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201)
# 62장 마교 귀환 (2) #
어안이 벙벙해진 왕전은 일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허참.’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참으로 간사했다.
막상 원하는 방향으로 쉽게 흘러가니 기분이 착잡했다.
그가 알고 있던 딸은 설사 몸을 섞었다고 해도 쉽게 마음을 열 만한 성격이 아니었다.
어미인 가연 없이 키우기는 했지만 그렇게 가볍게 키우진 않았다.
“……혹시 이 애비가 천 교주에게 패했다고 그러는 것이느냐?”
만약 그 이유라면 굉장히 섭섭할 것이다.
왕여군 역시도 무림을 살아가는 자로 강한 무인을 동경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천여운 같이 약관에 훤칠한 외모에 차기 천하제일 고수의 자질을 가졌다면 젊은 소저로서 한눈에 반할 수도 있긴 하다.
그런데 뒤에 이어지는 말은 뜻밖이었다.
“아니에요. 제가 설마 그런 이유로 천 교주님을 따라간다고 할까요.”
“그럼?”
“허봉이란 분과 분이 오라버니에게 들었어요. 그분 역시도 정인이 계신데 그것을 감수하고 구해주셨다고요.”
“크흠.”
생각보다 깨어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은 왕여군이었다.
음양교합으로 몸을 섞었으니 혼사를 추진하는 것보다도 정인인 문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껄끄러웠는데 이미 알고 있었다.
“정인이 있는데 다른 여인을 살리기 위해서 그러기가 쉬운 일인가요.”
그 말을 하면서 왕여군이 얼굴을 붉혔다.
이에 괜히 신경질이 난 왕전이 인상을 굳히며 말했다.
“그런 것은 신경 쓰지 말거라. 남자는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지조가 있지 않단다. 애비가 얘기하지 않았느냐.”
물론 문규의 눈치를 보던 천여운이 그런 유형으로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괜한 심통에서 하는 말이었다.
“아버지도 남자잖아요?”
“애비와 다른 남자들이 같느냐.”
마음이 느껴지는 아버지의 말에 왕여군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아버지는 다르죠. 그런데 뭔가 오해하신 것 같아요.”
“음?”
“저는 천 교주님과 한 번…..초야를 치렀으니, 혼례를 하겠다는 말이 아니에요.”
“뭣?”
왕여군에서 나오는 전혀 뜻밖의 말에 왕전의 인상이 굳어졌다.
혼사를 치를 것도 아닌데 대체 무슨 이유에서 천여운을 따라가겠다는 말인가.
그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그녀가 말했다.
“천 교주님이 어쩌면 영원히 눈을 감을 지도 모를 저를 살려주셨잖아요. 그 은혜가 하해(河海)와 같은데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나요.”
“여군아. 너 설마….”
뭔가 이상했다.
그녀의 말투를 들으면 혼사가 아니라 은혜를 갚기 위해서 그의 수하로 들어가고 싶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 예상은 완전히 들어맞았다.
“맞아요. 마교에 입교해서 목숨을 살려주신 보답을 하고 싶어요. 아버지께서 보은은 확실히 갚아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잖아요.”
전혀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자 왕전이 당혹스러운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여군아.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 줄 알고 있느냐?……후우,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거두절미하고 말하마. 너를 치료하기 위해서라고 하나 천 교주와 초야를 치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혼례가 아니라 마교에 입교하겠다니?”
“아버지. 저도 무림을 살아가는 여인이에요. 한 번 몸을 섞었다고 무작정 혼례를 치르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그분에게는 정인이 있잖아요.”
“그게 무슨 소리야! 정인이 있다고 해서 혼례를 치르지 못할 것이 어디 있단 말이느냐. 너는 이 왕전의 딸이야. 네가 뭐가 부족해서!”
물론 적이 많고 은거한 몸이기는 했지만 오대고수라는 명성과 위엄은 여전하다.
그가 의탁하기로 마음먹는다면 누가 두 팔을 벌리지 않을까?
“혹시 원래의 정인이 있어서 첩이 되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이라면 이 애비가 어떻게 천 교주와 상의를 해볼 터이니..”
“아이 정말! 그게 아니라니까요!”
