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242)
# 76장 격(格) (1) #
‘삼백 명?’
연부소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눈앞에 있는 이백 명에 이르는 대내행창의 환관들.
무공을 익힌 그들은 삼류에서 일류까지 고루 섞여 있었다.
물론 간간히 환관들 중에서 당두라고 불리는 절정의 무공 실력을 지닌 고수들도 끼어있기는 하지만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이들은 전부 제압하는 것은 팽 가주님 혼자서도 가능한 일이다.’
화경의 고수인 십칠웅주 팽구유라면 그리 오랜 시간을 소요하지 않고 환관들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현경 초입의 경지에 이른 그 역시도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무형의 기운인 진기로 이 많은 자들을 손짓 한 번으로 무릎 꿇린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전력을 다 한다면 백 명 정도는 가능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그리 오랜 시간 무릎 꿇리는 것은 힘들다.
상대가 완전히 반항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무공의 경지와는 별개로 각자가 호신을 위해 진기에 대항하는데, 그 숫자가 늘어날수록 그만큼 많은 진기를 소진하게 된다.
아마 지금의 자신이라면 백 명을 묶어두는 것도 길어봐야 일 각에서 이 각이 한계일 것이다.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황제의 말대로는 절대로 불가능했다.
손짓 한 번에 삼백여 명을 무릎 꿇렸다는 것은 다소 과장된 표현임이 틀림없었다.
옥좌에 앉아서 그를 바라보는 황제의 기대감으로 가득한 눈빛이 보였다.
‘아아, 폐하께서 나를 시험하는 것이구나.’
연부소는 황제의 진정한 의도가 그것이라 여겼다.
마교주를 확실하게 제압할 수 있을 만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선보이라는 의미가 틀림없었다.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연부소의 머릿속에는 천여운이 생사경의 경지라는 것은 일제히 배제된 채 계산이 되고 있었다.
[손짓 한 번이라니 황제 폐하께서 너무 과장을 하시는군.]그런 연부소의 귓가로 팽구유의 전음이 들려왔다.
그 역시도 동의하기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폐하께서 확실한 무언가를 보여주길 원하시는 것 같은데, 가능하겠나?]팽구유 역시도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자신보다 훨씬 무위가 높은 연부소가 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맹주인 이목이 당부한 이 지령을 달성하거나 황제를 만족시키려면 그만큼 압도적인 위용을 보여줘야 하는데, 죽이지 않고서 그러기란 쉽지가 않다.
그때 황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왜 할 수 없는가?”
미묘한 실망의 눈빛이 멀리서도 뚜렷이 보였다.
이에 연부소는 묘한 호승심에 사로잡혔다.
‘참으로 공교롭다. 내가 의도한 것도 아닌데 대명제국의 황제 폐하 앞에서 그 자와 비견되는 자리를 가지다니. 하늘이 내려준 호적수란 말인가.’
마교주 천여운과 자신은 호적수라는 연이 틀림없다고 여겨졌다.
훗날 자신이 정도 무림맹의 맹주가 되어 정파를 이끌어나간다면 자신과 무림을 두고서 자웅을 겨뤄야 하는 영웅일 테니 말이다.
‘그 자에게 질 순 없지.’
-팍!
연부소가 두 손을 모아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 폐하. 하나, 이미 누군가 보여줬다고 한 것을 다시 보여드리는 것은 무자로서 자존심이 있기에 다른 것을 보여드리겠나이다.”
“다른 것?”
의아해하는 황제를 바라보던 연부소가 환관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가까이에 있던 환관들 중 세 명의 혁대에 숨겨져 있던 연검이 뽑혀져 나왔다.
-챙!
“헉! 어, 어떻게 연검이 있는지?”
“내 검!”
세 환관들은 자신들의 연검이 저절로 뽑혀져 나오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연부소 정도 되는 절대고수가 아무리 숨겨놓았다고 해도 병장기의 날카로운 예기를 감지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둥둥!
