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235)
# 73장 황제의 수신호위 (5) #
수신호위(守神護衛).
극소수만이 알고 있는 수호전과 다르게 황궁에 널리 퍼진 존재이다.
황제를 보호하는 유일한 보루라 불리는 수신호위를 모르는 자는 간자라고 불릴 정도였다.
수신호위라는 존재에 대해 들려오는 풍문은 정말 많았다.
과거 무관들의 난이 일어났을 때, 건안궁으로 침입한 무관 삼백여 명으로부터 황제를 지키고 그들의 목을 전부 베었다는 것부터 가히 전설에 가까운 일화들이 넘쳐났다.
‘저 자가 수신호위라고?’
대내행창의 제독인 서태식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냐하면 수신호위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귀가 닳도록 들었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갑자기 대내행창의 환관 한 사람이 툭 튀어나와서는, 수신호위라고 하는데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알고 있는 자인가?]서태식이 옆에 있는 상 첩형에게 전음으로 물어보았다.
환관들을 직접 뽑고 관리하는 상 첩형조차도 처음 보는 얼굴이기에 고개를 저었다.
[서 공공. 아까 전에 소집할 때만 하더라도 저런 자는 없었습니다.] [허어!]대내행창의 환관이 아니었다.
중간에 변장을 하여 몰래 합류했다는 의미였다.
‘참으로 기이한 날이다. 평생 황궁에 있으면서도 보기 힘든 두 사람이 동시에 한 자리에 나타나다니.’
황릉의 지하공동을 지키는 수호전의 일인자 란영.
그리고 누구에게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그림자처럼 황제를 지키는 수신호위.
관료들에게 있어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자리였다.
‘역시 아직까지 건재하구나.’
수신호위라고 부른 예쁘장한 얼굴의 환관을 바라보는 란영의 눈빛이 묘했다.
그를 보는 순간 단번에 누구인지 알아본 그녀였다.
그런데 정작 나타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 존재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예전에는 기척을 감지할 수 있었는데….’
게다가 그저 단순한 불처럼 보였겠지만 그녀의 화기(火氣)가 실린 불꽃은 쉽게 꺼지지 않는다.
이를 쉽게 꺼뜨린 것만으로도 무공이 전보다 훨씬 발전했다는 의미였다.
‘저 자는 너무 위험해.’
제독이나 지휘사, 북진무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자였다.
뒷짐을 지고서 수신호위라 불린 환관을 바라보는 황제의 눈빛은 강한 신뢰감으로 가득했다.
“황궁의 진정한 힘이라…..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건지?”
황제의 자신감이 가득한 말에 천여운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런 표현은 힘으로 자신들을 억누르겠다는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말이었다.
황제가 무릎을 꿇고 있는 환관에게 말했다.
“일어 나거라.”
“명을 받듭니다.”
환관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황제가 그를 가리키며 소개했다.
“이 자는 짐의 수신호위인 임규화라고 한다.”
그런 황제의 소개에 환관이 베시시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천여운에게 인사했다.
“마교주께 인사드립니다.”
가냘픈 목소리하며 웃는 모습이 얼핏 보면 여자처럼 보였다.
남장한 여자로 보인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이름도 여성스럽군.’
규화(葵花)는 해바라기를 뜻했다.
여성이 아니고는 화라는 한자를 잘 쓰지 않는데 특이했다.
‘임규화?’
담담하게 수신호위 임규화를 바라보는 천여운과 달리 대호법 마라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처음 보는 자였는데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이름이었다.
갑자기 떠올리려고 하니 기억은 나지 않는데, 분명 들어본 적이 있었다.
황제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짐이 무림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무림인들은 시비(是非)를 가릴 때 무위를 겨뤄서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고 하더군. 약육강식이라고 했던가.”
약육강식(弱肉强食).
무림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다.
약한 자는 먹히고 강한 자는 먹는다는 말처럼 무림은 강자가 진리이면서 옳음이었다.
이 말을 꺼내는 것은 지극히 황제의 의도가 보였다.
“이유를 막론하고 마교주 귀 공은 황궁에 멋대로 침입하고 짐의 신하들을 해하고, 황족이자 짐의 자식인 영왕의 두 팔을 부러뜨렸지.”
역대 어떠한 무림인도 해본 적이 없는 위업을 달성했다.
이것만 들어본다면 황제의 입장에서 노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적으로 대함은 천여운이 불가침 조약을 맺은 무림 삼대 세력 중 하나인 마교의 수장이었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불가침 조약을 귀 공이 먼저 깨었다고 할 수 있네. 이를 그냥 눈감는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짐에게 치욕이지 않겠는가.”
“폐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옵니까!”
치욕을 논하는 황제의 말에 관료들이 이구동성으로 만류하며 부끄러워했다.
