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241)
# 75장 오대고수라는 칭호 (4) #
항산파의 장문인 정선사태.
그녀는 장문인이 되기 전까지 무림을 활보하면서 여고수로 명성을 드높였다.
검을 다루는데 비상하는 제비와 같다하여 젊은 시절에는 비연검(飛燕劍)이라 불렸었고, 검수로서 절정을 이루는 삼십대 중반의 나이에는 사파에서 악명이 높은 고악검수 능조의 목을 베면서 검후(劍后)라 불리게 되었다.
지금은 무림맹의 사웅주로서 명성이 두터웠지만 현역 당시에는 유일하게 여자 검객으로 무림구패에 이름을 올릴 만큼 뛰어난 고수였다.
“정선 사태!”
“사태에에에에에!!!”
비구니들이 놀라서 소리쳤다.
항산파의 비구니들을 비롯해 정파의 여자 무림인들이 목표로 삼는 검후 정선 사태가 어이없게도 뒷목이 잡혀서 아등바등 꼼짝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 저자가 마교주라고?”
새하얀 얼굴에 긴 머리카락을 뒤로 묶고 있는 흑의의 공자였다.
아무리 많이 봐줘도 약관에 불과해 보이는 청년이 한 팔은 뒷짐을 진 채로 고작 오른손만으로 정선 사태의 뒷목을 움켜쥐고 있는 모습이 오만해보이기 마저 했다.
‘어째서 스승님께서 꼼짝하지 못하시는 거지?’
비구니들 중에서 아랫입술이 두터운 젊은 비구니가 있다.
그녀는 정선 사태의 대제자이자 항산파의 후기지수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오선이었다.
[사저! 이러다 스승님께서 당하겠어요!]그런 그녀의 귓가로 전음을 보내는 여인은 둘째 제자인 오혜였다.
[아! 사매의 말이 맞아.]오혜의 전음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린 그녀가 수신호로 항산파의 검법의 합격술인 검연목지(劍連睦持)를 펼치라 하였다.
-팟!
항산파가 자랑하는 두 후기지수가 동시에 신형을 날렸다.
두 비구니가 서로 수차례 신형을 교차하면서 시선을 어지럽히더니, 동시에 천여운의 좌측과 우측으로 검초를 전개해왔다.
“당장 스승님을 놓아랏!”
“이 사악한 마교의 우두머리!”
두 사람의 검이 절묘하게 스승인 정선 사태를 피해서 천여운의 우측 어깨와 좌측 갈비뼈 쪽을 찔러오는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콱!
“아악!”
우측 어깨를 노리던 오혜의 팔목을 누가 낚아챈 것이다.
놀란 그녀가 자신의 팔목을 잡은 자를 쳐다보았는데, 엄청난 거구에 턱수염을 기른 근육질의 청년이 서있었다.
“여 스님이 감히 누구를 노리는 것이오.”
쥐고 있는 투박한 손이 어찌나 컸는지, 그녀의 가냘픈 팔목이 나무 막대기라도 되는 것 같았다.
-챙강!
동시에 좌측을 노렸던 오선의 검이 닿기도 전에 누군가에게 막혔다.
어찌나 빠른지 흐릿하게 나타난 독특한 문양의 가면을 쓴 장포인이 펼치는 검초를 맨손으로 잡아서 그것을 부러뜨려버렸다.
‘어, 엄청난 고수다.’
놀란 그녀가 빠르게 보법을 펼치며 거리를 벌렸다.
오혜 사매가 성공했나 바라보았는데, 보통 사람들의 두 배나 되는 신장의 근육질의 사내에게 팔목이 잡혀서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왕흘!”
허봉이 거구의 사내를 보며 반갑게 소리쳤다.
오랜만에 만나는 거구의 사내는 다름 아닌 육검의 서열 일위인 마권종의 고왕흘이었다.