왕전의 말을 듣던 그녀가 결국은 소리를 버럭 질렀다.
한 번도 태어나서 자신에게 반항을 한 적이 없던 딸이 소리를 지르니 왕전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입을 벌렸다.
“아버지! 한 번 몸을 섞었다고 혼례를 치르면 세상 여자들이 남아나겠어요? 전부 원하는 여자들에게 득달같이 달려들 텐데요.”
“…….”
위풍당당하다.
그리고 너무 똑 부러지게 말을 하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저 그 정도로 가벼운 여자 아니거든요. 그리고 혼사도 몇 번은 만나봐야 어떤 사람인지 알거 아니에욧!”
“그, 그건 맞는 말이구나.”
왕전이 얼떨결에 답하자 그녀가 기세를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아버지도 오라버니도 같이 가요!”
“뭣?”
“약속하셨잖아요. 평생 어머니를 대신해서 오라버니와 저를 보호해주신다고요.”
결국 그녀의 말은 다 같이 마교로 가자는 의미였다.
‘아…..’
처음에는 뜻밖의 말들이 이어지면서 당혹스러웠던 왕전의 표정이 차츰 변했다.
그저 딸이 이상한 고집을 피운다고만 치부했던 그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이 아이가 설마…..’
반항하는 것 같이 소리를 지른 왕여군이었지만 그 눈빛에는 간절함이 보였다.
걱정스러운 듯이 그를 바라보는 모습.
그제야 왕전은 딸인 왕여군의 진의를 알 수 있었다.
‘언제까지 저희들을 보호하느라 아버지께서 은거만 하시고 사파 연맹과 정파 무림맹을 피해 다닐 수 없잖아요. 차라리 마교로 가요.’
왕전은 자식들을 걱정해서 그 뛰어난 무위를 지니고도 은거를 했다.
딸이 납치를 당하면서 정체가 드러난 것이었지만 지금껏 한 번도 스스로를 내세운 적이 없었다.
중원 무림을 군림하는 오대 고수의 무자라는 자가 말이다.
그것이 그녀의 마음을 너무 아프게 했다.
아버지 정도라면 어딜 가든지 명성을 떨치고 충분히 누릴 수도 있는데, 아픈 자신과 왕분을 보호하기 위해 늘 스스로를 희생했다.
‘이렇게 되면 아버지도 자존심을 굽히시고, 같이 따라가겠지.’
그녀는 왕전이 애지중지 키운 만큼 배려심이 깊게 자랐다.
어떻게든 아버지인 왕전의 자존심을 무너뜨리지 않고 마땅한 명분을 준 것이다.
정파 출신이었기에 마교에 대해서 워낙 안 좋은 인상이 있었지만, 이번 일을 겪으면서 그들 역시도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 아이의 씀씀이가 참으로 깊구나. 가연, 우리 아이가 이렇게 잘 자랐소.’
왕여군의 진의를 알게 된 왕전의 마음이 완전히 누그러졌다.
생각해보면 음양 교합을 했다고 해서 딸의 앞날을 위해서 자존심을 내던지고, 무조건 혼례를 추진하는 것도 우습기도 했다.
차라리 딸의 진의대로 은혜도 갚으면서 서로가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게 나았다.
“흠흠, 네 뜻이 정녕 그렇다면 어쩔 수가 없구나. 그래도 천 교주에게 아무 마음이 없다고 하니 그러도록 하거라.”
헛기침을 하면서도 왕전의 얼굴이 밝다.
딸이 초야를 치른 남자가 아닌 아버지를 신경 쓰는 것에서 기분이 좋아진 왕전이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왕여군의 말에 왕전의 표정은 다시 굳어지고 말았다.
“모, 모를 일이죠. 좀 더 보다보면 좋아 질지도.”
그 말과 함께 부끄럽다는 듯이 왕여군이 얼굴을 붉히며 획하고 고개를 돌렸다.
“!?”
이에 왕전은 기가 차다는 듯이 혀를 내둘렀다.
딸이지만 도저히 여자의 마음은 알 도리가 없었다.
한편 지부에서 가장 귀빈들을 모시는 제 삼 객당의 화려한 호실에 천여운이 이 장로인 연무화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는 근 하루가 넘게 자리를 비웠다가 반 시진 전에 복귀한 참이었다.
