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216)
# 67장 영물의 피 (3) #
“무관님. 혹시 더 빨리 달리실 수 있으신가요?”
“몸도 성치 않은데 괜찮겠소?”
“소첩은 심려치 마십시오.”
“알겠소. 꽉 잡으시오!”
-팟!
불안한 목소리로 서두르기를 종용하는 윤 감찰상궁의 말에 금의위가 경공을 펼쳤다.
방금 전까지 뛸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앞으로 치고 나갔다.
‘아….빠르다!’
등에 업혀있는 그녀의 두 눈에 이채가 띠었다.
금의위가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자의 경공은 일류고수를 훨씬 상회하는 듯 했다.
의아할 법도 했지만 그보다 급한 사안 때문에 그러려니 했다.
“저쪽입니다.”
윤 감찰상궁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으로 금의위는 앞으로 뻗어나갔다.
용정궁 자체도 워낙 넓기 때문에 경공을 펼치는데도 금방 도착하지 않았다.
얼마 가지 않아 곧 궁의 북서쪽에 이르렀다.
‘아….’
그곳에는 굉장히 거대한 릉(陵)이 있었다.
황제가 머물고 있는 건안궁보다도 훨씬 커다란 이 릉은 태조의 황릉이었다.
릉의 앞에 있는 화려한 사당에는 태조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어째서 황릉에?’
윤 감찰상궁을 업고 있는 금의위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윗선에 보고를 해야 한다고 데려온 것이 태조의 황릉이었으니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당연했다.
물론 이곳 황릉은 진짜로 태조의 시신을 보관한 곳은 아니다.
대명제국을 세운 최초의 황제를 기리기 위함이다.
“이곳에는 어째서?”
금의위의 물음에 윤 감찰상궁이 그의 등에 찰싹 달라붙었다.
“헉?”
갑주 때문에 크게 상관은 없었지만 여인이 가까이 달라붙으니 괜히 얼굴이 빨개지는 금의위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윤 감찰상궁이 그의 목을 두 손으로 움켜잡았기 때문이었다.
“켁! 이, 이게 무슨 짓이오?”
“본 상궁은 폐하께 직접 교지를 받은 수호전의 종3품 관료입니다. 지금부터 귀 관들께서 보는 것은 모두 잊어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황명에 의거하여 참수토록 하겠습니다.”
고압적이면서 위협을 가하는 목소리에 금의위가 당혹스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명에 응하지 않으면 목을 부러뜨릴 기세였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귀 관도요.”
“…..알겠소.”
뒤에 있던 금의위의 대답까지 들은 윤 감찰상궁이 사당을 가리키며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세요.”
“사, 사당으로 말이오?”
“네.”
그녀의 말대로 사당으로 들어가자 등을 전부 꺼두어서 어두웠다.
낮에는 종일 향을 피웠었는지 그 특유의 냄새가 진동했다.
뒤에 있던 금의위가 사당 내 벽에 걸려있던 등불을 찾아서 불을 밝히자 그 내부가 환해졌다.
“오….”
윤 감찰상궁을 업고 있는 금의위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보통 사당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금붙이들이 가득하고 화려하게 꾸며놓았다.
사당에 안쪽 벽에는 태조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고, 그 앞의 제단에는 위패와 타다 남은 향이 꽂혀있는 향꽂이가 있었다.
“태조 폐하의 용안을 뵈었는데 어찌 가만히 있으십니까?”
“아!….어, 그게….”
금의위들이 가만히 그것을 쳐다보기만 하자 윤 감찰상궁이 다그쳤다.
그녀를 업고 있는 금의위가 흠칫하며 당혹스러워하자, 그 뒤에 있는 금의위가 얼른 대답했다.
“감찰상궁. 당연히 태조께 절을 드려야 하지만 향도 밝히지 않았고, 역도들의 침입으로 굉장히 급하다고 하지 않으셨소?”
“아아…..”
그 말이 옳다고 여긴 윤 감찰상궁이 제단의 우측을 가리키며 가자고 했다.
