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97)
# 60장 일거양득(一擧兩得) (3) #
천여운은 사랑하는 문규와 뜨거운 밤을 보내면서 처음으로 여자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 한 번에 불과했다.
아무리 담담하면서 냉철한 그라고 해도 만난 지 고작 반나절 밖에 되지 않은 여인의 옷을 벗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스르륵!
천여운이 여군이 입고 있는 겉옷을 조심스럽게 벗겼다.
푸른 겉옷이 벗겨지면서 그녀의 속옷이 드러났는데, 겉옷보다 얇아서 새하얀 살결이 보였다.
그 모습에 괜히 얼굴이 후끈 뜨거워졌다.
낯 뜨겁기는 했지만 어찌되었든 음양교합을 시도하려면 나신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번에는 천여운의 손이 그녀가 입고 있는 속옷으로 천천히 향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번뜩!
‘엇?’
얌전히 눈을 감고 있던 여군이 갑자기 두 눈이 떠졌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혈도제압술을 펼친지 고작해야 이각 정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자의로써 정신을 차린 것이었다.
-투둑! 투둑! 투둑!
바로 곁에 있으니 확실하게 들렸다.
정신을 차린 것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체내를 잠식한 무한한 음기가 혈도를 막고 있는 왕전의 심후한 공력을 배출해냈다.
‘음기가 최고치에 달했다더니 혈도제압술도 통하지 않는구나.’
옷을 전부 벗기기도 전에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천여운이 재빨리 그녀의 치마를 잡아당기려 했는데, 강한 한기가 뿜어져 나오며 그의 신형이 위로 솟구쳤다.
“헛?”
-쾅!
위로 솟구친 천여운의 몸이 방안 천장에 부딪쳤다.
덕분에 천장 위의 기와들이 위로 들썩거렸다.
“엇? 천장이?”
한편 객당 건물의 바깥으로 나간 사람들 중에 그 소리를 듣고서 가장 크게 반응하는 두 명이 있었다.
바로 무쌍검 왕전과 천여운의 여인인 문규였다.
객당 내에서 들려오는 큰 굉음 소리를 듣고는 두 사람의 표정이 각양각색으로 변했다.
왕전은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고 문규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있었다.
“으으으….”
한 사람은 아버지였고, 한 사람은 연인이었으니, 기분이 저조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뭔가 굉장히 격렬한가 본데요.”
“크흠!”
괜히 민망했는지 허봉이 횡설수설 중얼거리자, 이것을 들었는지 왕전이 불쾌하다는 듯이 기침을 하면서 객당에서 더욱 먼 곳으로 가버렸다.
“너무해요!”
문규 또한 울상이 되어서 허봉을 날카롭게 흘겨보고는 자리를 피했다.
-빡!
“악!”
호상화가 한심하다는 듯이 허봉의 뒤통수를 때렸다.
충성심은 정말 끝내주는데, 가끔 눈치가 없는 그를 단단히 혼쭐내주고 싶었다.
“멍청이!”
-오싹!
그러는 와중에 싸늘한 기운에 그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객당 쪽으로 향했다.
방금 전에 뭔가 부서지는 소리에 이어서 이제는 객당 건물에 하얗게 서리가 일면서 벽이 얼어붙고 있었다.
-쩌저저적!
“앗!”
“건물이 얼어붙고 있어요!”
뭔가 사태가 이상하다고 판단한 호상화와 허봉이 본능적으로 객당 쪽으로 달려가려했다.
이를 신의 감로수가 급하게 만류했다.
“멈추게!”
“감 파파, 하지만 교주님이 위험….”
“아서게! 구음절맥에 걸린 소저가 깨어나서 그런 것일세. 지금 들어간다면 모든 게 허사로 돌아가네.”
신의 감로수의 말대로 도중에 음양교합이 방해받으면 음기가 전신에 퍼져나간 왕여군을 구할 수가 없게 된다.
