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94)
# 59장 구음절맥 (3) #
사람에게는 고유의 향이라는 것이 있다.
살에서 맡아지는 향이든 옷에 베인 향이든 말이다.
그것을 본인이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타인은 느낄 수 있다.
마찬가지로 기(氣)에도 고유의 느낌이 담겨져 있어서 내공을 단련한 내가고수라면 이를 감지하는 게 가능하다.
더욱 높은 경지에 오를수록 기감의 반경은 넓어지고 감폭은 세밀해진다.
현경의 경지에 오른 고수들은 대자연의 기운과 감응하기에 기의 잔향을 느낄 수 있는데, 황산으로 이어졌던 음기가 황하를 건넜다.
-타타타탁!
여느 고수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속도로 경공을 펼치는 자가 있다.
곱슬거리는 긴 머리카락에 짧은 턱수염의 중년인이다.
얼굴에 가득한 주름은 세월의 풍파로 가득하다.
뒷짐을 지고서 경공을 펼치는데도 중년인은 신형에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앞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서남쪽.’
차가운 음기의 잔향이 그곳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쉬지 않고 경공을 펼쳤는데 아직까지 자신의 소중한 자식들을 납치한 흉수들을 따라잡지 못했다.
‘누가 되었든 절대로 용서치 않을 것이다. 나의 자식들을 노린 대가를 치르리라.’
중년인의 눈빛은 냉정했지만 속내는 끓어오르고 있었다.
출타를 마치고 돌아온 왕전은 부서진 거처와 사방이 얼어붙은 흔적들을 발견하고서 추적하는 중이었다.
흔적들을 통해서 폭주한 딸이 엄청난 고수에게 제압되었음을 알아차린 그의 마음은 초조함으로 가득했다.
‘…..저곳은?’
한참동안 경공을 펼치며 남하하던 왕전의 두 눈에 상당한 규모의 장원이 띠었다.
장원의 현판에 크게 붙어있는 것은,
[天魔神敎 地府]그곳은 바로 천마신교의 호남성 북부 지부였다.
공교롭게도 음기의 잔향은 마교의 지부로 이어지고 있었다.
중년인의 얼굴이 야차처럼 무섭게 일그러졌다.
‘저놈들이 흉수였단 말인가!’
예상치 못한 자들이 흉수였으나 상관없었다.
그가 세상에서 두려워할 자들은 존재하지 않으니 말이다.
차가운 한기의 잔향을 따라 중년인의 신형이 번개처럼 마교의 지부를 향해 뻗어갔다.
한편 마교의 호남 북부 지부의 제 일 객당 대청 위에서 신의 감로수가 은발의 절세미녀 여군을 진맥하고 하고 있었다.
“흐음.”
워낙 급한 사안이라고 해서 밥을 먹다말고 감로수는 진맥에 집중했다.
혈관이 부풀어 오르고 전신에서 싸늘한 한기가 흘러나오는 여군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히잉.’
옆에서 지켜보는 문규의 얼굴이 뾰로통하다.
방금 전에 천여운에게 여자가 누구인지 물었으나, 그는 위험하다는 말과 함께 신의를 불러서 서둘러 진맥을 보게 했다.
덕분에 괜히 혼자서 수많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그냥 환자라고만 치부하기에 지금까지 그녀가 보았던 여자들을 통틀어 최고라 할 만큼 너무도 아름다웠다.
‘왜 교주님께서 저 여자를 데려 온 거지?’
천여운을 좋아하는 그녀로서는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문규의 의문증을 풀어준 것은 허봉이었다.
안절부절 하지 못하는 문규의 모습에 은발의 미녀 여군을 의식하고 있음을 눈치 챈 허봉이 그간의 사정을 알려주었다.
[….에 치료를 해주시고 빚을 만들려고 데려오신 거에요.] [아! 그랬던 건가요? 휴, 역시 제가 알고 있는 교주님께서는 그럴 분이 아니죠. 헤에.]오해가 풀린 덕분에 한결 표정이 밝아졌다.
