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203)
# 63장 황명(皇命) (2) #
황명을 실은 황가의 행렬이 도착하기 사흘 전,
가마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목소리가 바깥으로 들려왔다.
“남진무사. 밖에 있느냐.”
“전하! 신 남진무사 연남군 곁에 있사옵니다.”
가마를 지키는 금의위들의 선두에 서있던 남진무사 연남군이 말의 속도를 늦추어 가마 곁으로 붙었다.
그가 옆으로 붙자 가마에서 불평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남진무사. 참으로 우습지 않소? 대명제국의 성왕인 본 왕이 직접 행차한다는 것이.”
가마 안에 있는 황명이 담긴 두루마리와 있는 자는 다름 아닌 대명제국 황제의 둘째 아들인 성왕 주태겸이었다.
주태겸은 지금 십만대산으로 향하는 것이 상당히 불만스러웠다.
처음에는 황제의 명도 있었고 자신의 입지가 걸려있는 일이기에 오기로 내려왔지만 못마땅한 것이 그의 심경이었다.
“황제 폐하께서 명하신 것이오니, 부디 노여움을 거두어 주십시오.”
남진무사 연남군이 그를 달래듯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실 이 같은 말을 남하하는 동안 벌써 수차례나 반복적으로 해왔던 그였다.
가마 안에 있는 성왕 주태겸은 그런 말에도 더는 그 말로도 달래지지 않는지 불만이 삭지 않았다.
‘이런 전통을 태조께서 맺으셨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군.’
차마 이 말은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대명제국을 세운 태조를 모욕하는 말은 설사 왕이라고 해도 용납되지 않는다.
무림(武林)과 관(官)의 상호불가침(相互不可侵) 조약.
그것은 대명제국의 태조와 무림의 삼대 세력의 수장들이 맺은 조약이었다.
보통 사람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무위를 지닌 무림인들은 국가적인 측면으로 보았을 때 굉장히 위험한 존재들이었다.
한 때는 무림과의 전면전을 치른 황조들도 있었지만, 대명제국의 태조는 이 같은 일이 국력의 낭비라고 판단하고 그들과 모종의 조약을 맺었다.
‘듣기로는 태조께서 대명제국을 세울 때 그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들었다.’
그것이 상호불가침 조약의 시초라고 들었다.
그런데 이 같은 일이 벌써 백팔십여 년 전의 일이다.
“남진무사.”
“예. 전하.”
“이 땅은 누구의 것인가?”
“대명제국의 폐하의 것이옵니다.”
“그렇다면 대명제국의 폐하의 땅에 살아가는 자들은 무엇인가?”
“황제 폐하와 대명제국의 신민들이옵니다.”
-쾅!
안에서 주먹질이라도 했는지 가마가 흔들거렸다.
“그런데 어찌해서 이 무림인이라는 무뢰배들은 대명제국을 능멸하는 것이냐.”
“어찌 그런?”
“폐하께서 황명을 내리면 당장에라도 황도로 달려와 머리를 조아려야 할 것들이 오히려 반대로 되어서 본 왕이 특사로 내려간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성왕 주태겸은 이것이 불만이었다.
황제의 명을 받아서 그들에게 특사로 황명을 전달하러 가는 것이 가당치도 않다고 여겼다.
더군다나 지금 향하고 있는 이 마교라는 단체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들은 우두머리인 교주라는 자가 감히 하늘을 칭하고 있다고 들었다.
대명제국의 황제 폐하조차도 천자(天子)라 하여 하늘의 아들을 칭하고 있는데 정말 광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위 정파라고 하는 것들과 이리 다르단 말이냐.”
정파인들은 여느 관료들이나 백성들과 다를 바 없이 황실의 위엄에 우호적이면서 스스로를 바짝 낮추어 대했다.
성왕 주태겸은 황실에서 여러 차례 정파의 고수들을 보았다.
여러 연회 자리에서 초빙 받아서 연무를 보인 적도 있었고, 도가의 고수들은 황실 사람들에게 도가토납법 등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무공에 관심이 많았던 성왕 또한 화산파의 도사에게 황실 무공 이외에 도가 무공을 사사 받았다.
