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246)
# 78장 불가침 조약식 (1) #
이틀이 지나고 전 무림으로 정도 무림맹의 공표가 퍼져나갔다.
근 일 년도 되지 않은 정마(正魔) 동맹의 파기.
그리 오랫동안은 동맹이 유지되지 않을 거라는 것은 전 무림인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그 순간이 너무도 빠르게 찾아왔다.
최근에 사파 내부의 전쟁으로 외부에 눈길을 돌리지 않던 사파 연맹조차도 이에 관심을 가질 지경이었다.
사천성 북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사파 연맹의 본단.
본단의 연맹주의 침소.
그곳에 온몸에 흉터투성이인 거구의 사내가 왜소한 늙은 의원에게 침을 맞으면서 왼쪽 눈에 안대를 쓴 중년인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이상 현 중원 무림의 현황 보고를 마치겠습니다.”
“클클, 이것 참 재미있게 돌아가는구나.”
침을 맞고 있는 거구의 사내가 흥미롭다는 듯이 말을 하면서도 입맛을 다셨다.
좋은 기회를 포착하고도 내버려둬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단오제 때만 노려도 큰 수확을 거둘 만도 한데……그 빌어먹을 ‘놈’ 덕분에 참으로 좋은 기회를 놓치는구나.”
오랫동안 삼대 세력 간의 균등한 성세가 이어지던 무림에 처음으로 균형이 깨졌다.
극도육무문이 하나의 계기가 된 것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내부의 적으로 인해 사파 연맹은 이 기회를 엿볼 틈이 없었다.
“주군께서 내상만 회복하셔도 언제든 해결할 수 있는 자이옵니다.”
안대의 중년인의 말에 거구의 사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협공이라고 하나 그 놈과 손을 섞어본 결과 훗날을 장담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주군.”
“그리 이상한 것이 아니다. 자연스러운 수순일 수도 있다. 장강 후랑 추전랑이라고 하지 않았더냐. 오랜 세월 해먹었으니 이런 순간이 찾아온 것이지.”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 일대신인환구인(一代新人換舊人).
장강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듯, 한 시대의 새사람이 옛사람을 대신한다는 말이다.
자존심이 강한 사내였지만 언제까지 정점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늘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주군!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주군은 대사파 연맹의 맹주이시자 서쪽의 패왕이 아니십니까!”
그를 모신지 오래 되었지만, 여태껏 본 적이 없는 약한 모습에 안대의 중년인이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거구의 사내의 정체는 다름 아닌 오대고수의 일인이자 서쪽의 패왕이라 불리는 항연이었다.
근 삼십여 년 동안이나 사파 연맹을 아우른 그가 이렇게 내상을 입고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누가 짐작이나 하겠는가.
철저하게 정보를 통제 하지 않았다면 사파 전체에 큰 지각변동이 있을만한 대사건이었다.
“주군 하나를 바라보는 무인들이 수만 명입니다. 이런 부상 따위는 털어내시고 그 놈을 없애시면 됩니다! 부디 수하들 앞에서 약한 말씀은 삼가주십시오.”
“클클, 고얀 놈. 수적이나 하던 녀석을 데려왔더니, 잔소리가 심하구나. 갈모잠.”
안대의 중년인.
그의 정체는 바로 황하 수로십팔채의 총두목인 황하패주(黃河霸主) 갈모잠이었다.
그는 중원 구패의 일인이자 사파 연맹의 여덟 간부 중 서열 사 위에 해당하는 절대고수이다.
전에 묵경시에서 천여운의 손에 죽은 황하삼귀의 백부이기도 했다.
“너무하십니다. 주군. 제가 연맹 자금의 삼 할을 책임지는데, 섭섭하군요.”
“클클클.”
기분이 한결 나아졌는지 농을 던지는 항연의 말을 그가 장난스럽게 받아쳤다.
그만큼 서로를 신뢰하는 사이이기도 했다.
패왕 항연이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입을 열었다.
“네 녀석의 말을 듣고 보니, 아직까지 무림에 본 패왕이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성을 느끼는 구나.”
“주군. 그 말씀은?”
