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245)
# 77장 파기(破棄) (2) #
갑작스럽게 제청된 무림맹주 이목의 동맹 파기.
그것은 정도 무림맹의 본단을 혼란으로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들인 연부소의 팔이 잘려서 왔으니, 분노를 하는 것도 당연했지만 극단적인 제청이라 할 수 있었다.
“아미타불! 맹주. 너무 섣부른 제청인 것 같소.”
어지간한 경우에는 이목의 결정을 반대하지 않는 이웅주 각연 대사였지만 이번 일만큼은 옳지 못한 판단이라 여겼다.
당장에 마교와 척을 지게 되면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다.
“원시천존. 원시천존. 맹주. 그것은 빈도 역시도 대사님과 같은 의견이오. 이번 사건은 마교주가 과하게 도발한 것도 있지만 동맹 파기까지는 무리한 제청이오.”
육웅주인 풍청운도 이를 반대했다.
만약 마교주가 원래 그들이 판단했던 종사로서 아직은 모자란 애송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이번 국교 사건으로 무력을 갖춘 괴물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극도육무문 이상의 적을 만드는 것은 위험한 판단이었다.
“부디 제청을 거둬주길 바라오.”
정파 무림에서도 인망과 명성이 두터운 두 웅주의 의견은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었다.
게다가 무림맹 내에서도 온건주의자에 속하는 그들로서는 과도하게 전쟁의 범위가 커지는 것을 만류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 그렇게 생각하오?”
맹주 이목의 물음에 자연스레 모두의 시선이 삼웅주 남궁경에게로 향했다.
여기서 그마저 반대를 해줘야 제청 자체를 막을 수 있었다.
다만,
‘남궁 가주는 정파가 아닌 세력에 극단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자다.’
두 웅주들이 우려하는 점이었다.
극도육무문의 무림에 드러났을 때도 팽가의 가주인 팽구유, 당가의 가주 당필호와 더불어 앞장서서 동맹을 결사반대했던 인물이었다.
게다가 그는 연부소를 가르쳤던 스승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삼웅주 남궁경이 상당히 고민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찌해야 좋을까?’
남궁경의 고민은 당연했다.
정도 무림맹 내에서도 소수만이 알고 있는 그의 정체.
그것은 창천회(蒼天會)의 다섯 간부 중의 한 사람인 천주이다.
사마(邪魔)의 무리들을 전부 멸해서, 창천의 세상을 만들려고 하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동맹 파기는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었다.
‘아무리 연 공자의 팔이 잘렸다고는 하나 평소 맹주의 성품을 생각하면 극단적이다.’
물론 무위로서도 정파에서 정점에 서있는 자가 이목이다.
하지만 구파일방 오대세가의 출신이 아닌 그가 무림맹의 맹주가 될 수 있었던 것에는 대협이라는 칭호를 받을 만큼 정기가 넘치고 중도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맹주의 결정치고는 굉장히 극단적이었다.
‘흠…..’
남궁경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넘어가지 않기에는 이것은 어떤 의미로 좋은 기회였다.
‘이번 단오제에 사파나 마교의 수뇌부부터 극도육무문까지 전부 모인다. 지주가 남겨놓은 그 책으로 시술의 양산이 겨우 성공했다고는 하지만 맹에서 같이 지원해준다면 이번 기회에 그들 수뇌부를 한 번에 제거할 수 있다.’
이제 단오제까지 열흘의 기간이 남았다.
그때 통허현에 삼대 세력의 수뇌부들과 신생 문파인 극도육무문까지 모여서 관과 무림의 불가침 조약을 갱신하게 된다.
그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기회는 극히 드물다.
전체 전력이 오진 않더라도 각 파의 주요 수뇌부들만 제거해도 향후 중원 무림의 전황을 뒤흔들 만큼 크나큰 계기가 될 것이다.
남궁경이 고개를 들어 석좌에 앉아 있는 맹주 이목을 바라보았다.
이목의 하나뿐인 눈빛에는 강한 결의가 서려있었다.
‘진심인가.’
십칠웅주인 팽구유 같은 자가 이런 안건을 냈다면 당연히 노림수가 있다고 판단했겠지만, 그러기에는 맹주의 성품 자체가 올곧다.
의심이 많은 남궁경은 의견을 내기 전에 마지막으로 맹주 이목의 진정한 의중을 떠보기로 결정했다.