“신이 알기로는 사파와 마교는 지향하는 바가 다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남진무사인 연남군은 무관이지만 정파 무림인 중에 몇 지인이 있었다.
그래서 무림의 삼대 세력 간에 대한 알력을 일부 들었었다.
대명제국보다도 오랜 세월 동안 다퉈올 만큼 서로 생각하고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고 들었다.
“지향? 우습구나. 그런 것은 저들끼리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무림에서 오직 정파만이 대명제국의 신민이란 말인가.”
“…..그렇사옵니다.”
그 말은 연남군 역시도 동의하는 바였다.
황실의 관료들 역시도 여러 당파를 이루고 있으나 근본적으로 황상의 신하들이었다.
그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였다.
무림 안에서 어떻게 나뉘든 간에 그것은 그들만의 문제였다.
대명제국의 입장에서는 모두가 같은 신민인 것이다.
‘황상께서는 명하셨다고 하지만 그건 모양새가 좋지 않다. 적어도 교주가 직접 오도록 해야 본왕의 입지와 위신이 서지 않겠는가.’
정파 무림맹과 달리 마교나 사파 연맹은 그 수장들이 직접 행차한 적이 없었다.
늘 수뇌부들을 대리로 보내서 불가침 조약을 이어나갔다.
감히 불손하게 말이다.
‘흥.’
첫째인 영왕 주태윤에게 우선권이 없었다면 그 역시도 위치적으로 가깝고 늘 머리를 조아리는 정파 무림맹에 특사로 갔을 것이다.
그나마 황실 손님에 대한 대우만큼은 확실하게 해준다고 하는 마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사파 연맹은 그의 숙부인 진왕조차도 가지 말라고 혀를 내둘렀다.
“이대로 가만히 둘 수가 없구나. 네 생각은 어떻느냐? 육영.”
주태겸의 질문에 가마 왼쪽 편에서 그림자에 가려져 말을 몰고 있는 사내가 답했다.
“소신이 듣기로 이번에 마교라는 곳의 교주가 바뀌었다고 들었습니다.”
“흠, 본왕도 그리 들었다.”
성왕 주태겸은 황명을 받고 남하하기 전에 황실에 초빙되어 도가토납법을 가르치는 화산파의 도인들에게 현 마교에 대해서 물었었다.
그들도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마교의 교주가 약관에 불과한 자로 바뀌었다고 들었다.
“소신의 정보원에 의하면 원래 교주의 신변에 문제가 생겨서 현 교주가 그를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고 들었습니다.”
“호오. 그래?”
생각지도 못하게 자세한 사정을 알고 있자 주태겸이 흥미를 보였다.
그림자에 가려진 사내가 계속 말을 이어갔다.
“듣기로는 대부분의 마교의 인재들을 갈아치우고 현 교주는 무능력한 자라고 하던데, 이것을 기회로 삼는 것이 어떠한지?”
“기회?”
“전하께서 무뢰배들을 바로잡아 폐하의 신임을 얻어서 입지를 다지심이 좋을 거라 사료되옵니다.”
그림자에 가려진 육영이라는 자의 말에 남진무사 연남군이 인상을 찡그렸다.
어떤 식으로 황명을 전달하는 특사가 진행되든지 그것은 전적으로 성왕 주태겸에게 달려있지만 이런 간언이 옳을지 판단이 가지 않았다.
“흥미롭구나. 계속 말해 보거라.”
그러나 성왕 주태겸은 이에 크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육영의 간언을 모두 듣고 난 성왕 주태겸은 안타깝게도 그의 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키로 하였다.
‘저 육영이라는 자는 대체…….후우. 그들이 어찌 나올지는 모르겠구나.’
우려가 되었지만 황실 친위대인 금의위는 오직 명령만 들을 뿐이었다.
그것이 문관과 무관의 차이였다.
* * *
남진무사 연남군이 북문의 성 앞에 있는 마교인들을 향해 외쳤다.
“무엄하도다! 당장 모두 무릎을 꿇고 황명을 받들지 못할까!”
위엄이 넘치는 호통.
공력마저 실려 있었기에 근방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보통 백성들은 황명이라고 한다면 당장에 겁을 내면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다.
그런데 달랐다.