제단의 우측으로 가자 금빛용으로 수를 놓은 붉은 천이 있었다.
업혀 있는 그녀가 손을 뻗어 천을 위로 걷어 올리자, 제단의 뒤쪽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왔다.
‘아! 사당의 뒤쪽에 이런 길이 숨겨져 있었구나.’
누가 태조의 황릉에 이런 비밀이 숨겨져 있으리라 상상하겠는가.
우측 길로 들어가자 제단의 벽에 가려진 뒤쪽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초상화 벽의 뒤쪽에는 두 사람이 서있을 수 있는 폭의 공간이 나왔는데, 뭔가 숨겨진 통로가 나올 것 같았는데 푸른 빛 벽에 막혀 있었다.
‘청옥석?’
그 벽은 단단한 청옥석으로 만들어졌다.
등불을 들어서 비추자 벽에 웬 동물의 그림 같은 것이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 동물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몸은 사슴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고, 꼬리는 소와 비슷했고 발굽과 갈기는 말과 같았다.
가장 특이한 것은 머리는 또 다른 영수인 용과 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는데, 뾰족한 뿔이 머리에 달려 있었다.
‘이건 기린?’
괴이한 그림은 상상의 영수인 기린(騏麟)이었다.
몸에서 불을 뿜고 있어서 불의 화신이라하여 화기린이라고도 부른다.
고대 전설에 나오는 영수로 시경(詩經)과 춘추(春秋)에도 거론되는 성스러운 존재이다.
봉황과 마찬가지로 기린이 출현하면 성왕이 나타날 길조라고 여겼고 한다.
‘태조의 제단 뒤에 이런 그림을 그려놓다니 특이하구나.’
대단한 것은 이 기린의 그림을 새겨넣은 자도 심후한 공력의 소유자인지, 손가락으로 청옥석 벽에 이것을 그렸다.
기이하게 여기고 있는 찰나에 윤 감찰상궁이 말했다.
“놀랄 시간이 없습니다. 그림이 그려진 벽 쪽으로 좀 더 가까이 가주세요.”
“이렇게 말이오?”
금의위가 몸을 옆으로 돌려서 벽면에 가까이 하자, 업혀 있던 그녀가 손을 뻗어서 기린 그림의 두 눈을 꾸욱 눌렀다.
그러자 그림에 그려진 두 눈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엇? 눈이?’
-쿠르르르릉!
그와 동시에 벽면에서 기관이 움직이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청옥석 벽이 성문처럼 반으로 갈라져서 입구를 만들어냈다.
이곳이 바로 숨겨진 황궁 수호전의 입구였다.
“쭉 따라 들어가세요.”
제단이 사당 가장 안쪽 벽의 끝에 붙어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수호전은 결국 황릉 내부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었다.
-솨아아아!
청옥석 벽에 가려져있을 때는 몰랐는데 이것이 열리자 그 내부에서 감찰상궁에게서 풍겨지는 것보다도 강렬하면서 이질적인 기운이 흘러나왔다.
‘서둘러야 해.’
수호전의 내부 통로로 들어서자 윤 감찰상궁의 눈빛이 무거워졌다.
그런 그녀의 뒤쪽에서 조용히 따라오던 새하얀 얼굴의 금의위가 말을 걸었다.
“황릉 안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은 몰랐구려.”
“……일개 금의위인 귀 관이 가질 의문이 아닙니다. 조용히 따라오기나 하세요.”
냉철하게 답변을 하면서도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사실 이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황궁 수호전의 내부로 황제나 삼태상의 허락을 받지 않은 자들이 침입하게 되면 이유를 막론하고 참수한다.
아마도 이 긴 통로를 지나는 순간 그들은 숨을 거둘 것이다.
그래서 더욱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모르는지 뒤쪽에 있는 금의위가 또 말을 걸었다.
“이렇게 넓은 곳이라면 사람을 가둬두는 금옥 같은 것도 있겠구려. 대충 어디쯤에 있는지 알 수 있겠소?”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
전혀 뜬금없는 말에 윤 감찰상궁이 이상하다 싶어서 고개를 돌리려고 했는데, 통로가 끝나며 횃불이 밝혀진 중간 공동에 도착했다.
