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223)
# 70장 허봉이여 불꽃이 되어라 (2) #
-화르르르륵!
여전히 불꽃에 휩싸여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일 태상 란영.
그런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천여운은 전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황릉의 보물을 지키는 황궁 수호전의 고수라고 생각한 자가 갑자기 스스로를 마교의 교인이라고 밝혔다.
“…..대체 무슨 수작이지?”
천여운의 말에 그녀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말했다.
“그 전에 먼저 급한 일이 있지 않으십니까?”
불꽃에 휩싸여 있는 그녀의 눈동자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허봉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그 말에 천여운이 눈살을 찌푸렸다.
적의가 느껴지지 않지만 그녀가 어떤 식으로 나올지 짐작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떻게 하지?’
확실한 방법은 그녀를 제압해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허봉의 상태를 살펴보는 것이 더 급선무이긴 했다.
“허튼 수작을 부리면 각오해라.”
“부디 의심을 거두어주십시오.”
천여운의 경고에 그녀가 몸에 두르고 있는 불꽃을 거두었다.
그러면서 붉은 비늘로 뒤덮인 그녀의 나신이 드러났다.
옷을 걸치고 있지 않았기에 일 태상 란영은 붉은 비늘은 체내로 넣지 않았다.
-팟!
그녀가 전신에서 발산하던 이질적인 기운마저 거둬들이자, 천여운은 다급히 쓰러져 있는 허봉에게로 이동했다.
“허봉!”
앞으로 고꾸라져 있는 그를 뒤집자, 허봉이 깊게 베인 자신의 목을 붙잡고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죽어가고 있었다.
입에서는 핏물이 흘러나왔고 그는 몸을 벌벌 떨었다.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동공이 풀리고 몸이 차가워져가자 냉정한 천여운조차 눈시울이 붉어졌다.
“안 된다. 허봉.”
“후…….후….구…..운….”
목이 베여서 말을 할 수 없는데도 멍한 눈으로 허봉은 천여운을 불렀다.
천여운이 피가 흐르는 그의 목을 잡고서 소리쳤다.
“말하지 마라.”
“하…아…..하…..아…..”
입만 벙긋거리는데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나…..의…..주…..군…..’
죽음이 두려워서 벌벌 떨면서도 그를 부르는 모습에 천여운은 가슴이 쓰라렸다.
그의 첫 번째 수하이자 어려움을 동고동락했던 동료였다.
그를 이렇게 허무하게 죽게 할 수 없었다.
“허락할 수 없다. 네가 죽게 내버려둘 것 같으냐!”
-타타타탁!
피가 흐르지 않게 지혈 점을 누른 뒤에 손에 공력을 모아 삼매진화를 일으켰다.
뜨거운 불꽃으로 베인 상처부위를 지져서 다물게 하기 위해서였다.
“참아라!”
-치이이이이익!
“끄으으으!”
목을 지지자 허봉이 고통의 신음을 흘리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출혈이 심해지기 전에 상처 부위를 지지기는 했지만 목을 베인 것은 치명적이었다.
천여운이 속으로 물었다.
‘나노. 상태를…’
스캔하게 하려고 했는데, 누군가 옆으로 다가왔다.
일 태상 란영이었다.
이에 천여운이 강렬한 기운을 발산하며 노기서린 목소리로 그녀에게 경고했다.
“다가오지 마라.”
한 걸음만 더 다가오면 당장에 베어버릴 기세였다.
날카로운 반응에 한 걸음 물러나며 그녀가 다급히 한 쪽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갑자기 소신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데리고 온 교인이 목숨에 경각에 달했으니, 부디 소신에게 맡겨주실 수 없으시겠습니까?”
진중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에 천여운은 고민했다.
당장에 나노가 상태를 확인한다고 해도 타인을 치료할 수 없기에 위급한 상황을 타개할 수는 없었다.
천여운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그녀에게 물었다.
“어떻게 한다는 거지?”
“교주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내 도움?”
“일단을 서둘러야 하니, 다시 설명 드리겠습니다.”
란영이 가까이로 다가와 죽어가고 있는 허봉을 안아들었다.
멀쩡한 상태였다면 여자가 건드는 것만으로 쑥스러워할 그였지만 지금은 거의 미동이 없어지고 있었다.
호흡이 미약해지는 것을 보아 서두르지 않으면 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
-팟!
허봉을 안아들은 그녀가 거대한 불꽃이 타오르는 못으로 향했다.
공동의 삼분지의 일에 해당하는 들끓고 있는 못으로 다가가자 뜨거운 열기가 후끈거렸다.
죽어가는 허봉은 그것조차 느끼지 못했다.
-탁!