“통허현에서 있을 불가침 조약을 말하는 거다.”
갈모잠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패왕 자신의 부상도 있었고, 현재는 비교적 잠잠한 상태이지만 여전히 내전을 치르는 와중이었기에 큰 힘을 동원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주군. 그 일보다는 부상 치료에 전념하시는 편이…”
“아니다. 만약에 이번 단오제를 그냥 넘긴다면 중원 무림의 사람들도 그렇고 ‘그 놈’도 본좌의 부상을 눈치 채겠지.”
“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미처 염두 하지 못한 갈모잠이었다.
확실히 항연이 말한 대로 ‘그 놈’ 역시도 이번 일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을 지도 몰랐다.
만약 패왕이 불가침 조약에 사람을 보내지 않고 세력 보존에 급급하다면 이를 빌미로 다시 한 번 노려올 확률이 높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태껏 조약을 갱신할 때마다 본좌가 직접 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구나.”
마교에서도 한 번도 교주가 직접 참석한 적이 없기에 자존심을 지키려고 한 번도 조약식에 참석하지 않았던 그였다.
하지만 참석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럴 듯한 자를 보내지 않는다면 ‘그 놈’이 알아차릴 것이다.
“갈모잠. 네가 참석토록 해라.”
“네?”
항연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명령에 갈모잠이 당혹스러워했다.
“주군! 지금 상황에서 제가 본단을 비우면…”
“상관없다. 어차피 이곳은 대사선과 조패검이 지키고 있으니.”
현재 사파연맹의 본단은 황하패주 갈모잠을 비롯한 서열 이위인 대사선(大邪仙) 공윤과 오위인 조패검(趙敗劍) 금종사가 지키고 있었다.
세 간부들이 철통 같이 지키고 있지만 이 중 한 명이라도 빠진다면 부상 입은 패왕 항연의 안전에 문제가 생길 지도 몰랐다.
우려하는 갈모잠에게 항연이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 녀석을 그냥 보내주는 것이 아니다.”
“하면?”
“조카 녀석들을 마교인들이 죽였다지.”
묵경시에서 정보를 파는 암문(暗門)의 수장인 두현을 족쳐서 알아낸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꼴에 정보 상인이라고 아무 것도 발설하려 하지 않았지만 오상루에 있던 기생들의 반수 이상을 죽이자 결국에 입을 열었다.
“…..놈들에게는 빚이 좀 있지요.”
담담하게 말을 했지만 그 눈빛에 진득한 살기가 베여있었다.
혼인을 하지 않은 갈모잠은 가족, 친지들을 끔찍이 여겨 그들을 건드리는 자는 누구라도 용서치 않는다.
단지 이번 내전이 길어지면서 복수를 할 기회가 차일피일 미뤄졌던 것이다.
“이번에 그 빚을 갚을 기회를 주마. 조약식이 끝나면 분명 혼선이 빚어진다. 그렇게 된다면 정도 무림맹의 녀석들이나 그 극도뭐시기인가 하는 놈들이 누구를 먼저 노릴지 알겠지?”
정도 무림맹의 공표로 인해 황궁 사건은 이미 무림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들리는 정보만 조합해도 두 세력이 먼저 노릴 대상자는 뻔했다.
서로 손을 잡진 않더라도 마교를 먼저 치려할 것이다.
“천유종 그 놈의 자식 녀석이 요즘 활개를 치고 다니는데, 무림이란 곳이 그저 무위만으로 날뛸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줘라.”
-욱씬!
항연이 전신에 가득한 상처들 중에 가슴 한 가운데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전 마교주 천유종에게 당한 상처가 쓰라렸다.
두 눈이 빨개져서 짐승처럼 변한 놈이 아무리 살초를 가해도 쓰러지지 않고서 미친 듯이 덤벼대는 통에 전의를 상실한 그는 후퇴를 해야만 했다.
‘그때의 치욕을 네놈의 자식의 목숨으로 갚아주마.’
-고오오오오!
부상을 입었음에도 강렬한 살기를 발산하는 항연의 모습에 아직은 그가 건재하다고 여긴 갈모잠이 내심 다행스러워했다.
