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207)
# 64장 도와주셔야겠습니다 (2) #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방금 전에 마교의 성 북문에서 배웅하던 천여운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 모습만 봐서는 한참은 마차 안에서 숨어있던 것처럼 나타났다.
자신이 들어가는 그 순간에 들어갔다고 하기에는 믿기지가 않았다.
“읍읍.”
[무공을 익히셨으니 전음은 하실 수 있겠죠?]천여운의 말에 성왕 주태겸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강제로 입을 닫혀서 그런지 턱이 아팠다.
-우우웅!
신기하게도 강제로 입을 닫게 만들던 진기가 사라지면서 편해졌다.
“하아….하아….”
코로 숨을 쉬어도 되었는데, 얼마나 공포심을 느꼈는지 하얗게 질려서는 입으로 연신 거침 숨을 토해냈다.
‘젠장, 여기서 소리를 질러도 소용없겠지?’
이미 천여운의 엄청난 무위는 두 눈으로 확인했다.
마음만 먹으면 혼자서도 황실 특사단을 전멸시킬 수 있는 괴물이었다.
결국 그의 비위를 맞추는 수밖에 없었다.
‘본 왕이 어쩌다가 이런 수난을…..’
마교로 출발하기 전만 해도 이런 일을 겪으리라고 누가 상상했겠는가.
황제를 제외하고는 황족으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성왕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대, 대체 언제 마차에 탄 거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천여운은 두루뭉술하게 답변했다.
이에 성왕 주태겸은 본의 아니게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자의 무공은 정말 하늘에 닿았구나. 그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도 누구 하나 눈치채지 못하게 마차에 탔단 말인가.’
주태겸은 자신이 마차의 문을 여는 순간 천여운이 탔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은 아니었다.
천여운이 마차를 탄 것은 금의위들이 떠날 채비를 하던 시점이었다.
[그, 그런데 천 교주께서 어찌 해서 본 왕의 마차에 탄 것이오?]비위를 거슬리기는 싫지만 도통 이유를 짐작하기 힘들었다.
조약식에 참석하는 것도 거절한데다가 이 마차는 황도인 개봉으로 향하는데, 어째서 여기에 탔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천여운이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당연히 전하와 함께 황궁으로 가기 위함입니다.] [화, 황궁?]천여운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목적에 주태겸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천하 무림을 세 등분 하는 거대 단체의 수장이 갑자기 황궁으로 가겠다는데 의아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했다.
사실 그보다도 천여운 자체가 무서운 주태겸이었다.
‘서, 설마 본 왕이 했던 말을 듣고서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
불안함이 지속되다 보면 사리 판단이 흩어지기 마련이었다.
하필이면 당사자가 보고 있는 앞에서 욕을 하고 있었으니 충분히 화가 날 만도 했다.
주태겸이 황족의 체통도 잊은 채, 조심스럽게 달래듯이 말했다.
‘헉!’
담담하게 하는 말치고는 그를 두렵게 만들었다.
말투만 들어보면 적의를 느꼈으면 어찌 할 뻔했다고 하는 듯 했다.
이에 주태겸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전하의 마차에 함부로 타서 놀라게 만든 점은 송구스럽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값은 충분히 치른 걸로 하겠습니다.] [아, 알겠소!]사실 무례를 저지른 것은 마차에 난입한 천여운 쪽이다.
하지만 욕을 하던 것을 들켜서 혹여 그가 불쾌함으로 어찌 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주태겸은 좋아라 이를 받아들였다.
“휴우.”
어찌 보면 굉장히 순진하다고 할 수 있었다.
계속 마차에서 이러고 있을 수 없으니 천여운이 본론을 꺼냈다.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성왕 전하께서 저를 도와주셔야겠습니다.]도와달라는 청유형이 아니었다.
칼만 들지 않았다 뿐이지 시키는 데로 하라는 소리였다.