마교 내전이 끝난 후로 한 번도 십만대산을 벗어나지 못한 그가 드디어 무림을 출도하여 황궁에 오게 된 것이다.
“여어! 허봉. 오랜만일세. 혼자 교주님을 따라다니는 특혜를 누리느라…아!”
고왕흘 역시 반갑게 손을 흔들다, 허봉을 바라보는 눈빛에 이채가 띠었다.
교주인 천여운이야 원래부터 괴물 같았기에 그랬지만 못 보던 사이에 허봉의 무공이 경이로울 만큼 발전했다.
‘이거…..실화인가.’
거구의 신장 때문에 한 번도 무림 출도에 따라나서지 못한 고왕흘은 몇 달간 수련에만 매달렸다.
주군인 천여운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피나는 훈련 끝에 육검들 중에 유일하게 화경 초입의 경지에 오른 고왕흘이었다.
장로 급의 실력이 되었다고 기뻐한 게 엊그제였는데, 그 허봉이 자신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이번에 나름 성과를 얻어서 기뻐했는데, 허봉을 상대로 긴장해야할 판국인데.’
무공 실력이 낮아서 육검단의 부관에 머물러 있던 허봉이었다.
풍기는 기운만큼이나 무위마저 확실하다면 다음 육검 서열 전에서 일검을 차지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대체 이 자들은….’
오선은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내뿜고 있는 두 고수들에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스승을 구하려고 했는데 도리어 사매마저 붙잡혀 버렸다.
팔목이 붙잡혀서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오혜의 모습이 애처롭기마저 했다.
‘다른 고수들이 나타났구나.’
오선의 반응만으로 이를 눈치 챈 정선 사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도관을 해체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아무런 대비도 강구하지 않고서 이곳으로 온 것이 실책이었다.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제압되다니….아미타불!’
어이없이 당했다는 것에 수치심을 느낀 정선 사태가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어쩌면 자신도 타격을 입을지는 모르겠지만, 뒷목을 움켜잡고 있는 마교주의 손에서 벗어나려면 이 방법뿐이었다.
“다, 당장 빈승의 몸에서 손을 떼시오! 그렇지 않다면!”
“그렇지 않다면?”
“후회할 것이오! 하압!”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정선 사태가 기합을 지르며 두 손에 십성의 내공을 끌어올리더니, 이내 자신의 가슴에 양장을 때렸다.
-팡!
불문인 항산파의 내공을 수십 년 동안 익혀서 웅주들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꼽힐 만큼 심후한 공력을 지니고 있는 그녀였다.
‘방법은 오직 하나 격산타우뿐이다.’
격산타우(隔山打牛).
산을 때려 그 너머에 있는 소를 친다는 뜻이다.
이것은 발경의 일종으로 중간에 끼어있는 물체를 매개체 삼아 충격을 전달하는 수준 높은 내가중수법이었다.
천여운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그녀는 검후라는 칭호를 가진 무인답게 스스로의 몸에 격산타우의 수법을 펼치는 도박을 걸었다.
-찌릿!
그녀의 가슴과 목을 타고서 공력의 유동이 느껴졌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모험이었지만 우려와 다르게 성공했다.
-파파파팍!
다행스럽게도 그녀의 몸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고 발경이 뒷목을 잡고 있는 천여운의 손으로 전달되었다.
‘성공이다! 이제 벗어…앗!’
아무리 심후한 내공을 지녔다고 해도 발경이 체내로 파고들면 내상을 막기 위해서라도 당연히 손을 뗄 거라고 여긴 그녀였다.
그러나,
-쩌저저저저적!
정선 사태의 뒷목을 잡고 있는 천여운의 발밑의 석판에 균열이 일어났다.
이를 발견한 그녀의 두 눈이 커졌다.
“마, 말도 안 돼.”
석판이 갈라진 것은 그녀가 격산타우의 수법으로 보낸 발경의 여파였다.