“알겠습니다. 반드시 주군의 명을 이행하고 돌아오겠나이다.”
항연의 명대로 조약식에 참석하려면 서둘러 떠나야 했다.
여드레 안에 통허현에 도착하려면 기간이 빠듯하다.
인사를 한 후에 나가려는 갈모잠에게 항연이 한 가지 궁금했는지 물었다.
“그러고 보니, 정파 녀석들이 이번에 동맹 파기를 할 때, 현 마교주 그 놈을 뭐라고 불렀다고 했지?”
“…..황제를 능욕하고 사신으로 갔던 무림맹 수뇌부들의 팔을 잘라 동맹의 신의를 어겼다고 하여 역천마인라고 한다더군요.”
“역천마인? 하여간 정도 무림맹 놈들의 작명하는 꼴이란.”
정파의 무인들을 제외하면 사마의 무인들에게 늘 최악의 별호를 갖다 붙이는 그들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마교의 교주인데 역천마인이라 한다면 격이 떨어져 보인다. “그런데 무림인들은 그리 부르지 않습니다. 아주 광오한 별호로 부르더군요.”
“광오한 별호?”
“대명제국의 하늘인 황제마저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고 해서 마교주 그 놈을 역천마제(易天魔帝)라고 부릅니다.”
“마제? 하!”
항연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오대고수의 일인인 자신조차도 왕(王)이라 불리는데, 첫 별호에 아주 광오했다.
하긴 관과 무림이 불가침 조약을 맺은 후로 황궁을 직접적으로 위협한 자가 없었는데, 그곳을 들쑤셔 놓았다면 그리 불릴 만도 했다.
“놈이 다시는 그 별호를 쓰지 못하도록 만들어라.”
“황하패주 갈모잠. 주군의 명을 받듭니다!”
* * *
불가침 조약식이 있기까지 나흘 전.
정도 무림맹의 본단으로 황궁 사신단이 도착했다.
무림맹의 대전 안에는 무림맹의 여덟 명의 웅주들과 단주 급 이상의 간부들이 모여, 무릎을 꿇고 바닥에 머리를 조아려 어명을 받고 있었다.
어명을 전달하는 자는 금의위 북진무사인 영조였다.
석좌 앞에 서서 어명이 적힌 두루마리를 펴든 영조가 그 내용을 읊고 있었다.
“….위치는 통허현의 진성(津城) 내에서 조약식이 진행될 것이다. 관과 무림이 불가침 조약을 맺는 평화적인 자리인 만큼 각파의 수장들을 제외한 호위 병력은 백 명을 넘겨선 안 될 것이며, 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어명을 읽어 내려갈 동안 웅주들의 표정이 묘해졌다.
이번 조약식은 삼대 세력 모두가 아마도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조약식이 끝나는 순간 언제든 전쟁이 시작될 수 있다.’
그렇기에 웅주들은 회의 끝에 정도 무림맹에서도 최고의 무력 집단이라 불리는 백원단과 정의단의 정예 무사들을 동원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려 했다.
그런데 사전에 이것이 어명을 통해서 차단된 셈이었다.
‘한 개의 단밖에 투입이 안 되겠구나.’
물론 그렇다고 해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각파의 대표들은 숫자에 제한 없이 출입할 수 있기에 방비를 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가령 삼류 문파의 대표들까지 참석시킨다면 어느 정도 다른 세력들보다도 우위에 점할 지도 몰랐다.
수백 개의 문파, 방파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무림맹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누구의 머릿속에 나온 생각인지 알겠구나. 후후후.’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삼웅주 남궁경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현재 마교주 천여운은 아직까지 개봉의 황궁에 상주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마 동맹이 파기되면서, 마교주는 적지인 정파의 영역의 한가운데에 있는 셈이었다.
이미 개봉의 주위를 연부소의 백원단을 비롯한 다섯 개의 단이 포진하고 있다.
언제든지 마교주가 황궁 밖으로 나오면 그를 칠 준비가 되었다.
‘소용없다. 마교주여. 네놈이 황제 폐하를 움직여서 무슨 수를 쓴다고 해도 살아서 통허현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창천회에 소속된 중소문파들만 백여 곳이 넘었다.