주태겸은 순간 어이가 없었지만 천여운이 두려웠기에 인상을 쓴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자가 무섭기는 하지만 황족의 말은 천금과도 같다고 했다.’
황제 폐하와 그를 가르치던 대제학이 늘 하던 말이다.
나라의 법보다도 우선시 되는 것이 황제와 황족의 말이기에 늘 신중히 하라고 당부했었다.
[대, 대체 무엇을 도와달란 말이오?]눈치를 보면서도 할 말은 하는 모습에 천여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자신을 마냥 두려워할 줄 알았는데 생각 외로 중요한 부분에서는 강단이 있었다.
‘황족은 황족이란 건가.’
그렇다면 적당히 구슬릴 필요가 있었다.
어차피 황궁으로 가게 되면 그의 도움이 절실했다.
[설명이 필요하겠군요. 이레 전에 전하를 대신하던 그 관료를 기억하시겠죠?] [………]기억하다 뿐이겠는가.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천여운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마교 측에서는 그때 육영이 처음부터 독에 중독되어 있었다고 해명했었다.
그것은 남진무사 연남군도 동의했기 때문에 주태겸도 납득했지만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전하께서는 이번 조약식에 극도육무문이 참석한다고 하셨죠?] [….그렇소.] [그 죽은 관료는 극도육무문의 간자입니다.] [뭐, 뭐요?]천여운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정보에 주태겸이 인상을 찡그렸다.
독에 중독된 것이 이상하기는 했지만 느닷없이 황실의 하급 관료인 육영이 간자라고 하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선 본교에서 있었던 일부터 말씀드려야 겠군요.]천여운은 의아해하는 주태겸에게 간단히 극도육무문이 현 무림에 등장한 배경과 함께 마교에 있었던 여러 사건들을 간략히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극도육무문에서 정보 차단을 위해 심는 고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이럴 수가……정보의 유출을 막기 위해 사람의 몸에 그런 것을 심는단 말이오?]고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된 주태겸이 놀라워했다.
어찌 보면 효율적인 방법이기는 했지만 극단적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참으로 독한 단체로구나.’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간략한 사정을 알려준 천여운이 본론을 꺼냈다.
[제가 도와달라고 말씀드린 건 어찌 본다면 성왕 전하께도 도움이 되실 겁니다.] [본 왕에게 말이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하의 특사단 내부에 육영이라는 자 이외에도 극도육무문의 간자가 있습니다.]“헉! 그…”
순간 놀라서 육성으로 말할 뻔한 주태겸이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자신이 이끄는 특사단에 그런 위험한 자들이 간자로 껴있다고 말을 하는데 놀라지 않는 것이 더 이상했다.
‘일부로 거짓을 말하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도 했지만 태조도 두려워하는 단체의 수장이 이런 일로 거짓을 말할 리가 없었다. 오히려 진실이라면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처, 천 교주의 말이 사실이라면 당장 그들을 잡아야 겠소!]그런 위험한 자들의 손에 농락당하는 것은 육영을 마지막으로 사양하고 싶었다.
주태겸의 전음에 천여운이 고개를 저었다.
[왜 그러는 것이오?] [그렇게 된다면 황궁에 숨어있는 그들의 배후를 찾을 수 없습니다.]그것이 천여운의 진정한 목적이었다.
과감하게 성왕 주태겸의 마차에 탄 것은 황궁에 있는 그들을 찾기 위해서였다.
극도육무문은 마교뿐만 아니라 각 무림의 세력에 간자들을 두어서 계략을 획책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황실마저 연루되어 버린다면 상당히 복잡해진다.
그들이 이면의 세계인 무림 이외에도 영향력을 가져버리면 상대하기가 더욱 껄끄러워지기에 천여운은 사전에 이들을 제거하려는 것이었다.
‘하…..이 자는 발본색원을 하려는구나.’
천여운의 전음에 주태겸은 내심 그가 무섭게 느껴졌다.
주태겸은 당장에 보이는 적을 제거하는 것에 안주했지만 천여운은 배후마저 뿌리째 뽑으려고 하고 있다.