뭔가 공기가 싸늘하게 바뀌었다.
방금 전까지 황가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에서 환대해주는 느낌을 받았다면 무릎을 꿇으라는 말이 나옴과 동시에 마교인들의 표정이 일제히 굳어졌다.
‘허어….’
남진무사 연남군조차 순간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마교인들이 쉽게 무릎을 꿇지는 않을 거라고 여겼지만 이렇게 냉담한 반응이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무리 무림인이라도 이건 아니구나.’
우려되는 명령을 이행했지만 막상 마교인들의 냉담하면서 떨떠름해하는 모습을 보자, 황실을 보필하는 친위대인 금의위의 남진무사로서 연남군은 노기가 올랐다.
그가 인상을 잔뜩 쓰고서 다시 호통을 치려는데, 그의 귓가로 전음이 들려왔다.
[되었다. 그대가 나서서는 안 되겠구나.]성왕 주태겸의 전음이었다.
그 말이 끝나자 가마 밖으로 나온 후덕한 관료처럼 보이는 자가 인상을 굳히며, 옆에 있는 금의위를 불러서 황명이 담긴 두루마리 쟁반을 맡겼다.
그러더니 앞으로 몇 보 걸어 나와 천여운을 비롯한 마교인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여서 소리쳤다.
“본왕은 대명제국 황제 폐하의 명을 받고 내려온 성왕 주태겸이라고 한다.”
그는 다름 아닌 성왕 주태겸이었다.
방금 전까지 냉담하게 바라보던 마교인들의 반응이 바뀌었다.
-웅성웅성!
“성왕이라니?”
“황제의 아들이란 말인가?”
왕의 칭호를 가지는 자들은 오직 황제의 형제들과 그 자식들뿐이다.
금의위가 호위하기에 상당한 권력을 가진 자가 납셨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게 왕일 줄이야.
의아해하는 천여운의 귓가로 환의의 전음이 들려왔다.
[교주님. 성왕이라고 한다면 현 황제의 둘째 아들인 주태겸입니다.]정보와 간자를 총괄하는 암종의 수장답게 무림만큼은 상세히는 아니더라도 현 황실 인사들의 이름 정도는 기억해뒀다.
과거에도 상호불가침 조약 때문에 몇 차례 재상 급이나 왕들이 방문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그 태도가 과거와는 전혀 상반된다는 것이다.
오만하게 내려다보는 표정하면서 호통을 치는 것이 마치 보통의 백성들을 대하는 듯 했다.
성왕 주태겸이 웅성거리는 그들을 향해 찢어진 눈썹을 치켜 올리며 말했다.
“참으로 무엄한 자들이로다. 감히 황상의 명이 담긴 두루마리를 보고도 멀뚱히 서있는 것도 모자라 본왕이 직접 납셨는데도 이리 고개를 들고 있단 말인가!”
성왕 주태겸의 태도를 보면 기어코 마교인들이 무릎을 꿇는 것을 보고 싶어하는 듯 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면서 마교인들은 어찌해야 할지 난감했다.
오히려 그보다도 교주의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응? 저놈인가?’
성왕 주태겸의 눈에 마교인들의 한가운데서 화려한 의복을 갖춰입은 천여운을 발견했다.
모두가 한결 같이 그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이번에 등극했다는 그 신임 교주가 틀림없었다.
‘아무 기운이 느껴지지 않아서 몰랐는데 교주가 틀림없구나.’
완벽하게 기가 갈무리 되어서 어떠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천여운이다.
무인이라기 보다는 평범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렇기에 금의위들을 비롯해 성왕 주태겸은 처음에 그가 마교의 교주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정말 애송이였구나.’
그래도 마교의 교주라 하여서 상당한 고수일거라 여겼는데 아니었다.
이것에 더욱 자신감이라도 얻었는지 성왕 주태겸이 손가락으로 천여운을 가리켰다.
“그대가 마교의 교주이더냐?”
당연하다는 듯한 하대에 옆에 서있던 좌호법 이화명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물론 모든 마교인들이 하나 같이 같은 반응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성왕 주태겸은 더욱 화를 돋우기라도 하는 것처럼 천여운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고 했거늘. 교주가 모범이 되지 않으니 그러하구나. 당장 이리 와서 무릎을 꿇고 황제 폐하의 명을 받으라.”