불안한 마음에 사로잡혔지만 그런 만류를 듣고 나니, 천여운의 수하들은 안절부절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쾅쾅!
건물에서 무슨 싸움이라도 벌어지는 것처럼 들썩거렸다.
음양교합이 아니라 정말 생사의 대결이라도 벌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객당 바깥까지 들리던 굉음 같은 것이 수그러들고 묘한 신음성이 들려온다.
“하악!”
-화끈!
‘어머나 세상에!’
그 소리를 들은 호상화가 민망하다는 듯이 얼굴을 붉혔다.
성인 남자보다도 훨씬 큰 신장을 가진 그녀였지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지, 쑥스럽다는 표정으로 눈을 감고 손으로 두 귀를 막았다.
“드디어!”
반면 신의 감로수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이 신음성은 드디어 음양교합이 시작되었다는 소리였으니 말이다.
여기서 천여운이 그녀의 체내를 잠식하고 있는 음기를 몸 밖으로 배출시킨다면, 구음절맥의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다.
“하아…..하아…..하아….”
방안에서 거친 호흡과 함께 살과 살이 부딪치는 소리로 가득하다.
그러나 차가운 한기와 뜨거운 양기가 만나면서 뿌연 김으로 인해 당사자들이 아니고는 앞이 보이지 않았다.
-스스스스스!
천여운은 자신의 체내에 있는 뜨거운 양기를 보내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실수하게 된다면 그녀의 경맥이 얼어붙어서 동사해서 죽을 지도 모른다.
‘이 음기를 이기려고 들지 말고 받아들이라 했다.’
신의 감로수는 음기를 무작정 이기려고 들거나 몰아내려고 하면, 오히려 그것이 더욱 폭주하여 경맥을 손상시킨다고 하였다.
‘음기를 내 몸으로 순환시켜서 밖으로 배출시킨다.’
그것이 신의가 내세운 이론이었다.
물론 이 같은 이론을 만드는데 큰 도움을 준 것은 내가 고수인 전 소림방장 구휼 대사였다.
구휼 대사는 그녀에게 현경의 고수라면 대자연의 기운을 체내로 순환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음기를 직접 받아들여서 내보내는 편이 나았다고 이야기했었다.
‘해보자.’
천여운이 신의 감로수에게 들었던 대로 이 방법을 시도했다.
양기를 보내는 와중에 집중하여 몰려든 음기를 자신의 체내로 유도했다.
-스스스스!
처음에는 위기감을 느꼈던 음기가 천여운이라는 통로를 만나자, 진입하려드는 양기와 맞부딪치는 것을 피하고 그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됐다.’
천여운의 몸으로 구음절맥의 폭주하는 음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거대한 음기에 천여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런 엄청난 양의 음기를 지녔었나.’
놀라울 정도였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절대로 견딜 수 없는 수준이었다.
천여운이 계획했던 대로 자신의 체내로 밀려들어오는 왕여군의 극한의 음기를 단전에 순환시켜서 체외로 배출하려고 했다.
-고오오오오!
“헉?”
그 순간 천여운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구음절맥으로 생성된 무한하면서 선천적인 음기가 단전으로 들어오자, 그곳에서 또아리를 틀고 있던 다른 기운이 눈을 뜬 것이었다.
‘처, 천마기가?’
천여운의 단전에 잠들어 있던 흉폭한 기운이 깨어나고 말았다.
깨어난 천마기가 그의 통제를 벗어났다.
마치 먹잇감이라도 만난 것처럼 체내로 흘러들어오는 음기를 흡수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이게 무슨…..’
아무리 천여운이 천마기를 잠재우려고 해봐도 소용없었다.
천마기는 한없이 차가운 기운을 계속 머금고 덩치를 불려나갔다.
‘큭! 이렇게 되면 체내에 있는 양기를 내보내서 균형을 맞출 수밖에 없다.’
아무리 대자연의 기운을 순환시킬 수 있다고 하지만 현재의 천여운이 감당할 수 있는 용량을 벗어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양기를 더욱 내보내서 그릇을 비워야만 했다.
