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22)
# 9장 이 단계 시험(1) #
복마종의 소교주 후보인 천무금.
마교의 근간을 이루는 여섯 종파 중 하나인 복마종의 무공과 영재 교육을 받아온 그의 패배는 여섯 명의 생도들을 놀랍다 못해 경악스럽게 만들었다.
분명 열나흘 전만 하더라도 내공이 전무하던 녀석이 이제는 자신들이 감히 넘보기 힘들 만큼 뛰어난 무공 실력을 지녔다.
“왜 한바탕 해볼 테냐?”
천여운이 놀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생도들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여섯 명이 서로 합을 맞춘 것처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차피 자신들이 합공을 해도 이기기 힘든 천무금을 꺾었는데, 어떻게 해보려고 해도 방법이 없었다.
“그럼 이 녀석을 데려가라.”
그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여섯 생도들이 동시에 몰려와 천무금을 부축했다.
비록 천여운에게 패배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그의 종파인 복마종의 위세가 두려운 생도들이었다.
‘힘뿐만이 아니라 나만의 세력을 가진다면 모두가 저렇게 두려워할까?’
천여운은 생도들의 모습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깨와 뒤통수의 통증 때문에 바닥에 누워있던 천무금은 생도들의 부축을 받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그들의 손을 뿌리치며 신경질을 냈다.
“놔! 내가 알아서 걸어갈 거니까!”
“하지만 공자님!”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고집을 부리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생도들이 부축하던 것을 놓자 다시 바닥에 대 자로 뻗은 천무금이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천여운을 노려보며 말했다.
“왜 제대로 마무리 짓지 않는 거냐?”
천무금 자신도 그를 보면 분노의 감정이 샘솟았지만, 천여운 역시도 어릴 적부터 여섯 종파에게 멸시를 당해왔기 때문에 그 분노가 컸으면 컸지 작을 리가 없었다.
화풀이를 해도 모자랄 판국에 마지막에는 손날에서 손바닥으로 바꿨으니 시답잖은 동정을 당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천여운이 그런 천무금을 바라보며 무표정하게 답했다.
“이 단계 시험이 조별로 하는 게 아니었다면 네 머리통을 박살냈을 거다.”
여섯 생도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무표정한 얼굴로 독기 어린 말을 내뱉으니 더욱 무서웠다.
이 단계 시험을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이유였지만 가끔은 욱하는 감정이 먼저 앞서는 천무금으로서는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았다.
“칫, 같잖은 핑계는 천한 놈 주제에.”
“계속 그딴 식으로 주둥이 나불대면 정말 머리통 박살낸다.”
“그럼 박살내! 새끼야.”
“입만 살아가지고.”
아직까지 일어나지도 못하면서 당당하게 머리를 박살내라고 말하는 천무금을 천여운이 한심스럽게 쳐다보더니 이내 그 자리를 박차고 떠나버렸다.
천무금과 싸우는 사이에 해가 완전히 지고 어두워졌다.
숲속의 나뭇잎 사이를 관통해 비추는 은은한 달빛 아래, 숙소로 돌아가는 천여운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경험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가 없구나.’
나노 머신의 힘을 빌려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만큼 빠른 속도로 무공을 습득했지만 천여운에게는 중요한 경험이 결여되어 있었다.
아까도 나노가 중간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천여운이 패했을 지도 몰랐다.
초식인 접무도법을 완벽하게 익혔다고 해서 그가 스승인 우호법 섭맹의 수준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내공과 경험이 전부 갖춰져야만 했다.
‘지금 당장에 경험을 쌓으려면 시간이 걸린다. 내가 경험을 쌓는 기간 동안 여섯 종파의 녀석들이 그냥 내버려둘 리가 없겠지. 그렇다면 오히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부터 확실하게 활용할 줄 알아야해.’
방금 전에 있던 천무금과의 대결을 통해 알게 된 전투 튜토리얼 증강현실 기능도 미리 알았더라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인간이 판단하는 능력보다도 분석 판단이 빠른 나노는 찰나의 순간에 천무금의 초식을 파악하고 그 허점마저 찾아내, 대련 경험이 없는 천여운조차 튜토리얼을 통해 능숙하게 도법을 구사하게 만들었다.
‘나노.’
[네, 주인님.]‘내가 이때까지 네가 가진 기능을 얼마나 사용한 거야?’
문득 궁금해졌다.
