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26)
# 10장 눈에는 눈, 이에는 이(2) #
어제 새벽 천여운이 육 조의 절반이나 되는 생도들의 다리 혈을 장침으로 찔러서 부상을 입히는 동안 끝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육 조의 조장이었다.
‘찾았다. 범인.’
천여운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반면 육 조의 조장인 백팔 번 생도 하일명은 최악으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놀랍게도 하일명은 모든 조의 조장들 중에서 유일하게 여섯 종파에도 그리고 상위 종파에도 속하지 않는 자였다.
그는 사흘 전 네 조씩 나누어서 조별 대전을 하게 된다는 정보를 듣자마자, 쉽게 시험을 통과해낼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리게 되었다
‘조장만 없앤다면 진형을 운영할 수 없겠지.’
진형 훈련은 어차피 모든 조가 스물하루 동안 받아왔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다.
일반 사람들도 아니고 전부 무도 종파에서 무가의 소년들이니 어설프게 실수를 할 리도 없었다.
결국 관건은 조장의 유무라 판단한 하일명은 밤마다 몰래 기습을 자행했다.
보통 교내의 생도들은 여섯 종파의 위세와 교주의 핏줄임을 두려워했기에 쉽게 그들을 노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킥, 어차피 소교주 후보든 뭐든 이겨야 할 것 아니야.’
하일명은 과감하게도 두 명의 소교주 후보자를 노렸다.
첫 번째 후보자인 천원려와 몇 초식 겨뤄본 하일명은 그녀를 충분히 부상 입힐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유일한 오판이 하나 있었다.
음마종의 무공을 연마한 천원려가 음파공을 펼치면서 퍼져나가는 소리로 인해 주변에서 인기척들이 다가오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첫 실패를 맛본 후에 두 번째로 노린 것이 바로 복마종의 소교주 후보자인 천무금이었다.
천원려를 노렸을 때보다 더욱 만반의 준비를 한 하일명은 숙소 뒤편 숲에서 심복인 자현과 함께 훈련 중이던 천무금을 습격했고 드디어 부상을 입히는데 성공시켰다.
확실한 마무리를 하려고 했지만 도중에 누군가가 나타나는 바람에 철수해야만 했다.
그래도 한쪽 다리를 못 쓰게 했으니 성과가 크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한 조의 조장도 노리려고 했던 하일명은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것은 아직도 욱씬 거리는 오른쪽 옆구리의 통증 때문이었다.
‘제대로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분명 마지막에 나타난 그 생도의 도초를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완전히 피하지 못했는지 도초에 실린 공력이 파고들어서 갈비뼈에 금이 가고 말았다.
뼈에 금이 간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몸속으로 파고든 공력을 빼내야 했기에 그는 새벽에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한 시진 가량 운기조식을 해야만 했다.
그 한 시진 사이에 공교롭게도 일이 터지고 말았다.
‘어떤 개자식이 이딴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벌인 거야!’
소교주 후보를 노릴 만큼 배짱을 가진 그였지만 설마 자고 있는 숙소를 노릴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범인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과감하다 못해 미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라면 일찍 깨어나던 생도들이 계속해서 잠이 들어 있어서 이상하다고 여겨서 살펴보았더니 훈혈이 점해져 있었다.
그것도 모든 생도들의 훈혈이 점해져 있었다.
그때만큼은 하일명조차도 온몸에 닭살이 돋을 만큼 소름끼쳤다.
거의 풀려가고 있던 훈혈을 해지했더니 호실에 있던 생도들의 반이 허벅지, 종아리, 발목의 혈을 찔렸다.
‘어째서 다리만? 아!’
다리만 노렸다는 사실을 깨닫자 하일명은 이것이 복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없는 틈을 노려서 이딴 미친 짓을 하다니…..’
조장의 부재를 틈타서 생도들을 노릴 만큼 과감한 것도 모자라서 철두철미한 자라 추측했다.
가장 유력한 범인은 당연히 팔 조일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팔 조의 새로운 조장으로 단상 위로 올라오는 천여운을 보자 의아해했다.