이제는 단순히 그녀를 구하는데서 그치는 것을 넘어서버렸다.
-스르르륵!
그러던 사이에 변화가 생겨났다.
자궁의 막혀있던 절맥을 뚫고서 음기를 받아들이자, 그녀의 투명했던 눈동자가 점차 색을 되찾아갔다.
“하아….하아….”
그것이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네 번째 지점을 통과했을 때는 두 눈동자의 색이 완전히 검게 변해서 보통 사람처럼 돌아왔다.
그리고 새하얗던 피부에 점점 온기가 돌면서 홍조가 피어났다.
‘아! 효과가 있다.’
통제에서 벗어난 천마기로 인해 난감해하던 천여운이 놀라워했다.
이대로만 간다면 그녀의 폭주하는 음기를 가라앉히고 구음절맥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그녀가 아니었다.
-오싹!
‘싸늘하다. 몸에 흐르는 피마저 식는 것 같아.’
천여운의 입에서 차가운 김이 흘러나왔다.
체내로 들어오는 방대한 음기에 몸의 체온이 식어가고 있었다.
물론 그것을 가만히 내버려둘 나노가 아니었다.
[사용자의 체내 체온을 상승시키겠습니다.]체내에 있는 수억의 나노머신들이 활성화되면서 그의 체온이 저하되지 않도록 상승시켰다. 만약 나노가 없었다면 상당히 위험했을 것이다.
‘미치겠구나. 음기가 너무 많이 들어왔다.’
탐욕스러운 천마기는 음기를 배출시키지 못하게 전부 먹어치웠고, 점차 천여운의 체내에는 보유하고 있던 양기에 버금가는 음기가 채워지고 있었다.
극양의 무공이라 할 수 있는 천마검공의 내공을 익힌 천여운에게 점차 변화가 생겨났다.
-고오오오오!
반 시진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객당 바깥에서 한참을 벗어나 외당 마당까지 온 무쌍검 왕전은 초조한 마음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딸의 목숨만 구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감수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아버지로서 착잡한 기분은 어쩔 수가 없었다.
‘가연. 당신이 있다면 어찌 했겠소?’
오늘따라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가연이 떠올랐다.
숙연하게 파란 하늘을 바라보던 왕전의 감각을 자극하는 뭔가가 느껴졌다.
-흠칫!
‘뭐지?’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기운이었다.
객당 쪽에서 풍겨지는 한기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을 느꼈었는데, 갑자기 그에 상응할 만큼 강렬한 기운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한기? 아니다. 이 흉폭한 기운은 대체?’
마치 흉폭한 마수가 포효하는 느낌마저 받았다.
뭔가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한 왕전이 객당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왕전이 객당 전각 쪽으로 들어서자 천여운의 수하들을 비롯해 왕분까지 먼저 객당 앞마당에 서있었다.
“대, 대체 이게 무슨 일이죠?”
“이런 기운은!”
객당의 방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흉폭한 기운에 모두가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신의 공! 대체 무슨 일이오? 이게 어찌된 영문이오?”
왕전이 어찌할 바를 몰라서 객당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는 신의를 붙들고 물었다.
하지만 감로수라고 이 사태를 알 리가 만무했다.
“노, 노부도 이게 어찌된 일인지 알 수가 없소. 으으으!”
무공을 익히지 않은 그녀조차도 살이 떨릴 만큼 흉폭한 기운은 갑작스럽게 터져 나왔다.
기분을 표현하자면 맹수 앞에 선 먹잇감이 된 느낌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쩌저저저적! 콰앙!
객당의 얼어붙어있던 벽에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이내 그것이 어떠한 힘에 의해 파괴되고 말았다.
객당 건물의 마루 위가 통째로 부서져버린 것이다.
부서진 건물의 잔해 먼지 사이로 두 사람의 인영이 보였다.
“헉!”