“호오.”
황제의 두 눈에 흥미가 깃들었다.
허공에 떠오른 연검 세 개는 살아있는 것처럼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환관들 중에서 절정의 경지에 오른 세 명의 당두들은 이것이 무엇인지 알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기어검!”
이기어검(以氣御劍).
현경의 고수가 검을 말 부리 듯이 진기로써 부리는 수법을 말한다.
당두들의 말에 다른 환관들도 웅성거리며 놀라하는 분위기이자, 황제가 옥좌 바깥의 열보 바깥에 있는 대내행창의 제독 서태식을 바라보았다.
무슨 뜻인지 곧바로 알아들은 서태식이 황제에게 살짝 전음을 보냈다.
[폐하. 저 기술은 무림에서도 오대고수 급에 버금가야만 가능한 고도의 기술입니다.]무림에서 공식적으로 현경의 경지라 알려진 자들은 오직 오대고수뿐이었다.
물론 수많은 무림인들 중에 실력을 숨긴 고수가 없겠냐 만은 고작 나이 삼십에 불과한 자가 이기어검을 펼친다는 것은 놀라운 신위라 할 수 있었다.
“오대고수?”
황제도 무림에 있어서 오대고수의 위명을 잘 안다.
그를 지키다가 어이없이 죽음을 당한 수신호위 역시 구십여 년 전의 오대고수였다.
정파에서도 정도 무림맹주 단 한 사람만이 오대고수라고 들었는데, 그 장남이 그에 버금가는 무위를 지녔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마교주도 오대고수인가?”
황제가 조용한 목소리로 살짝 물어보았다.
이에 서태식이 고개를 살짝 저으며 다시 전음을 보냈다.
[아닙니다. 제가 알기로는 마교의 전임 교주가 오대고수 중 한 사람이라 들었습니다.]“그래?”
‘오대고수들은 중원에서도 천하제일을 다투는 고수라고 하였는데, 전대 오대고수였던 임규화를 고작 몇 수만에 죽인 마교주는 얼마나 강하단 말인가.’
지금 생각해도 모골이 오싹해질 만큼 두려웠다.
그런데 그런 괴물 같은 마교주 천여운의 위명을 아직까지 무림인들이 모른다는 것이 더 의아한 일이었다.
‘낭중지추라고 하였다. 마교주는 그 자는 어떻게든 그 모습을 드러나게 되겠지.’
무림인들 간의 서열 매기기나 실질적인 무위를 정확하게 알고 판단하지 못하는 황제이지만 그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천여운의 이름 석자가 언젠가 천하제일을 다투는 위명을 얻게되리라고 말이다.
그래서인지 상대적으로 연부소라는 자의 무위가 크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가 않았다.
‘훗날의 오대고수가 될 자라고?’
오대고수인 정파 무림맹주가 직접 와서 무위를 증명해도 모자랄 판국이었는데, 내심 실소가 나왔다.
그런 황제의 속내를 모르는 연부소는 어떤 신위를 보여야만 황제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정했다.
자신이 펼칠 수 있는 가장 고절하면서 화려한 초식을 선보이기로 말이다.
-촤아아악!
세 보 앞으로 걸어 나온 연부소가 발끝으로 대전 바닥에 딱 어깨 너비만큼의 서있을 공간의 원을 그렸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환관들도 의아했는지 어리둥절해했다.
원으로 된 선을 그린 연부소가 황제에게 말했다.
“폐하. 그렇다면 소신은 이 원안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관료들을 제압하는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정도는 마교주도 했느…”
-휘이이이익!
황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연부소가 두 손을 휘젓자, 허공에 떠있던 세 자루의 연검이 유유히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마냥 출렁이며 움직였다.
연부소가 환관들에게 선심을 쓰듯이 말했다.
“저를 이 원의 바깥으로 밀어낸다면 제 패배로 인정하겠습니다.”
“?”