‘이 녀석은….’
사실 그는 어젯밤 천여운과 일 초식을 겨뤘으나,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란 상태였고 한밤 중의 숲이었기에 워낙 어두워서 그 얼굴의 생김새까지는 정확하게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 불운의 칠 공자인가? 이 녀석일 리는 없는데.’
불과 스물하루 전만 하더라도 내공이 없어서 의무실로 실려 갔던 녀석이 무슨 수로 이런 대담한 짓을 벌인단 말인가.
그렇다면 팔 조 내에 자신과 같이 알려지지 않은 고수가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자신의 분노를 풀기 위한 하일명의 목표는 분명했다.
‘반드시 범인을 잡아내서 놈의 다리를 병신으로 만들고 말 테다!’
단상 앞의 대진표에 무공교두가 두 번째 제비뽑기 결과를 적었다.
[오 조 대 팔 조, 육 조 대 칠 조]결과가 공개되자 칠 조의 생도들의 여기저기서 안도의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장이 새벽에 다녀간 손님 덕분에 교체되는 바람에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음마종의 소교주 후보인 천원려가 있는 오 조만큼은 절대적으로 피하고 싶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육 조 녀석들 상태가 우리보다도 좋지 않잖아.”
“잘 하면 올라갈 수도 있겠어!”
그런 반응들이 바로 옆에 있는 육 조의 생도들과 그 조장인 하일명의 심기를 건드렸다.
비록 조원들의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복수심에 팔 조와 대진이 되길 바랬는데, 원하는 대로 되지도 않고 옆에서 심기를 건드리니 짜증이 났다.
‘오늘 꼭 피를 봐야 속이 풀리겠는데.’
하일명의 날카로운 눈매에 살기가 감돌았다.
한편 천여운이 있는 팔 조의 생도들 역시도 이 같은 대진 운에 절망스러운 얼굴이 된 생도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조장도 바뀌지 않고 전력상에 손실이 전혀 없는 조와 붙여졌으니 말이다.
‘칫, 밤에 고생한 보람이 없군.’
천여운도 아쉬운지 입맛을 다셨다.
이 정도면 운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제비뽑기 결과였다.
도박에는 절대로 손을 대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천여운은 왼쪽의 두 조를 거슬러 선두에 있는 천원려를 바라보았다.
‘음마종.’
소교주 서열 후보 여섯 번째에 해당하는 음마종의 천원려였다.
복마종인 천무금이야 같은 조라서 어쩔 수 없었지만 이 단계 시험부터 벌써 그녀와 맞부딪치는 상황이 벌어졌으니 어떤 식으로든 이겨야했다.
문제는 그녀가 다른 여섯 후보자들보다 무공이 낮기는 하나, 그 명석함이 뛰어나 어릴 적부터도 군사로서의 자질을 드러냈던 인재라는 점이었다.
‘상관없다. 어차피 이겨내야 할 적이라면 강하든 약하든 부순다!’
천여운이 그렇게 속으로 결의를 다졌다.
스무 조의 모든 대진표가 결정이 되고 드디어 이 단계 시험이 시작되었다.
마도관주 좌호법 이화명의 내공이 실린 목소리가 대연무장 전체로 울려 퍼졌다.
“첫 번째 대진의 조는 대연무장의 가운데로 나오도록!”
“마도!!!”
대진표의 첫 번째 조별 대결에 기재된 일 조와 삼 조의 생도들이 오열을 맞춰서 대연무장의 가운데에서 거리를 벌린 채 대치했다.
모든 생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단계 시험의 결과가 이 자리에서 바로 결정 난다.
긴장한 삼 조의 조장과 그 생도들과 달리 일 조는 분위기가 달랐다.
조장인 현마종의 소교주 후보자 천무연을 필두로 그 뒤에 서있는 생도들의 눈빛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천무연.’
천여운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이름이다.
현재 소교주 후보 서열 일 위인 천무연은 가장 소교주의 위치에 가까운 남자라고 불리는 자였다.
