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210)
# 66장 황궁의 숨겨진 힘 (1) #
어두운 밤,
구름에 반쯤 가려진 보름달이 하얗고 영롱하다.
아직 초저녁에 불과하기에 황궁 전체에 등불이 밝아졌다.
용정궁에는 수많은 건물들이 있었는데, 황후들의 궁전부터 시작해 황자, 관료들의 근무처 여러 역할에 맞게 적재적소의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다.
용정궁의 동쪽 성 내곽 쪽에는 동창의 환관들이 기거하는 당이 있고,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동창의 식객들이 머무는 객당이 자리했다.
그런 동쪽 내곽 쪽으로 향하는 열 명 가량의 인원이 있었다.
아홉 명은 동창 환관의 복장을 하고 있었고, 한 사람은 금의위의 갑주를 입고 있는 군관이었는데 바로 천여운이다.
-움찔!
주변에서 이 열로 걷고 있는 환관들이 이동하는 내내 천여운의 눈치를 보았다.
대당두의 말에 의하면 이야기가 잘 되었다고 했는데, 그 말도 안 되는 능력을 생각하면 여전히 두려웠다.
‘저, 정말 이 자를 데려가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나머지 열 명의 환관들이 천여운이 죽인 윤 백호의 시신을 처리하느라 늦고 있다.
그걸 생각하면 솔직히 이 자를 믿기 힘들었다.
그들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누군가는 신나게 떠들고 있다.
“이렇게 대협과 같은 고수가 저희 동창에 한 손 보태주신다고 하니, 공공께서 크게 기뻐하실 겁니다. 요호호호.”
다른 환관들과 달리 대당두는 한 건 했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무위가 짐작가지 않는 절대고수를 초빙했으니 공공께서 크게 치하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끄럽군.’
이렇게 말이 많은 자는 허봉 이래로 처음 보는 것 같다.
애써 한 귀로 흘리고 있지만 간드러지는 이 웃음소리를 참기 힘들었다.
점차 짜증이 심해지던 찰나에 동창 환관들이 머무는 숙소이자 근무처인 동당의 건물이 보였다.
“저깁니다.”
대당두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 커다란 건물들이 있는 장원이 보였다.
황궁 내에서도 무소불위의 권력의 중심에 있다고 하는 동창답게 규모가 굉장했다.
‘족히 이삼천 명은 수용할 수 있겠구나.’
대명제국의 황궁이 환관들로 넘쳐난다는 말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닌 듯 했다.
대당두를 따라서 동당의 입구로 갔다.
입구에서 대당두가 그곳을 지키고 있는 경비 병사들에게 물었다.
“공공께서는 퇴궁해서 돌아오셨느냐?”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흐음, 늦으시는구나.”
평소라면 저녁이 되기 전에는 퇴궁해서 복귀하는데, 이 시간까지 오지 않았다는 것은 아무래도 업무가 길어지는 듯 했다.
‘성왕 전하가 복귀한 것 때문에 그런가?’
그렇지 않아도 성왕 주태겸이 특사단의 명을 마치고 돌아왔다고 들었다.
“그럼 오 첩형께서도 아직 오지 않았겠구나.”
“그렇습니다.”
예상대로였다.
동창의 제독인 임 공공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오 첩형은 늘 곁에서 그를 보필한다.
그도 없다는 것은 여전히 퇴궁하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아아….’
대당두가 옆에 서있는 천여운의 눈치를 보았다.
당장에 임 공공에게 천거해주겠다며 설득해서 데려왔는데 그가 자리에 없으니 말이다.
‘이를 어찌하지. 공공이 계시지 않는다면 동당으로 들일 수가 없는데.’
적어도 이 인자인 첩형의 허가가 있어야 안으로 들일 수 있다.
‘어떡하지? 아…..’
천여운은 무덤덤하게 있었지만 괜히 불안했다.
고민하던 대당두가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에이. 그렇다면 금 첩형께 데려가서 먼저 알려드리는 게 좋겠다. 어차피 이런 고수를 공공께서 마다할 리도 없을 테니.’
금 첩형은 임 공공의 왼팔이면서 동당과 객당 등 내부적인 일을 책임지는 자였다.