놀랍게도 천여운은 손으로 파고든 공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체내의 경맥을 통과시켜서 발밑의 용문혈(湧泉穴)로 배출시켜버렸다.
그녀의 수준 높은 내가중수법을 더욱 고도의 수법으로 받아버린 것이다.
“어, 어떻게 이것을?”
회심의 일격이 너무도 쉽게 수포로 돌아갔다.
기척도 없이 뒤를 잡혔을 때부터 자신보다 훨씬 강자란 것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 격이 완전히 달랐다.
[그 자는 괴물, 아니 마신 그 자체요.]그런 그녀의 머릿속에 공동파의 장문인 청수 진인이 했던 경고가 떠올랐다.
그때는 헛소리로 취급했었는데, 이건 정말 괴물이었다.
[생사경의 고수란 말이오!]등골부터 소름이 돋았다.
어쩌면 정말로 생사경의 고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게 아니더라도 이런 압도적인 무위를 지녔다는 것은 오대고수 급에 속하는 고수일지도 몰랐다.
‘아, 안 돼! 이 자는 이목 맹주가 아니고는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야.’
당황해하는 그녀에게 천여운이 말했다.
“여스님께서 후회라는 말을 남발하는군요.”
그 목소리에서 심기가 뒤틀려 있음을 느낀 정선 사태가 당황해서 소리쳤다.
“마, 마교주여. 빈승은 귀교와 동맹을 맺은 무림맹의 웅주 정선 사태입니다! 서로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 손을 떼고 일단은 대화를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무력으로 대항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그녀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무림맹과 마교가 정식으로 동맹을 맺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한 가지 모르는 것이 있었다.
“대화를 원했으면 검을 뽑지 말았어야죠.”
“!?”
천여운은 상대가 누구이든 간에 받은 것은 몇 배로 갚는 위인이라는 것이다.
“아, 아니. 그것은….”
허봉을 향해 먼저 검을 뽑으려고 했던 정선 사태였다.
정선 사태의 입장에서는 도관을 해체 하는 것을 막는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분명 먼저 출수하려한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오싹!
‘이 자가 정녕?’
바로 뒤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예기를 감지한 정선 사태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아등바등 몸부림을 치며 소리쳤다.
“자, 잠깐! 빈승에게 해를 가한다면 동맹이…”
“뭐든지 참으라고 맺은 동맹이 아닙니다만. 그리고 후회할 짓은 처음부터 하지 말았어야죠. 사태.”
-촤악!
그 말이 끝남과 정선 사태의 왼쪽 어깨에 날카로운 예기가 스쳐지나갔다.
베이는 그 순간에는 아무런 고통이 없다.
단지 베이고 나서 붙어있어야 할 것이 잘려나간 후의 고통이 말로 이룰 수 없을 뿐이었다.
-툭!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왼팔을 바라보며 그녀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아아아악!”
-팍!
그런 정선 사태를 천여운이 바닥에 내팽개쳤다.
처음 겪어보는 고통에 눈물까지 흘리며 비명을 지르는 그녀에게 천여운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동맹의 예우 차원에서 왼팔로 끝내도록 하죠.”
전혀 고마운 얘기가 아니었지만 검수의 오른팔을 앗아가는 것보단 나았다.
천여운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많이 봐준 셈이었다.
검후라 불리는 자신들의 장문인이 검 한번 휘두르지 못하고 어이없게 팔이 잘려나가자, 항산파의 비구니들은 경악한 나머지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천여운이 마교의 무사들에게 명했다.
“전부 제압해라. 반항하면 베어도 좋다.”
“충!!!”
* * *
같은 시각 황제가 기거하는 건안궁의 대전.
-쿵! 쿵! 쿵!
“크윽!”
“무릎을 펼 수가 없어!”
대전 내에 있던 대내행창의 열두 명의 환관들이 갑자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내공을 익힌 일류고수인 그들이었지만 자신들을 짓누르는 심후한 진기에 대항하지 못하고, 강제로 꿇는 굴욕을 당해야만 했다.