못에서 여덟 보 정도 떨어진 거리에 그를 내려놓은 란영이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그리고는 못으로 뛰어가, 아무 망설임도 없이 뜨겁게 끓고 있는 물을 두 손으로 떴다.
불꽃이나 뜨거움에 내성이 있는지 그녀는 전혀 뜨거워하지 않았다.
물을 손으로 받은 그녀가 허봉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의아해진 천여운이 물었다.
“그게 뭐지?”
“희석된 기린의 피입니다.”
“기린의 피? 이게 기린의 피라고?”
단순히 끓고 있는 못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 큰 못 전체가 피라면 대체 영수인 기린은 얼마나 큰 것일까?
‘투명한데?’
보통 피라고 한다면 진하고 붉은 색을 띨 텐데, 그녀의 손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뜨거운 물은 투명하기만 했다.
“기린의 피는 화기가 너무 강해서 만질 수도 없습니다. 대명제국의 태조께서 이것을 식히기 위해 북해에서 만년한설을 공수하여 부었는데도 겨우 이 정도가 되었지요.”
이 못이 만년한설(萬年寒雪)로 희석된 기린의 피라고 한다면 저 거대한 불꽃은 대체 무엇일까?
의문이 들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허봉이었다.
“이걸로 어떻게 하려는 거지?”
“교주님께서 아까 전에 극음에 가까운 한기를 다루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혹시 기린의 피에 한기를 불어넣으실 수 있는지요.”
그녀가 도와달라고 한 말은 바로 이것이었다.
뜨거운 기린의 희석된 피에 한기를 불어넣어 식혀달라는 소리였다.
“기린의 피는 희석된 것이라고 해도 손상된 육신을 재생하는데 큰 효능이 있습니다. 다만 화기가 너무 강해 희석된 것이라도 남자는 버티기 힘듭니다.”
기린의 피의 부작용이었다.
애초부터 양기가 강한 남자가 이것을 복용하게 된다면 화기를 버티지 못하고 내기가 상해 오히려 오장육부가 타들어가서 죽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고 보니 궁녀들만 붉은 비늘에 화기를 지니고 있었다.’
이를 떠올린 천여운이 화가 나서 말했다.
“그럼 위험하다는 소리가 아닌가?”
“많이 복용하면 그렇기는 하지만 이런 소량에 한기를 불어넣는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면 한 번도 시도해본 적은 없는 듯 했다.
강한 불신이 들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기에 결국 그녀가 말한 대로 물에 한기를 불어넣을 수밖에 없었다.
-스스스스슥!
구음절맥에 걸린 왕여군의 극음의 기운을 흡수한 천여운은 이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손에 한기를 일으키자 하얀 서리가 생겨났다.
그렇게 일으킨 한기를 그녀의 손에서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희석된 기린의 피에 주입하자, 조금씩 그것이 식어갔다.
‘아! 식는구나.’
란영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내심 실패하면 어쩌나 걱정 했었는데, 정말로 끓고 있는 피가 식었다.
거품이 올라오던 것이 이제는 미지근하게 바뀌었다.
“마시게 하겠습니다.”
천여운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식은 기린의 피를 자신 입에 머금었다.
‘응?’
그리고는 입을 맞춰서 허봉의 입안으로 피를 밀어 넣었다.
정신을 잃고 있었기에 입안에 흘려보내는 것만으로는 마시지 못했기에 입으로 직접 전달한 것이었다.
만약 그가 정신이 들었다면 어땠을까?
붉은 비늘이 얼굴과 전신을 뒤덮은 여자와 첫 입맞춤을 한 기분이 말이다.
-꿀꺽꿀꺽!
점차 미동이 없어져가는 허봉의 식도를 타고 기린의 피가 들어갔다.
남은 것은 란영이 말한 대로 기린의 피가 제대로 된 재생 효과를 있기를 바라야만 했다.
그런데 그 효과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
천여운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새하얗게 질려가면서 숨이 얕아지던 허봉의 얼굴색이 점차 상기되어갔다.
체온이 오르는 것이었다.
“하아….하아….하아….”
심지어 호흡 소리도 점차 강해져갔다.
목을 살펴보니 놀랍게도 불로 지져서 화상자국이 쭈글쭈글 해진 피부가 조금씩 변해갔다.
예상한 것보다도 대단히 빠른 효능이라 할 수 있었다.
‘희석된 피가 이 정도라면 진짜 피는 어느 정도란 말인가.’
천여운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붉은 비늘로 전신이 뒤덮인 일 태상 란영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제대로 된 기린의 피를 복용해서 저리 된 것일까 궁금해졌다.
그때 란영이 천여운에게 말했다.
“교주님. 잠시 그의 곁에서 물러나주십시오.”
“?”