주간에는 동당에 있지만 저녁부터는 늘 객당에 있었다.
어차피 그를 초빙하게 되면 객당에서 머물게 될 터이니, 금 첩형에게 먼저 아뢰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저…..나으리. 아직 공공께서 퇴궁하지 않아서 그런데 혹시 괜찮으시다면 먼저 객당에 있는 첩형부터 뵙는게 어떨까요?”
조심스러운 대당두의 물음에 천여운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부터 객당에 있는 식객들을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에 대당두가 다행스러워하면서 천여운에게 따라오라고 했다.
“이쪽으로 가시지요.”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객당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객당 방향으로 향하던 천여운이 갑자기 자리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나으리?”
대당두가 의아해하며 물었지만 천여운의 눈빛은 왠지 모르게 심각했다.
‘뭐지? 이 이질적인 기운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이질적인 기운들이 그의 기감을 어지럽혔다.
* * *
동쪽 외곽에 있는 동당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북쪽 장원.
이곳의 현판에는 동당객당(東黨客黨)이라 적혀있다.
객당 내의 본당 건물 앞의 마당에 삼십여 명의 사람들이 양쪽으로 대치하고 서서 누군가를 바라보고 서있었다.
본당의 대청 위의 상석에는 오른쪽 뺨에 길게 그어진 검상이 있는 애꾸눈의 환관 복장의 중년인이 앉아있었다.
여느 환관들과 다르게 분칠도 하지 않은 자였는데, 풍기는 기세가 심상치가 않았다.
“….가장 뛰어난 자들로 선별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앞에서 또 다른 환관이 보고를 하고 있었다.
내용을 들어보면 뭔가 계획을 짰는데 이에 동원될 고수들을 말하는 듯 했다.
마당에서 대치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그 고수들이었다.
황궁 하급 무관의 관복을 입고 있었지만 제각각 풍기는 분위기가 적어도 절정의 고수들 이상으로 이루어진 자들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유독 눈을 굴리면서 눈치를 보는 한 사람이 있었다.
흉터투성이에 험상궂은 얼굴의 사내였다.
겉모습만 보면 안하무인일 것 같은 외모와 다르게 식은땀마저 흘리면서 긴장된 기색이 역력한 이 자는 다름 아닌 허봉이었다.
‘으으, 이거 어쩌지?’
천여운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따라붙는 허봉이다.
암종의 대주들과 마찬가지로 간자들 중의 한 사람의 추적을 맡은 허봉은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객당으로 단번에 진입할 수 있었다.
‘멍청이. 괜한 짓을 해가지고.’
넉살이 좋은 허봉은 전문가들인 암종의 대주들과 다르게 황궁으로 오는 도중에 대담하게도 자신이 맡기로 한 자와 직접적으로 접촉을 했다.
[혹시 출세에 관심이 있소?]이레 동안 그 간자는 허봉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를 동창에 초빙했다.
뭔가 일이 잘 풀린다고 생각한 허봉은 신이 나서 동창의 객당에 입성했는데,
[무공도 뛰어나고 인상이, 흠흠 아니 기골이 듬직한 게 마음에 드는구나. 오늘 유시 중엽에 본당 앞으로 나오거라.]공교롭게도 어떤 정보를 캐서 탈출하기도 전에 그들에게 차출되고 말았다.
뭔가 이 사실을 천여운에게 알려야 할 것 같은데 분위기 상 도저히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자신과 함께 차출된 자들의 무공도 보통이 아니었지만 저기 대청 위에 앉아있는 금 첩형이라고 하는 환관 같지도 않는 자는 무위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여기만 벗어나면 어떻게든 탈출하자.’
저들의 계획만 들으면 후에 뒷감당이 힘들 것 같았다.
허봉은 기회를 엿보기로 결심했다.
한편 대청 위에서 여전히 인상을 잔뜩 쓰고 있는 금 첩형이라 불리는 환관은 뭔가를 회상하면서 곱씹고 있었다.
-스윽!
그는 자신의 오른쪽 뺨에 난 자상을 계속 매만졌는데 이것은 오래된 상처가 아니었다.
아주 최근, 그것도 불과 한 시진 전에 생긴 것이었다.
