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226)
# 71장 삼위일체 (2) #
근 반시진에 걸쳐서 천여운에게 일어나 변화는 경이로웠다.
허공에 떠있는 그의 전신을 검은 불꽃이 회오리를 치며 휘감았다.
기린의 피를 흡수하여 화기를 다룰 수 있게 된 일 태상 란영조차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앗! 그러고 보니 불꽃이 없어졌다!’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진원을 보호하고 있던 거대한 불꽃이 완전히 사라졌다.
뜨거운 기린의 진원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부서진 재만 남아 있었다.
‘아! 정말 진원의 화기를 전부 흡수하셨단 말인가!’
란영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태껏 황궁 수호전의 누구 하나 성공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데 누가 목숨을 걸고서 기린의 진원의 기운을 탐낼 수 있겠는가.
게다가 기린의 피만으로도 위험하긴 하나 공력을 증강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검은 불꽃은 대체 뭐지?’
진원을 흡수한 것도 그랬지만 천여운의 주위를 두르고 있는 검은 불꽃이 신기했다.
어두운 저 불꽃에서 흉흉하면서 죽음의 기운이 풍겨져왔다.
천여운에게서 느껴지던 그 특유의 느낌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자에게서도 느껴졌었는데.’
란영이 놀라서 입을 벌리고 있는 허봉을 힐끔 쳐다보았다.
천여운 만큼은 아니었지만 허봉의 단전에도 이와 비슷한 기운이 잠들어 있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천마기는 갓 용이 되어 승천하는 이무기의 진원과 피를 흡수한 그 정수였다.
오래된 피였지만 그것을 조금이라도 흡수한 허봉도 비슷한 진기의 잔향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이종의 진기를 흡수하신 건가!’
란영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백 년 가까이 이곳 황릉만 지킨 그녀는 수많은 황궁의 무인들과 황궁을 찾았던 무림인들을 만났지만 한 육신에 이종의 진기를 지닌 자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천여운은 지금 그것을 해내려고 했다.
‘역시 대 천마신교의 교주님다우신….엇?’
이것만으로 대단하다고 여기려는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천여운의 전신이 검은 불꽃만이 아니라 주변에 차가운 검은 서리들이 일어났다.
“한기!”
이종의 진기라고 생각한 것은 그녀의 착각이었다.
검은 불꽃에 놀라서 염두하지 못했는데, 극음의 한기마저 포함해 삼종의 진기였다.
‘두, 두 개가 아니다! 설마 세 기운의 균형을 이루셨단 말인가?’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경악할 만한 사건이라 할 수 있었다.
한 사람의 몸에 완전 극을 달리는 기운들이 동시에 세 개나 존재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게 실제로 일어났다.
‘백룡도!’
눈을 뜬 천여운이 손을 뻗자, 도집에서 곤히 있던 백룡도가 뽑혀져 나와 왼손으로 빨려들어왔다.
‘천마검!’
-차차차차차착!
천여운이 오른손을 뻗자 보호대의 형태로 있던 흑철들이 분해되어서 흑검의 형태를 갖추더니 손으로 빨려 들어왔다.
양대 절세병기들을 손에 쥔 천여운이 기운을 집중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쩌저저적! 화르르륵!
그의 왼손에 있던 백룡도에서 검은 서리가 맺히며 극도의 한기가 일어났으며, 오른손의 천마검에서 검은 화염이 일어나 검을 휘감았다.
삼종진기를 동시에 발현한 것이다.
“세상에!”
“우와!”
이를 지켜보고 있는 란영과 허봉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두 절세병기에서 풍겨지는 기운은 상상을 초월했다.
지금 이루어낸 힘으로 만약 초식을 펼친다면 얼마나 전율적인 위력의 초식이 이뤄질까?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아아! 그런 것인가.’
두 사람이 놀라워할 만한 능력을 선보이는 천여운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삼종의 진기의 균형을 이뤄내어 한 몸에 가두어 삼위일체(三位一體)를 이룬 그는 천마기가 중단전을 개척하면서 새로운 경지에 눈을 뜨고 있었다.
‘내공을 유형화한 것이 기(氣)이다. 그리고 그 기를 응집한 것이 강기(罡氣)이다.’
이것이 기로써 이룰 수 있는 능력이다.
여기서 무형의 기운인 진기를 연결하여 펼칠 수 있는 것이 이기어검이고, 현경의 극에 이르러 펼칠 수 있던 것이 이기유형의 경지로 강기를 형성하여 다룰 수 있었다.
‘이게 끝이라고 여겼었다.’
흔히 무림인들에게 알려진 경지는 현경의 끝을 극(極)이라 하였다.
분명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하단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내공의 한계치까지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단전을 열게 되면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마치 본능적으로 각인되어 있던 것처럼 천여운은 스스로 무엇을 새롭게 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무형의 기운.’