계속해서 새로운 기능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그것은 천여운이 자의로 활용한 것이 아니라 위기가 닥쳐서야 알아낸 것뿐이었다.
[사용자 기록을 확인합니다.현재 주인님께서는 나노 머신 기능의 3퍼센트를 활용했습니다.]
사실 천여운의 관심이 오직 무공을 익히는 쪽으로 향해 있기 때문에 그 활용도가 현저히 낮을 수밖에 없었다.
나노 머신에 기본적으로 내장되어 있는 프로그램을 전부 활용하기만 한다면 현 시대를 완전히 뒤바꿀 수 있을 정도였지만, 그런 정보들은 프로그램에 락(lock)이 걸려서 있어서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있다.
하지만 이 정보 만큼은 나노가 천여운에게 알리진 않았다.
‘삼 퍼센트?’
[삼 푼, 활용했습니다.]곧바로 천여운이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했다.
‘고작 그 정도밖에 활용 못했다고?’
[내장된 기록상으로 나노 머신의 기능을 삼 할 이상으로 사용한 사례가 없습니다.]물론 나노머신 나노의 말대로 좋은 물건이라고 해도 그것을 완벽하게 사용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것은 사용자의 용도에 따라 물건이 활용되기 때문이다.
천여운 역시도 지금까지 나노 머신을 무인으로서 성장하는데 그 기능들을 활용한 것처럼 말이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내가 쓸 만한 것들이 많을 거다.’
자신이 나노 머신의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체감한 천여운은 잠시 고민하다가 나노에게 생각을 전달했다.
‘네가 할 수 있는 기능을 전부 상세하게 알려줘.’
[알겠습니다. 7세대 나노 머신의 상세 기능에 관한 설명서를 뇌로 전이하겠습니다. 승인하시겠습니까?]‘승인할게.’
[추가로 상세 기능 설명서의 원활한 이해를 위해 언어 교육 프로그램에 내장된 영어를 전이하겠습니다. 승인하시겠습니까?]‘네가 가끔씩 말하는 그 발음이 이상한 말들이지?’
[그렇습니다.]‘승인할게.’
[사용자의 승인으로 7세대 나노 머신의 상세기능 및 영어 언어 능력을 뇌로 전이합니다.]나노의 특유의 기계적인 음성이 머릿속을 울리며 천여운의 머리가 찌릿하며 눈의 동공이 빠르게 흔들렸다. 그의 뇌로 정보가 전이되는 과정이었다.
기본 정보를 받아들일 때보다도 상세 기능 활용서의 정보량이 많아서 평소보다 전달이 길어졌다.
하지만 전이가 끝났을 때 천여운은 약간의 어지러움 이외에는 전처럼 토악질을 한다거나 하진 않았다.
몇 번 씩이나 정보 전이를 해왔기에 뇌가 적응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지러움이 가시자 천여운이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온 나노 머신이 할 수 있는 기능에 대한 정보들을 탐색해나갔다.
‘이게 네가 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그가 짐작했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나노 머신의 기능이 머릿속에서 떠오르자 천여운의 입가에 미소 감돌았다.
마치 빙산의 일각만으로 보았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지금 알게 된 나노 머신의 기능들 중에서는 천여운에게 부족한 부분인 경험을 메꿀 수 있는 방법들 또한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반복 시뮬레이션 기능이었다.
‘다른 사람과의 대련을 증강현실에서 시뮬레이션이 가능하구나?’
기능에 대해서 완전한 이해와 영어 능력을 얻게 된 천여운은 지금까지와 다르게 이해력 또한 올라갔다.
[하지만 시뮬레이션을 위해서는 상대에 행동 모션에 관한 분석 정보가 필요합니다.]‘아까 전에 내가 붙었던 천무금은 가능해?’
[모션 분석 정보가 부족하지만 전투를 하셨던 기록을 바탕으로 그에 상응하는 시뮬레이션 아바타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아쉬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것도 감지덕지였다.
‘좋아! 지금 바로 해보자.’
천여운은 숙소로 가던 발걸음을 틀어서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했다.
수면 시간 전까지는 자유 시간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실전 경험을 키워나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사용자의 시각 정보에 증강현실(增强現實) 개안(開眼) 가동.시뮬레이션을 위한 아바타를 생성합니다.]
나노의 목소리가 울리면서 아까 전 천무금과 대결을 펼쳤을 때와 동일하게 흰 빛에 눈에 아른거리며 선들이 생겨났다.