호상화가 화들짝 놀라서 얼굴을 붉히고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당연히 그 안에 이 두 사람이 있는 것은 알았지만 지금 상황은 당혹스러웠다.
부서진 객당 건물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전신의 근육이 탄탄하게 잘 발달한 나신의 천여운이었다.
유일하게 걸치고 있는 것은 팔목의 흑철 보호대뿐이었다.
“교주님!”
왕전과 마찬가지로 뒤늦게 도착한 문규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천여운을 불렀다.
그런데 천여운은 그녀의 말을 전혀 듣지 못하고 있었다.
‘어째서?’
-고오오오오!
듣지 못할뿐더러 예의 흉폭한 기운이 그에게서 발산되고 있었다.
그런 천여운의 뒤에는 은발에 선이 아름다운 몸매를 지닌 여인이 마찬가지로 나신으로 누워있었다.
“여군아!”
이를 발견한 왕전이 놀라서 소리쳤다.
그러나 그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왕여군은 죽은 듯이 고요했다.
“천 교주. 어찌된 일이오?”
왕전 역시도 천여운을 불러보았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
답답해진 왕전의 선택은 간단했다.
-슉!
딸이 잘못된 것이 아닌지 직접 살펴보는 것이다.
왕전이 다급히 객당 위로 올라가 상태를 살피려했다.
그런데 왕전의 신형이 근접해오자 갑자기 천여운이 손을 뻗었다.
‘이런!’
-팍!
가벼운 손짓 같았지만 그 좌수에 실려있는 잠력을 알아챈 왕전이 그것을 쳐냈다.
옆으로 쳐낸 순간 천여운의 손에서 날카로운 예기와 뿜어져 나와서 객당 앞의 마당을 갈랐다.
-촤아아아아악!
“헉!”
날카로운 예기에 그 방향에 서있던 왕분이 몸을 날려서 피해냈다.
길게 뻗어 나온 예기는 도기(刀氣)에 가까웠는데, 길게 뻗어나가 담장까지 가를 정도의 위력을 지녔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어, 얼었어?”
도흔이 남은 곳을 중심으로 바닥이 얼어붙어버렸다.
마치 구음절맥에 걸린 왕여군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한기를 보는 듯 했다.
심지어 천여운의 주위로 서리가 일어나고 있었다.
-하아…하아…
집중하고 있는 왕전의 귓가에 미약하지만 왕여군의 호흡소리가 들려왔다.
천여운과 대치한 상태로 흘깃 쳐다보았는데, 피부의 색에 홍조를 띠는 것을 보면 분명 증세가 호전된 것이 틀림없었다.
‘아아아! 효과가 있었구나. 그런데 천 교주는 갑자기 왜 이런단 말인가?’
그의 증상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바로 앞에 대치하고 있으니 확연하게 느껴졌다.
천여운의 몸에서 흉폭한 기운과 더불어 구음절맥의 한기가 공존하고 있었다.
그런데 동공에 초점이 풀려있는 천여운을 보면 마치 무아의 상태에 빠진 것만 같았다.
‘설마 주화입마인가?’
주화입마(走火入魔).
기를 운용하다가 잘못되어서 몸에 이상이 생기는 현상이다.
그 현상은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무림인들 중에는 더러 폭주하여 살의를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천 교주. 정신차리게!”
자아를 잃었다면 그것을 깨워야만 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현경의 경지에 오른 무인이 주화입마에 빠지면 대살성(大殺星)이나 마찬가지였다.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파괴되고 말 것이다.
‘큰일이다. 전혀 듣지 못하는구나.’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왕전이 그를 일단 대청 아래로 끌어내리려 했다.
여기서 괜히 주화입마에 빠진 천여운과 대치했다가는 딸인 왕여군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팍!
왕전이 천여운을 잡고서 끌어당기려 했다.
바로 그 순간 천여운이 우수가 검결지를 만들며 왕전을 찔러왔다.
왕전이 고개를 살짝 젖혀서 이를 피해냈다.
-슉!