하긴 그녀가 지금껏 보았던 천여운은 여자의 미색에 흔들리거나 하는 사내가 아니었다.
괜히 질투를 한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아!]그런데 뒤에 이어지는 허봉의 말에 밝아졌던 문규의 표정을 다시 뒤바뀌게 만들었다.
[문규. 확실한 건 아닌데요. 제가 예전에 어떤 서책에서 본 것 같은데, 구음절맥은 반대 성향인 강한 양기를 가진 사람과 음양의 조화를 이루면 낫는다고 하던데.] [음양의 조화?] [그거 있잖아요. 남녀의 교합. 서책에서는 남자의 뜨거운 그것만이…]‘!?’
[뭐라구욧!]문규의 얼굴이 빨개지다 못해 터질 것처럼 상기되어 허봉에게 그만하라고 전음을 보냈다.
어디서 보았는지 늘 이상한 정보가 머릿속에 한가득한 그였다.
-씨익!
웃고 있는 걸 보니 분명 일부러 장난친 게 틀림없었다.
방금 전까지 고마워했던 마음은 취소였다.
‘너무해! 놀리는 것도 아니고.’
“하아.”
신의 감로수의 입에서 입김이 흘러나왔다.
신기하게도 여군의 주위 공기만 싸늘한 겨울 같았다.
그런 차가운 한기를 견뎌내고 여군의 진맥을 마친 감로수가 심각한 얼굴로 병명을 내뱉었다.
“구음절맥!”
손녀가 알아낸 것을 신의가 알지 못할 리가 없었다.
“…..살면서 다시는 볼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건만.”
그녀가 이런 증상을 가진 자를 본 것은 처음이 아닌 듯 했다.
이에 곁에 있던 분왕이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제 누이의 상태가 많이 안 좋은 겁니까?”
“누가 처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임시조치로 양기를 북돋게 하는 약을 제조해준 것 같은데, 그 덕분에 목숨을 연명한 것 같군. 사실 이 병에 걸리면 스무 해를 넘기기 힘드네.”
‘당신 손녀요.’
그 처방을 해준 사람은 신의 감로수의 손녀, 감미양이었다.
이 말을 하려다가 입을 꾹 닫았다.
지부로 오면서 사전에 천여운이 치료를 받고 싶다면 되도록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라고 경고를 했기 때문이었다.
“방금 전에 이 병을 다시 볼일이 없을 거라고 얘기했는데, 치료한 적이 있는 겁니까?”
천여운의 질문에 감로수가 망설이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지금 그건 무슨 의미입니까?”
당연히 중원제일의 의원인 신의라면 누이를 치료할 수 있을 거라 철썩 같이 믿었던 분왕이었다.
그런데 감로수가 애매한 태도를 보이니, 언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감로수가 잔뜩 굳어있는 분왕을 쳐다보면서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보게. 소협, 노부의 말을 우선 끝까지 듣게나.”
“?”
“처음 구음절맥을 진맥했던 것은 삼십여 년 전이네. 그 당시에도 근본적으로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네.”
“치료방법을 안다고요?”
“그것도 모를 거라 생각했나. 다만 이 병 자체가 일반 사람들이 걸리는 것이 아니라 내공을 연마하는 무림인의 혈통들에게 내려오기 때문에 치료하기 힘든 걸세.”
삼십여 년 전, 신의 감로수는 구음절맥에 걸린 여인을 만났다.
머리가 희다 못해서 은발이 되어버릴 만큼 음기가 폭주한 이 여인을 치료할 방법을 그녀는 연구 끝에 알아냈다.
그러나 이 방법은 단순히 의술만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음기로 막혀버린 경맥을 그에 버금가는 양기의 내공으로 뚫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끝없이 치솟는 음기를 감당할 수 있는 양기를 가진 자를 찾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인 줄 아나?”
“그래서 못 찾은 겁니까?”
“…..찾긴 찾았네.”
당시에도 신의로 명성을 날리던 그녀는 자신의 인맥을 동원하여, 당대 오대고수 중에서 역근경을 극성으로 연마하여 최고의 내가고수라 불리는 소림방장 구휼 대사에게 부탁했다.