그런데 공동에 도착한 순간 벌어진 광경에 그녀가 말문을 잃고 말았다.
코끝을 찌르는 피 냄새.
“이, 이게 대체…..”
중간 공동은 세 갈래의 길을 잇는 곳이었다.
평소라면 이곳을 지키는 수호전의 경계병들이 창을 들고서 서있어야 했다.
그런데 그들이 전부 차가운 돌바닥에 주검이 되어 쓰러져 있었다.
“어, 어째서 이들이?”
너무 놀라서 어쩔 줄 몰라하는 그녀의 귓가로 금의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건 예상 밖이군. 먼저 방문한 자들이 있다니 말이야.”
“!?”
그녀의 두 눈이 커졌다.
분명 방금 전만 하더라도 탁한 목소리였던 금의위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그런데 이 목소리는 그녀가 기절하기 전에 들었던 그 마교 교주 천여운의 목소리와 같았다.
‘아, 아냐. 그럴 리가 없어.’
애써 부정해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자의 목소리였다.
다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별 수 없군. 수호전의 금옥은 어디에 있지?”
‘그….그 자다!’
자신을 패대기쳤던 그 남자가 틀림없었다.
궁녀들을 학살하고 도주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렇다는 것은 이들은 금의위로 변장하고서 자신을 속였다는 말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으득!
이 태상과 동료들을 죽인 것도 모자라, 자신을 속여서 황궁 수호전 안으로 침입했다는 생각에 그녀는 솟구치는 분노를 진정할 수가 없었다.
짧은 찰나에 그녀는 자신을 업고 있는 자를 붙잡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당하고 만다.
“에잇!”
그녀가 손을 뻗어 금의위의 목을 움켜쥐려는 순간,
-우득!
“컥!”
그녀의 목이 돌아가면서 부러지고 말았다.
목이 돌아가면서 천여운과 마주하게 된 윤 감찰상궁이 두 눈을 부릅뜬 채 금의위 무관의 등에 축 늘어져 버렸다.
“허봉. 내려놔도 좋다.”
“헉? 버, 벌써 죽이셨습니까?”
-털썩!
죽은 그녀를 업고 있던 금의위가 화들짝 놀라서 그녀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이 금의위 무관의 정체는 바로 허봉이었다.
대호법 마라겸이 떠올린 계획 덕분에 쉽게 황궁 수호전의 안으로 침투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에게 변수가 생겨버렸다.
황궁 수호전에 먼저 침입한 자들이 있는 것이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허봉이 죽어 있는 황궁 수호전의 경계병들의 시신을 바라보며 물었다.
피가 응고되지 않은 것을 보면 죽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데 있었다.
‘이 도흔은 본교의 묵영도법의 삼 초식이다. 그리고 이건 십지절검의 이 초식?’
시신에 남겨진 무공들은 하나 같이 마교의 무공들이었다.
마도관의 비급 서적을 육 할 가까이 스캔하여 걸어 다니는 무공 비급 서재인 천여운이 이를 몰라볼 리가 없었다.
고절한 무공은 없었지만 이 정도 흔적이라면 누가 봐도 마교인들에게 당했다고 추측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천여운이 인상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허봉 아무래도 암종의 대주들의 구출만으로 끝낼 문제가 아닌 것 같다.”
* * *
한편 황릉 내 수호전의 가장 중심부의 한 넓은 공동.
그곳에 오십여 명의 용역, 숙수, 그리고 나인들의 복장을 한 이들이 병장기를 들고서 긴장된 눈빛으로 공동의 입구 쪽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들의 한 가운데에 황궁 주방장의 최고 지휘자라 할 수 있는 대숙수의 관복을 입고 있는 중년의 사내가 심각한 표정으로 도병을 매만졌다.
-타타타타탁!
그때 공동의 입구 쪽에서 한 나인이 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그가 급히 대숙수에게 한쪽 무릎을 꿇고서 보고했다.
