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222)
# 70장 허봉이여 불꽃이 되어라 (1) #
-첨벙!
이기어검강에 꿰뚫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도혈문주는 거대한 불꽃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는 못에 넘어지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뽀글뽀글!
‘특이하구나. 못이 끓다니?’
그녀 덕분에 거대한 불꽃과 못을 발견한 천여운이다.
신기한 것은 이렇게 불꽃이 타오르는데도 못이 끓기만 하고 마르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구음절맥의 한기를 지닌 천여운은 이 정도 열기에 큰 영향을 받지 않지만 뜨거운 열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기에 물러섰다.
[사용자의 잔존 에너지가 38퍼센트 남았습니다.]천여운의 머릿속에 나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 오랜 시간을 소요하지 않았지만 유형화된 이기어검강의 내공 소모는 현경의 극에 이르렀다고 해도 부담스러웠다.
‘이제 남은 것은 저 온몸이 불에 타고 있는 여인인가.’
-화르르르륵!
전신에서 한기를 내뿜는 여인도 만났지만 불로 타오르는 것은 참으로 기이했다.
일 태상 란영은 나노가 조정하는 이기어검강을 상대하느라 정신없이 장법을 펼치고 있었는데, 도혈문주보다는 잘 버티고 있었다.
-촤촤촤촥!
이기어검강이 펼치는 검초가 사방을 가득 메웠다.
그런데 그녀는 이 초식들을 완벽하게 막아내지는 못했다.
단 하나의 초식만으로도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천마검공과 이십사마검의 검초를 여섯 개나 감당하니 그것은 당연했다.
-촥!
“윽!”
푸른빛 검강이 만들어내는 검의 궤적이 란영의 갈비뼈 쪽을 베고 지나갔다.
그로 인해 신형이 잠시 흔들리자 이를 놓칠 새라 다른 검강의 검식이 그녀의 왼쪽 허벅지 쪽을 베었다.
-촥!
“하압!”
그런데 그녀는 전혀 고통을 느끼지 않는지, 이를 무시하고서 장결을 일으켜 다른 검강들이 펼치는 검초를 막아냈다.
‘아….상처가?’
천여운이 이를 유심히 살펴보니 그녀의 다친 부위가 재생하고 있었다.
나노머신의 회복속도 만큼은 아니었지만 빠른 속도로 베인 부위가 아물어갔다.
불꽃은 그저 몸에 두른 것처럼 육신의 재생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 버틴 건가?’
고통을 느끼지 않고 빠른 재생력이 그녀를 지금까지 버티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물론 그것뿐만이 아니라 일 태상 란영의 장법은 무림에서도 수위에 꼽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고절했다.
‘하지만 이제 끝내야겠군.’
도혈문주를 죽였기 때문에 더 시간을 끌 이유가 없었다.
-우우웅!
천여운의 주위로 푸른빛이 응집하며 여섯 개의 이기어검강이 생겨났다.
오대고수인 무쌍검 왕전마저도 열두 개를 상대하면서 고전하다가 항복 선언을 했는데, 과연 그녀는 이를 견딜 수 있을까?
-슥!
천여운이 손을 들어 올리며 란영에게 투입하려는 순간이었다.
“끄으으윽!”
익숙한 목소리의 신음성에 천여운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그 소리는 반대쪽 끝인 공동의 입구 쪽에서 흘러나왔었다.
‘허봉?’
그곳을 바라보자 허봉이 누군가에게 붙잡혀 있었는데, 그 자는 피로 물든 장포에 부상을 당했는지 몰골이 엉망인 사내였다.
한쪽 팔은 짓뭉개졌는지 밑으로 축 쳐져 있는 사내는 충혈된 눈으로 허봉의 뒤에서 단검을 목에 겨냥하고서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하아….하아…빌어먹을….”
‘제, 젠장! 이게 대체 무슨 날벼락이야?’
갑자기 기습적으로 뒤를 잡힌 허봉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지하에서 들려오는 폭발음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달음에 밑으로 달려온 그였다.
물론 천여운이 뚫어놓은 지름길로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복병이 생겨났는데, 이곳 마지막 공동으로 뛰어내린 순간 바닥에 쌓여있던 돌무더기에서 이 자가 튀어나와 그를 붙잡은 것이었다.
“저, 저기…”
“닥쳐! 죽기 싫으면 꼼짝하지 마라!”
허봉이 공력을 끌어올려서 이 자에게서 벗어나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그였지만 상대는 화경의 고수였다.
시도도 하기 전에 그의 왼쪽 어깨를 찌른 뒤에 살기어린 경고를 했다.
-푹!
“끄으으윽!”
“꼼짝하지 말라고 했지! 한 번만 더 움직이면 네놈의 목을 베겠다.”
차가운 단검은 언제든지 그의 목을 벨 기세였다.
결국 허봉은 반항을 할 수가 없었다.
‘이, 이 자는 대체 누구지?’