결국 그 마지막 말은 마교인들의 공분을 사고 말았다.
‘감히!’
‘본교의 하늘을 능욕하다니!’
-고오오오오!
그들의 몸에서 일제히 강렬한 기운이 발산되면서 가만히 서있던 말들이 놀라서 앞 말발굽을 들어 올리며 몸을 돌리려했다.
-히이이잉!
“헉! 마, 말들이 갑자기!”
“워워!”
이것은 평범한 병사들은 물론이거니와 무공을 익힌 금의위들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마교인들이 분노하여 진기를 뿜어대고 있는 것을 말이다.
가장 먼저 위협을 느낀 남진무사가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들며 소리쳤다.
-챙!
“감히 지금 황제 폐하의 명을 가져오신 성왕 전하께 기운을 드러냈단 말인가! 마교에서는 지금 역모를 행하려는 것이냐!”
역모(逆謀).
그것은 현 황조에 반기를 드는 것을 말한다.
황제와 그 핏줄을 위협하는 것은 역모의 행위로 간주되게 된다.
무릎을 꿇으라는 명령도 모자라서 이제는 역모까지 거론하자 마교인들은 하나 같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후후후,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성왕 주태겸이 속으로 흡족해했다.
매번 황실에서 상호불가침 조약 때문에 대우를 해주는 것에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강경하게 나온다면 제깟 것들이 어찌하겠는가.
아무리 무림인이라고 해도 황실의 수백만 대군과 맞서 싸우기라도 할 텐가.
‘대명제국의 신민이라면 그에 걸맞게 행동 하거라.’
어차피 마교인들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존심을 택하고 황실을 적으로 만드느냐? 혹은 그동안의 자존심을 버리고 수치스러워하느냐를 두고 고민하리라.
그렇게 여겼다.
그러나,
-탁!
갑자기 천여운의 곁에 있던 반백의 건장한 노인이 앞으로 나와, 그에게 한쪽 무릎을 꿇고 포권을 취하고서 말했다.
“교주님. 소신이 잠시 나서도 괜찮겠습니까?”
그가 외라자 천여운이 손을 가볍게 들어서 허했다.
반백의 노인은 다름 아닌 마교의 제 삼 장로인 문연이었다.
문연이 앞으로 걸어 나와 가볍게 성왕 주태겸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이에 곁에 있던 금의위가 소리쳤다.
“감히 주상 전하께 건방지게 포권을 취하는…”
-오싹!
“흐억!”
그 순간 금의위는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진기에 억눌려 입을 뗄 수가 없었다.
문연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진기가 그를 억눌러서 고통스럽기마저 했다.
그런 금의위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문연이 입을 열었다.
“대명제국의 성왕 전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에 성왕 주태겸이 불쾌하다는 듯이 말했다.
“감히 본왕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그런 그의 말을 자르고서 문연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성왕 전하.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저희 천마신교의 교인들은 교의 하늘이신 교주님을 제외한 누구에게도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강경한 문연의 말에 마교인들이 동의하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그의 말에 황실 행렬단의 병사들이나 금의위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대명제국의 신하들로서 한 번도 겪어 본적이 없는 태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희 천마신교는 정식으로 대명제국과 상호불가침 조약을 맺은 동등하면서 서로 무관한 관계입니다.”
문연의 말에 성왕 주태겸의 인상이 굳어졌다.
설마 이 상황에서 상호불가침 조약을 거론할 줄은 몰랐다.
“대명제국의 태조께서 건국하실 때, 본교의 도움을 받으셨고 관과 무림이 불가침조약을 맺기로 하였는데 어찌하여 저희에게 무릎을 꿇기를 권하십니까?”
본질을 정확하게 짚는 문연이었다.
문연은 전대 태상교주부터 모셔왔던 오랜 종가답게 과거의 조약들을 상세히 알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무림은 황실이나 관과는 완전 별개의 존재였다.
정파 무림인들 중에는 관직으로 나가는 자들도 있어서 우호적인 관계로 황실을 대우할지 모르나 마교는 아니었다.
