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239)
# 75장 오대고수라는 칭호 (2) #
황도(皇都) 개봉.
그 개봉의 가장 중심부에 자리한 용정궁
근 십만 명에 이르는 황궁 관료들을 수용하기 위한 이 궁전에서도 가장 화려하면서 웅장한 곳을 꼽으라면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건안궁을 말할 것이다.
황금빛 기와에 건물을 받치고 있는 기둥까지 전부 황금으로 도배된 건안궁은 황제가 기거하는 곳이다.
건안궁의 대전에 대내행창의 제독 서태식과 서창의 제독 육청은이 무릎을 꿇고서 머리까지 바닥에 박아가며 주청을 올리고 있었다.
“폐하! 신들을 파직하셔도 좋습니다. 부디 국교 건에 관해서 명을 거두어주시기 바랍니다. 이건 아니옵니다.”
“폐하! 서 제독이 말씀드린 것처럼 국교의 건은 부디 철회해주시옵소서! 다른 훌륭한 종교가 이렇게 많을 지언데 천마신교라뇨.”
일반 관료들 중에서는 황제의 결정에 반대를 하는 이들이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천마신교의 교주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 교주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눈앞에서 지켜본 당사자들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그들은 황제의 결정을 듣고 나서 도통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황제가 힘든 일을 겪게 되면서, 혹 정신적으로 이상이 생겼다는 추측마저 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알아서 무릎을 꿇는 자들도 있는데 어찌 이런 결정을 내리셨나.’
정도 무림맹이나 정파인들은 황실에 대한 태도가 확연히 다르다.
그들은 다른 백성들이나 관료들과 마찬가지로 황제를 하늘로 받들 줄 알았고, 관에 호의적이기에 한결 대하기가 편했다.
그런데 지난 사건으로 무림의 모든 세력이 정파와 같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았다.
“폐하! 천마신교의 교인들은 대명제국에 따를 위인들이 아니옵니다. 특히 마교주 천여운은 불손하게도 폐하를……”
-쾅!
서창의 제독 육청은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황제가 옥좌의 한 귀퉁이를 내리쳤다.
심기가 불편해진 용안에 육청은은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순간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황릉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을 더이상 거론하지도 입 밖으로 내뱉지 말라고 했는데, 주청을 하면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실수하고 말았다.
“폐하. 신이 불경을 저질렀나이다.”
-쿵! 쿵!
육청은이 대전 바닥에 세차게 이마를 찧으며 사죄했다.
몇 번을 박고서 이마에서 피가 흘려 내려서야 황제는 손을 들어 그만하라고 표시했다.
“자…자비로우신 폐하의 은덕에 감사드립니다.”
-주르륵!
이마에서 흐르는 피가 얼굴을 뒤덮은 서창 제독 육청은이 이를 감사히 여겼다.
최악의 말실수를 했기에 피를 보는 것을 감수한 보람이 있었다.
“흐음.”
황제가 무릎을 꿇고 있는 두 제독을 굳은 얼굴로 내려다보았다.
이들의 심경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 또한 처음에는 당연히 마교주 천여운이 했던 제안을 단번에 거절하려 했었는데, 중도에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짐이 묻겠다. 경들은 적(敵)의 적(敵)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적의 적이라 하심은….”
지금까지 그들의 주청에 대해 불편한 심기만 보이던 황제였다,
그런 황제가 처음으로 어심을 보이는 질문을 던지자 두 제독들은 고민에 휩싸였다.
신중하게 답변을 해야 했으나, 워낙 옛날부터 답이 정해진 질문이었다.
“…..적의 적은 아군이나 다름없습니다.”
조심스러운 대내행창 제독 서태식의 말에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천 교주가 짐에게 했던 말이다.”
“아!”
건안궁에 찾아와 요구 조건에 대한 공문서를 만들 당시에 천여운이 국교에 관한 제안과 함께 했던 말이었다.
물론 약간의 차이는 있었다.
