념과는 거리가 멀었다.
“굳이 정파라는 이름을 내세울 자격이 없군.”
백기도 혀를 차면서 말했다.
그 과정에 있어서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사파의 이념에 가까웠다.
‘회주와 다섯 간부라….’
그들은 조직의 정점이라 불리는 회주와 다섯 간부,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창천회에 가입한 정도의 무인들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다섯 간부는 천주(天主), 지주(地主), 인주(人主), 음주(陰主), 양주(陽主)이다.
천지인과 음양에서 따온 듯 했다.
‘정파 사람들의 발상답군.’
천여운이 다시 질문을 이어갔다.
“다섯 간부들은 서열 순인가?”
-딱!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인주가 움찔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니오. 회….주를 제외하면…전부….동등….한 관계이요.”
대답을 하는 인주의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
말을 계속 지체하면서 하는 것은 자백제의 투여량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단전이 폐해졌다고 해도 화경의 극에 이른 자라서 그런지 정신력이 굉장히 강하군.’
완전한 화경을 이룬 인주는 자백제가 처음에는 통하지 않았다.
정신이 몽롱해진 상태에서도 완강히 거부했었다.
그래서 자백제를 기준치보다도 더욱 먹이게 되었는데 그 다음부터는 거의 환각 상태에 가까울 만큼 혼미해져 있었다.
‘서둘러야 겠다.’
거의 눈이 반쯤 감겨 있어서 필요한 정보를 빨리 빼내야 할 것 같았다.
“간부들의 정체를 밝혀라.”
-딱!
가장 중요한 정보였다.
그들의 정체를 안다면 훗날 대응하기도 쉽다.
정체를 밝히라는 말에 인주의 몸이 움찔하며 떨리더니, 말을 하기 싫은 사람처럼 거부감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딱!
천여운이 다시 한 번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인주가 떨리는 상태에서 겨우 입을 열었다.
“천….주에…..남궁…..세….세가의 남궁경.”
‘남궁경!’
남궁경이라는 말에 양단화가 놀란 눈이 되었다.
남궁세가는 정도 무림의 오대세가 중의 수장 격에 속하는 곳이다.
남궁경은 남궁세가의 가주로 천명검객이라 불리는 자로 구패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강자로 정파에서 차기 오대고수에 가까운 자였다.
“지…..주에 무당…무당파의 현운자.”
“아…..”
무당파의 현운자가 관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했지만 역시나 간부 중의 한 사람이었다.
구대문파 중에서도 소림, 화산과 더불어 최고의 성세를 누리는 무당파였다.
상당히 껄끄러운 문파가 끼어있는 셈이었다.
“음주…에…..사천당가의…..당필순,”
“…..왠지 이건 짐작했던 부분이군요.”
오대세가 중 하나인 사천당가는 정파 중에서도 가장 호전적인 자들 중 하나이다.
정도에 속하면서도 유일하게 독(毒)과 암기에 능하다.
사천당가의 부가주인 당필순은 과거 정사 간의 전쟁에서 딸을 잃었기 때문에 사파를 극도로 증오하는 자였다.
구패에는 포함되진 않았지만 독인으로 위험한 인물이었다.
“양주…..양주는…..끄으으윽…..”
이어서 양주의 정체를 말하려던 인주가 갑자기 고통스러운 신음성을 흘렸다.
이마의 핏줄이 곤두선 것을 보면 굉장한 두통을 겪고 있는 듯 했다.
[자백제가 과도하게 투여되어서 뇌에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나노의 말에 천여운이 인상을 찡그렸다.
물론 그 말도 맞았지만 이 인주라는 자가 자의적으로 버티는 것도 있었다.
무위에 걸맞은 정신력을 지녔다고 할 만 했다.
“끄으으으으으!”
인주의 눈동자가 뒤집히면서 흰자위 밖에 보이지 않았다.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는 인주가 중얼거렸다.
“보, 본주는 하북…..하북…팽가의….팽무……월…..”
인주의 진정한 정체가 드러났다.
도신이 넓은 장도를 독문무기로 쓰는 인주는 하북팽가의 부가주인 팽무월이었다.
무림구패의 일인이자 도월패주(刀月霸主)라 불리는 자였다.
“끄르르르르….”
[호흡이 약해지고 있습니다.]“이런!”
천여운이 그의 몸에 내력을 불어넣어 기운을 북돋게 하려 했다.
그러나 단전이 파괴된 인주, 아니 팽무월의 몸은 깨진 항아리와 마찬가지였다.
물을 부어도 끊임없이 새는 항아리였다.
‘양주는 그렇다쳐도 회주에 대해서 들어야 하는데!’
작은 경련과 함께 죽어가는 인주의 몸을 붙잡고 천여운이 흔들었다.
“이봐! 회주의 정체가 뭐지?”
-딱!
팽무월의 귀에다 대고 손가락을 튕겼다.
하지만 거의 그는 죽기 일보 직전의 상태였다.
“끄르르…..”
천여운이 한손으로 몸을 흔들면서 내력을 불어넣으면서 귓가에 계속 손가락을 튕겼다.
-딱! 딱! 딱!
그러자 팽무월이 숨이 넘어가기 전에 힘겹게 입을 뗐다.