오대고수의 일인답게 천여운의 기습 공격도 수월하게 대처했다.
하지만 이걸 피하는게 문제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그를 대청 아래로 끌어내려야만 왕여군이 안전하다.
“조금 거칠어도 이해하게.”
-촤촤촤촥!
왕전이 두 손에 검결지를 만들더니 두 팔을 교차하면서 화려한 검결을 일으켰다.
화려한 검결이 만들어낸 웅후한 검력이 천여운을 감쌌다.
왕전이 교차했던 두 손을 풀면서 허공으로 들어올리자, 검력에 의해 그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부웅!
‘대단하다!’
이를 지켜보는 문규나 허봉, 호상화 등이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자칫하면 검초에서 일어난 날카로운 예기로 다칠 수도 있는데, 천여운의 몸에 털끝 하나 상처를 입히지 않고 검력만으로 날려보냈다.
과연 오대 고수의 일인이라 할 만 했다.
‘됐다. 끌어당기자!’
허공에 떠오른 천여운의 몸을 왕전이 허공섭물로 끌어당겨서 아무도 없는 마당 쪽으로 던져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파앙!
“아닛?”
천여운의 몸에서 희미하게 흘러나오던 검은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날카롭게 폭사되면서 그가 만들어낸 검력이 순식간에 파훼되고 말았다.
왕전이 검력을 없앤 천여운이 허공을 박차며 그를 향해 신형을 뻗어왔다.
그를 적으로 인지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타타타탁!
왕전이 일부러 뒤로 보법을 펼치며 대청 아래쪽으로 몸을 피했다.
그러자 천여운이 대청 바닥에서 몸을 틀어서 따라붙었다.
-슈우우욱!
천여운이 그 상태에서 뒤로 손을 뻗자, 대청 마루에 파편들 사이에서 뭔가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바로 천여운의 양대 독문 병기 중 하나인 백룡도였다.
-팍! 챙!
백룡도를 낚아챈 천여운이 단숨에 그것을 뽑아서 왕전에게 쇄도했다.
특이한 것은 그의 백룡도에 하얀 서리가 맺혀서 싸늘한 한기마저 머금었다는 점이었다.
“왕분!”
“넵! 아버지!”
-휙!
왕전의 외침을 알아들은 왕분이 자신이 등 뒤에 차고 있던 두 대검 중 하나를 뽑아서 날렸다.
그것을 왕전은 익숙하게 잡아낸 후에 대검을 휘둘러 백룡도를 막아냈다.
-채애애애앵!
두 양대 무기가 부딪치자 쇳소리와 함께 파공음이 생겨났다.
그들의 서있는 주변으로 진기가 폭풍처럼 일어나며 바닥에 균열이 일어나며 갈라졌다.
-쩌저저저적!
“으아아악!”
그 여파를 범인인 신의 감로수가 견디기는 힘들었다.
몸이 튕겨나가며 뒤로 날아가는 것을 호상화가 간신히 붙잡았다.
‘정말 교주님께서 주화입마에 걸리신 건가?’
이를 지켜보는 천여운의 수하들 역시도 왕전과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수하들조차도 알아보지 못하고 무아의 상태가 되어서 공격한다는 것은 주화입마 이외에는 떠오르는게 없었다.
-끼리리리릭!
대검을 맞부딪치고 있는 왕전이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처음 대면했을 때부터 보통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공력이 거의 자신에게 버금갔다.
더욱 성가신 것은 몸에 지닌 한기였다.
‘대검을 타고 한기가 전해지는 구나.’
대검에 하얀 서리가 일면서 쥐고 있는 검병마저 얼음장 같았다.
심후한 공력으로 녹여내고 있었지만 구음절맥의 왕여군처럼 한기에 끝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한기를 배출시킨 게 아니라 흡수한 것인가?’
어찌된 영문인지 몰랐던 왕전이 문득 그것을 떠올렸다.