정도 무림인들에게 존경받는 구휼 대사는 중생의 안위를 생각하는 승려답게 선뜻 그 부탁을 받아들였다.
“그, 그런데 어째서 실패한 겁니까?”
“분명 구휼 대사는 폭주하는 음기를 감당할 만큼의 극양의 내공을 지녔네. 다만 구음절맥을 겪고 있는 그 여인의 경맥이 버티질 못했지.”
구휼 대사가 양기가 가득한 진기를 불어넣어 막혀있는 아홉 경맥을 뚫었으나, 문제는 다른 곳에서 생겨버렸다.
신의 감로수의 말대로 경맥을 틀어막고 있을 정도로 강한 음기를 뚫기 위해 그에 상응하는 양기가 외부에서 들어오면서, 그녀의 경맥이나 몸이 기운들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그녀는 전신의 경맥이 터져서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네. 사실 그분의 탓이 아니었는데 괜한 자책감에 방장직에서 물러났네.”
“엇? 그러고 보니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아요.”
문규는 어린 시절 조부인 문연에게 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삼십여 년 전 오대고수 중에 한 사람인 구휼 대사가 갑자기 방장직을 내려놓고 무림에서 물러나기로 천명한 사건은 정도 무림뿐만이 아니라, 마교나 사파 연맹에도 꽤 뜨거운 쟁점이 되었었다.
“노부의 긴 의원 인생에 처음으로 사람을 살리지 못했네.”
아무리 신의라고 할지라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가 무공을 익혀서 내가기공에 대해서 해박했다면 그런 문제를 발견했겠지만, 의원으로서 처음 보는 사례였기 때문에 결국 목숨을 구명하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그럼 결국 그 방법이 틀렸다는 건데 무슨 해결방법을 안다는 겁니까?”
분왕의 말에 감로수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한 번 실패한 것을 연구하지 않는다면 그게 의원이라 할 수 있나. 노부는 그때 치료 방법에 문제점을 알게 되었지.”
구휼 대사는 신의에게 양강의 내공을 불어넣어 경맥을 뚫으려고 하니, 음기가 더욱 강하게 치솟아 반탄력이 생겨나면서 더욱 공력을 높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 덕분에 구음절맥에 걸린 여인이 두 강대한 기운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그럼 무슨 수로 고칠 수 있습니까? 양기를 불어 넣는게 불가능하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둘 다 단점이 있네.”
“무슨 단점입니까?”
“하나는 당장에 힘들터이니 불가능에 가깝고, 다른 하나는 이 죽어가는 아가씨나 오라비 분이 그다지 원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지.”
자신과 누이가 원하지 않는 방법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분왕이 불안해진 눈빛으로 물었다.
“제가 원하지 않는다는 그 방법은 대체 뭡니까?”
“참으로 공교로운 것이 막힌 아홉 절맥 중에 음기가 폭주하는 시작점이 자궁 쪽에 있네.”
“자, 자궁?”
그 말에 분왕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져갔다.
바보가 아닌 이상 신의 감로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지, 지금 그 말씀은?”
“그렇네. 음양의 조화를 통해 경맥에 자극을 줄여서 자연스럽게 양기를 받아들이는 방법이네.”
감로수의 그 말에 허봉이 놀란 눈으로 중얼거렸다.
“엇? 그 말씀은 정말로 남자의 뜨거운 유, 육…”
“허봉!!!”
“흡!”
문규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서 소리치자, 아차 싶었는지 허봉이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의 머릿속이 일순간 복잡해졌다.
허봉이 놀린다고 장난으로 했던 말이 정말 현실로 이루어질 판이었다.
‘으으으! 허봉!’
문규는 울상이 되어서 속으로 절규하면서 허봉을 흘겨보았다.
그의 말이 씨가 되어버렸다.
“음양의 조화를 감당하려면 역시 양기가 강해야 하는데….”
이 말을 하는 신의 감로수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천여운을 향하고 있었다.