그가 가지고 있는 삼종 기운들은 속성을 지닌 무형의 기운이다.
타고난 선천적인 진기라 할 수 있었다.
이것들은 유형화 될 수 없는 기운이기에 무언가가 매체가 되어 발현되거나, 혹은 순수하게 그 속성의 기운만을 다룰 수가 있다.
-번쩍!
감고 있던 천여운의 눈이 번쩍 뜨였다.
모든 기를 갈무리 할 수 있기에 평범했던 천여운의 안광이 강렬히 빛났다.
-팍!
천여운이 흑화, 흑한의 기운을 발현하고 있던 백룡도와 천마검을 손에서 놓았다.
허공에 떠있던 그의 손에서 벗어난 양대병기들이 못의 한가운데에 솟구쳐 있는 바닥에 떨어져 박혔다.
-쿠쿠쿠쿠!
두 절세병기들에 담겨있던 기운이 땅바닥에 흘러들어가며 균열이 일어났다.
백룡도가 떨어진 부위의 땅은 검은 서리로 얼어붙었고, 천마검이 떨어졌던 부위에는 흑염이 솟구쳤다.
그저 바닥에 꽂았을 뿐인데 그 여파는 못처럼 고여있는 기린의 피에도 영향을 미쳤다.
“앗! 못이!”
허봉이 가리킨 부근에 기이한 변화가 생겨났다.
-치이이이익! 부글부글!
백룡도에서 흘러나온 흑한의 기운에 닿은 왼쪽은 수증기가 일어나며 끓고 있던 기린의 피가 식어갔고, 반대편에 흑염이 흘러들어간 곳은 더욱 끓어올랐다.
‘대단하다! 이게 기린의 진원을 흡수한 힘인가!’
만년한설로도 고작 일부 식히는 것이 한계였는데, 병기에 남아있는 기운이 이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대단했다.
그런데 천여운은 갑자기 병장기를 왜 손에서 넣은 것인가?
‘대체 무얼 하시려는 건지?’
‘아직 삼종진기를 가다듬지 못하신 건가?’
천여운의 알 수 없는 행동에 두 사람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여기서 란영을 경악하게 만드는 일이 벌어졌다.
천여운이 손으로 뭔가를 쥐는 시늉을 했다.
‘응?’
‘어째서 빈손으로?’
아무 것도 없는데 검병이나 도병을 쥐는 파지법을 취한 것이다.
이상하게 여기고 있는데 천여운이 쥐고 있는 오른손에서 검은 불꽃이 일어나더니 이내 선명한 검의 형태를 갖추어 갔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천여운의 왼손에서 검은 서리가 일어나며 마찬가지로 선명한 도의 형태로 바뀌었다.
“서, 설마…..”
란영의 두 눈이 흔들렸다.
지금 천여운이 펼치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한 탓이었다.
“지금 교주님께서 뭘 하시는 거죠?”
물론 아무 것도 짐작하지 못하는 자도 있었다.
의아해 하는 허봉의 물음에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무…..형…..검!”
“무형검? 무형….검……헉! 무, 무형검이라고요?”
아무렇지 않게 그녀의 말을 되새기던 허봉도 놀라서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공을 연마하는 무림인들에게도 여러 전설들이 있다.
정도 무공의 발산지인 소림의 시초인 보리 달마 조사가 갈대 잎 하나를 타고서 강을 건넜다는 것부터 시작해 수많은 전설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무형검이었다.
무공의 끝이라 불리는 현경의 극.
그런데 무림의 기인이사들은 이 경지가 무공의 끝이 아니라고 했다.
그 중 한 사람의 들려오는 일화다.
화산파의 초인이자 무패의 검객이라 불렸던 독고구패는 말년에 들어서 검을 들고 다니지 않았다고 한다.
화산파의 동문이 궁금하여 독고구패에게 물었더니 그가 이렇게 답했다고 했다.
[이기유형을 넘어선 무형의 검을 다룰 수 있게 되면서, 더 이상의 검은 내게 있어 무의미하네.]아무리 화산에 있어서 전설적인 검객이 하는 말이었지만 허풍이라 여긴 화산의 제자는 세상에 그런 것이 어디 있냐고 불신의 태도를 보였다.
이에 독고구패가 아무렇지 않게 무형의 기운인 진기를 유형화하여 검을 만들어내는 신기를 보였다.
그것을 본 동문은 경악하여 머리 숙여 그를 불신한 것을 사죄했다고 한다.
이 일화가 퍼져나가면서 무림의 전설이 되었는데, 이때부터 무림인들은 현경을 넘어선 경지가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 무형의 진기를 검화하는 것을 두고 무형검(無形劍)이라 불렀다.
‘정말 무형검이라니? 그저 상상 속의 경지로만 여겼건만…..당시의 교주님도 현 교주님 만큼은 아니셨는데.’