천여운은 용호채로 가기 전에 신의 감로수에게 사전에 환자가 누구인지는 숨긴 채, 증상을 알려주었다.
나노의 능력으로 체내 전체를 스캔했기 때문에 조금이라고 이상이 있는 부분은 전부 알렸는데, 그녀는 이 증상이 심혼맥(心魂脈)에 손상일 지도 모른다고 했다.
‘천마신교에는 이런 약재가 있습니까?’
마침 다행인 것은 양귀비의 소재를 알아보기 위해서 마교 내에 있는 모든 약재들에 대한 정보를 나노의 데이터에 저장시켜놓은 천여운이었다.
연무화는 신의 감로수의 부탁을 받고 근경에서 마교에 없는 약재들을 구하러 다녀왔다.
탁자에 올려놓은 약재들이 그것이었다.
“감 파파가 일러준 약재들은 전부 구해왔습니다. 제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런 일들이 있을 줄이야. 송구스럽습니다.”
“아닙니다. 어차피 결과적으로 잘 된 일이니까요.”
사실 연무화가 있었다고 한들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어차피 음양 교합부터 시작해 오대 고수인 무쌍검 왕전과의 대결은 예정에도 없었던 일이었으니 말이다.
-탁!
연무화가 무릎을 꿇고서 포권을 취했다.
“그래도 경하드립니다. 교주님. 명실 공히 오대 고수의 반열에 드신 겁니다!”
그녀의 말대로 천여운은 무쌍검과의 비무에서 이기게 되면서 오대 고수의 반열에 오른 것이었다.
태상교주인 천유종과 다르게 역혈마공을 쓴 것도 아니었기에 의미가 남달랐다.
천여운을 모시는 수하로서 감개무량했다.
‘약재도 구했으니 이제 본교로 복귀인가.’
생각보다 외유가 길어졌다.
이제 남은 것은 신의 감로수의 일만 원만하게 해결하면 마교로 복귀하는 일만이 남았다.
그때 객실의 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똑똑!
“교주님. 지부장 대원입니다.”
“들어오라.”
천여운의 허락에 객실 문이 열리며 지부장 대원을 비롯한 검은 무복을 입고 있는 평범한 인상의 청년이 같이 들어왔다.
청년이 한 쪽 무릎을 꿇으며 천여운에게 인사를 올렸다.
“대 천마신교의 교주님을 배알하나이다.”
“누구지?”
천여운의 물음에 검은 무복의 청년이 말했다.
“교주님. 암종의 종주인 환 장로가 보내서 급히 왔습니다.”
“환 장로!”
청년은 비환귀종이 아닌 암종의 요원이었다.
그를 급하게 보냈다는 것은 뭔가 중요한 전달이 있다는 의미였다.
암종은 보고서를 제출할 때를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서찰 전달 방식을 쓰지 않고 구두로 전달하기에 전음을 보내왔다.
청년의 전음을 들은 천여운이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서둘러 돌아가야 겠구나.”
본교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손님이 십만대산으로 향하고 있다는 정보였다.
* * *
천여운은 그 날 오후에 당장 본교로 복귀할 수 있도록 준비를 했다.
출도 시에는 말을 타고 북상했었지만 돌아가는 길에는 마차가 필요하여 지부장에게 부탁해놓았다.
그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원래는 신의 감로수의 손녀 감미양의 장례를 치르고 가려고 했지만, 예상하지 못한 손님으로 인해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천여운은 마교에서 성대한 장례를 약속하고서야, 신의 감로수를 진정시키고 데려갈 수 있었다.
“거기 조심해서 올리시오!”
“읏차!”
-쿵!
마교의 외당 무사들이 조심스럽게 마차에 시신이 담긴 관을 실었다.
관 옆에는 신의 감로수가 아기를 안고서 꼭 붙어 있었다.
대부분의 준비를 마쳤으니 이제 출발하기만 하면 된다.
천여운은 연무화, 양단화 두 장로들을 데리고 왕전 일가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의사를 묻기 위해 약당으로 향했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해결하려 했는데.’
음양 교합으로 인해 왕전이 어렴풋이 혼사에 대해 거론했었다.