오만하기 그지없는 자신감이었다.
바로 그 순간 연부소가 손을 움직이자, 천천히 헤엄치던 세 개의 연검의 갑자기 가속화되더니 허공에 수많은 궤적을 그리며 환관들 사이를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슉!
귓가를 울리는 연검이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는 가히 위협적이었다.
허공을 무차별적으로 날아다니는 연검이 언제 자신을 찌를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히기에 충분했다.
“마, 막아랏!”
-챙!
이기어검을 막기 위해 이백여 명의 환관들이 연검을 뽑아들었다.
팽구유는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일찌감치 멀리 거리를 벌린 상태였다.
‘연검이지만 어떻게든 될 것 같다.’
원래라면 곧장 초식을 펼치려 했던 연부소였지만 도초를 연검으로 펼치기 위해 약간의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리 긴 시간을 요하진 않았다.
“원 안에서 밀어내랏!”
“와아아아아아!”
당두들의 외침에 대내행창의 환관들이 일제히 연부소를 향해 달려들었다.
분명 자신의 입으로 원안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벗어나면 패배라고 공언했다.
‘강제로 밀어내자!’
아무리 무림에서 명성을 떨치는 고수라고 하나, 이백여 명이나 되는 적이 동시에 달려드는데 무슨 수로 막겠는가.
그렇게 여기고 있었는데 그것은 현경의 고수를 너무 쉽게 여긴 공략법이었다.
“도화경천(刀華競天).”
연부소가 작게 중얼거리며 두 손을 원으로 만들며 하늘 위로 들어올렸다.
그 순간 환관들의 틈 사이의 공간을 가로지르며 날아다니던 세 개의 연검이 번개처럼 맞물리며 수많은 도식의 궤적을 만들어냈다.
-촤촤촤촤촤촤촥!
연검이 만들어낸 날카로운 예기가 회오리를 일으키며, 환관들의 틈 사이를 스쳐지나가더니 이내 강렬한 기류가 일어나며 그들의 몸이 떠올랐다.
-휘이이이잉!
“어어어엇!”
“이, 이 바람은 대체!”
그것은 거의 돌풍 수준에 가까웠다.
연부소가 있는 한가운데가 태풍의 눈이 되어, 그를 향해 덮쳐오던 그 많은 환관들이 뒤로 전부 튕겨나가며 우르르 넘어지고 말았다.
-쿠당탕!
“오오!”
이를 지켜보던 황제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마교주가 흡사 마신을 보는 것처럼 위압적인 능력을 보여줬다면 연부소는 정파의 영웅답게 화려하고 멋진 초식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엇?”
“오, 옷이?”
더욱 놀라운 것은 환관들의 관복 상의가 전부 찢겨져 나갔다.
단순히 화려하고 위력이 있는 것을 넘어서 정교할 정도로 검을 다뤘다는 의미였다.
팽가의 가주 팽구유가 혀를 내둘렀다.
‘뭔가 보여주리라고는 생각했지만 정말 괴물이구나.’
설마 이 정도 고차원적인 초식을 보여줄 줄은 몰랐다.
무림에서 이십여 년 간이나 활동한 자신조차 입이 벌어질 정도인데, 이것만큼은 황제라고 해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성공이구나.’
연부소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이 초식은 아버지인 북정도 이목이 이기어도의 특성에 맞게 만든 초식이었다.
이목은 여타의 고수들과 발상이 다른 자였다.
그는 허공을 자유롭게 날릴 수 있는 이기어도에 맞는 초식을 새롭게 만들었는데, 연부소가 보인 것이 바로 그 초식이었다.
‘어떻습니까? 폐…..!?’
황제의 놀라는 모습을 상상하고 그에게로 고개를 돌린 연부소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까 전에 약간의 탄성이 흘러나오기에 성공했다고 여겼는데, 황제는 놀란 얼굴이라기 보다는 생각보다 심드렁한 표정에 가까웠다.