적으로 삼는다면 정말 위험한 자는 천여운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과연 맞을까?’
황궁에 정식으로 초빙하는 것도 아니고 몰래 들이는 것은 황족인 그로서도 꽤 난감한 일이었다.
혹여나 잘못되어 들키게 된다면 황제의 진노를 살 수도 있다.
더군다나 이 자는 무림 삼대 세력 중에서 가장 위험한 마교의 수장이 아닌가.
자신의 손으로 안방에 괴물을 풀어놓는 것일 지도 몰랐다.
망설이는 성왕 주태겸의 모습에 천여운이 준비해놓은 비장의 수를 꺼내들었다.
[입지를 다져서 태자가 되고 싶지 않으십니까?]‘!?’
천여운의 전음에 주태겸의 눈빛이 떨렸다.
‘이 자가 어찌?’
남진무사인 연남군에게만 속내를 밝혔던 내용을 알고 있었다.
그때 분명히 연남군이 진기로 막을 쳐서 누구도 듣지 못한다고 했는데, 이를 꺼내니 당혹스러웠다.
그런 그에게 쇄기를 박듯이 천여운이 말했다.
[황궁에 숨어서 암략을 꾸미는 자들을 잡게 된다면 전하께 넘겨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그게 참 말이오?] [어차피 저는 그들을 제거하는 것이 목적이지. 황상에게 공을 세우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만.]천여운의 제안에 주태겸의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렸다.
굉장히 솔깃했다.
그의 말대로 만약 황궁에 숨어든 극도육무문의 간자들과 그 배후를 찾아내게 된다면 황상에게 인정받을 만한 대단한 공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본 왕은 영왕 형님을 제치고서 태자의 자리에 가까워질지도 모른다.’
단오제까지 한 달이 남았다.
그 안에 황제의 마음에 들만한 공이 필요했다.
고민을 하던 성왕 주태겸이 조심스럽게 천여운을 바라보며 물었다.
[만약 본 왕이 천 교주의 제안을 거절하면 어찌 할 것 이오?] [그것은 성왕 전하의 상상에 맡기도록 하겠습니다.]-흠칫!
천여운의 말에 주태겸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제안을 따르지 않더라도 결국 본인의 뜻대로 하겠다는 말이나 다를 바 없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주태겸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칫, 어쩔 수 없구나. 그래. 본 왕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이 자를 이용하는 것이라 생각하자. 본 왕이 손해 보는 것은 없다. 암.’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주태겸이었다.
주태겸이 제안을 받아들이자 천여운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황궁으로 향하는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엇?’
주태겸의 얼굴이 빠른 속도로 일그러졌다.
천여운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당연히 수반해야할 고통을 미처 염두 하지 못했다.
황궁으로 향하는 동안 그와 단둘이 이 마차 안에서 보내야 했다.
‘…….망했구나.’
* * *
대명제국의 황도 개봉(开封)
개봉은 하남성 북동부에 위치한 인구 오십만이 밀집한 중원 최대 도시이다.
황하의 남쪽 대평원에 위치하며 네 개의 주요 운하가 교차되는 지역으로 상업이 발달하여 중원의 중심부라 할 만 했다.
마교 성의 근 열 배에 달하는 거대한 외성으로 들어가면 황도의 중심부로 가는 데만 마차로 두 시진이 걸릴 정도로 도시가 광활하다.
황도의 중심부에는 중원에서 가장 화려한 용정궁(龍亭宮)이 있다.
금빛 기와들로 이루어진 황가의 위엄이 가득하다.
근 보름에 걸쳐서 이동한 황실 특사단의 행렬이 용정궁의 남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착!
황궁의 입구를 지키는 근위병들이 창을 높게 들어 성왕 주태겸의 마차가 입궁하는 것을 환영했다.
드넓은 황궁 안으로 들어간 마차는 어느 곳에서 멈춰야 했다.
