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224)
# 70장 허봉이여 불꽃이 되어라 (3) #
어이가 없었다.
기사회생(起死回生)했다고 기뻐했던 것이 무색해졌다.
‘처, 천여운! 이익!’
여섯 개의 이기어검강에도 고전을 면치 못했던 도혈문주였다.
무방비 상태에서 바로 코앞에서 열두 개의 이기어검강이 무차별적으로 찔러 들어오자, 어떻게 손을 써볼 틈도 없었다.
-푸푸푸푸푹!
“아아아악!”
전신의 요혈이 이기어검강에 꿰뚫려버리고 말았다.
여섯 개도 아닌 열두 개가 관통했으니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이 묘해졌다.
‘고통이 느껴지지 않아?’
분명 전신이 이기어검강에 관통 당했는데, 신기하게도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강기가 응집되어 있기에 몸을 움직일수록 살점이 분해되어서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모, 못 안으로 들어가야 해!’
도혈문주는 본능적으로 살려면 못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발버둥을 치면서 뒷걸음을 치려고 하는데, 그것을 천여운이 그냥 내버려둘 리가 만무했다.
“그냥 죽으라고 했을 텐데.”
천여운이 왼손을 내밀어 끌어당기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고슴도치처럼 이기어검강이 꽂혀있는 그녀의 몸이 부웅하고 못 바깥으로 끌려나왔다.
‘무, 무슨 내공이?’
허공섭물에 대항해보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기린의 피로 내공이 상승했다고 하나, 현경의 극에 이른 천여운의 내공 수위는 그녀보다 훨씬 두터웠다.
-팍!
강제로 끌려온 도혈문주는 천여운의 앞에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극도육무문을 움직이는 여섯 상위문주 중 일인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무릎을 꿇은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 흉흉한 기운은 대체 뭐지?’
못에 빠지기 전만 하더라도 그저 무위의 차만 직감했다.
그런데 천여운에게서 뭔가 흉폭하면서도 죽음을 직감하게 만드는 기운이 느껴졌다.
심지어 검은 아지랑이 같은 것마저 보였다.
도혈문주의 피와 살이 된 기린의 피가 강하게 경고하고 있었다.
[절대로 상대할 수 없다. 상위 포식자다. 도망쳐라.]‘빌어먹을! 본좌가 그걸 모를 것 같아.’
도망치고 싶어도 전신을 관통한 이기어검강들에 몸을 짓누르는 내공 때문에 움직일 수도 없었다.
기린의 피를 복용한 한 것이 말짱 도루묵이었다.
여기서 그녀는 자신이 복용한 것이 그저 희석된 기린의 피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천…..여……운!!!”
할 수 있는 것은 표독스럽게 천여운을 노려보며 악을 쓰는 것뿐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천여운은 냉정하게 말했다.
“목도 붙여보시지.”
그 말에 도혈문주의 두 눈이 급속하게 커졌다.
“이, 이 개새…”
-촥!
욕설을 전부 내뱉기도 전에 도혈문주의 목에 날카로운 뭔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무언가는 바로 흑철로 만들어진 천마검이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그녀의 목에 붉은 선이 진해지며, 이윽고 비스듬히 내려앉은 머리통이 바닥을 데굴데굴 뒹굴었다.
“흥!”
천여운이 왼손을 휘젓자, 그녀의 몸에 꽂혀있던 이기어검강이 움직이며 전신을 난도질했다.
그것이 멈춘 것은 도혈문주의 전신이 고기 조각이 되어서였다.
목을 잘랐기 때문에 더 이상 살아날 일은 없었지만 후환은 절대로 남기지 않는 천여운이다.
“뭐가 개새…라는 거냐.”
-콰직!
마지막 마무리는 그녀의 머리통을 밟아서 으깨는 것으로 끝났다.
황궁의 보물을 탈취하고 마교를 위기로 몰아가려 했던 모든 계획이 허무하게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같은 시각.
절강성 항주에 있는 황산에 거대한 야차상(夜叉像)이 세워진 공동 안.