오직 불과 마신, 그리고 이를 이어주는 교주만을 모실 뿐이다.
‘후우.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
이를 들은 남진무사 연남군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상호불가침 조약을 맺은 마교 측에서 성왕에게 무릎을 꿇을 리도 없었고, 역모로 협박을 한다고 해도 쉽게 따를 리가 없었다.
‘더는 저들을 불쾌하게 하기보다 이쯤에서 멈추는 게 좋을 련만.’
육영이 간언한대로 해봐야 마교인들의 심기만 건들 뿐이었다.
아무리 마교인들이 불만스러운 성왕 주태겸이라도 이쯤에서 멈추리라 여겼다.
그런데 그 예상은 벗어났다.
“감히! 하찮은 신민 주제에 대명제국의 본왕에게 훈계를 하는 것이더냐! 금의위는 들어라! 당장 이 무례한 자를 본왕의 앞에 무릎을 꿇려라!”
뜻밖의 성왕의 명령에 남진무사 연남군을 비롯한 옆에 서있던 훤칠한 부관마저 당혹스러운 눈빛이 되었다.
“잠…”
“명을 받듭니다!”
-챙!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금의위들 중에 세 사람이 검을 뽑아서 삼 장로 문연을 향해 달려들었다.
“허허. 악수를 두시는 구려.”
그러나 화경의 고수인 문연이 고작 일류 고수에 불과한 금의위들에게 제압될 리가 만무했다.
-채채채챙!
문연은 가볍게 맨손으로 강기를 일으켜 그들이 휘두르는 검을 부숴버렸다.
“헉! 거, 검이?”
-팍!
“크윽!”
그때 종주들 중에 일부가 나서, 세 사람의 금의위들을 단숨에 제압하고 말았다.
문연을 제압해서 무릎을 꿇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금의위들이 제압되는 사태가 벌어져 버렸다.
“성왕 전하를 보호하랏!”
“반역이닷!”
-타타타타타탁!
금의위들이 일제히 병장기를 빼들고서 일사불란하게 마차 주위로 들고 있던 철방패를 바닥에 내리꽂으며 경계 진을 만들어냈다.
갑자기 사태가 악화된 것에 당혹스러워하는 남진무사 연남군과 다르게 오히려 이런 사태를 바라기라다도 했다는 듯이 성왕 주태겸의 입 꼬리가 올라가고 있었다.
‘흐흐흐, 제 놈들이 이런 판을 만들어주었구나.’
그런 그의 귓가로 누군가의 전음이 들려왔다.
[육영!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게야!]놀랍게도 스스로를 성왕이라 밝혔던 이 후덕한 자의 정체는 육영이었다.
육영은 자신에게 전음을 보낸 자를 바라보며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하의 뜻을 받들어서 건방진 마교의 무리들을 바로잡기 위함입니다.] [이런 식으로 하라고 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당혹스러워하는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남진무사 연남군의 옆에 서있는 부관이었다.
그가 진정한 성왕 주태겸이었다.
‘적당히 황실의 위엄만 보이면 된다고 하더니….육영 이 자가!’
마교인들을 자극할 수도 있기에 금의위로 변장하고 육영을 대리로 앞세웠는데, 마지막에 와서 그가 하지도 않은 말을 꺼내서 사태를 악화시켜 버렸다.
연남군의 표정을 보면 이런 명령을 내린 것이 그라고 생각하는지 난처해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보, 본왕이 아니다!]성왕 주태겸이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지만 이미 늦었다.
이미 금의위들을 비롯해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전투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육영은 이 사태를 흡족해했다.
‘이것으로 마교는 황실과 척을 지겠구나. 크크큭. 굳이 제 삼계를 벌일 필요도 없이 이 육영의 손에 모든 것이 이루어…’
바로 그때였다.
흡족해하는 육영의 앞으로 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는 바로 천여운이었다.
‘어, 어떻게 금의위들을 뚫고서?’
놀랄 틈이 없었다.
“큭!”
-팟!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비추공을 팔성까지 익혀, 무위가 완숙한 절정에 이른 육영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앞에 나타난 천여운을 향해 일수를 날렸다.
그러나,
-촥!