여섯 종파들 가운데서도 가장 위세가 강한 현마종이라는 것을 떠나서, 아직 열여덟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높은 무공 실력을 비롯해 지략, 인품 어떤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인물이라 알려진 자였다.
두 조에서 진검과 방패를 들고 준비가 끝나자 좌호법 이화명이 외쳤다.
“상대 조를 제압하는 쪽이 승리한다. 시작하라!”
“마도!!!”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두 조에서 힘차게 외치며 대결이 시작되었다.
공교롭게도 두 조가 외치자마자 동시에 앞으로 돌격했다.
조장의 부재로 새롭게 조장이 된 삼 조의 조장은 전략을 운영하는데 미숙했기에 빠르게 승부를 보는 것만이 답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뭐지?’
첫 진형 대결인데 두 조 모두 아무런 진형변화가 없이 이열로 방패를 앞으로 해서 진격했다.
이대로 부딪친다면 힘겨루기 식으로 서로 밀어내는 것 외에는 구도가 되어버린다.
조장이 부재해서 진법 운영이 미숙한 삼 조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일 조의 조장인 천무연의 전략치고는 너무 단순했다.
“와아아아아아!”
서로 부딪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바로 직전이었다.
진격하는 열의 한 가운데서 천무연이 외쳤다.
“우측부터 삼(三)!”
외침과 함께 돌격하던 우측 열이 속도를 올리더니 진형의 형태가 바뀌었다.
단상 위에서 지켜보는 좌호법 이화명이 작게 중얼거렸다.
“호오. 여기서 사선진(斜線陣)을?”
일 조의 진형은 비스듬한 사선으로 돌격하는 형태인 사선진이었다.
바로 앞에서 진형이 바뀌자 이에 대응할 틈새도 없이 두 조의 철 방패가 부딪치고 말았다.
-깡!
서로 견고한 형태로 붙어있던 삼 조의 우측 끝을 차례로 일 조의 돌격에 순차적으로 부딪쳐갔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삼 조의 방향에서 왼쪽 두 열에 있던 생도들이 옆으로 밀려나가며, 파도처럼 옆에 있는 생도들과 부딪치더니 이내 맨 우측에 있던 마지막 열이 넘어지는 사태가 일어났다.
“밀지마! 밀지 말라구!”
“으아아악!”
-우르르르!
사선으로 우측에서부터 돌격이 부딪치자 그 힘이 비스듬하게 전파된 것이었다.
단순한 전법처럼 보이나 상대가 단순한 진형으로 열을 갖춰서 돌격해올 때 가장 효과적인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진형이었다.
“일어나! 일어나야 해!”
새롭게 바뀐 삼 조 조장이 조원들에게 외쳤다.
내공을 써가면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했지만 상대 편 역시도 사선진의 끝에서부터 철방패에 내공을 실은 것이었기에 일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일 조 조장인 천무연이 넘어져 있는 삼조 조장의 우측 어깨를 진검으로 찔렀다.
-푹!
“크헉!”
고통스러워하는 그를 향해 천무연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네 패배다. 항복해라.”
“끄으으으윽.”
그 눈빛을 보니 항복하지 않으면 이번에는 어깨가 아니라 머리를 찌를 기세였다.
위협에 대한 두려움보다도 제대로 된 진형 대결조차도 해보지 못한 채, 패한 것이 너무 분했지만 이미 반전시킬 수 있는 여지가 없었다.
“……졌습니다.”
삼 조의 항복 선언과 함께 일 조에서 승리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
겉보기에는 싱거운 대결 같이 보였지만 절대로 상대가 약해서 벌어진 운이 아니었다.
조장인 천무연이 뛰어난 전략과 진형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으면 절대로 이룰 수 없는 결과였다.
좌호법 이화명이 일어나서 외쳤다.
“일 조의 승리를 축하한다. 조장인 일 번 생도를 포함한 일 조의 생도들은 이 단계 시험에 합격했음을 공표한다.”
이로써 일 조의 생도 스무 명이 이 단계 시험에서 합격했다.