“놀랍기는 한데, 그게 다인가?”
“네?”
황제는 그가 보여준 것을 전혀 만족스러워 하지 않았다.
사실 그보다도 훨씬 높은 경지의 고수인 수신호위 임규화도 가능한 기예였기에 특별히 놀라움은 없었다.
‘어째서?’
당연히 황제의 마음을 빼앗았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팽구유 역시도 당혹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대체 마교주 천여운이 어떤 신위를 보였기에 황제의 마음을 한 점 움직일 수 없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더는 없는가?”
“폐, 폐하?”
더 이상 흥미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황제의 말투에 팽구유가 어떻게 이 상황을 수습해야 할지 난처해했다.
“폐, 폐하! 방금 연 공자가 보여준 기예는 무림에서도 오대고수 급의 고수가 아니고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황제의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짐이 오대고수에 대해서 모를 거라 생각하나?”
“그, 그것이 아니오라….”
“지금은 없으나 짐의 수신호위가 전전대 오대고수였지. 자네들도 익히 알고 있다지. 파상검제의 위명을?”
당연히 모를 리가 없었다.
구십여 년 전에 누구도 견줄 수 없던 검의 황제라고 불렸던 자인데 모르는게 더 이상했다.
“연부소라고 했나?”
“……네. 폐하.”
“그대가 뛰어난 것은 충분히 알았다. 그렇다면 자네의 아비를 세 초식 이내로 이길 수 있나?”
“네?”
연부소의 두 눈이 흔들렸다.
아무리 그의 실력이 월등히 상승했다고는 하나 북정도 이목은 정파 무림과 도법에 있어서 정점에 서있는 자였다.
그런 자를 무슨 수로 세 초식 이내로 이긴단 말인가.
연부소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망설이자 황제가 가볍게 손을 저으며 말했다.
“되었다. 짐의 결정에는 변함이 없도다. 이만 물러나라.”
“폐, 폐하!”
설득하는데 애를 먹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런 식으로 축객령을 당할 줄은 예상도 못했다.
이때 그들은 몰랐다.
연부소가 신위를 떨친다는 것이 오히려 황제의 마음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큰일이다. 이대로 물러나면 정말 천마신교가 국교가 되어버린다.’
정도 무림맹에 있어서 가장 큰 치욕을 맞게 되는 것이었다.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한 팽구유가 다급히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황제에게 외쳤다.
“폐하! 저번 일로 실망이 크신 줄은 알겠지만 저희 정도 무림맹을 믿고…”
“폐하! 폐하아아아아!”
연부소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바깥에서 고성이 들려왔다.
뭔가 울부짖는 소리에 가까웠기 때문에 대전까지 뚜렷이 들렸는데, 황제도 들었는지 인상을 찡그리더니 대내행창 제독 서태식에게 물었다.
“무슨 소란이느냐?”
“알아보게 하겠습니다.”
서태식이 환관들을 향해 눈짓을 보내자, 몇몇 환관들이 급히 대전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환관들이 한 도사 한 명을 데리고 들어왔다.
얼굴이 파랗게 떠있고 얼마나 헐레벌떡 뛰어왔는지 옷이 땀에 젖어 있었다.
-털썩!
“대, 대명제국의 폐하를 배알하나이다.”
“짐이 몇 번이나 궁 앞에서 소란을 피우지 말라고 했을 터인데,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더냐?”
황제의 물음으로 보아 도사들이 찾아온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닌 듯 했다.
도교를 국교에서 폐지한다고 한 이후부터 수차례 몰려와 항소문을 올리고 명을 거둬주길 청원하고 있는 도사들이었다.
“폐하아아아아!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태조 폐하 시절부터 도교를 숭상하던 대명제국이 아니오리까. 어찌 저 사악한 마교의 무리들이 도교의 사원을 해체하고 법구들을 부수도록 허락하신단 말입니까?”