“끄아아아악!”
육영이 지른 일수가 순식간에 잘려나가고 말았다.
손목 채로 잘려나간 고통으로 육영이 비명을 지르면서 당혹스러운 마음에 아무렇게나 지껄였다.
“보, 본 왕을 치려하다니 진정 역모를 저지르려는 것이더냐!”
“본 왕? 헛소리 지껄이지 마라.”
“네, 네놈이…”
-촥!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천여운이 맨손으로 도기를 일으켜 그의 반대쪽 왼팔을 어깨채로 그대로 베어버렸다.
“끄아아아아아악!”
오른손과 왼팔이 잘려나간 육영이 육중한 몸으로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잘린 단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가 분수처럼 바닥을 적셨다.
-탁!
바닥을 뒹구르는 육영의 육중한 몸을 천여운이 너무도 가볍게 한 손으로 들어올렸다.
금의위들조차 그 괴력에 놀라서 두 눈이 커졌다.
“지, 지금 뭘 하려고?”
“이런 짓.”
-휙!
“으아아아아악!”
천여운이 들어 올린 육영을 물건을 던지듯이 마교인들이 있는 곳을 향해 던져버렸다.
-쿠당탕!
“끄헉!”
금의위 이백 명이 만들어낸 경계진에서 일순간에 마교 고수들이 있는 한복판에 떨어지고 만 육영은 고통도 잊고서 당혹스러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가, 감히!”
“이 자를 잡아랏!”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이를 막지 못한 금의위들이 당장에 천여운을 향해 검을 휘두르려고 했으나 소용없었다.
-슉!
천여운의 신형이 잔상을 일으키며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황실의 무공을 익힌 금의위들이 이 수법을 모를 리가 없었다.
“사, 사라졌어! 설마 이건?”
“이형환위!”
그들이 사라진 천여운을 찾으려고 했는데, 어느새 그는 금의위들이 원진으로 철통처럼 둘러싸고 있는 성왕 주태겸과 남진무사의 앞에 나타났다.
누구 하나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을 만큼 너무 빨라서 귀신을 보는 듯 했다.
“어, 어떻게 원진을 뚫고서?”
“막아랏!”
금의위들이 놀라서 천여운에게 달려들려 했지만,
-슉! 슉! 슉!
천여운의 주변으로 잔상을 일으키며 세 사람이 나타나, 금의위들을 가로막았다.
그들은 대호법 마라겸을 비롯한 좌호법 이화명, 우호법 섭맹이었다.
금의위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무공의 경지에 오른 세 호법들에게 경계 진을 뚫는 것은 물을 마시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다.
-촤악!
좌호법 이화명이 바닥에 타오를 듯한 붉은 검신의 보검으로 선을 그으며 경고했다.
“이 선을 넘으면 한쪽 팔 정도는 각오해라.”
“클클, 이하동문이다.”
-촤악!
마찬가지로 섭맹이 바닥에 광무도의 도기로 선을 만들며 말했다.
두 화경의 고수가 내뿜는 강렬한 살기에 용맹한 금의위들이라고 해도 두려움을 느꼈는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어느새 곳곳에 나타난 마교의 종주들이 병장기를 뽑고서 투기를 풀풀 풍기면서, 진 밖을 둘러싸고 있었다.
‘이, 이게 무림인, 아니 마교란 말인가?’
부관의 갑주를 걸치고 있는 성왕 주태겸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 또한 무공을 익혔는데다가 일류 고수들로 이루어진 경계진이라면 누구도 뚫지 못할 거라 여겼다.
그런데 이들은 너무도 쉽게 이 방어망을 통과했다.
심지어 무공을 전혀 익히지 않은 것 같던 천여운은 상상을 초월하는 괴물이었다.
주위에 정적이 감돌자 천여운이 성왕 주태겸을 향해 가볍게 포권을 취하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성왕 전하를 뵙습니다. 부관의 갑주가 잘 어울리시는군요.”
‘!?’
천여운의 입에서 나온 그 말에 성왕 주태겸의 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놀랍게도 천여운은 숨겨진 그의 진정한 정체를 알고 있었다.
‘이, 이럴 수가! 본 왕을 알아차리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