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205)
# 63장 황명(皇命) (4) #
육중한 살집에 찢어진 눈매의 관료가 고통스러워하면서 두려워 하는 눈빛으로 주위에 있는 마교 고수들을 바라보았다.
“끄으으윽!”
이 자는 성왕 주태겸을 연기한 황실의 관료인 육영이다.
그를 이곳에 던졌다는 것은 필시 제압해놓고 있으라는 교주님의 의도이리라.
“이, 이놈들. 나는 황실의 관료다! 다가오지마라.”
“황실 관료? 하! 웃기는군.”
“으으으.”
육영이 발로 땅바닥을 밀어내며 뒤로 움직여보았지만 사방이 마교인들이었다.
분위기가 살벌하기 짝이 없었다.
-고오오오!
사방에서 살기가 요동을 쳤다.
건방진 입으로 교주를 비롯한 마교인들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종용을 했으니 당연히 그 화를 감당해내야만 했다.
‘빌어먹을 이러다가 정말 죽겠구나.’
불과 반의 반각 전 만 하더라도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되었다고 여겼다.
괜한 욕심에 기존의 계획된 것 이상으로 획책했던 것이 오산이었다.
“종주들은 잠깐 멈추시오.”
그때 살기를 물씬 풍기는 마교인들 중 한 사람이 냉정한 눈빛으로 걸어 나왔다.
환검종의 종주인 묵연이었다.
“당장에라도 찢어죽이고 싶지만 일단은 살려두마.”
묵연은 겉에 두르고 있던 장포를 찢어 천으로 잘린 팔을 지혈시킨 후에 내공을 쓰지 못하게 혈도제압술을 펼쳤다.
-타타타탁!
원래라면 자살을 해야 하건만 심지가 약한 육영은 혈도제압술을 당하면서도 차마 혀를 깨물거나 내공을 폭주시키지 못했다.
죽어서 저승에 가는 것보다 개똥밭이라도 이승이 나았다.
그런데 여기서 예상 외의 일이 벌어졌다.
‘엇?’
혈도제압술로 내공이 제압되어 천여운의 놀라운 신위를 바라보던 육영은 점차 온몸이 차갑게 식어가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춥다는 생각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오장육부를 난자하는 것만 같은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아악!”
놀란 종주들이 그를 살폈는데, 귓구멍을 제외한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검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치이이익!
핏방울이 바닥에 떨어지자 매캐한 연기가 흘러나왔다.
“도, 독?”
“물러서시오!”
독에 중독되었다고 판단되자 종주들이 일제히 그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마교의 고수들이 물러나는 모습에서 육영은 자신이 독에 중독되었음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독이라니? 육영 저 자가 어째서? 설마 마교에서?’
이것을 본 남진무사 연남군이 순간 마교를 의심했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마교주는 언제든지 금의위들과 황실 특사로 온 병사들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손수 보여주었다.
굳이 독을 써가면서 죽일 리가 없었다.
‘헉…헉…..내, 내가 언제 독에?’
대업의 제 삼 계를 위해 성왕에게 보내지기 직전에 고를 심기는 했지만 쓸데없는 정보를 발설하려 할 때 발동하는 거라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공이 금제되자마자 몸속에 독이 발동했다.
‘끄으으으, 고는 전신의 혈관을 터뜨려서 죽이는데.’
확실히 고는 아니었다.
다른 독에 중독된 것이 틀림없었다.
-털썩! 부들부들!
오장육부를 비롯한 전신에 독이 완전히 퍼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점점 의식이 사라져가는 와중에 육영의 머릿속에 누군가가 스치지나갔다.
‘도혈문주?’
생각해보니 황실에서 출발하기 이틀 전에 도혈문주(刀血門主)를 만났다.
상위 여섯 문주들 중에서 도염문주와 더불어 가장 위험하다고 불리는 최악의 인물이었다.
내심 그가 두려웠지만 식사도 대접해주고 전표도 넉넉히 챙겨줘서 기분 좋은 만남이었다고 여겼었다.
‘식사? 설마 그때?’
“끄웨에에엑!”
속에서 크게 피를 게워낸 육영이 바닥에서 몸을 꿈틀 거렸다.
이제는 그의 몸에서 독기마저 증기처럼 뭉실거리며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때 천여운이 급히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위, 위험합니다! 교주님!”
“그 자의 몸에서 독기가 흘러나옵니다!”
주변에 거리를 벌리고 있던 종주들이 만류했지만 천여운의 손이 이미 육영에게 뻗고 있었다.
-치이이익!
“아!”
육영의 몸에서 여전히 독기가 흘러나왔지만 현경의 극에 오르면서 만독불침의 경지에마저 오른 천여운에게 통할 리가 만무했다.
뿌옇게 흘러나오던 독기는 그에게 닿는 순간 정화되듯이 사라져버렸다.
‘독이 통하지 않는다!’