“회…..주….의….정체…는…..천주……만이…..”
끝내 말을 마치지는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부상이 심한데 약물이 너무 많이 투여되면서 결국 버티질 못했다.
-탁!
그의 가슴에 손을 얹어서 심장이 뛰는 것을 확인한 양단화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죽었습니다.”
그래도 충분한 정보는 얻었다.
“……마지막에 그 말은 남궁경이라는 자가 창천회의 회주를 알고 있다는 거겠죠?”
“그런 것 같습니다. 좋은 정보기는 한데, 그 정체를 알아내기는 어렵겠군요.”
양단화의 말에 천여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교주직에 취임하고나서 무림의 정세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숙지한 천여운이다.
남궁경은 창천회의 간부 이전에 정파무림맹의 십칠웅주 중에 제 삼웅주라는 직위를 가진 자였다.
사 웅주에서 십칠 웅주까지는 거의 동급 지위이다.
그런데 삼웅주 이상부터는 무림맹 내에서도 실권을 지녔는데, 남궁경은 두 군단 중 하나인 마벌단(魔伐團)의 단장이었다.
마벌단은 말 그대로 마를 공격한다는 의미로 그는 마교 정벌단의 총사령관이었다.
근 삼만 명에 이르는 무림의 중소문파의 전력을 움직일 수 있는 사내다.
“까다롭군요. 어찌 되었든 정보로서는 충분한 가치가 있는….”
양단화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천여운이 어딘가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은 강이 있는 방향이었다.
천여운보다는 늦었지만 사 장로 양단화 역시도 뭔가를 감지했는지 강변 쪽으로 시선이 이동했다.
[교주님. 상당한 실력자가 나타났습니다. 창천회인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양단화가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대며 허봉이나 백기 등에게 조용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들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입을 다물고 기척을 죽였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상대가 천여운이나 양단화의 기척은 알아채지 못했지만 허봉이나 백기를 감지하고 말았다.
“온다!”
양단화의 경고에 두 사람이 경계심이 가득 찬 표정으로 기수식을 취했다.
이윽고 숲을 가로질러서 뭔가 가까워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사사삭! 슉!
우거진 수풀들로 가려진 중턱에 그 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교차한 대검을 등에 차고 있고 덥수룩한 머리카락의 청년이었다.
“엇? 여섯 명?”
청년의 표정이 묘해졌다.
강변 쪽에서 느꼈을 때는 두 사람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죽은 자들까지 포함해서 네 사람이나 더 있었다.
‘앗!’
청년의 시선이 바닥에 가지런히 누워있는 신의의 손녀, 감미양에게로 향했다.
숨소리도, 그리고 몸에 미동조차 없고 새하얗게 변해가는 피부.
분명 죽은 것이 틀림없었다.
“빌어먹을!”
청년이 눈빛에 노기가 서려서 천여운과 수하들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네놈들이 저 여자를 죽인 것이냐?”
-팟!
그 말과 함께 청년이 지면을 박차며 떠올라 등에 차고 있던 대검 하나를 뽑아서, 감미양의 시신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던 백기에게 달려들었다.
‘크다!’
대검의 크기가 보통 검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넓은 검신에 길이도 오 척에 이를 정도였다.
청년이 패도적인 기세로 허공에서 검을 내리쳤다.
그때 사 장로 양단화가 재빨리 신형을 날리며 앞을 가로막았다.
-우웅!
양단화의 펴고 있는 손바닥에서 푸른빛 도강이 서렸다.
도강을 형성한 양단화가 견고한 망을 만들어내 위에서 대검을 내려치는 청년의 일격에 맞섰다.
-파치치치칙!
도강에 부딪친 대검에서 마찬가지로 푸른빛 검강이 서렸다.
무기를 쥐고 있었지만 내력에서 양단화가 앞섰기에 청년의 신형이 뒤로 날아갔다.
가볍게 빙글 돌면서 몸을 바로 세운 청년이 눈살을 찌푸렸다.
“젠장. 그나마 약한 녀석들부터 처리하려 했더니.”
“약해?”
백기가 불쾌했는지 인상이 무섭게 굳어졌다.
무인으로서 무시당하는 말을 들은 셈이니 당연했다.
[백 단주. 방심할 자가 아니네. 자네보다 한 수 위의 고수네.]양단화가 전음을 통해서 백기에게 일러주었다.
백기가 단번에 당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위험함에 양단화가 나선 것이었다.
청년이 짜증난다는 듯이 투덜거리며 뒤에 차고 있던 대검 하나를 더 뽑았다.
-챙!
“젠장, 이거 완전 손해인데.”
자신의 신장에서 어깨까지의 길이나 되는 두 대검을 가볍게 쥐고 있는 모습이 심상치가 않았다.
무림에서도 양손으로 검을 다루는 자들은 드물었다.
특히 높은 경지를 추구하는 자들은 하나의 병장기에 집중했으니 말이다.
이에 양단화가 이상했는지 머릿속을 굴렸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무림에 두 개의 대검을 쓰는 자에 대해….어디서 들었더라.’
“두 개의 대검….양검?….쌍검? 앗! 알겠다! 무쌍검!”
“이런……”
양단화의 외침에 두 대검을 쥐고 있는 청년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