-웅성웅성
모든 생도들이 한껏 부러워하는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때 천여운은 묘한 눈빛으로 뭔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첫 이 단계 통과자들로 인한 분위기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두 번째 대진표에 기재되어 있는 이 조와 사 조가 호명을 받고 대연무장으로 나왔다.
“상대 조를 제압하는 쪽이 승리한다. 시작하라!”
“마도!!!”
이 조와 사 조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앞선 조의 대결을 지켜봤었기 때문에 두 조는 서로를 경계하느라 무조건적인 돌격을 삼갔다. 덕분에 격렬한 진형 대결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섯 차례 정도 양쪽의 진형 변화를 통해 결과가 정해졌다.
결과는 예상과 일치했다.
“사 조의 승리를 축하한다. 조원 모두 이 단계 시험을 합격했음을 공표한다.”
조장이 바뀌게 된 이 조는 최대한 분전했으나 결국 패하고 말았다.
사전에 습격에 대비하지 못한 것을 후회해도 어쩔 수 없었다.
‘역시 예상대로다. 저 두 조도 똑같다.’
모두가 승패에만 집중하는 한가운데에 천여운은 자신이 발견한 정보가 확실하다는 것에 내심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패자들은 우울하고 분해하는 얼굴로 대연무장의 바깥으로 나와야 했고, 승자는 환호성을 지르며 나왔다.
대연무장의 가운데가 비어지면서 준비가 끝나자 좌호법 이화명이 외쳤다.
“다음 대진의 조는 대연무장으로 나오도록!”
다음 조는 오 조와 팔 조의 대결이었다.
드디어 자신의 순서가 오자 천여운도 긴장된 눈빛으로 조원들을 바라보았다.
그가 긴장하는 만큼이나 팔 조의 생도들의 눈빛도 불안감과 초조함으로 떨리고 있었다.
‘사기가 떨어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지?’
천여운이 침을 삼키며 호흡을 가다듬더니, 자신의 긴장하는 눈빛을 지우고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떨리나?”
“?”
“긴장되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조장이 바뀌어서 불안한 마음은 알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이겨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마도관에서 방출된다.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높이 올라가고 싶다.”
솔직한 감정이 담긴 천여운의 말에 긴장하고 있던 생도들이 하나 둘씩 귀를 기울였다.
조장이 아닌 같은 생도로서의 입장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이목이 집중되자 천여운이 생도들을 향해 더욱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그도 그렇지만 나는 솔직히 화가 난다. 조장을 노려서 우릴 어이없게 시험에서 떨어뜨리려고 한 그 놈의 술책따위에 넘어가고 싶지 않다!”
분노는 때때로 긴장감을 완화시키기도 한다.
천여운의 그 말에 생도들 역시도 서서히 눈빛에서 짜증과 분노가 뒤섞였다.
“모두가 나와 같은 마음이라면 여기서 우린 패배할 수 없다. 이제 더이상 긴 말은 하지 않겠다. 반드시 이기자!”
천여운의 그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마지막의 그 한 마디에서 감정적으로 들끓은 생도들의 사기가 치솟았다.
천여운의 말이 끝나자마자 생도들이 긴장과 두려움을 떨쳐내고 한껏 고양된 큰 목소리로 외쳤다.
“이기자!!!”
-우르르르르!
팔 조가 오열을 맞춰서 천여운을 선두로 대연무장의 우측 가운데 쪽으로 향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좌호법 이화명의 눈빛에 이채가 띠었다.
‘생도들의 사기도 올릴 줄 알았나?’
의외의 면을 발견했다.
그저 대타로 나왔기에 별 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저런 면을 지니고 있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조원들의 사기만 끌어낸다고 진형 대결에서 승리를 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지켜보면 알게 되겠지. 범의 자질일지 살쾡이에 불과할지.’
오 조와 팔 조가 대치한 상태에서 좌호법 이화명이 대결의 시작을 알렸다.
“상대 조를 제압하는 쪽이 승리한다. 시작하라!”
“마도!!!”