구음절맥으로 음기가 폭주한 여군을 제압할 정도의 내가고수는 이곳에서 천여운 뿐이었으니 이런 반응은 당연했다.
‘흐음.’
생각지도 못한 치료 방법에 천여운 또한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물었다.
“그것 말고 불가능하다고 하는 방법은 뭡니까?”
“그건….”
-흠칫!
감로수가 미처 대답을 하기도 전에 천여운이 대청에서 벌떡 일어났다.
천여운이 떨리는 눈동자로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그 방향은 이곳 지부의 장원 대문이 있는 쪽이었다.
‘전율적이다.’
지금껏 느껴본 적이 없는 전율적인 기운이 그곳에서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다는 것은 오직 천여운만이 느낄 정도로 절대고수라는 것을 의미했다.
여군이 음기가 폭주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위기감을 느꼈다.
“교주님? 왜 그러세요?”
문규가 같이 일어나서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천여운이 모두를 바라보며 경고했다.
“모두 이곳에서 움직이지 말고 있어요.”
-탓!
천여운이 전율적인 기운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 * *
지부 장원으로 들어오는 대문 앞으로 입구를 지키는 문지기들이 바닥에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다.
정파의 영역과 경계지점이라 할 수 있는 호남성 북부에 자리한 지부에는 문지기들조차 일류 이상의 고수들로 배치되어 있는데, 그들이 너무도 무력하게 당했다.
-착!
장원의 현관을 통과하면 외당 건물의 앞으로 큰 마당이 있다.
마당에 마흔 명이 넘는 외당 무사들이 장원 내부로 진입하려는 한 곱슬머리에 턱수염의 중년인을 둘러싸고 있었다.
지부의 외당주 지현이 검으로 그를 겨냥하면서 외쳤다.
“고인께서는 당장 물러나시오. 이곳이 어딘지 알고 이리 행패를 부리는 것이오!”
지현의 이마는 식은땀으로 가득했다.
특별한 기운을 발산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중년인에게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위압감이 마당에 있는 무사들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대체 이 자의 정체가 무엇이란 말인가?’
정파 무림맹과 동맹을 맺은 후로 한 동안 잠잠했던 전선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괴물 같은 자가 난입하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나야말로 경고하지. 이렇게 되기 싫다면 당장 그대들이 납치한 나의 자식들을 데려와라.”
곱슬머리의 중년인의 앞에 네 명의 외당무사들이 쓰러져 있다.
대문을 통과한 그를 제지하기 위해 달려들었다가 고작 가볍게 손을 휘젓는 것만으로 저리 되었다.
외당주 지현이 어이가 없다는 투로 소리쳤다.
“아니. 고인의 자식을 대체 이곳에서 찾는단 말이오! 고인은 대체 누구시기에 이런 억지를 부리는 것이오?”
그 외침에 곱슬머리 중년인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눈빛이 불쾌함으로 가득했다.
차가운 한기의 잔향이 장원의 안뽁에서 선명하게 느껴졌다.
“끝까지 발뺌할 참이냐. 그렇다면 내 손으로 직접 찾는 수밖에.”
-탁!
중년인이 앞으로 한 발자국 떼었다.
이에 외당주 지현이 외당무사들을 향해 공격 신호를 보냈다.
“쳐라!”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외당의 무사들이 일제히 검을 휘두르며 곱슬머리의 중년인을 향해 달려들려고 했다.
바로 그 순간 중년인이 오른손에 검결지를 만들어 가볍게 휘저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파파파파팟!
“헉!”
“거, 검이?”
그들이 들고 있던 검이 손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손에서 벗어난 검은 허공에 뜬 상태로 검 끝이 역으로 돌아가며 그 주인들을 겨냥했다.
“서, 설마 이기어검?”
외당 무사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분명 엄청난 고수라는 것은 짐작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기어검이라는 고절한 수법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현경의 고수임을 의미했다.
‘어, 어떻게 이런 절세고수가 본교의 지부에?’