황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지만 천여운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물론 확실한 전제와 함께 말이다.
[극도육무문은 본교에 있어서 반드시 없애야할 적입니다. 이것을 미리 전제로 말씀드렸으니, 한 가지 질문 드리겠습니다. 폐하라면 적의 적을 어찌 하실 겁니까?]천여운이 한 말의 의미를 모를 리가 없었다.
황제는 성왕 주태겸을 비롯해 감식반 의원들, 그리고 정파 무림맹의 청수진인 등 여러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증언들을 통해 극도육무문이 황실에도 위험한 존재임을 각인하게 되었다.
‘만약 천 교주 그 자가 놈들을 막지 못했다면 태윤이 그 아이가 태자가 되어서 극도육무문의 꼭두각시가 되었을 것이다.’
최악의 상황을 맞을 뻔했던 것이다.
그리 되었다면 황릉의 보물 탈취 및 수호전 전사들의 살해를 마교 측에서 했다고 오인하여서 그들과 부딪쳤다면 그 뒷일은 상상도 하기 싫어졌다.
“하나 폐하, 적의 적이라는 논지로 아뢴다면 정파 무림맹 역시도 극도육무문의 적입니다. 게다가 폐하의 대명제국에 호의적이기마저 합니다.”
대내행창의 제독 서태식이 어떻게든 황제를 설득하기위해 반박했다.
그러나 그것은 도리어 파고들 틈만 주고 말았다.
“그래서 정도 무림맹에서 극도육무문을 막았나? 심지어 사신으로 왔던 청수 진인은 짐이 마교주 그 자에게 치욕을 당하고 있을 때도 무력하게 지켜보기만 했지.”
“그, 그것은…..”
황제는 아직도 그것을 잊지 못했다.
공동파의 장문인인 청수 진인은 무림에서도 명성이 높은 무인이라 들었다.
그런데 정작 마교주가 있는 앞에서는 말 한마디 꺼내지 않고 조용히 수수방관했다.
‘그런 자가 무림의 고수라고? 하!’
그나마 관료들은 무위가 부족해도 황제를 구하기 위해 목숨마저 던지려 했는데, 정파
무림맹의 수뇌부이자 황실 국교를 운영하는 도사란 사람은 마교주의 무력에 굴복하고 말았다.
“짐은 고민했다. 극도육무문 그 역도의 무리들은 황궁 수호전의 전사들마저 막지 못한 무서운 적이다. 그런 자들이 짐과 대명제국을 노리는데, 정작 연을 맺고 있는 정도 무림맹의 도인들이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굳이 국교를 맡길 이유가 없다.”
‘이런….’
두 제독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들은 오랜 세월 황제를 보필하면서 그의 성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우리가 간과했구나.’
제독들은 황제가 치욕을 당했기에 더욱 정도 무림맹을 가까이 할 거라 여겼다.
훗날에 복수를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있었다.
그 치욕을 당하는 상황 속에서 정도 무림맹의 수뇌부라는 작자는 완전히 방관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폐하는 정치에 있어서 감정을 배제하고 철저히 이(利)를 추구한다.’
황제는 효용성이 떨어지는 자는 과감히 버리고, 신분을 불문하고 쓸 만한 자는 새롭게 인사 등용을 단행할 만큼 정치색이 파격적이었다.
이것이 아귀가 들어맞았던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지만 어찌 그런 무뢰배들을….’
황족과 관료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을 기용하는 것은 일종의 위험한 도박이었다.
두 제독의 입장에서는 그 점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황제는 짧은 일 각 동안 수많은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황제는 원래 이번 일을 계기로 무림인에게 학을 떼게 되어서, 정파든 마교든 어느 곳을 막론하고 불가침 조약대로 완전히 손을 떼려고 했다.
‘짐이 손을 뗀다고 해도 황궁에 간자를 보낼 만큼 간이 부은 놈들이 쉽게 포기할까? 아니다. 분명 또 다시 손을 쓸 게 틀림없다.’