무림의 고수만 아니었다면 이 건방진 무뢰배들을 당장에 참하여 저잣거리에 효수하고픈 마음이 굴뚝같았다.
-척!
황제가 손을 들어서 난리가 난 관료들의 입을 다물게 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짐이 말했듯이 귀 공과 그대들을 그냥 보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 그래서 짐이 제안하는 바이다. 단언컨대 짐의 수신호위는 황궁 최고의 고수라 할 수 있네.”
황제의 단언에 북진무사 영조의 얼굴이 부끄러움에 빨개졌다.
대명제국의 모든 신민들에게 황궁 최고의 검객이자 무인이라 불리는 그였지만 이곳에서는 그 칭호가 무색했다.
“비록 귀 공이 짐과 대명제국에 무례를 범했다고 하지만, 짐은 여전히 태조 폐하의 유지를 어길 생각은 없네.”
사전에 적의는 없다고 긋는 황제의 말에 천여운이 속으로 실소했다.
천여운과 마교의 잘못을 계속 짚으면서 명분을 확실히 다졌다.
처음에는 황제가 분노했기 때문에 이를 해지(解之)하기 위해 비장의 무기를 드러내는가 했는데 아무래도 그게 목적이 아닌 듯 했다.
“짐이 양보하여 무림의 법도를 존중하도록 하겠네. 짐의 수신호위를 상대하여 꺾을 수 있다면 이번 일은 없던 걸로 하지.”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은 무마하겠다는 제안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밑밥을 깔아두었으니, 수신호위를 꺾지 못했을 때에 대가가 절대로 가볍지 않을 것이다.
천여운이 물었다.
“수신호위를 꺾지 못한다면?”
“불가침 조약을 수정토록 하겠다.”
“?”
불가침 조약을 수정하겠다는 말에 천여운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황제의 노림수는 바로 이것이었다.
특정 대가를 원하리라고 여겼는데, 예상과 다르게 상당히 까다로운 부분을 건드렸다.
“정파 무림맹에서는 불가침 조약과 상관없이 대명제국과 짐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있지. 그렇지 않은가?”
‘허어.’
황제가 바닥에 엎드려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다름 아닌 공동파의 장문인 청수 진인과 그 제자들이었다.
갑자기 황제가 데려온 관료들과 마교의 수뇌부들이 대결을 펼치는 대치 상황이 발생하면서 이도저도 못하고 관망하고 있던 그들이었다.
‘난감하구나.’
상황이 정리되기를 기다렸던 청수 진인은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황제의 이런 질문은 굉장히 민감한 사항이었다.
‘하필 마교의 교주가 있는 곳에서 이런 일이….’
마교인들이 없었다면 친 대명제국의 노선을 걷는 무림맹이었기에 적당히 황제의 비위를 맞췄을 것이다.
그런데 같은 삼대 세력 중 하나인 마교의 교주가 보는 앞에서 대명제국에 충성을 했다고 말해버리면, 정파 무림은 관에 무릎을 꿇었다고 공식화되어 버린다.
“그게 아닌가?”
“폐하…..그, 그것은…..”
대답할 수 없는 상황에 청수 진인이 진땀을 흘렸다.
괜히 말실수를 했다가 무림맹의 수뇌부들인 전 웅주들의 질타를 받고서 탈맹 상황까지 발생할 수도 있었다.
계속 망설이자 황제의 표정이 굳어져가는 것이 뻔히 보였다.
난처해하던 바로 그때였다.
“그래서 수신호위를 꺾지 못한다면 저희 천마신교가 불가침 조약이 아니라, 대명제국의 신하가 되길 원하시는 겁니까?”
‘앗!’
절묘한 순간에 천여운이 끼어들었다.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져있던 청수 진인에게 있어서는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덕분에 황제의 굳어가던 시선이 어느새 천여운에게로 돌아갔다.
‘어째서?’
청수 진인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천여운을 흘깃 쳐다보았다.
가만히 있었다면 정파 무림맹이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는 좋은 기회를 저버렸다.
‘설마 본 맹과의 동맹 때문에?’
청수 진인의 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무리 동맹을 맺었다고는 하지만 무림맹과 마교는 언젠가 다시 적대 관계로 돌아갈 것이다. 그런데 황제의 앞에서 무림맹을 도와준 셈이었다.
‘허어…..원시천존. 원시천존.’
청수 진인은 내심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마교에 있어서 아무런 득도 없는 상황에 도움을 줬다는 것은 진심으로 동맹 관계에 대한 예우를 해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현 마교의 교주인가. 그저 무위만 강하다고 여겼건만 영웅으로서의 도량과 포용심을 갖췄구나. 훌륭하다.’
처음에는 그를 무조건 위험하다고만 여겼던 청수 진인이었다.