“맹주께서 이렇게 큰 결심을 하신 이유에 대해서 들어볼 수 있겠소이까?”
그 질문에 맹주 이목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입을 열었다.
“처음 본 맹주가 마교와의 동맹을 추진한 것은 위험한 악을 전초제근(剪草除根)하기 위함이었소. 하지만 그 생각이 틀렸소이다.”
“틀렸다함은?”
“악을 제거하고자 또 다른 악과 타협한다면, 예부터 정의를 숭상하는 정도 무림맹의 고결한 의지에 반한다는 것을 깨달았소! 지금이라도 본 맹주는 이를 바로 잡고서 정파의 중심인 본 맹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소이다.”
정기가 넘치는 목소리에 남궁경의 눈빛에 이채가 띠었다.
처음에는 갑작스러운 파기 제청에 의심을 했었지만 괜한 우려라 판단되었다.
그렇다면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었다.
‘두 군사와 다른 웅주들이 없는 지금이 기회다. 맹주의 결정이 바뀌기 전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한참을 고민하던 끝에 남궁경이 입을 열었다.
“맹주의 결의를 잘 들었소. 정의를 생각하는 그 고결함이 이 남궁 모의 마음을 움직였소이다. 본인 역시도 전부터 동맹을 반대해온 사람으로서 맹주의 제청에 찬성하는 바이오.”
“허어.”
이웅주 각연 대사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역시 예상과 같은 결과가 일어났다.
[풍 장문인. 이러다 정말 큰일날 수도 있겠소. 아미타불.] [일단은 막아야 겠소이다.]상황이 좋지 않다고 판단한 육웅주 풍청운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맹주! 본 맹의 모든 결정은 회의로 결정되기에 과반수 이상의 웅주들이 참석해야만 진행이 가능하지 않소. 정히 제청을 하시겠다면 그들의 절반을 소환시켜야 하지 않겠소?”
풍청운의 목적은 시간을 벌려는 것이었다.
지금 맹주 이목은 분노로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않고 있었다.
올곧은 성품의 그라면 하루만 설득해도 극단적인 제청을 철회할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그럴 필요 없소이다. 각 웅주들은 맡은 소임으로 공사다망하지 않소. 맹주께서 이번에 큰 결의를 하셨으니, 맹주령을 발동하는 것이 어떻겠소이까?”
“아니! 남궁 가주!”
남궁경의 의견에 각연 대사와 풍청운이 놀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맹주령(盟主令).
그것은 무림맹주가 지닌 최대 권한이었다.
풍청운의 말대로 수많은 문파가 가입하여 만들어진 무림맹이기에 모든 안건은 회의를 통해서 결정되지만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
바로 맹주령을 통한 결정이었다.
무림맹주는 임기 동안 총 세 번의 맹주령을 발동할 수 있다.
이것은 정파 무림을 대표하는 자에게 위임된 최대 권한으로 맹주령을 발동할 시에는 누구든 이견을 제의하지 않고 따라야만 했다.
“남궁 가주! 이 중차대한 일에 어찌 맹주령을 발동하라는 것이오!”
도사로서 평소에 화를 잘 내지 않는 풍청운조차 목소리가 높아졌다.
맹주령을 발동하면 누구도 거부권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워낙 강제적인 성격이 강한 권한이라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고는 역대 무림맹주들도 이것을 쓰는데 신중을 기했다.
현 맹주인 이목 역시도 임기 동안에 한 번도 쓰지 않았다.
“맹주 이것은 신중히 선택…”
“좋소이다. 삼 웅주의 의견을 받아들여 이번 파기 제청은 회의가 없이 맹주령을 통해 결정토록 하겠습니다.”
“매, 맹주!”
“어찌 그런 결정을…..원시천존. 원시천존.”
확고하게 결정을 내리는 맹주 이목의 말에 두 웅주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반면에 남궁경은 기쁨을 숨길 수 없었는지 입 꼬리가 올라갔다.
‘거짓이 아니었다. 확실하다!’
혹시나 했던 우려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드디어 창천회의 오랜 계획을 발동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생겨났다.
‘회주께서도 크게 기뻐하시겠구나!’
* * *
늦은 밤.
무림맹 본단 맹주 이목의 집무실.