그가 신의에게 듣기로는 음양교합을 통해서 왕여군에서 한기를 빼낸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것만 본다면 오히려 흡수한 것에 가까웠다.
‘어찌 그런 미련스러운 짓을!’
현경의 경지에 오른 자가 할 만한 짓이 아니었다.
아무리 현경의 경지에 올라서 대자연의 기운을 순환할 수 있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양강의 무공을 익힌 이가 음기를 흡수하게 되면 오히려 체내에서 충돌이 일어나고 만다.
‘별 수 없구나. 기를 잘못 흡수해서 일어난 주화입마라면 천 교주를 쓰러뜨리는 수밖에.’
그 외에는 답이 없었다.
보통 고수들도 주화입마에 빠지면 그 힘이 다 할 때까지 폭주한다.
하물며 그 대상자가 천여운이라면 최악의 상황이었다.
아무리 오대 고수인 왕전이라고 해도 거의 동급에 가까운 고수를 상대로 상처 없이 제압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왕분!”
왕전이 왼손을 뻗자, 왕분이 대기하듯이 들고 있던 하나의 대검이 빨려 들어왔다.
-휘리릭! 착!
“자, 잠깐만요! 왕 대협! 지금 무슨 짓을 하시려고!”
검과 도를 맞부딪친 채로 대치하던 왕전이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두 대검을 손에 쥐자, 놀란 문규가 소리쳤다.
왕전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소저! 지금 천 교주를 막지 못하면 모두가 위험하오!”
-우웅!
그 말과 함께 왕전이 대검에 검강을 일으켜서는 단숨에 천여운의 오른팔을 내리치려 했다. 무력을 저하시켜서 막기 위함이었다.
“안돼요오오옷!”
문규와 허봉이 창백해진 얼굴로 신형을 날려서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왕전의 대검이 어느새 천여운의 오른쪽 어깨에 닿으려고 했다.
‘미안하네.’
-촤아아아아악!
바로 그 순간이었다.
왕전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차차차차차차착!
갑자기 천여운의 두 팔에 있던 검은 철들이 분해되더니, 흑검으로 합쳐져서는 대검이 내려치는 것을 막아버렸다.
-챙!
‘허어? 기이하다. 이게 검이었다니?’
-타타타타탁!
당황한 왕전이 백룡도와 맞부딪치던 대검에 공력을 회수하며 뒤로 신형을 물렀다.
백전노장의 고수답게 뒤로 신형을 물리면서 왕전은 대검으로 당장에라도 출수할 준비를 마쳤다.
“아! 천마검!”
허봉의 입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천마검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저절로 분해되어서 대검을 막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검에 의식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착!
대검을 막아낸 천마검이 자연스럽게 떠올라서 천여운의 손으로 빨려 들어왔다.
왼손에는 백룡도, 오른손에는 천마검을 쥔 형태에 왕전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우검좌도?’
그 역시도 양손으로 대검을 다루면서 무쌍검이라는 칭호를 얻었는데, 천여운은 그보다도 더욱 이질적인 느낌을 주었다.
완전히 다른 성향의 무기를 손에 쥐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우우우웅!
“이럴 수가?”
천여운이 오른손에 쥐고 있는 천마검에서 흉폭한 기운을 머금은 검은빛 검강이 발산했다.
여기까지도 놀라웠는데 더욱 그를 경악하게 만든 일이 생겨났다.
왼손에는 차가운 서리가 흩날리는 하얀빛 도강이 일어난 것이었다.
“서, 설마 두 가지 기운을 전부 통제했단 말인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저렇게 폭증하는 극양의 기운과 극음의 기운이 한 사람의 몸에서 동시에 공존한다는 것은 무림사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이게 주화입마라고?’
처음에는 그저 주화입마라고 생각했던 왕전이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주화입마에 빠진 자가 전혀 상반된 기운을 통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
천여운을 바라보는 왕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스스슥!
방금 전까지만 해도 흐릿했던 그의 초점이 강렬한 안광을 띠면서 뚜렷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