야차상 앞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사내가 등지고서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 뒤에서 얼굴을 붕대로 가린 정체불명의 사내가 뚜껑이 열려 있는 붉은 목함 하나를 들고 있었다.
-키엑키엑!
사내가 들고 있는 붉은 목함 안에는 주먹만한 붉은 고(蠱)가 기괴한 소리를 내면서 울고 있었다.
이를 붕대의 사내가 긴장된 눈으로 살펴보고 있었다.
-푸직!
그러던 차에 한참을 울면서 파르르 떨던 고가 갑자기 터지더니 녹아내렸다.
사내가 죽은 고가 들어있던 붉은 함의 뚜껑을 닫으며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실패했습니다.”
붉은 함의 뚜껑 위에는 도혈(刀血)이라 적혀 있었다.
그것은 황궁으로 갔던 여섯 상위문주 중 한 사람인 도혈문주의 몸에 심어진 고와 연결된 것이었다.
붕대의 사내는 야차상 앞에 가부좌를 틀고 있는 그림자 속의 사내의 눈치를 보았다.
그의 심기가 불편해졌으리라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던 중에 야차상 앞에 앉아 있는 사내가 바닥으로 가볍게 손을 짚었다.
그 순간,
-팡!
“크헉!”
붉은 함을 들고 있던 붕대의 사내의 몸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열 보 거리가 넘게 나가떨어진 사내는 내상을 입었는지,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파팍!
피를 토해낸 붕대의 사내가 다급히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변명하는 것을 싫어하는 ‘그 분’의 성정을 알기에 아무 말 없이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야차상 앞의 사내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도염, 도광, 두 문주를 불러라.”
중저음에 낮게 깔린 목소리였다.
엎드리고 있는 붕대의 사내의 두 눈이 커졌다.
그들은 극도육무문을 움직이는 상위육문의 문주들이었다.
“네? 그 두 문주를 말입니까?”
“계획을 변경한다. 그들을 통호현으로 보내서 도공문주를 지원하게 해라.”
붕대의 사내가 속으로 놀라했다.
하나의 대계에 상위육문주가 두 명 이상이 투입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극도육무문의 절반이나 되는 전력이 투입되는 셈이었다.
‘허어…..통허현이 피로 물들겠구나.’
확실하게 대계를 성사시키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도주(刀主)의 명을 받듭니다!”
* * *
황릉의 가장 지하 공동.
도상문주에게 목이 베여서 목숨이 경각에 달해있던 허봉의 상처가 완전히 아물었다.
하얗게 질려있던 얼굴은 혈색을 찾았고 호흡도 제대로 돌아왔다.
그런 그의 등에 손을 대고서 운기를 돕고 있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일 태상 란영이었다.
‘으음.’
눈을 감고 있는 그녀의 표정이 묘하다.
희석된 기린의 피를 복용한 자는 강한 화기가 폭주할 확률이 높다.
음기가 강한 여성조차도 강한 화기의 부작용으로 통각을 잃고, 간혹 심할 경우는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
여성이 이럴 정도라면 양기가 강한 남자는 매우 위험하다.
근 이백 년 동안 수십 번이나 황실에서 지원해온 남성들이 피를 복용했는데,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전부 목숨을 잃었다.
‘한기가 주입되어서 그런 것인가?’
다행히 천여운이 극음의 기운을 불어넣어 더욱 화기가 중화된 기린의 피였다.
그래서인지 허봉의 몸에서 예상과는 달리 화기가 폭주하지 않았다.
그렇게 추측을 했었다.
‘아…..이상하다. 어째서 이런 것이지?’
아무리 더욱 중화된 화기라고 해도 변화가 있어야 했다.
기린의 피를 복용한 자는 한 사람도 남김없이 육신에 변화가 생겨났다.
붉은 비늘이 그 증거였다.
‘육신이 화기를 생성하게 재구성되어야 하는데 어째서 변화를 겪지 않은 것이지?’
이상하다고 생각한 그녀는 호기심에 허봉의 운기를 돕는 것을 넘어서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단전에 접촉을 시도해보았다.
화기가 내공에 융화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앗? 이게 뭐지?’