이 광경에 용좌에 앉아 있는 황제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호오.”
황제의 용좌에서 오십 보 떨어진 대전의 한가운데에 두 명의 사내가 있었는데, 한 사람은 무림맹의 십칠웅주이면서 하북팽가의 가주 팽구유였다.
그리고 이 강대한 진기를 내뿜으며 환관들을 무릎 꿇린 사내는 무림맹주의 장남이자 무림구패의 일인인 연부소였다.
‘놀랍다. 혹시나 했는데 정말이구나.’
팽구유가 옆에 서있는 연부소를 보면서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기운을 완전히 갈무리 할 수 있는 반박귀진(返樸歸眞)의 경지에 올랐기에 혹시 하는 추측을 했었는데 예상이 들어맞았다.
‘고작 서른에 불과한 녀석이 지고의 경지를 밟다니!’
지고의 경지.
그것은 무림에서도 극소수의 무인만이 오른 현경의 경지를 말한다.
무림맹주인 이목을 비롯한 일곱 웅주들이 공동 전인으로 삼아, 심혈을 기울여 가르친 것은 알고 있었지만 경악스러운 성장이었다.
‘대단하다. 내 대에서 정파에 천하제일고수가 탄생할 수도 있겠구나.’
당금 무림의 최고수라 불리는 오대고수들 중에서도 삼십대에 현경의 경지에 오른 고수는 동쪽의 괴물 정도라 들었다.
어쩌면 그 괴물과 자웅을 겨룰 영웅이 자신과 한 세대를 나란히 걷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팽구유는 내심 뿌듯함을 느꼈다.
“보셨습니까! 폐하! 이것이 훗날의 중원 오대고수의 칭호를 얻을 연부소 공자의 무위입니다.”
“오대고수!”
팽구유가 연부소를 칭찬하며 치켜세워주었다.
자신의 입으로 잘난 채를 하게 만들어줄 수는 없으니 말이다.
물론 황제가 직접 두 눈으로 연부소의 놀라운 능력을 확인했으니, 신뢰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어떻게든 본 맹이 마교보다도 극도육무문으로부터 황실을 보호할 수 있음을 확실히 각인시켜야 하오.]그것이 맹주인 이목이 내린 지령이었다.
연부소는 그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황제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이제 관건은 황제를 설득해서 국교를 다시 도교로 바꾸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런데 탄성을 흘렸던 황제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러자 미리 대기라도 하고 있었던 것처럼 대전의 곳곳에 있던 환관들이 일제히 몰려들었다.
-우르르르!
그 숫자가 자그마치 이백여 명에 가까웠다.
건안궁의 대전이 워낙 넓어서 그들만으로 채워지진 않았지만, 대체 무슨 연유에서 환관들을 불렀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황제가 입을 열었다.
“연부소라고 했나.”
“예. 폐하.”
“다시 한 번 해보아라.”
“?”
황제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명에 연부소와 팽구유의 두 눈에 이채가 띠었다.
갑자기 그들을 대전 한가운데로 왜 불렀는지 몰랐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이 많은 숫자의 환관들의 무릎을 꿇리라는 의미였다.
아무래도 앞서 보여준 능력만으로 만족하지 못해서 무위를 확인해보려는 모양이었다.
‘이들을 쓰러뜨려야 하나.’
진기로 무릎 꿇리기에는 그 숫자가 너무 많았다.
건안궁에 들어오기 전에 자신의 독문병기인 첨원도를 맡겨두었는데, 아무래도 맨손으로 환관들을 제압해야 할 듯 했다.
그때 황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삼백 명.”
“네?”
“마교주가 손짓 한 번으로 무릎 꿇린 자의 숫자다.”
황제의 입에서 나온 말도 안 되는 숫자에 연부소의 두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