방금 전의 일로 천여운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호의적으로 바뀌었다.
사실 이것은 약간의 오해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무림맹을 황궁의 산하로 집어넣으려 하다니, 무서울 정도로 수완가로군.’
천여운이 중간에 끼어든 것은 무림맹을 도운 것이 아니었다.
청수 진인의 난처해하는 표정만으로 그들이 황실에 그저 호의적인 태도만 취한다는 사실은 금방 파악했다.
그런데 여기서 무림맹의 수뇌부인 그가 황실에 충성 맹세를 했다고 말해버리면, 그들은 고작 말 한 마디에 황실 산하로 들어가져 버린다.
무림맹에서는 공동파의 장문인을 질타할지 모르겠으나, 대명제국의 황제를 상대로 했던 공언을 쉽게 취소할 수 없으리라.
그렇게 되면 황제는 무림맹을 시작으로 전 무림을 관의 산하로 넣으려들 것이 뻔했다.
“흐음.”
황제의 눈빛에는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천여운이 중간에 끼어들지 않았다면 자연스럽게 정파 무림맹의 수뇌부 입에서 대명제국에 대한 충성을 유도할 수도 있었는데 실패해버렸다.
‘아직은 정치나 외교적인 역량은 없을 줄 알았는데 제법이군.’
정파 무림맹의 사신은 현재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자였다.
그런 자에게서 자연스럽게 원하는 바를 유도하여 얻을 수도 있었는데 아쉽게 되었다.
그래도 아직까지 기회는 끝나지 않았다.
“그렇네. 귀 교는 건국 당시에 공을 세웠기에 태조 폐하께서는 호의로써 불가침 조약을 맺어 그대들의 자유를 인정했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로 착각하는 법이지. 관과 무림의 불가침 조약을 믿고서 황궁을 어지럽혔으니 그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겠나.”
길게 타당한 사유를 내세워 말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수신호위에게 패한다면 마교가 대명제국에 충성을 맹세하라는 뜻이었다.
그저 도량이 넓고 위엄 있는 황제로만 보이겠지만 그 역시도 이 광활한 중원을 다스리는 군주인 만큼 지략을 갖춘 수완가였다.
한 번 잡은 명분을 허투루 사용할 위인이 아니었다.
‘이런!’
대호법 마라겸이나 좌호법 이화명의 눈빛에 당혹감이 서렸다.
황제에게 노림수가 있다고는 파악했지만 설마 이런 상황을 이용해서 무림과 관의 불가침 관계를 역전시키려들 줄은 몰랐다.
그때 대호법 마라겸의 귓가로 대장로 란영의 전음이 들려왔다.
[대호법이라고 했죠? 당장 이 말도 안 되는 제안을 막아야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황제 폐하는 지금 이 내기에 이길 자신이 있기 때문에 이런 제안을 하는 거에요.] [이길 자신이 있다니?] [본 녀는 황릉에 있었기에 잘은 모르지만 한때 무림인들에게 임규화를 모르는 이가 없다고 들었어요. 그는….] [임규화!]대호법 마라겸의 두 눈이 커졌다.
아까 전부터 많이 들어본 이름이라 여겼는데, 란영의 전음에 떠올리고 말았다.
‘파상검제 임규화!’
파상검제(波狀劍帝) 임규화.
그는 한때 중원 오대고수의 일인이자 검의 황제로 불렸던 자다.
무림에 혜성처럼 등장하여 독특한 검술 하나로 명성을 떨친 절대고수였다.
당시 무림 초출에 불과했던 약관의 젊은이가 오대고수이자 검의 일인자였던 패적검왕을 꺾으면서 훗날 천하제일 고수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주었던 위인이었다.
‘하지만 그 자는 고작 일 년 정도 무림에서 활동했다가 사라졌다고 들었는데.’
그때가 벌써 구십여 년이나 지난 먼 과거였다.
마라겸도 선대로부터 어릴 적에 들었던 이야기였기 때문에 단번에 떠올리지 못한 것이었다.
아무리 경지가 높다고 해도 적어도 백이십 세를 훌쩍 넘긴 자일텐데, 환골탈태를 했다고 해도 노인이어야 하는데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럴 리가….] [그는 본 녀와 같이 기린의 피를 복용하고서 오랜 세월을 살아남은 자에요!] [기린의 피!]그랬다.
파상검제 임규화.
그는 본시 환관 출신으로 황궁에서 한참 기린의 피를 통한 실험이 진행될 당시에 그것을 복용하고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남자였다.
이 성공으로 황궁에서는 수십 명의 환관들을 대상으로 기린의 피를 복용케 했으나, 모두가 화기에 오장육부가 타서 죽게 되면서 유일한 남성복용 사례가 되었다.