외당주 지현 역시도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는 겨우 내공으로 검이 손에서 벗어나려는 것을 막았지만, 다른 외당 무사들은 전부 자신의 검과 대치하고 있었다.
‘검을 정교하게 다루는 것은 불가능해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현경의 고수라고 해도 열두 자루 이상의 이기어검을 정교하게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초식을 펼치는 게 아니라 단순하게 움직이거나 찌르는 정도라면 이 정도의 숫자를 감당할 수 있다.
일종의 위협용이었다.
“마지막 경고다. 나를 가로막는 자들은 전부 죽을 것이다. 비켜라.”
곱슬머리의 중년인이 한 번 더 경고했다.
이 많은 자들을 죽이게 되면 확실하게 마교의 척을 지는 것을 알기에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절세고수라고 해도 정파를 마주하고 있는 전장터를 종횡한 지부의 무사들이 그런 제안에 넘어갈 리가 만무했다.
더군다나 외당을 지나게 되면 객당 쪽에 자신들이 모시는 하늘이 있다.
“허튼소리! 아무리 고인이 절세고수라고 해도 우리들을 정말 우습게 보는 구려! 대 천마신교의 교인들이 위협을 가한다고 해서 무릎을 꿇을 것 같소!”
외당주 지현의 절개 있는 외침에 곱슬머리의 중년인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분노를 억누르고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었건만 기회를 던졌으니 말이다.
“참으로 어리석군.”
중년인이 검결지를 들어 올리자 그들을 겨냥하고 있던 검신에 힘이 들어갔다.
“그대들의 선택이다. 잘가라.”
중년인이 가볍게 검결지를 휘저었다.
-슈욱!
그러자 허공에 떠있던 검이 겨냥하고 있던 외당 무사들을 찌르려들었다.
“힉!”
당황해서 눈을 감는 자들부터 각양각색으로 외당 무사들이 검을 피하려고 했는데,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둥둥!
그들을 찌르려던 검이 고작 손가락 한 마디 정도만 움직이더니 멈춘 것이다.
외당 무사들의 표정이 의아해졌다.
“검이 멈췄어!”
“뭐, 뭐지?”
한순간 곱슬머리의 중년인의 마음이 변했는가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닌 듯 했다.
곱슬머리의 중년인이 마치 제지를 당한 것처럼 휘두르던 검결지를 멈춘 채로 손가락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곱슬머리의 중년인의 동공이 빠르게 흔들렸다.
‘이게 대체 무슨?’
그로서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진기로 연결된 이기어검이 그의 통제를 벗어나버렸다.
더욱 진기를 끌어올려서 검들을 움직여보려고 했으나 소용없었다.
‘내가 검들에 연결해놓은 진기를 누군가 침식했다.’
그것 외에는 이 현상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저벅저벅!
바로 그때 중년인의 눈으로 내당의 전각 쪽에서 누군가 외당의 마당 쪽으로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긴 머리카락에 새하얀 피부를 가진 차가운 분위기의 청년이었다.
그는 바로 천여운이었다.
‘설마 저 젊은이가?’
중년인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천여운의 머릿속에 나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용자의 에너지를 침투시켜 판넬 침식에 성공했습니다.]‘반격한다. 나노.’
[사용자의 명령에 의거하여 침식한 40자루의 검에 판넬 원격 시스템을 가동합니다.타겟(Target) 락 온(lock on)]
-삐삐삐삐삐삐삐삐!
천여운의 동공이 빠르게 흔들리며 흰빛의 입자가 선을 그리며 이기어검의 제어권이 그에게로 들어왔다.
붉은 십자 모양의 입자가 생성되며 단 한 사람에게로 조준되었다.
천여운이 손을 내밀어 잡아당겼다가 밀어내는 시늉을 하자, 허공에서 멈춰있던 사십 자루의 검들이 다시 역으로 일제히 회전했다.
-휘리리리릭!
“하! 이런…..”
곱슬머리의 중년인이 기가 차했다.
생애 처음으로 이기어검의 제어권을 도중에 빼앗겨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