그녀는 허봉의 단전에 웅크리고 있는 하나의 기운을 발견했다.
그것은 내공이 아닌 하나의 흉폭한 영수의 기운이었는데, 천여운에게서 느꼈던 그것과 흡사했다.
‘이 검은 기운은 대체 뭐지? 아!’
란영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운.
이 기운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놀랍게도 기린의 피가 가진 화기를 흡수하고 있었다.
마치 상위 포식자처럼 희석된 기린의 피가 가진 화기를 억누르는 듯 했다.
‘이 교인은 혹시 다른 영수의 피를 먹은 적이 있나?’
그녀의 짐작대로 허봉은 예전에 천여운이 봉마동에 있던 검은 액체를 먹은 적이 있었다.
마교가 창립되던 시절부터 있었던 그 액체는 검은 이무기의 피였다.
용이 되기 직전의 영수의 피는 소량에 불과했지만 허봉의 단전에 둥지를 트고서 잠들어 있었다.
‘알 수가 없구나. 일단 손을 떼야겠다.’
화기를 흡수할 수 있게 도움을 주려했는데 의미가 없어보였다.
어차피 폭주를 막아주는 기운이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소, 손을 뗄 수가 없어.’
허봉의 단전에 자신의 화기가 담긴 선천진기를 연결했던 그녀였다.
그런데 이것이 흡착이라도 된 듯이 기운이 연결되어서 끊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이익!”
불길함을 느낀 란영이 기운을 더욱 끌어올려서 단번에 그것을 끊어 내려했다.
하지만 끊어내려고 할수록 허봉의 단전에 깨어난 흉흉한 기운은 한참을 굶어온 것처럼 물고 늘어졌다.
‘이런! 화기가 빠져나가고 있어.’
란영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에는 흡착된 정도였는데 기운을 끌어올리자, 급속도로 화기가 빠져나갔다.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현상에 그녀는 어떻게든 허봉을 떼어내려고 애를 쓰다가 결국 전신에 불꽃마저 일으켰다.
-화르르륵!
허봉의 단전에 있는 기운이 위협을 느끼도록 말이다.
그런데 위협을 느끼기는커녕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부, 불꽃이!”
-화르르르륵!
온몸에 휘감고 있는 불꽃이 옮겨 붙듯이 허봉의 등 뒤로 불꽃이 이어졌다.
당황한 그녀는 결국 거친 방법을 써야만 했다.
“에잇!”
-퍼억!
란영이 두 발을 뻗어, 허봉을 등을 지지대 삼아서 그를 밀쳐 내버렸다.
어떻게 흡착되었던 두 손이 떨어져나갔다.
그런데 거의 그녀가 지니고 있던 화기의 절반 가까이를 흡수해버린 허봉이었다.
-화르르르륵!
“이, 이를 어쩌지?”
몸에 전부 붙기 전에 손을 뗀다고 했는데, 이미 전신이 불꽃에 휘감겼다.
놀라운 것은 붉은 비늘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허봉의 몸은 불꽃에 타지 않고 오히려 공명하고 있었다.
불꽃은 허봉이 입고 있는 옷만을 태워서 그를 알몸으로 만들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예상한 것과는 다른 현상에 덜컥 두려움이 생겼다.
아무래도 천여운의 도움을 받아서 극음의 기운으로 화기가 폭주하지 못하게 미리 제압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허봉이 화기를 감당하지 못할 거라 여겼다.
란영이 다급히 고개를 돌려서 천여운을 부르려고 했는데,
“엇? 교주님?”
못 앞쪽에 있던 천여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주위를 살피던 그녀의 두 눈이 커졌다.
‘!?’
못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 거대한 불꽃 속에 검은 인영이 들어가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교, 교주님!!!”
그녀는 본능적으로 그 인영이 천여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 어찌!’
저 거대한 불꽃은 이백 년 가까이 꺼지지 않은 기린의 진원이 있는 곳이었다.
다가오는 모든 것을 불태워 재로 만들어 버린다.
“안 돼에에에에!”
경악한 그녀가 다급히 거대한 불꽃으로 신형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