문규가 유일하게 허락한 단 한 사람의 여인이었기에 천천히 왕전과 이를 대화 나누면서 향후 거취를 어떻게 할지 물으려 했다.
그런데 일정이 앞당겨져서 난감하던 차에 예상외의 일이 벌어졌다.
‘세상에 이런 일이!’
이 장로 연무화와 사 장 양단화가 입까지 쩌억 벌어져서는 놀라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무쌍검 왕전을 비롯한 그의 자식들인 왕분, 왕여군이 무릎을 꿇고서 마교에 입교를 청한 것이다.
“왕전 공…..”
“부디 천 교주께서는 거절하지 마시길 바라오. 소중한 여식을 구해준 은혜를 어찌 쉽게 갚을 수 있겠소. 부디 입교를 허락하여 그것을 갚게 해주시오.”
-탁!
무릎을 꿇고서 포권을 취하는데도 오대 고수의 위엄 때문인지 무게감이 가득했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오오오!’
이 모습에 특히 사 장로 양단화는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천여운에게 아뢰어 왕여군과의 혼사를 추진하려고 했던 그였다.
마교에 오대고수 중 한 사람을 초빙할 수 있다면 현재의 판도가 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자발적으로 그 일가가 마교에 입교를 한다고 했다.
마교에 있어서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이건 예상 밖이구나.’
천여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비무를 하고나서 조심스럽게 왕여군과의 혼례에 대해서 거론했던 왕전이 불과 한 시진 만에 태도를 바꾸었다.
굳이 혼례를 통해서 초빙되는 것보다는 모양새가 좋지만 의외였다.
‘혹시 그녀의 의견인가?’
천여운이 왕여군을 쳐다보았다.
-휙!
눈이 마주쳤는데,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그녀가 급히 시선을 회피했다.
음양 교합이라고는 하나 서로의 몸을 뜨겁게 탐했으니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알 수가 없구나.’
저런 태도를 본다면 절대로 호감이 없진 않은 것 같다.
그때 천여운의 귓가로 왕전의 전음이 들려왔다.
[흠흠, 천 교주. 혼사에 관련된 이야기는 차후에 하도록 합시다. 너무 서두르는 것보다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가는 편이 좋지 않겠소?]‘…….’
그 전음을 듣고서야 확신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 결정에는 왕여군의 입김이 들어간 것이 틀림없었다.
혼사의 추진이 아닌 입교라는 방향은 정말 예상 외다.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르다.’
절세미인이기는 하지만 여색을 밝히지 않기에 아무렇지 않게 여겼는데, 문규처럼 여느 여인들과는 뭔가 달랐다.
천여운은 처음으로 문규 외의 다른 여인에게 호기심을 느꼈다.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왕전에게 천여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전음을 보냈다.
[알겠습니다.]그 말을 듣고서야 왕전은 만족스러워했다.
천여운이 그들 왕전 일가에게 가볍게 포권을 취하면서 말했다.
“천하의 무쌍검 왕전 공께서 본교에 입교한다고 하는데, 어찌 환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서 오십시오.”
대우가 담긴 환영에 왕전이 밝아진 얼굴로 화답했다.
“고맙소! 천 교주, 아니. 소신을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주님.”
입교를 허락하자 위계질서에 맞게 곧바로 존대를 하는 왕전이었다.
이에 수하들이 들뜬 얼굴로 축하했다.
-팍!
“교주님! 경하드리옵니다!”
“무쌍검 왕 대협을 얻으신 것을 경하드립니다!”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두 장로들은 전율과 기쁨에 차올랐다.
천여운이 중원 오대고수라는 천하의 인재를 얻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 정보가 중원으로 퍼져나간다면 다른 두 세력들인 정파 무림맹과 사파 연맹이 경악할 만한 사건이었다.
* * *
한편 호남성의 중부 쪽으로 십만대산을 향해 남하하는 화려한 행렬이 있었다.
길게 이어지는 행렬의 중심부에는 황금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마차가 있었고, 그 주위를 수많은 군관들이 철통같이 지켰다.
그들은 무림인이 아니라 관(官)의 병력이 틀림없었다.
높게 들고 있는 붉은 깃발에는 황가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