자라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했던가.
황제의 마음이 딱 그랬다.
단순히 감정적인 부분만으로 일을 처결하기엔 앞날이 우려된 것이다.
그래서 모든 감정을 배제하고서 계산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생각하면 그 자는 무서울 정도로 강하다.’
눈앞에서 그 괴물 같은 능력을 보았다.
손짓 한 번에 수많은 무공을 익힌 고수들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심지어 이백 년을 살아왔고 기린의 피를 먹은 수신호위마저 검을 몇 번 휘두르는 것만으로 싸늘한 주검으로 만들었다.
‘게다가 그 극도육무문이라는 세력과 동창에서 계획한 것을 파악해서 전부 수포로 돌릴 만큼 지략마저 뛰어나다.’
이렇게만 계산한다면 반드시 손에 넣고 싶은 인재였다.
최악의 적이 반대로 생각하면 최강의 아군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 적의 적을 곁에 둔다는 것은 일종에 적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함이다.’
마교주 천여운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천마신교가 국교가 된다면 극도육무문에서도 경각심을 가져서 쉽게 황궁을 넘보지 못할 것이다.
여러모로 득이 되는 사항이었다.
“짐이 천마신교를 국교로 둔 것은 극도육무문을 견제하기 위함이다. 이것보다 나은 상책을 들고 오지 않는다면 짐의 결정이 철회될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결국 강경한 황제의 결정에 두 제독은 물러나야만 했다.
하지만 황제는 단 한 가지 여지를 남겼다.
‘더 나은 상책!’
* * *
하남성에 있는 정도 무림맹의 본단 건물.
웅주들이 모여 있는 회의장은 연 사흘 동안 난리가 나있는 상태였다.
국교를 통해서 황실과의 연을 이어나가고 있는 정도 무림맹에 있어서, 이번 황제의 공표는 가히 충격적인 결정이었다.
마교와 동맹을 맺고서 극도육무문에 집중을 하고 있던 그들의 입장에서는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셈이었다.
게다가 현 마교주 천여운의 무위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무림의 역사상 고작 약관에 불과한 자가 생사경에 올랐다는 말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독고구패가 말했던 무형검의 신위를 보여주었던 극소수의 절대자들 또한 무림에서 적어도 수십 년을 활동한 노고수들이었다.
아무리 공동파의 장문인인 청수 진인이 보았다고 증언을 해도 쉽게 믿기지가 않는 것은 당연했다.
현경의 경지에 올랐다고 해도 상식을 넘어서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던 차에 무림맹에 손님이 찾아온다.
남색 관료 복장에 수염이 없는 중년의 환관이었는데, 그는 황궁 대내행창의 두 첩형 중의 한 사람인 미주라는 자였다.
미주는 대내행창의 제독의 명을 받고 무림맹을 방문했다.
그에게서 제독 서태식의 의중을 듣게 된 무림맹의 웅주들은 각양각색이 반응을 보였다.
미 첩형의 전갈을 마치자, 항산파의 장문인 정선 사태가 물었다.
“아미타불, 첩형 나으리. 그게 정말입니까?”
그 물음에 미 첩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정확한 심중을 헤아리기는 어려우나, 제독께서 말씀하시기를 더 나은 상책이 있다면 폐하께서도 어느 정도 고려해보실 것 같다고 하오.”
“허어…..”
그 말에 모든 웅주들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사실 일부 웅주들의 눈빛은 청수 진인에게로 향하고 있었는데, 꽤나 원망의 눈초리에 가까웠다.
미 첩형은 유일하게 청수 진인이 무림맹에 전달하지 않은 한 가지를 말해주었다.
그것은 황제가 곤욕스러운 상황에 처했는데도 청수 진인이 마교주가 두려워 가만히 방관했던 사실이었다.
‘폐하께서 본 맹에 실망한 것도 당연하구나.’