아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분석 정보에 대한 흰 빛은 생기지 않았고, 그의 눈앞에 흰 빛이 사람의 형태를 이루더니 이내 천무금의 모습으로 변했다.
“하?”
신기한 현상에 천여운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나노 머신의 기능대로라면 눈앞의 천무금은 나노가 증강현실에 만들어낸 아바타일 것이다. 그의 눈에만 보이는 존재라는 말이었다.
[아바타 활성화 전에 시뮬레이션 정보를 조정합니다.아바타가 사용자에게 가하는 충격의 퍼센트를 조정해주십시오.]
‘충격 퍼센트?’
[아바타의 공격을 맞았을 때 충격도를 말합니다. 실제와 동일하게 한다면 100퍼센트로 조정하시고, 그보다 약하게 하신다면 강도를 낮게 조정하시면 됩니다.]‘그래? 그럼 100퍼센트로 할게.’
어차피 증강현실에만 보이는 아바타라면 충격을 받아봐야 얼마나 받겠나 싶었다.
하지만 이윽고 시작되는 시뮬레이션에서 천여운은 자신이 멍청한 선택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했다.
[시뮬레이션을 진행합니다.]그의 눈앞에 있는 천무금의 아바타가 천여운을 향해 건방진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이 천한 놈! 덤벼라.]“하?”
순간 천여운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천무금의 정보를 토대로 아바타를 구현했다고는 하나 특유의 재수 없는 표정이나 행동, 말투까지 정확하게 따라하게 창조할 줄은 몰랐다.
눈앞에 있는 천무금 아바타가 가짜라는 것을 알면서도 짜증이 날 정도였다.
‘아~주 잘 됐네. 아까는 이 단계 시험 때문에 머리통을 깨지 못했는데, 아바타니까 제대로 깨부숴도 상관없겠구나.’
덕분에 몰입도가 높아진 천여운이었다.
그가 공격하지 않자 먼저 신형을 박차며 공격해오는 천무금의 아바타였다.
양 주먹을 호랑이와 같은 기세로 뻗어오는 초식은 아까 전 대결에서 천무금이 썼던 복마공권의 오 초식인 복호공순(伏號攻瞬)이었다.
‘오!’
정말 그대로 구현해내자 천여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고 아까 전에 나노의 튜토리얼로 권투 동작으로 피했던 것을 떠올리고는 이번에는 보법을 펼쳐서 옆으로 파고들어 접무도법의 일 초식을 펼쳤다.
그 순간,
[그딴 어설픈 공격이 통할 것 같으냐?]천무금의 아바타가 건방지게 외치더니 기이한 각도로 몸을 틀어 도초를 피하고는 발차기로 천여운의 복부를 걷어찼다.
-퍽!
“크헉!”
복부에서 느껴지는 강한 통증에 천여운의 비명과 함께 넘어졌다.
분명 증강현실에서만 보이는 아바타인데 이런 통증까지 재현해 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끄으으윽. 어떻게 통증이 느껴지는 거야?”
복부를 얻어맞아서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하는 천여운의 머릿속으로 나노의 목소리가 울렸다.
[주인님이 아까 전에 겪었던 통증 정보를 바탕으로 체내에 있는 나노 머신이 같은 강도의 충격을 재현했습니다.]“젠장.”
별 생각 없이 100퍼센트로 충격도를 조정하라고 했던 것이 멍청한 선택이었다.
사실을 그대로 전달해준 나노였지만 괜히 화가 나는 천여운이었다.
[충격도를 재조정하시겠습니까?]“……됐어! 그대로 진행해!”
나노의 충격도 재조정 제안에 천여운은 순간 솔깃했지만 이내 거절했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충격을 그대로 재현을 한다면 자신도 그저 증강현실이라는 것에 안주하지 않고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천한 놈! 덤벼라!]아직까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천여운을 향해 천무금의 아바타가 건방지게 검지 손가락을 까딱이면서 도발했다.
“빌어먹을 아바타 주제에!”
가상의 아바타가 하는 도발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에 홀라당 넘어간 천여운이 화가 난 얼굴로 접무도법을 도초를 펼치며 쇄도해갔다.
그렇게 천여운은 시뮬레이션 훈련을 통해 대련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그의 모습은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초식을 펼치며, 맞는 시늉을 해가며 고통을 호소하는 모습이 미친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