짓뭉개진 팔의 고통 때문에 거친 호흡을 내뱉는 그는 도혈문주를 보좌하는 극도육무문의 고수인 도상문주였다.
모두가 죽었다고 생각했던 그는 무너진 잔재 속에서 겨우 살아남았다.
몸 전체에 부상을 입고 운기 도중에 충격을 당해 내상을 입었지만, 수위에서 한참 차이가 나는 허봉은 어떻게 제압할 수 있었다.
‘도혈문주가 죽다니…..’
한 팔로 허봉을 억지로 붙잡고 있는 그는 이 사태를 어찌 해야 할지 고민했다.
밑에 깔려서 겨우 들끓는 내기를 진정시켜서 탈출하긴 했는데, 멀리서 도혈문주가 두 팔이 잘려서 죽는 것을 목격하고 말았다.
‘말도 안 돼. 저 괴물 같은 여자를 저리 쉽게 죽이다니?’
괴물을 능가하는 괴물이었다.
짧은 순간에 그는 수많은 고민을 해야만 했다.
계속 돌무더기 속에 숨어서 죽은 척 하고서 저들이 사라지길 기다려야 하는지 말이다.
‘저 괴물 놈이 언제까지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다.’
두 사람을 처리하고 나면 분명 회복한 자신을 감지할 게 뻔했다.
그러던 차에 돌무더기 위로 누군가가 ‘주군!’ 하면서 뛰어내렸고, 그는 이것을 활로의 기회로 삼아보기로 했다.
“하아…..네놈은 저 자와 무슨 관계지?”
“…..아까 닥치라고…”
“지금 나와 말장난을 하는…”
-슉!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공동의 반대편에 있던 천여운의 신형이 어느새 그들의 앞으로 나타났다.
어찌나 빨랐는지 화경의 고수인 그조차 나타나서야 알아차릴 정도였다.
‘이, 이놈은 정말 괴물이다.’
도혈문주조차 상대하지 못했는데, 자신이 어찌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주, 주군!”
난데없이 적에게 잡혀버린 허봉이 어찌할 바를 모를 표정으로 천여운을 불렀다.
본의 아니게 짐이 되어버린 셈이었다.
-고오오오오!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았다.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바로 앞에서 수많은 검들이 겨냥하고 있는 것처럼 심장을 옥죄여왔다.
그 압박감은 화경의 고수라고 해도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최대한 냉정함을 유지하려 했던 도상문주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킬 정도였으니 말이다.
‘진정하자. 이렇게 본좌를 압박한다는 것은 분명 일행이 틀림없다.’
두렵기는 했지만 이걸로 확실해졌다.
주군이라고 했을 때 혹시나 했는데 자신에게 잡혀 있는 이 자는 분명 이 괴물과 관련되어 있다.
그때 천여운이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도상문주를 노려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를 풀어줘라.”
‘아아아….교주님!’
진심으로 분노한 천여운의 모습에 허봉이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그를 모시게 된지 어언 오 년이 다되어가는데, 이 모습에서 얼마나 자신을 수하로서 아끼는지 알 수 있었다.
“허튼 소리! 가까이 다가오지 마라! 그 자리에서 조금만 움직인다면 이 자를 죽여 버리겠다.”
도상문주가 긴장된 표정으로 강하게 말했다.
경고대로 이 자를 풀어주게 되면 그 다음에 벌어질 일은 안 봐도 뻔했다.
-고오오오!
‘크윽. 움직이지 말라고 했더니…’
천여운의 몸에서 풍겨지는 살기가 점점 더 짙어져갔다.
그를 더욱 자극한 것이다.
어차피 패는 던졌기에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었다.
“제, 제안하겠다. 부하 놈을 살리고 싶다면 저곳에서 기린의 피를 가져와라. 그리고 나를 놓아주겠다고 약조한다면 무사히 풀어주겠다.”
그의 고개를 까딱이면서 거대한 불꽃이 타오르는 못을 가리켰다.
이런 식의 협박이 통할지 안 통할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이 자를 아낀다면 넘어올 것이다.’
저 분노하는 태도를 본다면 분명 아끼는 수하가 틀림없었다.
아무리 화가 나도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자신의 조건을 수락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런데 그가 모르는 한 가지가 있었다.
보통 정파인이나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희생을 감수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천여운은 마도를 지향하는 마교인이었다.
“……나도 한 가지 제안을 하지.”
“제, 제안?”
“지금 허봉을 놓아준다면 최대한 고통스럽지 않게 죽여주마. 그런데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나는 네놈이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를 후회할 정도로 고통스럽게 죽일 것이다.”
‘!?’
천여운의 입에서 나온 말에 도상문주는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당연히 고민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도리어 협박을 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그였다.
더군다나 협박의 선택지는 어떤 식으로든 죽음이었다.
‘이, 이놈은 대체 뭐야?’
이렇게 된다면 이 자를 데리고 협박해도 소용이 없다는 소리였다.
상대가 더욱 강하게 나오는 바람에 도상문주는 어찌해야 할지 난감해했다.