게다가 혹시의 상황을 대비하여 통허현에 이미 그들의 간자들을 곳곳에 숨겨두었기 때문에 만일의 경우 동원할 고수들의 숫자는 충분했다.
‘그에 반해 마교의 병력들은 황하 이남에서 발이 묶였지.’
동맹파기를 공표하기 전에 이미 호북 황하의 경계면에 무림맹의 일곱 개의 단과 여섯 곳의 호북지부 무사들, 그리고 점창파, 무당파의 제자들이 진을 치면서, 단오제에 맞춰서 북상하려 했던 마교의 병력을 저지하고 있었다.
마교 측에서 사태의 급박함을 느꼈다고 해도 방도가 없을 것이다.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다.’
마치 호응이라도 해주듯이 절강성 쪽에서는 극도육무문, 사천에서는 사파 연맹의 병력들이 일제히 경계 지역을 배회하면서 마교의 북상을 막았다.
서로 사전에 협정을 맺은 것도 아니었다.
‘그들 역시도 이것이 기회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겠지. 마교주 네놈의 실수는 단 하나다. 모두에게 위기감을 조성했다는 것!’
삼대 세력이 마교군의 행로를 막음으로써 마교주 천여운이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현재 황궁에 상주하고 있는 오십여 명에 불과한 교인들에 불과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컸다.
생사경의 경지에 오른 최악의 고수인 마교주 천여운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될지도 몰랐다.
‘마침 시술을 완성한 시기도 들어맞았다!’
창천회의 지주인 무당파의 현운자가 죽기 전에 남긴 신의의 비서로 개량된 극무지체(極武至體)의 시술을 완성시켰다.
시간이 부족하여 많은 자들에게 시술을 행하진 않았지만, 팔할 이상이 성공적으로 마쳤기에 큰 효과를 낼 것이다.
‘역천마제? 웃기지 마라. 악(惡)은 절대로 하늘을 넘볼 수 없다. 푸른 하늘을 위해서라도 통허현이 네놈의 무덤이 될 것이다!’
바닥에 엎드린 남궁경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이번 단오제를 기점으로 무림의 정세는 완전히 뒤바뀌게 될 것이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 초닷새가 되었다.
대망의 단오제 날이 다가온 것이다.
단오는 일명 수릿날, 천중절, 중오절, 단양이라고도 한다.
한 해에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인 단오제 날은 초나라 회왕(懷王)때에 비롯되어, 중원 전체로 퍼져나갔다.
하남성의 통허현의 중심부에 자리한 진성(津城).
그곳은 대명제국의 태조 주원명이 일어난 최초의 도읍지이면서, 중원의 영웅들과 백성들을 구하기로 천지신명께 맹세를 한 곳이다.
그것을 기려서 통허현의 진성에서는 새로운 태자가 정해질 무렵, 관과 무림의 불가침 조약식이 행해졌다.
현에 불과한 성이었기에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족히 이만 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었기에 충분히 조약식을 진행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정오에 진행될 조약식에 앞서 황궁의 관료들과 이백여 명의 금의위, 삼천 명의 병사들이 오 열을 갖추고 대기하고 있었다.
-쿵! 쿵! 쿵!
성문을 지키고 있는 황궁의 금의위가 북을 두드리며 큰 소리로 외쳤다.
“정도 무림맹의 맹주님과 각 파의 수장 분들께서 도착했습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이들은 정도 무림맹 측이었다.
정파의 영역이었기에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탁!
가장 먼저 성문의 입구를 밟고 들어온 자는 무림맹주 이목이었다.
이목이 조약식을 위해 꾸민 성내를 살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드디어 시작인가.’
오늘을 기점으로 새로운 지각 변동이 일어난다.
-우르르르!
맹주 이목을 필두로 무림맹을 이끄는 다섯 웅주들과 이백사십세 명의 각 문파, 방파의 수장들, 그리고 마교주에게 포로로 잡혀서 단주가 공석인 백원단의 정예무사 백 명이 전의가 넘치는 눈으로 입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