“크, 큰일입니다! 삼 태상! 제 오(五) 공동이 뚫렸습니다. 곧 이곳으로 놈들이 들이닥칠 것 같습니다.”
대숙수의 정체는 황궁 수호전의 삼 태상이었다.
수호전의 전사들은 일반 관료들과 달리 황궁에서 항시 상주하는 잡무를 담당하는 자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
삼 태상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탄식을 했다.
수호전의 창립 이래로 한 번도 뚫린 적이 없는 곳이 적들의 침입을 허용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그들이 대부분의 경계선을 지나서 가장 중추라 할 수 있는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역시 목적은 그것인가?’
수호전 중심부로 온다는 것은 목적이 극명했다.
그것은 수호전의 태상, 전사들이 태조의 명을 받고서 대대로 지켜온 보물이었다.
적들의 손에 넘어가서는 안 될 위험한 것이었다.
‘계획된 일인가?’
하필 수호전의 전력이 삼 할 가까이나 빠진 상태에서 적습이 일어난 것이 수상하다.
이 태상과 그것의 희석된 잔재를 복용한 궁녀들이 있었다면 적습을 막는데 더욱 도움이 되었을 텐데 어쩔 수가 없었다.
‘반드시 막아야 한다.’
삼 태상이 오십여 명의 수호전의 전사들에게 소리쳤다.
“절대로 적들을 제 칠 공동까지 보내선 안 된다. 목숨으로 사수하라. 무슨 수를 쓰더라도…”
-흠칫!
사기를 돋게 만들려던 삼 태상의 입이 다물어졌다.
공동의 통로 쪽에서 불길하면서 숨이 턱 막힐 만큼 짙은 살기를 내뿜는 존재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벌써 도착하다니!’
이윽고 입구로 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을 죽인다면 저렇게 갈색 장포가 붉게 물들 수 있을까?
가장 선두에 서있는 칼날이 곤두 서있는 것 같은 인상을 지닌 젊은 여인을 제외한 세 명의 사내들의 복장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여인이 입술을 실룩거리면서 중얼거렸다.
“고작 무덤 안에 숨어있는 벌레들이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구나.”
황궁의 숨겨진 힘이라 할 수있는 수호전의 전사들을 앞에 두고 태평스러웠다.
오히려 귀찮다는 듯한 태도가 역력했다.
이에 곁에 있던 턱수염의 사내가 혀를 날름거리며 말했다.
“도혈문주. 어차피 적당히 흔적을 남겨야 하니, 이곳은 저희들에게 맡기시고 먼저 가서 그것을 취하십시오.”
두 명의 사내들이 나서자 도혈문주라 불린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수호전의 전사들의 한가운데를 가로질러서 지나려고 했다.
이에 어이가 없어진 전사들이 분노를 토해냈다.
“감히 이 역도의 무리들이 이곳이 어느 안전이라고 함부로 지나가려 하는 것이냐!”
“죽어랏!”
-팟!
숙수의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이 세 명은 초절정의 고수들이었다.
그들이 들고 있던 식도에 도강을 생성하고서 도혈문주라 불린 여인을 향해 동시에 달려들어 도초를 펼쳤다.
그러나 그들의 신형이 닿기도 전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착!
언제 뽑은 것일까?
여인이 허리춤에 차고 있는 도집에 도를 집어넣었다.
-촤촤촤촤촤촤촤!
그 순간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던 세 명의 숙수들의 몸이 난자되듯이 갈라지더니, 수십 조각의 고기조각이 되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투투투투툭!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이 잔인한 광경에 공동에 있는 모든 수호전의 전사들이 경악한 나머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마, 말도 안 되는 쾌도…..’
심지어 이들의 수장인 삼 태상조차 그녀의 도를 보지 못했다.
이것이 도법이라면 전율 그 자체였다.
“버러지 같은 것들.”
여인은 막아볼 테면 막아보라는 식으로 삼 태상을 향해 이죽이며 다시 앞으로 발걸음을 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