절규하는 도사의 말에 팽구유의 인상이 굳어졌다.
항산파의 정선 사태가 급히 가본다고 하여서 어느 정도 지체시켰을 거라 생각했는데, 뭔가 문제가 생긴 듯 했다.
그때 연부소가 다급히 도사를 붙들고 물었다.
“잠깐 멈추시오. 도사님. 혹시 마교주도 황궁의 도교 사원에 나타났소?”
“그, 그걸 어찌 아셨습니까?”
놀라하는 도사의 대답에 연부소의 두 눈이 커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본 것이었는데, 그렇게나 대면하고 싶어했던 마교주가 이곳 황궁에 나타난 것이었다.
‘잠깐! 마교주가 여기에 왔다면 더 간단한 방법이 있지 않은가.’
어떻게 황제를 설득해야 고민하던 차에 연부소의 머릿속에 좋은 묘수가 떠올랐다.
‘황제 폐하는 마교주를 두려워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는 설득할 수 없으니, 직접 그보다 우위에 있음을 증명하는 편이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연부소는 국교를 재고해달라고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팽구유에게 자신의 계획을 전음으로 보냈다.
이를 들은 팽구유가 잠시 고민에 빠졌다가 이내 동의했다.
어차피 직접 설득이 힘든 상황에 이곳 건안궁 대전에서 계속 버티고 있는 것은 시간 낭비였다.
그들은 짐짓 포기라도 한 것처럼 황제에게 인사를 올렸다.
“폐하! 저희는 이만 물러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순순히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힌 두 사람을 바라보며 황제가 속으로 혀를 찼다.
누가 보아도 이들의 노림수가 뻔했다.
마교주가 황궁 도교 사원에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서 저리 눈을 반짝이는데, 눈치를 못채는 게 더 이상했다.
‘참으로 어리석도다. 변인지 장인지 직접 맛을 봐야 아는 자들이로군.’
그렇게 사지로 가고 싶다는데 별 수 있겠는가.
호기로움이 지나치면 수명이 짧아진다는 말이 새삼 이해가 갔다.
* * *
-타타타타탁!
황궁의 도관 건물이 있는 동남쪽으로 급히 경공을 펼치는 이들이 있다.
선두에 서서 안내하고 있는 자는 대내행창의 미 첩형이었고, 그 뒤로 팽구유와 연부소, 그리고 팽가의 무사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짐은 분명 그대들을 배려했도다.] [넷?]건안궁의 대전을 퇴청할 때 황제가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찝찝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그들이 노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이것뿐이었다.
‘마교주를 제압한다면 황제 폐하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
황제는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왠지 마교주를 두려워하는 눈치였다.
연부소의 놀라운 신위를 확인하고도 말이다.
“첩형 나으리. 혹시 공도 마교주를 본적이 있소?”
팽구유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앞서 경공을 펼치고 있는 미 첩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했다.
“있다뿐이겠소. 솔직히 말씀드리면 본 첩형은 그대들이 그날의 마교주를 직접 대면하지 않고는 그 기분을 통감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오.”
그 말을 하면서 그때를 떠올렸는지 몸서리를 치는 미 첩형이었다.
황제의 초청으로 여러 정파 무림인들도 보았고, 환관들끼리 겨루기도 해보았지만 다 부질없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압도적으로 강했다.
“그 자는 사람이 아니오. 괴물, 아니 마신이라 불러야 마땅할 것이오.”
“마신?”
연부소가 미간을 찡그렸다.
청수 진인이 무림맹에서 했던 말을 그대로 내뱉고 있는 미 첩형이었다.
대체 얼마나 강했기에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흥분되는 구나. 드디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와 대적할 수 있는 호적수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자신의 애도(愛刀)인 첨원도의 도병을 잡은 오른손이 떨려왔다.
마교주가 없다고 했을 때만 해도 실망을 금치 못했는데, 도사의 입에서 황궁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피가 끓어오를 만큼 전의가 불타올랐다.