‘쯧, 본 맹의 위신을 떨어뜨리다니 공동파도 이제 한 물 갔군.’
이런 눈초리가 청수 진인을 막다른 길로 내몰았다.
원망과 불신이 담긴 그들의 눈빛에 청수 진인은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시천존. 원시천존. 빈도가 천 교주의 능력을 그리 말했는데, 이런 반응을 보인다면 어찌할 수가 없구나.’
그는 더 이상 무림맹에서 일하기가 힘들다는 판단이 들었다.
청수 진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웅주들에게 두 손을 모아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빈도가 무력하여 이런 사태가 벌어졌으니, 책임지고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하겠소이다.”
보통 이런 상황이 일어난다면 누구 한 명이라도 반대하거나 말리는 분위기가 조성될 만도 했지만 아무도 그러하지 않았다.
그 만큼 웅주들은 이번 사태의 원인을 청수 진인의 책임이 크다고 여긴 탓이었다.
“흥! 참으로 속편하시구려. 사고를 쳐놓고 자리에 물러나시려 한다니.”
정파인의 특성상 모두가 크게 탓하지는 못하는 와중에 호전적인 하북팽가의 가주 팽구유가 큰 소리로 청수 진인을 나무랐다.
자신의 책임도 있고 여론이 좋지 않은 탓에 그냥 물러나려고 했던 청수 진인의 눈빛에 노기가 서렸다.
“허어? 지금 화가 나셨소이까? 진인께서는 입이 두 개라도 할 말이 없으실 텐데.”
팽구유의 비꼬는 말에 가만히 주먹을 쥐고 있던 청수 진인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빈도가 무력하여서 이런 사태가 벌어진 데는 인정하는 바이나, 팽 가주께서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말씀이 참으로 과하시구려.”
“하! 본인이 그곳에 있어도 마찬가지라? 진인께서 요 근래 허언이 지나치시구려. 본인이었다면 그런 실수는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오.”
“누구나가 말을 내뱉는 것은 쉽게 할 수 있소이다.”
“뭐요?”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오리까? 팽 가주께서 그리 자신만만하게 말씀하시는데, 그 자리에 있다고 하여도 빈도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데, 이 팔을 걸지요.”
강하게 나오는 청수 진인의 일침에 팽구유 역시도 노기가 올랐는지, 얼굴에 핏대가 서서 탁자를 내리치며 소리쳤다.
-쾅!
“지금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소이까?”
“장부일언중천금이라고 했소. 팽 가주께서도 팔을 거실 수 있겠소?”
“흥! 무엇이 어렵겠소!”
이에 팽구유가 자리에서 일어나 무림맹주에게 호탕하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탁!
“맹주! 이번 일을 수습하는데, 황궁으로 본인을 보내주시오. 입궐하여 황제 폐하를 설득하고 국교를 다시 바로 잡도록 하겠소이다.”
그렇지 않아도 누가 이 일을 수습하기 위해 황궁에 입궐할지 난감해하던 차였다.
다른 웅주들도 잘 되었다고 여겼는지, 못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참에 본 가주의 능력을 보여주지. 고작 그딴 마교의 무뢰배 따위에게 겁을 먹다니. 생사경? 하! 정파의 수치 같으니라고.’
하북팽가의 가주 팽구유는 다른 웅주들과 다르게 가장 늦게 무림맹에 입성한 자였다.
부친의 자리를 그대로 물려받은 그는 유달리 공을 세운 것이 없었다.
이 참에 자신의 무위를 황실과 다른 웅주들에게 증명해보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겼다.
“십칠웅주께서 말이오?”
“그렇소!”
맹주 이목이 이를 허가하려던 차에 누군가가 자리에서 일어나 마찬가지로 그에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맹주님. 저도 십칠웅주님과 함께 황궁으로 보내주십시오.”
뒤이어 지원한 사내는 다름 아닌 무림맹주의 장남인 연부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