‘마교의 교주여. 그대는 짐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명분은 충분했다.
그것을 이용해 이미 거절할 수 없도록 모든 상황을 만들어놓았다.
여기서 거절한다면 마교 교주를 비롯한 그의 수하들이 수신호위를 꺾을 수 없다고 인정하는 셈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굳이 그들의 무위를 눈치 보지 않고, 이곳 황릉에 있는 전력만으로 마교인들을 제압할 수 있다는 것도 증명하게 된다.
‘짐의 수신호위는 기린의 피를 복용하기도 전에도 황궁 최고의 고수라 불렸던 동창의 초대 제독이다. 이미 무림에서도 그 능력을 증명했지.’
황제는 이 내기에 이길 자신이 있었다.
어떤 상황이 오든 그는 절대로 잃는 것이 없다.
그때 천여운이 호법들과 대장로 란영을 제치고 앞으로 걸어 나왔다.
마음에 결정을 내린 듯 했다.
“그래. 짐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화르르르륵!
‘!?’
황제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천여운의 오른손에서 칠흑 같이 어두운 불꽃이 일어나더니, 선명한 검의 형태를 갖추었다.
그것은 천마기(天魔氣)와 기린의 화기(火氣)를 머금은 무형검이다.
‘검은 불꽃?’
황실의 고수들이나 정파 무림맹의 고수들을 초빙하여 기(氣)라던가, 혹은 강기(罡氣)를 견식한 적이 더러 있었지만, 왠지 모를 위화감이 들었다.
‘저건 대체 뭐지?’
처음 보는 기이한 광경에 황제가 의아해하는데, 그의 앞에 당당하게 서있던 수신호위 임규화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폐, 폐하! 잠깐 대결을 유보해주십시오. 저 자는….”
바로 그때였다.
-슉!
“앗!”
천여운의 신형이 흩어지며 눈 깜빡할 사이에 임규화의 앞에 나타났다.
황제가 최고의 고수라고 공언했던 그마저 일시에 종적을 놓칠 만큼 빠른 이형환위의 경공이었다.
‘무슨 경공이?’
당황한 임규화가 허리춤에서 황금빛 연검을 뽑아들었다.
연검이 채찍처럼 회오리를 치더니, 이내 허공에 물결처럼 파동이 생겨나며 수준 높은 검막을 만들어냈다.
‘급하게 만들었지만!’
파상검술의 진수를 담은 검막이었다.
이화접목의 묘리가 담겨있는 이 검막은 강하게 힘을 가할수록 배척해낸다.
-팡! 치치치치치!
천여운의 흑염검이 파상검막에 부딪쳤다.
검이 찔러들어온 부위로 물결처럼 출렁이며 예리한 기운들이 흑염검이 뚫지 못하게 파동을 일으켰다.
다급히 방어했지만 이 일격은 막을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런데,
-우우우웅! 파차차차창!
“아닛!”
임규화의 두 눈이 커졌다.
무수한 회전력으로 들어오는 힘을 배척해야 하는 파상검막이 너무도 어이없게 뚫려버렸다.
유형화된 검기나 강기였다면 당연히 공력이 분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천여운의 손에 들려있는 흑염의 검은 무형의 진기가 형태를 이룬 무형검이었다.
‘여, 역시 이건 무형검!’
파상검막이 뚫린 것에 놀란 임규화가 거리를 벌리려고 했지만, 어느새 바로 앞까지 파고든 흑염의 검이 그의 오른팔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촤악!
“끄아아아아아악!”
연검을 들고 있던 임규화의 오른팔이 허공을 핑그르 돌며 바닥에 떨어졌다.
-탁!
바닥에 떨어진 그의 팔의 단면은 잘 타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왔다.
“끄으으윽!”
고통은 둘째 치고 지독한 살기가 그를 위협하고 있었다.
‘서, 설마 이 자리에서 나를 죽이려고?’
황제와 모든 관료들이 보는 앞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목숨에 위협을 느낀 임규화가 당황한 나머지 왼손의 검결지로 검강을 일으켜 천여운의 심장을 찔렀다.
그러나,
-촤악!
“컥!”
육안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쾌속한 흑염의 검이 그의 목을 갈랐다.
베인 고통과 타는 고통을 동시에 느낀다는 것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최악의 고통 그 자체였다.
핏대가 선 두 눈을 부릅뜨고서 임규화가 필사적으로 중얼거렸다.
“여…역시….새…새…생…사….”
-툭!
하지만 갈라진 그의 목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끝내 말을 마치지 못했다.
“이, 이게 대체?”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당혹스러워하는 황제의 앞으로 천여운이 머리통을 잃은 임규화의 시신을 옆으로 밀치면서 다가왔다.
-팍!
그리고는 냉소적인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폐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줄 착각하기 마련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