집무실 책상에 있는 백자 등잔의 촛불 하나가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맹주 이목이 촛불 아래에서 잔뜩 구겨진 서찰 하나를 펴서 읽어 내려갔다.
[본좌는 마교주. 천여운이라고 하오.먼저 황궁에서 맹주의 아드님과 귀 맹의 웅주들에게 해를 입힌 것을 먼저 사과하겠소.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귀 맹의 웅주들이 믿지 않을 거라 생각하여, 과하게 맹주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소.
맹주께는 약조하리다.
이번 일이 마무리된다면 아드님과 두 웅주 분들을 무사히 송환시키겠소.
그리고 국교 건 역시도 황제 폐하께 아뢰어 도교로 양보되도록 할 터이니, 이번에 본좌를 믿고서 맹주와 한 가지 일을 도모하고자 하오.
이번 황궁에서의 일로 대계가 실패하여 극도육무문의 수뇌부들이 단오제 때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수도 있소.
듣기로는 본교와 마찬가지로 귀 맹 역시도 간자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고 들었소.
그래서 본좌가 좋은 방책을 떠올리게 되었소이다.
이를 위해서 맹주께서…..]
구깃구깃 구겨진 서찰에 적힌 내용이었다.
간자를 보낸 적들을 속이기 위해 아군도 속이라는 말과 함께 동맹을 잠시 파기하자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분노하기는 했지만 극단적으로는 갈 생각이 없던 이목이었다.
그러나 서찰의 내용을 되새기면서 마교주가 한 제의가 일리가 있다고 여겼다.
‘….이번 결정은 본 맹주에게 있어 도박이나 다름 없다.’
-화르르르륵!
심란한 마음에 집무실로 돌아와 다시 한 번 서찰을 읽은 이목은 이를 촛불에 태웠다.
불이 붙은 서찰이 바스라지면서 재가 되어 허공으로 사라져갔다.
이를 바라보는 이목의 눈빛이 묘하게 반짝였다.
* * *
무림맹의 본단 건물에서 서남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산인 연자봉의 깊은 계곡.
수풀들로 가려진 어두운 계곡의 깊숙이에는 하나의 동굴이 있었다.
산짐승이 살 것 같은 동굴 안은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동굴의 입구 앞으로 한 정체불명의 검은 장포의 죽립인이 나타났다.
죽립인이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동굴 입구의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서 작게 입을 열었다.
“도공문의 제 삼대 대주 복정이 문주의 명을 이행했나이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동굴 안에서 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있는 듯 없는 듯이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은 이 인영은 독특하게도 눈까지 전부 가려진 검은 복면을 쓰고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을 터인데 전혀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어떻게 되었지?”
복면에 가려진 입술 부분이 들썩이며 움직였다.
결과를 묻는 복면인의 질문에 죽립인이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성공했습니다.”
“동맹을 파기한다고 선언하였나?”
“그렇습니다!”
그 말을 하면서 죽립인이 얼굴을 가리고 있던 죽립을 벗었다.
그러자 뜻밖에도 죽립에 드러난 얼굴은 팽가의 외당주인 팽여속이었다.
“역시 문주께서 만드신 인피면구는 완벽했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으니, 팽가의 사람들조차 의심을 하지 않았습니다.”
팽여속이 자신의 볼을 쭉 잡아당겼는데, 고무처럼 늘어났다.
이에 복면인이 그를 다그쳤다.
“그만. 죽은 시신으로 만든 것이다. 그리 잡아당기면 찢어진다.”
“헉! 소, 송구합니다.”
놀란 팽여속이 잡아당기던 볼 살을 놓았다.
눈치를 보는 그에게 복면인이 물었다.
“창천회 놈들도 움직였나?”
“문주께서 예견하신 대로 그 자가 알아서 돕더군요. 이번 기회를 잘 살린다면 회주라는 자의 정체도 근 시일 내로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복면인이 흡족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삼 대주. 너는 대계에 시작되는 그 날까지 무림맹에서 저들이 계획대로 움직이는지 살펴라.”
“명을 받듭니다!”
-슉!
복면인의 명령이 떨어지자, 팽여속이 다시 죽립을 쓰고서 경공을 펼쳐서 돌아갔다.
그런 그가 돌아가는 방향을 쳐다보면서 복면인이 중얼거렸다.
“마교주 천여운! 그동안 모습을 숨기고서 본문의 대계를 줄곧 방해했겠다. 이번에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