마차가 이동할 수 있는 경로가 끝났기 때문이었다.
-탁!
마차의 문이 열리며 성왕 주태겸이 내려왔다.
보름 사이에 얼굴이 많이 수척해진 주태겸이었다.
‘드디어….드디어 왔구나.’
황궁에 도착하기만을 얼마나 간절히 바랐는지 모른다.
하북성으로 들어서기 전까지 천여운과 근 이레 동안을 함께 숙식을 함께 했던 그였다.
‘으으,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
천여운은 그와 이동하는 내내 마차에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런 과묵함은 그를 괴롭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나마 하북성으로 들어와서 천여운이 미리 준비해둔 금의위의 인피면구를 쓰고서 나갔기 때문에 숨통이 트일 수 있었다.
‘참으로 신기하구나.’
주태겸은 남진무사 연남군의 왼쪽 뒤에 서있는 중년의 금의위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가 바로 마교의 교주 천여운이었다.
대체 언제 준비한 것인지 금의위 이한과 똑닮은 인피면구를 쓰고 있었다.
‘그는 황궁에서 볼일이 끝날 동안 본교의 호남성 북부 지부에 잠시 맡아두겠습니다.’
진짜 금의위 이한은 호남성 마교의 지부에 있다.
고작 이레만에 철두철미하게 황궁 입성을 준비한 천여운이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다니 하….’
이들의 수장인 연남군조차도 천여운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당연했다.
나노의 능력으로 목소리마저 금의위 이한의 것을 복제했기 때문에 특별히 모난 행동을 하지 않고서야 알아차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전하를 모실 열 명만 남고, 나머지는 복귀해서 기다려라.”
남진무사 연남군이 호위의 임무가 끝난 금의위들에게 궁정내 관할 소(所)로 복귀하게 했다.
‘다행이구나.’
연남군의 곁에 붙어있었던 천여운은 자연스레 열 명에 포함될 수 있었다.
다소 위험하긴 했지만 일부러 붙어있는 보람이 있었다.
황명을 이수하고 복귀한 성왕 주태겸은 황제가 기거하고 있는 건안궁으로 가서 보고를 올려야 했기에 최소한의 금의위들만이 호위한다.
‘굳이 본 왕이 신경쓰지 않아도 잘 따라 붙는구나.’
주태겸이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호명을 할까 했는데 알아서 호위로 잘 붙었다.
나머지 금의위들이 철수하자 성왕 주태겸은 익숙하게 건안궁으로 향했다.
‘과연 황궁이라 할 만 하구나.’
건안궁으로 향하면서 천여운은 금빛 기와에 화려함이 가득한 궁전에 놀라워했다.
마교의 내성도 화려하긴 했지만 확실히 황궁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드넓은 궁의 곳곳에 조경을 잘 꾸며놓았고 정원에는 작은 호수들이 있고 구경할 것들이 정말 많았다.
‘저곳인가.’
한참을 이동하던 천여운의 눈에 거대한 궁으로 들어가는 전각이 보였다.
그런데 전각의 앞에 환관으로 보이는 푸른 관복을 입은 자들이 서른 명 정도가 서있었고, 그들의 한가운데 다른 환관들보다 더 화려한 장신구를 하고 있는 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꼭 환 장로를 보는 것 같군.’
얼굴에 분칠까지 해서는 환관답게 여성스러움도 깃들어 있었다.
“하아….동창.”
그들을 발견한 남진무사 연남군이 한숨을 쉬었다.
환관들의 무리는 바로 황실에서 금의위와 더불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는 동창(東廠)이었다.
건안궁으로 향하면 늘 상 마주쳐야 하는 자들이라 껄끄러웠다.
그런 동창의 환관들을 바라보는 천여운의 눈빛이 묘했다.
‘환관들이 전부 무공을 익히다니?’
놀랍게도 이 동창이라 불리는 환관들은 전부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의 수장으로 보이는 화려한 장신구를 하고 있는 자는 화경의 고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