‘아아! 교주님께서 정녕 무의 끝을 보셨구나.’
이를 지켜보는 종주들이 내심 탄성을 흘리며 대단해했다.
그런 그들의 반응을 개의치 않고 천여운은 육영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등에 손을 대고 감각에 집중했다.
-쿵!…….쿵!…….쿵!
심장이 뛰는 것이 느껴졌다.
점점 느려지고 있는 것이 숨이 끊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칫.”
그를 죽게 내버려둘 순 없었다.
전음 도청을 통해서 그가 성왕 주태겸의 명령을 어기고, 황실과 본교를 부딪치게 만들려 했다.
그것을 들은 천여운은 육영이 다른 어떤 세력의 간첩이라 여겼었다.
-파파팍!
천여운의 그의 주요 혈자리로 공력을 흘려보내 독을 몰아내보려 했다.
“끄윽!”
그러나 이미 전신으로 퍼져나간 독으로 인해 밑 빠진 독에 불과했다.
공력을 불어넣어도 회생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대체 왜 이러는 것이지?”
천여운의 물음에 영문을 몰라서 당혹스러워 하던 환검종의 종주 묵연이 말했다.
“지, 지혈을 한 후에 내공을 운기할 수 없도록 혈도제압술을 펼쳤습니다.”
“혈도제압술?”
천여운의 인상이 굳어졌다.
그렇다면 내공이 체내로 순환하지 않는 순간 독이 퍼져나갔다는 말이었다.
철두철미하게 정보가 누설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과하구나.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단 말인가?’
어차피 살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운기 경로나 체내를 살펴서 그가 어디서 보내진 존재인지 알아내야 했다.
천여운이 그의 명문혈로 내공을 불어넣어 운기 경로를 살폈다.
‘이건 비추공?’
비추공(肥抽功).
그것은 정파의 소림사에서 기원한 무공이다.
단순히 살을 찌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빠르게 내공을 쌓을 수 있는 기공의 일종이었다.
워낙 잘 알려진 무공이었지만 외형이 보기 좋지 않고, 몸이 둔해지는 등 단점이 많아서 일반적으로 잘 익히지 않는 무공이었다.
‘정파의 첩자란 말인가?’
무공의 기원만 보면 정파의 사람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그들이 어째서 황실과 마교를 부딪치게 만든단 말인가.
‘이상하다. 설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천여운이 나노에게 명했다.
‘나노, MRI 스캔.’
[알겠습니다. 지정한 대상의 몸에 자기공명영상(magnetic resonance imaging)법으로 스캔하겠습니다.]나노의 목소리와 함께 천여운의 손바닥에서 희미한 붉은 빛이 선을 그리며 손가락 끝에서 손바닥까지 내려왔다.
-츠츠츠츠!
천여운의 동공이 흔들리며 증강현실이 개안되었다. 개안된 증강현실에 자기공명영상(MRI)로 스캔한 영상이 출력되었다.
‘우선 머리부터.’
천여운이 이제는 거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는 육영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만졌다.
그 순간 천여운의 시야의 스캔된 영상에 무언가가 잡혔다.
‘이건?’
영상 속에는 머릿속에 작은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 움직임이 차츰차츰 느려지는 것을 보면 숙주와 마찬가지로 죽어가는 듯 했다.
‘고다. 고가 틀림없어.’
이것은 극도육무문의 도검문주 이백이란 자가 가지고 있던 고와 비슷한 형태였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고가 죽어가는 것뿐이었다.
-스륵!
육영의 고개가 옆으로 힘없이 돌아갔다.
독이 전신을 잠식하면서 힘겹게 버티던 육영이 결국 숨을 거둔 것이다.
이때 놀라운 현상이 벌어졌다.
육영이 숨을 거두는 순간에 머릿속에 있는 고로 보이는 흰색 형태의 무언가가 작게 터지면서 액체처럼 변해서 뇌로 스며들었다.
-주르륵!
육영의 귀가 코에서 검은 피와는 다른 누런 끈적거리는 액체가 흘러내렸다.
죽어서 터진 고가 흘러나온 것이다.
같은 시각.
절강성 항주에 있는 황산에 숨겨진 어두운 석실.
-키엑키엑!
석실에 시끄럽게 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등불 하나만 비추고 있는 석실 안의 탁자위에 올려 진 붉은 목함 안에 주먹만한 붉은 고(蠱)가 기괴한 소리를 내면서 울고 있었다.
이를 그림자에 얼굴이 가려진 정체불명의 사내가 바라보고 있었다.
-푸직!
한참을 울면서 파르르 떨던 고가 갑자기 터지더니 녹아내렸다.
사내가 죽은 고가 들어있던 붉은 함의 뚜껑을 닫으며 중얼거렸다.
“역시 이번에도 마교인가.”
붉은 함의 뚜껑 위에는 제 삼계 마교 첩(諜)이라 적혀 있었다.