그런데 여기서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사용자의 잔존 에너지가 15퍼센트 남았습니다. 더 이상 이기어검강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슈우우웅!
나노의 목소리와 함께 판넬 원격 시스템으로 가동되던 이기어검강이 중지되었다.
도상문주의 협박으로 시간이 소모된 탓이었다.
‘이런!’
천여운의 눈빛이 흔들렸다.
열두 개의 이기어검강을 유지하는데 소모되는 내공은 상상을 초월한다.
나노는 이 이상의 내공을 소모하게 되면, 천여운이 스스로를 보호하면서 남은 적들을 상대하는데 차질을 빚을 거라 판단하고 이를 강제로 중지시켰다.
-화르르륵!
그로 인해 여섯 개의 이기어검강들이 펼치는 절세검초를 상대하던 일 태상 란영이 그것에서 풀려나게 되었다.
이것에서 풀려난 란영은 망설임도 없이 곧장 그들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전신에 불꽃을 내뿜으며 달려오는 모습이 위협적이었다.
‘위, 위험해!’
정면을 보고 있었기에 이를 가장 먼저 발견한 허봉은 본능적으로 천여운이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짧은 찰나에 허봉이 결의에 찬 눈빛으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여기서 짐이 되어선 안 된다고 결심한 그는 목숨을 던질 각오로 손에 강기를 일으켜, 뒤에 있는 도상문주를 공격하려 했다.
-우웅!
“이, 이놈이!”
이것을 도상문주가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허봉의 손에 강기가 일어나려 하자, 위협을 느낀 그가 무의식적으로 허봉의 목을 단검으로 베어버렸다.
-촥!
“컥!”
단검에 목이 베인 허봉이 앞으로 쓰러지려했다.
핏방울이 허공을 흩날리며 그것은 너무도 천천히 이루어졌다.
‘주군…..뒤에…..’
앞으로 쓰러져가면서 허봉은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죽어가는 그는 필사적으로 그것을 알리려 했다.
“허보오오오오옹!!!”
-팟!
극도로 분노한 천여운의 신형이 순식간에 앞으로 뻗어나갔다.
열 보 거리를 단숨에 좁혀왔다.
‘빠, 빨라!’
도상문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차피 벌어진 일이었기에 어떻게든 버텨보자는 심경에 도상문주가 다급히 방어하려고 했지만 그것이 통할 리가 만무했다.
-촥!
“끄아아아악!”
천여운의 흑검이 번개처럼 움직이자 순식간에 단검을 들고 있던 그의 팔이 잘려나갔다.
잘려나간 팔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천여운이 흑검을 바닥에 꽂고서, 그의 머리통을 움켜잡았다.
-꽈악!
“허억?”
머리통을 잡은 그의 손아귀에 들어간 힘이 너무 강했다.
청옥석마저도 순수한 힘만으로 부숴버릴 만큼 괴력을 소유한 천여운이다.
“끄어어억, 지, 지금 뭘 하려고?”
“후회할 거라고 했지!”
“제, 제발 그냥 죽여….”
-우드드득!
“끄아아아아아아악!”
천여운의 손가락 마디마디가 그의 머리의 두개골을 뚫고서 파고들었다.
팔이 잘렸을 때도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이것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했다.
영혼이 빠져나갈 것만 같은 그런 고통이었다.
-타타타탁!
‘빌어먹을!’
놈에게 더욱 고통을 주고 싶었지만 뒤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화기(火氣)를 감지했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두개골에 손가락을 파고든 상태로 천여운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탁!
‘서, 설마?’
부서진 두개골에서 피가 흘러나와 얼굴을 전부 적신 도상문주의 두 눈이 커졌다.
천여운이 무엇을 하려는지 본능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아, 안돼에에에!”
-뿌지지지직! 쑤우우욱!
“끄아아…”
비명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어깨를 잡고 있던 천여운이 그대로 도상문주의 머리를 몸에서 뽑아버렸다.
뽑혀진 그의 머리를 따라 척추 뼈까지 길게 끌려나왔다.
길게 고통을 느끼진 못했지만 사전에 경고한대로 최고로 고통스럽고 잔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그였다.
-팍!
뽑은 머리통을 바닥에 내팽개친 천여운이 바닥으로 손을 뻗었다.
-슈욱! 착!
바닥에 꽂혀 있던 흑검이 그의 손으로 빨려 들어왔다.
검을 잡은 천여운은 그대로 바닥을 박차고서 자신을 향해 뻗어오는 일 태상 란영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그런데,
-털썩!
‘!?’
당연히 그를 공격할 거라 여겼던 일 태상 란영이 갑자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무슨 수작인가 싶어 의아해하는데, 그녀가 바닥에 머리까지 조아리며 공동이 떠나가라 외쳤다.
“아아아! 어찌 이제서야 찾아주신단 말입니까? 미천한 교인이 대 천마신교의 하늘이신 교주님을 배알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