“저곳이오!”
미 첩형이 멀리서 봐도 도관의 사원으로 보이는 건물을 가리켰다.
검후인 항산파의 정선 사태가 먼저 향했기에 지금쯤 한참 싸움이 벌어졌을 수도 있다고 여겼는데 생각보다 조용했다.
“엇!”
그런데 사원의 열려있는 대문 틈 사이로 무력하게 꿇려 있는 비구니들이 보였다.
그들은 다름 아닌 항산파의 여제자들이었다.
“어찌 이런 일이!”
팽구유의 인상이 야차처럼 일그러졌다.
혹시나 했는데, 먼저 도관의 해체를 막으러 갔던 항산파의 제자들이 제압된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검후 정선 사태는 어떻게 된 것일까?
‘아니다.’
순간 노기가 치솟았던 팽구였지만 이내 이성을 되찾았다.
차라리 잘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 일이 잘 풀려 버리면 모든 공이 연부소와 정선 사태에게로 집중될까 우려했었는데, 어느 정도 자신에게도 기회가 온 듯 했다.
‘마교주는 연 공자에게 맡기고 마교의 수뇌부를 노려야 겠다.’
그 정도만 하더라도 위신도 세울 수 있고 후에 맹으로 복귀하면 청수 진인의 한쪽 팔도 받을 수 있으리라.
-챙!
팽구유가 가주만이 물려받는 벽문도(霹刎刀)를 뽑으며 외쳤다.
“팽가의 무사들아. 도를 뽑아라! 본 맹의 형제자매들을 구할 시간이 왔도다.”
“와아아아아아아!”
-챙! 챙! 챙!
가주인 팽구유의 호탕한 외침에 사기가 오른 스물다섯 명의 팽가의 정예 무사들이 함성을 질렀다.
팽가 내에서도 절정의 경지에 오른 고수들만 차출해서 왔다.
부관으로 따라온 외당주는 초절정의 고수였기 때문에 충분히 어떤 적에게도 쉽게 밀리지 않는 전력이라 자부한다.
“연 공자. 본 가주가 먼저 선공을 가하겠네.”
“좋을 대로 하십시오!”
자신 못지않게 전의를 보이는 팽구유 목소리에 연부소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웅!
팽구유의 도에서 푸른빛의 도강이 일어났다.
여기서 마교인들을 제압하고서 황제 폐하의 신뢰를 회복해야 하기에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기로 마음먹은 그였다.
“본 가주를 따르라!”
-팟! 쾅!
팽구유의 신형이 한줄기의 빛이 되어 사원의 대문을 뚫고 지나갔다.
뒤따라 들어가기 위해 연부소가 대문으로 경공을 펼치려 하는데, 등골이 오싹할 만큼 날카로운 예기가 느껴졌다.
‘뭐지? 이 예기는?’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귀가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사원 안에서 터져 나왔다.
“끄아아아아악!”
놀란 연부소와 팽가의 무사들이 대문을 통과해 사원의 마당으로 들어갔는데, 호기롭게 선공을 취하려 들어갔던 팽구유가 누군가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아닛!?”
그런데 팽구유의 상태가 이상했다.
무릎을 꿇고 있는 팽구유의 오른팔이 비어있었고, 잘려진 단면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가, 가주!!!”
팽가의 무사들이 경악해서 소리쳤다.
그들이 노해서 달려가려는 것을 연부소가 다급히 만류했다.
“멈추시오!”
그와 동시에 연부소가 떨리는 눈빛으로 팽구유의 앞에 서있는 자를 쳐다보았다.
긴 머리카락에 새하얀 얼굴의 청년이 서있었는데, 놀랍게도 그의 손에 잘린 팽구유의 오른팔이 들려있었다.
청년이 긴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며 그들에게 말했다.
“후우, 다짜고짜 덤비다니……오늘따라 팔이 잘리고 싶은 자들이 많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