‘빌어먹을. 아직까지 위치가 확실하지도 않은데 갑자기 계획을 서두르라니.’
원래 그의 계획은 확실하게 그곳을 알아낸 후에 행하는 것이었다.
제 일 황자인 영왕 주태윤과의 관계도 돈독해졌고 잘 진행되던 차였다.
그런데 갑자기 태자 책봉식이 단오제로 정해졌다면서 계획을 앞당기라는 말에 반론을 제기하다가 상처를 입고 말았다.
[수호전의 위치도 확실하지 않고 전임자도 그들에게 방심했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혹 폐검곡에서의 일 때문에 너무 서두르다간…]-촥!
[큭!] [도조문주 금예. 이제 네놈은 본좌의 소관이다. 본좌는 토를 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문에서 내려온 명령에 복종해라.] [……알겠습니다.]결국 명령에 굴복해야만 했다.
‘여섯 문주들 중에서 제일 미친놈이라고 하더니 딱 그 짝이구나.’
명령은 그렇다 쳐도 설마 황궁에서 활동하고 있는 자신의 얼굴을 건드릴 줄은 몰랐다.
그것이 그를 굉장히 불쾌하게 만들었다.
어차피 오늘 밤 임무를 마치고 나면 더 이상 황궁에 있을 일은 없었지만 그 동안 투자한 시간이 헛되게 느껴졌다.
“…..이상입니다. 금 첩형.”
보고를 마친 환관이 조용히 그의 눈치를 보았다.
하명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금 첩형은 분노를 삭이고 있는지 계속해서 인상을 쓰고서 딴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라고 빨리해야 여길 벗어나는데 왜 저리 멍을 때리는 거야?’
마음이 조급해진 허봉이 살짝 기침 소리를 냈다.
“흠흠!”
그런데 그가 기침 소리를 내는 순간에 금 첩형을 바라보고 있던 삼십여 명의 무관들의 표정이 사색이 되고 말았다.
‘엥? 왜, 왜 그러는 거지?’
알 수 없는 반응에 허봉이 의아해했다.
하지만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멍하게 인상을 쓰고 있던 금 첩형이 정신을 차리더니, 주위를 둘러보면서 낮게 깔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누구인가? 지금 누가 기침소리를 내었어?”
워낙 정색하면서 하는 말에 삼십여 명의 무사들이 안절부절 시선을 돌렸다.
이에 허봉은 뭔가 자신이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젠장!’
뭔가 일이 잘 풀린다고 생각했다.
일단은 여기서 자신이 했다고 말하면 일이 복잡해질 것 같았기에 시치미를 뗐다.
그러자 금 첩형이 더욱 언성을 높이며 소리쳤다.
“누가 기침소리를 내었는가 말이야!”
허봉은 어이가 없어졌다.
고작 기침 소리에 이리 정색하면서 화를 낼 줄은 몰랐다.
‘아니. 이거 완전 미친 놈 아니야.’
그래도 끝까지 모른 척을 하려고 했는데 난감하게도 삼십여 명이나 되는 무관들이 조용히 허봉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헉! 이, 이 의리도 없는 작자들 같으니.’
덕분에 금 첩형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에게로 향했다.
허봉이 식은땀을 흘렸다.
기침 한 번에 모든 일이 틀어지게 생겼다.
잠시 고민하던 허봉이 고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첩형.”
허봉이 사죄를 하자 금 첩형의 옆에 있던 환관이 눈치를 보다 수습하려 했다.
그렇지 않아도 출타를 했다가 돌아와서 심기가 불편한 것을 알고 있었다.
평소에도 화가 나면 수하들에게 손부터 나가는 자였다.
“…..첩형 나으리. 무충이라는 자온데, 오늘 처음 식객으로 초빙되어서 아직 아무 것도 잘 모릅니다. 부디 너그…”
환관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금 첩형이 그것을 자르고 말했다.
“신참? 허어, 참으로 딱하구나. 본 첩형이 지금 고심 중에 있거늘 어찌 기침을 할 수 있느냐. 이 미련한 것아.”
‘젠장.’
허봉은 일단 무조건 사죄하는 시늉을 했다.
허리를 더욱 숙이며 외쳤다.