이번에는 굳이 사내가 직접 고를 없앨 필요도 없었다.
간자의 몸에 조금이라도 이상 징후가 보이면 독이 퍼져나가 죽도록 조치를 취해놨으니 말이다.
“본문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것 같으냐. 네놈들이 어떤 짓을 한들 아무 것도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
최근 들어서 두 번째 대계가 허무하게 깨져버렸다.
그것이 제대로 이어졌다면 마교는 그들의 수중에 쉽게 들어왔을 지도 모른다.
오히려 오랜 시간 공들여서 대기하고 있던 간자들마저 잃었다.
이번에는 고의 흔적마저도 남기지 않도록 신경을 썼으니 마교에서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배후를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체모를 사내가 전혀 염두 못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노였다.
MRI 스캔을 통해서 고가 터지기도 전에 체내에 있다는 것을 알아낸 천여운이었다.
이를 통해 천여운은 육영의 정체를 눈치 챘다.
‘극도육무문!’
황실과 그들을 부딪치게 만들려고 했던 이 자의 정체는 극도육무문의 간자였다.
‘이번에도 극도육무문이라….’
황실에마저도 손길이 닿아있을 만큼 그들의 영향력이 대체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문득 이들이 연관되어 있는 황명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천여운이 두루마리를 펴보았다.
-사르르륵!
“헉!”
“황명이다! 엎드려라!”
-우르르르!
말려있는 두루마리를 열리자 금의위들이 일제히 바닥에 엎드려서 머리를 조아렸다.
눈치를 보고 있던 이천 명에 이르는 병사들도 얼른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황제의 명이 담긴 두루마리를 열었기 때문에 예를 갖춘 것이다.
정작 황명을 받은 당사자인 천여운을 비롯한 마교인들은 당당하게 서있었다.
‘큭. 무례한 자들 같으니라고!’
허벅지를 다쳐서 절뚝거리며 엎드린 남진무사 연남군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천여운이 확실하게 그들의 기를 죽였기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흠.”
한참을 두루마리를 읽어 내려가던 천여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그것에는 특사로 온 성왕 주태겸의 태도와는 다르게 하나의 동등한 국가를 대하는 듯 한 정중한 체로 적혀 있었다.
실질적으로 황명이라기보다는 친서에 가까웠다.
[…..책봉될 태자와 새로운 불가침 조약을 맺는 자리에 귀교의 영웅분들과 여러 귀빈들을 초청하려고 하오.]두루마리에는 천여운을 초청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초청날은 다음 달 초닷새인 단오제(端午節) 날이었다.
그런데 이 내용을 살펴보면 초대되는 것은 마교 뿐만이 아닌 듯 했다.
-슉!
“헉?”
겨우 진정을 하고 있던 성왕 주태겸이 갑자기 나타난 천여운 때문에 놀라 했다.
귀신처럼 흐릿하게 나타나는 통에 심장이 덜컥 했다.
“왜, 왜 그러시오?”
천여운이 두루마리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전하께서는 이 안에 담겨있는 내용을 알고 계십니까?”
“자세히는 아니더라도 대충은 알고 있소.”
황명이 담긴 두루마리는 황족이라고 해도 몰래 살펴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사로 왔기에 그것을 전달할 때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황제가 언급한 것이 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새로운 불가침 조약을 위한 초청 내용이 담겨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천여운이 두루마리를 성왕에게 넘기며 물었다.
“혹시 이 초청장이 누구에게 간 것인지 알 수 있습니까?”
그 질문에 성왕 주태겸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답변했다.
찰나에 고민했지만 어차피 후에 알게 될 일이라 굳이 숨길 필요는 없었다.
“각 세력의 수장들에게 전달되었소.”
“삼대 세력?”
주태겸의 대답에 천여운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단오제 날에 초청장에 응한 삼대 세력의 수장들과 수뇌부들이 한 곳으로 모인다는 말이 아닌가.
‘그들을 한 자리에 모은다?’
뭔가 의미심장한 이야기였다.
이념이 다른 삼대 세력이 한 자리에 모인 경우는 무림사를 통틀어 다섯 손가락에 꼽을 만큼 적었다.
그렇게 모였을 때도 실질적으로 두 번을 제외하곤 대전쟁을 벌였을 때뿐이었다.
‘설마 극도육무문에서 삼대 세력들끼리 전쟁을 벌이게 만들려는 것인가.’
만약 그들이 획책한 것이라면 그것이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이어지는 주태겸의 말에서 전혀 예상 밖의 내용이 튀어나왔다.
“아니오. 혹시 교주께서 말한 삼대 세력이 귀교와 정파 무림맹, 사파 연맹을 말한 것이라면 한 곳이 더 있소.”
“한 곳?”
“극도육무문이라는 신진 세력이오.”
놀랍게도 초대되는 대상들 중에 극도육무문이 끼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