“이제부터 이 자의 체내에 화기가 강해질 터이니, 그것이 폭주하지 않도록 제가 조절하겠습니다.”
수호전 소속의 궁녀들을 통해서 희석된 기린의 피를 복용한 자들이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잘 알고 있는 그녀였다.
천여운이 한기를 주입해 그 기운을 더 낮췄다고는 하나 도움이 필요했다.
허봉이 호전되는 것으로 눈으로 확인하면서 불신의 마음이 가라앉은 천여운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부탁한다고 하였다.
-탁!
빠르게 회복되어가는 허봉을 가부좌로 앉힌 그녀가 등 뒤로 두 손을 갖다 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천여운의 머릿속에 문득 뭔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기린의 피가 손상된 육신을 재생시킨다고?’
고개를 돌린 천여운이 팔팔 끓고 있는 못을 바라보았다.
그가 보고 있는 곳은 아까 전에 양팔이 잘리고 온몸이 고슴도치처럼 이기어검강에 꿰뚫린 도혈문주의 시신이 가라앉은 곳이었다.
‘괜한 우려인가.’
천여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아무리 재생의 효과가 강한 기린의 피라고 할지라도 그런 죽기 일보 직전의 상태마저 호전시킬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그 정도까지는 힘들어보였다.
* * *
뜨겁게 끓고 있는 못의 밑바닥.
그곳에 양팔이 잘려서 가라앉은 도혈문주의 시신이 있었다.
이 정도 뜨거움이라면 맨살이 완전히 익어버리기 십상일 텐데, 도혈문주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서 울룩불룩 물집이 올라온 것 이외에는 시신이 온전했다.
-부글부글!
그런데 영원히 움직이지 않을 것만 같던 시신에 변화가 생겨났다.
이기어검강에 관통되었던 상처 부위들이 빠른 속도로 아물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상처 부위들에 붉은 비늘이 돋아났다.
-츠츠츠츠츠!
변화는 매우 빨랐다.
이윽고 회복되어가던 도혈문주의 눈이 번쩍 뜨였다.
짙은 안광을 내뿜는 그녀는 자신의 몸 상태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본좌가 죽지 않았다니?’
분명 마교 교주 천여운에게 당해서 회생할 수 없는 치명상을 입고 못에 가라앉았다.
그런데 자신은 살아있었다.
‘여긴?’
신기한 것은 분명 자신이 있는 이곳은 뜨거운 물속인 것 같은데, 호흡을 하지 않고 있어도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숨을 쉬는 것보다도 편했고 전혀 뜨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아아아! 찾았구나. 이것이 기린의 피구나!’
도혈문주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빠져있는 이 못이 기린의 피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어이없게 죽게 되었다고 절망했는데 그것이 전화위복이 된 것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단전을 살핀 그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내공이 늘었다.’
폭증 수준은 아니었지만 원래의 내공보다도 훨씬 상승했다.
더군다나 이곳을 지키고 있던 그 일 태상이라는 여자처럼 화기마저 머금고 있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왼팔이?’
잘려나간 양팔 중에 왼팔이 재생해있는 것이 아닌가.
팔 전체가 붉은 비늘이 돋아나 있었는데, 이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굉장한 행운이 따랐다.
못에 빠진 그녀는 운이 좋게도 잘려나간 왼팔이 있는 곳으로 가라앉았고,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재생능력이 그것을 끌어당겨 회복시킨 것이었다.
‘만약 오른팔도 붙이려고 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구나!’
확률적으로 충분히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내공도 급격히 상승했고 왼팔이 회복된 그녀는 기대감에 부풀어서 수면으로 올라갔다.
얼마큼 이 안에 있었는지는 몰라도 상처가 전부 회복되었을 정도이니, 꽤 오랜 시간이 흘렀으리라 여겼다.
‘천여운! 네놈은 본좌를 죽였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본좌는 살아남았다. 흥! 다음에 마주치게 된다면 이 치욕을 반드시 갚아주겠다!’
-푸웃!
그렇게 수면 위로 올라온 그녀를 반기는 것이 있었다.
-둥둥둥!
‘앗?’
도혈문주의 두 눈이 커졌다.
그녀의 떨리는 눈동자로 허공에 떠있는 열두 개의 푸른빛 이기어검강이 자신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 비치고 있었다.
‘이. 이게 대체…..’
당혹스러워하는 그녀의 귓가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나 했는데 살아있었네.”
“!?”
당연히 그 목소리를 잊을 리가 없었다.
바로 천여운이었다.
그녀가 얼굴이 급격하게 일그러지면서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려 하는데,
“이번에는 확실하게 죽어라.”
사형선고가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열두 개의 이기어검강이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찔러 들어왔다.
-슈슈슈슈슈슈슈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