일 태상 란영이 모셨던 그 시절의 교주도 당대 최고의 고수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런 엄청난 무인임에도 불구하고 기린의 진원을 흡수하기 전의 천여운보다도 한 수 아래였다.
그런데 그보다도 훨씬 강해지려 하니, 가히 탈 인간 급이라 할 만 했다.
“교, 교주님께서 지금 무형검을 펼치시는 거라고요? 그, 그렇다면 생사경의 경지에 올랐다는 말입니까?”
얼마나 놀랐는지 허봉이 침을 튀겨가며 호들갑을 떨었다.
생사경(生死境).
무림에서도 최고라 불리는 현경을 넘어선 전설의경지이다.
그 많은 무림인들 중에서도 현경의 극에 오른 자는 한 세대의 정점들 중에서도 한두 명 나올까 말까할 만큼 극악의 경지였는데, 이를 넘어서는 자가 쉽게 나올 리가 없었다.
그래서 무림인들은 살아서는 이루지 못하고 죽어서나 이룰 수 있는 경지라고 하여, 무형검을 다루는 이 경지를 두고 생사경이라 불렀다.
“저게 정말 무형검이라면……생사경이 틀림없네.”
그녀는 넋을 잃은 표정으로 허봉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때 천여운이 놀라서 그를 우러러보고 있는 두 사람에게 외쳤다.
“둘 다 옆으로 물러나라.”
“네, 네넵!”
“며, 명을 받듭니다!”
아무래도 무형검으로 짐작되는 저 힘을 시험하려는 모양이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양쪽으로 공동의 벽 끝으로 신형을 날리자, 천여운은 기다렸다는 듯이 허공에서 흑염의 무형검을 반대쪽 공동을 향해 뻗었다.
-촤아아아악!
“헉!”
-펄럭펄럭!
공동 옆 벽끝에 있는데 돌풍이 일어나며, 걸치고 있던 허봉의 장포가 휘날렸다.
엄청난 풍압과 함께 천여운이 검을 뻗은 방향으로 검은 화염이 날카로운 검격을 일으키며 공동을 관통하여 뻗어나갔다.
-화르르르륵!
“세……상에…..”
공동의 거의 절반이 넘는 십오 장(丈) 거리에 검흔이 바닥을 갈랐다.
그런데 이 갈라진 검흔에서 흑염이 올라오며 불길을 만들어냈다.
검은 불꽃은 흉흉한 기운을 풍기고 있어서 다가가면 모든 것을 태워 재로 만들 기세였다.
“한 번 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천여운이 다시 한 번 그 방향을 향해 이번에는 왼손에 들고 있던 흑한의 무형도를 휘둘렀다.
-촤아아아악! 쩌적! 쩌저저적!
그러자 날카로운 도격이 검은 불꽃을 가르며 바닥에 도흔을 만들어냈다.
꺼지지 않고서 계속 바닥을 녹이고 들어갈 것 같던 흑염을 갈랐고, 도흔의 파편들을 중심으로 검은 얼음이 날카롭게 올라왔다.
공동의 반을 거의 초토화시킬 만큼 엄청난 위력의 검격과 도격이었다.
더군다나 특별한 초식을 펼친 것도 아니라 그저 그 무형검 자체의 힘을 발산한 것뿐이었는에 이 정도였다.
“무, 무형검이 맞아!”
일 태상 란영은 너무 놀라서 입을 벌리고서 중얼거렸다.
오랫동안 살아오면서도 그저 전설로만 들어왔던 경지를 직접 눈으로 보게 되니, 전율에 사로잡혔다.
“이런 느낌인가.”
천여운이 새롭게 깨달은 힘에 감을 잡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진기의 소모가 극악이라 할 만큼 엄청나기에 두 개의 무형검, 도를 만드는 것이 한계였지만 이 상태로 이기어검술도 펼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정도로 끝낼까.’
충분히 그 위력을 확인했고 허봉이 무사한 것도 보았으니, 이기어무형검은 나중에 시험해 봐도 될 것 같았다.
날이 밝기 전에 황릉을 벗어나야 하니 말이다.
-둥! 둥! 둥!
천여운이 허공답보를 펼치며, 계단을 밟듯이 천천히 못 한가운의 허공에서 그 바깥 쪽 바닥으로 내려왔다.
-타탁!
발이 지면에 닿는 순간 일 태상 란영과 허봉이 동시에 그의 앞으로 한달음에 달려와 한 쪽 무릎을 꿇고서, 감격과 환희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교주님! 대공을 이루신 것을 경하드리옵니다!”
“지고의 경지를 넘어서 생사경의 경지에 이른 것을 감축 드립니다!”
서로 다른 말을 했지만 의미는 상통했다.
현 천마신교의 교주이자 이대 천마인 천여운이 무림에서도 전설의 경지라 할 수 있는 생사경에 이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