“송구하옵니다. 첩형.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사실 이 정도로 빌었으면 대충 넘어갈 만도 했지만 금 첩형의 심기는 최악으로 불쾌한 상황이었다.
마침 그 화를 풀고 싶던 차에 잘되었다고 여겼다.
“본 첩형이 가만히 보니 네놈 머릿속에는 군율이라는 것이 없구나. 무관이라는 자가 참으로 한심한지고. 이 동창이라는 곳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마.”
뭔가 말하는 것이 불길했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벌어지고 말았다.
-팟!
‘헛?’
금 첩형의 신형이 대청에서 튕겨져 나오며 단숨에 허봉을 향해 날아와 그의 머리통을 깨부술 기세로 일격을 날리려 했다.
워낙 쾌속한 일수였지만 처음부터 긴장하고 있던 허봉은 재빨리 몸을 뒤로 날려서 그것을 피해냈다.
“이놈이 감히 피해?”
가볍게 날린 일격을 피해내자 더욱 분노한 금 첩형이 제대로 된 초식을 펼쳤다.
그가 두 손으로 조법의 형태를 갖추더니 단숨에 허봉에게로 파고들었다.
어찌나 쾌속한지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허봉의 육안으로는 그의 움직임이 파악되지 않을 정도였다.
‘제, 젠장!’
그의 가슴으로 파고드는 날카로운 손톱에 얼굴이 사색이 되려는 찰나였다.
-파파파팍!
“아닛?”
갑자기 누군가 허봉의 앞으로 끼어들어 그의 조법을 막아냈다.
고절한 초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는 너무도 쉽게 조법을 막아냄과 동시에 바로 반격까지 가했다.
-촤촤촤촤촤!
심후한 공력이 실려 있는 검결지가 화려한 궤적을 그리며 금 첩형의 가슴 요혈들을 찔렀다.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랐지만 금 첩형 또한 굉장한 고수였다.
당황해하지 않고서 독특한 보법을 펼치며 검초의 궤적을 피하면서 기회를 엿보려했다.
‘엄청난 검초다.’
스물네 검식으로 이루어진 화려한 검결에 금 첩형은 숨을 돌릴 틈새 없이 움직이면서 초식을 피해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이마를 찔러오는 검식을 피한 그는,
-휙!
몸이 기이한 각도로 꺾이며 그 자의 심장을 향해 일조를 날렸다.
‘이런 공격은 처음 봤을거닷!’
허리를 뒤로 직각으로 꺾었다가 바로 튕겨지듯 공격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금 첩형은 이것을 선보였다.
이 일격에 지켜보는 모두가 놀라하는데, 이 자는 오히려 가소롭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웃어?’
그의 손톱이 심장을 파고드는데 말이다.
-콱!
‘이, 이걸 잡아?’
놀랍게도 금 첩형의 조법이 심장을 파고들기도 전에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이 자가 그의 팔목을 낚아채버렸다.
그리고는 그것을 꺾으려고 하는지 왼손을 들어 올려서 밑으로 내리쳤다.
“젠장!”
금 첩형이 십성 공력으로 끌어올려 오른팔에 반탄강기를 일으켰다.
그러나 이 자가 내리치는 공력은 그의 상상을 훨씬 초월했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공력이! 허억’
-우드드득! 뿌지직!
“끄아아아아아악!”
팔이 꺾여버린 정도가 아니라 내리치는 순간에 팔목 째로 뜯겨나가 버렸다.
뼈가 부서지고 팔이 뜯겨지는 엄청난 고통에 금 첩형이 비명을 질렀다.
“끄어어억!”
너무도 고통스러웠지만 금 첩형은 그것을 참아내고 빠르게 보법을 펼쳐서 뒤로 열 보 이상 물러났다.
금 첩형이 피가 흘러내리는 팔목을 붙들고 정체불명의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 금의위?”
그 자는 금의위의 갑주를 입고 있었다.
하마터면 죽을 뻔 했던 허봉이 놀라서 그 자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두 눈이 왕방울만하게 커졌다.
사전에 인피면구들을 미리 보지 않았더라면 모를 뻔했다.
‘교주님!’
그는 바로 천여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